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0~2001 그 이전

1058 십자가를 지는 자세

LNCK 2008. 1. 9. 22:08
 

◈십자가를 지는 자세                      요19:23~30



◑1. 침묵의 십자가 


제가 몽고에 갔을 때 양을 잡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몽고 인이 양을 잡기 위해 양을 끌고 오는 동안,

그 모습을 본 개는 이제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듯 요란하게 짖어대는데,

막상 끌려오는 양은 너무나도 잠잠하고 평화스러웠습니다.


양을 마당 한 가운데 거꾸로 눕힐 때에도 양은 전혀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양은 다른 가축의 경우처럼 정수리를 찍거나 혹은 목을 따서 죽이지 않았습니다.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기 위해

양의 배를 하늘로 향하게 눕히고, 배 가죽만을 칼로 조금 갈랐습니다.

그러자 속에 있던 밥통의 윗부분이 잘라진 틈으로 불거져 오르면서

피가 밖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자동마개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몽고인은 양의 밥통 옆으로 손을 넣어

양의 숨통을 눌러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무지막지한 사람의 손이 양의 배를 가르고

그 내장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숨통을 틀어쥐는데도

양이 신음소리를 한번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숨이 너머 가는 마지막 순간 허공을 향해 치켜든 네 다리를

파르르 떨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조리가 끝난 양고기를 시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양고기를 씹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 53:7절의 의미를 되씹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고난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았도다." (사53:7)


너무나 적절한 표현입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동물들 가운데

왜 구약의 사람들이 유독 양을 속죄의 제물로 즐겨 사용하였는지,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셨는지,

왜 성경이 하필이면 주님을 양에 비유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그날 확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양은 자기 생명을 남을 위하여 잠잠히, 그리고 기꺼이 내어놓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배를 가르고 속으로 손을 넣어 숨통을 눌러도

반항 한번 없이 자기 생명을 내어줍니다. 놀랍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여기서, 십자가를 지는 자의 자세를 엿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 내어놓으실 때, 잠잠하셨습니다.

묵묵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2. 자원적인 십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최후 모습을 본문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19:30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자원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억지로 할 수 없어서 지는, 또는 강압적으로 지는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말없이 지는 것입니다.①

또한 자원해서 지는 것입니다.②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군단)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26:53


당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셨습니다.


도대체 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포기치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찮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체포하고, 재판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위대한 십자가 구원의 사건은 예수님의 능동적인 ‘자기 버림’, ‘자기 포기’ 위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자기를 자발적으로 버릴 때에만,

자기를 능동적으로 포기할 때에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무 막대기에 불과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영원한 구원의 표징일 수 있겠습니까?

그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기꺼이 자발적으로 포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발적 ‘자기 버림’, ‘자기 포기’, ‘자기 떠남’이 있는 곳에만

생명의 역사가 있음은 하나님의 법칙이요 철칙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예수님이 외압에 의해, 어쩔 수 없어서,

십자가를 지셨다면... 그것은 그저 죄수로 죽은 것일 뿐입니다.

절대로 인류를 구원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어떠합니까?

 

<97.07.13. 인터넷 설교 중에서 발췌, 편집

 

[주제별 분류] 십자가 http://blog.daum.net/bible3/11575235

'분류 없음 > 2000~2001 그 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61 죄를 심각하게 여겨야  (0) 2008.01.11
1059 몰 입  (0) 2008.01.10
1054 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0) 2008.01.07
어머니, 보소서 아들입니다.  (0) 2008.01.04
미소, 웃음  (0) 2007.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