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똥고집과 예수님의 관용 요21:15~17
▲사랑은 현재, 과거를 묻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로 가십니다.
불과 3일 전에 세 번씩이나 저주한 베드로와 주님이 마주칩니다.
여러분, 그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마 베드로는 얼굴 들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야, 이놈아, 너 사흘 전에 그게 뭐냐!’
한 마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을 하질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과거를 묻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말씀의 헬라어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사랑은 항상 현재가 중요한 것인데요...
◑베드로의 똥고집인가, 겸손인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세 번 물으셨고, 베드로도 세 번 대답합니다.
▲첫 번째 질문과 대답 요21:15
이 문장을 헬라어로 보면, 예수님은 첫 번째 ‘아가페’로 물으십니다.
시몬, 요안누, 아가파스, 메
(시몬, 요한의, 아가페하느냐, 나를)
이렇게 되면 대답이 뭐라고 나와야 되냐면 아가포스, 세 라고 해야 합니다.
(아가페로 사랑합니다. 당신을)
그런데 베드로는 희한하게 대답합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나이다’라고 나오는데,
헬라어 원문에는 필로 세라고 나옵니다.
(필레오-친구 간 사랑으로-로 사랑합니다. 당신을)
▲두 번째 질문과 대답 :16
두 번째 질문과 두 번째 대답은, 첫 번째와 똑같습니다.
시몬, 요안누, 아가파스, 메
(시몬, 요한의, 아가페하느냐, 나를)
대답은 역시 필로 세 라고 나옵니다. :17
(예, 제가 필레오-친구 간 사랑으로-로 사랑합니다. 당신을.
그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베드로는 의도적으로 정답아가포스 세을 피하고 있습니다.
두 번이나 계속 자기가 하고 싶은 대답필로 세를 합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똥고집일까요, 아니면 겸손일까요?
(물론 겸손입니다만)
그는 세 번째도 똑같은 대답필로 세을 합니다.
대단한 고집입니다. 과연 베드로답습니다.
물론 베드로의 한 번 넘어진 후에,
뭔가 달라진 겸손한 대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포인트는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베드로에게 져 주십니다.
▲세 번째 질문과 대답 :17
급하고 강직한 우리 한국사람 성격은
제자가 정답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오답을 낸다면
옛날 같으면, 일단 한 대 쥐어박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엄한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면서, 세 번째로 물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틀린 답 내면 당장 죽여 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아가파스 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참으십니다.
그리고 한 발 물러서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시몬, 요안누, 필레이스 메?
(요한의 아들 시몬아, ‘필리오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세 번 다 동일합니다.
필로 세라고 나옵니다. :17
(예, 제가 필레오-친구 간 사랑으로-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기 싸움에서 져 주신 예수님
기가 강한 사람 같았으면, 그 제자의 멱살을 붙잡고
<당장 정답을 대라!>고 다그쳤을 것입니다.
네 마음에 없는 소리라도,
일단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라고 호통 쳤을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으로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필레오 사랑’으로 베드로는 끝까지 대답하자, (게기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음)
세 번째 예수님은, 질문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필레오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제자훈련의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제자를 항상 압도하고, 이기고, 자기 앞에서 꼼짝 못하게 만들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드는 마키아벨리 같은 ‘절대군주형’은
아무래도 제대로 된 제자를 못 만들 것 같습니다.
앞에서 순종해도, 뒤로 돌아서면 욕하거든요...
선교를 하다보면,
물리적 힘으로 현지인들을 제압하려고 하고,
아니면 돈의 힘, 지식의 힘, 하다못해 나이와 연륜의 힘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현지인 제자들을
로봇 같은 ‘절대 순종형’으로 만들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게 안 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준다든지 하면서
현지인들을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예전에 안 써 보던 방법 - 현지인들에게 져 주는 방식-을
한 번 써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펀 글 편집
*위 본문은 [베드로의 겸손]에 원래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별 분류] 지도자, 리더십 http://blog.daum.net/bible3/13299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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