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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1312 절실하게 믿는 사람이 은혜를 체험한다

LNCK 2008. 6. 7. 17:32
 

◈절실하게 믿는 사람이... 은혜를 체험한다                눅8:40~42


오늘날 내 신앙생활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간절하고 절실하게 믿는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예수님이 내게 ‘오시면 오고, 마시면 말고...’

즉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안일한 자세 때문인데...

이것을 극복하는 사람은, 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될 것이다.



◑1. 주님 오심을 <환영하는> 사람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눅8:40


신앙생활은 예수를 환영해야 한다.

여기서 ‘환영한다’ (아포데코마이)는,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뜻이다.

즉, 다른 것 아무 것도 없어도, 예수 한 분만 전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전적으로 예수를 수용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즉 예수도 받아들이고, 명예도 받아들이고, 돈과 세상도 함께 받아들이고...

<예수>는 오시면 좋고, 안 오시면 그만이고,

반면에 <돈>은 우리 집에 꼭 와야 한다고 절실하게 생각한다.

즉 예수를 받아들이되, 내 삶에 '일부분'으로 예수를 받아들인다.


예수 한 분만 환영하면 참 좋은데,

그 나머지 것들은, 주어지면 감사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데,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산다.

‘예수는 오시면 다행이고, 안 오시면 그 뿐이고,

예수, 우리 집안에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 한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은

예수를 환영하고, 예수가 멀리 떨어지면 안 되고

그 분만 간절히, 절실히 사모한다.  


<예수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고

대신에 <물질, 명예, 세상은 없으면 절대 안 돼!>는 사람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전적으로 환영하지 않는다면,

절실하고 간절하고 애타게 그 분을 내 마음에 모시지 않는다면,

(이것이 사실 오늘날 서구 크리스천들의 문제이다.)

우리는 거기서 돌아서야 한다.


◑2.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환영한다.

위 1단락에서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이... 참 신앙인이라 했는데,

그렇게 환영하는 사람이 되려면,,,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기 때문이라. 눅8:40


그렇다. 환영은... 기다릴 때 이루어진다.

안 기다리면... 오셔도 반겨 맞이하지 않는다.

기다리지도 않은 사람이 오면, 막상 만나도 별로 안 반갑다.


예수님이 나에게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어야,

주님이 오시면... 버선발로 나가서 반갑게 맞이한다.

반면에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고 신앙생활 하면,

예수님이 아무리 내게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려도... 아무 관심 없다.

기다림 없이는, 오시는 것이 감격과 기쁨이 되지 못한다.


▲신앙생활이란, 일평생 주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생활이다.

물론 주님이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시지만,

성령충만으로, 거룩하고 강력한 임재로 임하시도록,

나와 가까이서 동행하시도록... 내가 늘 기다리는 것이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더 기다린다. [관련 예화 클릭]

그러다가 오시면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아예 안 기다리니까... 환영할 일도 없지 않는가!


사실 기다리지 않는 분이 불쑥 찾아오면, 어쩌면 귀찮기까지 하다.

그래서 예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도 꽤 많다.

괜히 찾아오셔서 자기를 꼬치꼬치 간섭하실까봐 지레 부담스러워 한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 회당장 야이로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간절히 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12살 먹은 외동딸이 있어 죽어감 이러라  눅8:41~42


절실하고 간절하게 기다리지 않으면, 예수님이 오셔도 지나쳐 보내버린다.

‘어머, 벌써 지나가 버리셨네!’ 한다.

즉 ‘오시면 오시고, 마시면 마시고!’의 자세이다.


우리 인간 사이에도, 심방 등으로 남의 집에 찾아갈 때

‘오시면 오고, 마시면 말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사실 시간이 아깝다.

거기서 큰 축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생긴다.


▲특별히 예수 오래 믿은 신자의 문제는... 애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문화가 되고, 익숙한 삶이 되어버려서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를 ‘절실하게’ 구하지 않는다.

기도도 대충 한다. 매달려서 애절하게 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 어머님이 제게 자주 권면하시는 말씀이 이것이다.

“황목사, 문제가 있으면 정해 놓고 금식기도 해라!”

절절한 신앙을 가지라는 뜻이다.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12살 된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죽게 되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딸 때문에 절실함, 애절함이 있었다.

‘예수님 안 오시면 내 딸 죽는다’

‘예수님 안 오시면 내 목회/인생 끝이다.’

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이, 오늘도 하나님 나라에서 주역으로 쓰임받는다.


▲안주하는 신앙

오늘 우리는 신앙의 절실함을 잊어버린 세대에 살고 있다.

‘그냥 교회 다녀보는 거죠 뭐!’ 한다.


앤소니 드 멜로의 <깨어나십시오>에 보면,

“당신은 진정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기 인격이 성숙하기를 다들 원하지만,

자기가 진짜 절실히 원하지는 않는다.

‘내 인격이나 말이 달라지면 달라지는 것이고, 아니면 그 뿐이고... 한다.)


당신은 진정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안주하는 것입니다.”


안주란, ‘이정도면 됐지 뭐, 남들도 다들 이렇게도 잘들 사는데 뭐’

‘예수 잘 믿는다는 장로, 권사들도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뭐’ 하며

<간절함이 사라진 채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그냥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휩쓸려 살아가는 것뿐이지,

진정한, 하나님 나라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야이로처럼 삶에 태풍이 몰아치고 벼랑 끝에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내게 큰 은혜가 된다.

보통 사람은 대부분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되어있다.

그러나 야이로처럼 벼랑 끝에 몰리면, 결사적이고 애절하게 주님을 찾게 되고

그런 신앙의 체험은, 나머지 그의 평생을, 값진 인생으로 바꿔놓는다.

  

▲교회도 간절함을 놓쳐버리면, 안주하다가, 결국 뒷걸음 질 친다.

개인도 간절함을 놓쳐버리면, 안주하다가, 결국 뒷걸음 질 친다.


신앙생활은 간절함으로 예수를 기다림이 늘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 개인과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예수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절절함>이다.

우리가 평생 신앙생활하면서, 절대 놓쳐서 안 되는 교훈이다.


▲무릎 꿇는 신앙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가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눅8:41


이렇게 간절히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데...


이런 사람에게 은혜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

야이로의 딸이 생명을 되찾았던 것이다.


▲마치는 말

내 삶에 크나큰 어려움이 닥칠 때... 원망 불평하지 마시라!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면, 그것은 ‘기회’이다.

자꾸 틈만나면 ‘안주’하기 원하는 나를

-간절히 주님만 환영하도록

-간절히 주님을 기다리도록

'고난이란 은혜'로 나의 신앙체질을 바꾸어주신다.


우리 교회에 이런 성도들이 자꾸 많아져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크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많이 나오시길 바란다.

<08.05.11.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요약

 

[주제별 분류] 믿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