◈하나님의 눈과 사람의 눈 행13:22
요즘 제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자’는
훈련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눈은 은혜의 눈
어떤 임금이 핑크 색을 너무 좋아해서, 궁궐은 물론이요,
자기 나라 국민들의 옷을 모두 핑크 색,
집 담벼락을 모두 핑크 색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답니다.
그런데 그 임금의 불만은,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꾸고 싶은데,
도저히 하늘 색깔을 바꿀 수 없어서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현자와 이 문제를 놓고 의논하자,
현자는 핑크 색깔 안경을 왕에게 낄 것을 권고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안경이 있다면, 그것은 ‘은혜의 안경’입니다.
은혜의 눈으로 우리 각자 모두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오늘도 만사가 사사건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인 사람은,
자기 안경을 한번 바꿔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안경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의 안경을 써보십시오.
▲하나님이 뽑으시는 지도자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요?
혹자는, 다윗 소년이 들판에서 양을 열심히 쳤다.
그래서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다
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다윗 소년이 들판에서 양을 칠 때 열심히 찬양을 불렀을 것이다.
그래서 전심으로 찬양을 부르는 것이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다
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그의 마음이 착하고 순수했다고 해석합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모두 맞는 해석입니다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시에 들에서 열심히 양을 친 사람은, 다윗 말고도 여럿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들에서 찬양을 부른 사람도, 어디 다윗뿐이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찬양 잘 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 입니까?
나사렛 동네에서 마리아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는
천사의 방문을 받은 것도... 인사말 그대로 오직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마리아)’을 통해 구속사역을 이루는 왕이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뽑으시는 지도자의 기준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뽑으시는 기준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뽑을 사람이 없다'고 누가 혹시 불평한다면,
혹시 '인간적 시각'은 아니신가요?
그렇습니다. 인간적 시각으로는 다윗이나 마리아, 절대 안 뽑았을 것입니다...
▲2. 내가 받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크리스천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차이는, 그것을 깊이 발견하고 음미하며 사는 사람이 있고,
마치 전혀 안 받은 것처럼, 거의 망각하고 사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아래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하는 글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선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하는 배를 타려고 항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노예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흑인 모자가 경매에 붙여졌는데,
어린아이는 필요 없고, 어머니만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서
어머니만 팔리게 되어 두 모자는 헤어지게 되었다.
두 사람 몫의 일을 하겠으니 어린 아들을 함께 데려가 달라고 새 주인에게 호소했으나,
두 모자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두 모자를 강제로 떼려하나 말을 듣지 않자,
주인이 칼을 들어 어린아이를 향해 내리 찔렀다.
그때 선교사님이 자신의 손으로, 그 칼을 막아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
그 선교사님이 후한 값에 두 모자를 샀다. 그리고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그러나 흑인 모자는 이곳에서는 언제 또다시 잡혀 노예가 될지 모르니
선교사님을 따라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 선교사님께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함께 아프리카에 도착하여 선교사역을 감당했다고 한다.
아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자유를 주신 선교사님....
그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 흑인 모자는 선교사님의 손발이 되어
아프리카의 선교사역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 흑인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화도 내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그때 선교사님은 아무 말씀도 않고, 손을 내밀어
아이를 살리려 대신 칼을 맞았던 그 손의 흉터를 보여주면....
그 흑인은 잘못했노라고 용서를 빌었다는 것이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절대 불평이나 험담을 입에 담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절대 감사만 있을 따름입니다.
▲3. ‘은혜의 눈’으로 보면, 비판이나 쓴 물이 없습니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을 대하다 보면,
강한 어조의 비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 은혜의 눈’으로 보면
실망할 수는 있어도, 그래서 기가 차서 아무 말을 하지 않을 지언정
비판의 쓴 물을 거침없이 쏟아내지는 않습니다.
강단에서는 특히 조심해서 ‘쓴 물’이 토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항상 ‘은혜의 생수’만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기 시각을 항상 ‘은혜의 눈’으로 고정해야 합니다.
율법의 눈, 인간 죄성의 눈을 가진 세상을 바꿀 힘은
오직 크리스천들에게서 나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이 각박한 땅의 희망이요, 어두운 세상 속의 빛입니다. <김지윤
◑관련 글 모음
▲압바 모세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죄를 알고 있으면,
자기 이웃의 잘못은
보지 않게 된다.”(금언집 5. 10)
수도승들은
형제나 자매를
판단하지 말라고
우리를 거듭거듭 일깨운다.
오직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깨달은 사람만이,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려는 내적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항상
다른 이들의 죄를
판단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겸손하게
자아를 인식하게 되면,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중독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자아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겨드리는 대신에,
우리의 잘못을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판단하게 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음의 깊이 -작자 미상-
보이지 않는 우물이 깊은지 얕은지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압니다.
돌이 물에 닿은데 걸리는 시간과
그 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그 말이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즉시 흥분하고 즉각 흔들린다면
아직도 내 마음이 얕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깊고 풍성하면 좋습니다.
이런 마음의 우물가에는
사람이 모이고
갈증이 해소되며
새 기운을 얻습니다...
▲대표 기도를 못 한 은혜
오래 전, 그 분이 난생 처음으로 저녁 찬양예배 시간에
대표 기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주일이면 휑하니 뚫려 있을 도로가 그날따라 체증이 극심하여,
애간장을 태우며 간신히 예배당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미착한 자신을 대신하여 인도자가 대표기도를 드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첫 번째 공적 기도 순서를 그처럼 어처구니없이 놓쳐 버렸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또 엄습하는 낭패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그 한 순간이 지난 뒤에 그분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그 모든 상황을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날 낮 친구와 함께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험담을 나누었던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은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로 그 입술로 하나님께 기도를,
그것도 모든 교인들을 대표하는 공적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예배당을 향했습니다.
만약 그 날 길이 막히지 않았다면
사람을 헐뜯던 그 입술로 태연하게 공허한 기도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길을 막으심으로써,
그런 입술, 그런 마음으로 기도해서는 아니 됨을,
회개를 통한 정결한 입술과 청정한 마음으로 기도 드려야 함을
친히 일깨워 주셨던 것입니다.
그 분은 그 날 기도드리지 못하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펀 글)
[주제별 분류] 은 혜 http://blog.daum.net/bible3/11308109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22 사람의 뜻, 하나님의 뜻 (0) | 2007.12.18 |
---|---|
1021 베드로의 똥고집과 예수님의 관용 (0) | 2007.12.17 |
1019 평안하려면 (0) | 2007.12.15 |
마침내의 복 (0) | 2007.12.13 |
1014 '고독'을 '독거'로 바꾸십시오 (0) | 2007.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