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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LNCK 2008. 6. 9. 15:13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1~12



◑1.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6: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6:5~6 


여러분 창6장을 읽으실 때,

‘노아 시대 그 사람들, 참 가관이구먼, 이러면 쓰나?’

혹시 이런 마음이 드실지 모르겠다.


그런데 위 말씀을 오늘로 끌어와서, 나에게 한 번 적용해 보자.

그러면 내가, 노아 시대 사람들을 흉보기 어려운 면이 있을 수 있다.

본문을 통해서 아래 질문을 한 번 해 보자.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지금 하나님의 마음은 과연 어떠실까?’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까, 아니면 한탄하고 마음에 근심하고 계실까?’


‘하나님이 내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을 보실 때,

땅 위에 OO(자기 이름)를 지으셨음을 후회하실까, 아니면 기뻐하실까?’


내가 OO(자기 이름)를 목사(장로, 집사) 세운 것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까?

아니면 안타까워하시고, 탄식하시고, 근심하고 계실까?’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삼상15:35, 15:11


여러분, 노아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나간 과거다.

그 사람들 탓하지 말고, 한 번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되돌아보자.


▲부부관계에 적용

내 아내가 나를 남편으로 택한 것,

그것으로 인해 아내가 지금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는지...

아니면 한탄하고 크게 근심하고 있는지..?


내 인생 최대의 업적은 ‘당신을 내 남편으로 택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

아니면 내 인생 최대의 실수는 ‘당신을 내 남편으로 택한 것’이라고...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지!


여러분, 하나님이 잘못 짝 지워 주실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문제는 자기가 부부관계를 불성실하게 행한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가 나를 선택한 것을 지금 깊이 후회, 탄식하고 있다면,

그렇게 만든 책임이 전적으로 내게 있는 것이고,

나는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분, 예배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이 질문을 남편(아내)에게 묻지 마시라.

그런데 혹시 배우자가 물어오면

‘실상’을 대답하지 마시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대답해 주시기 바란다.

괜히 설교 듣고 부부싸움 나면 안 되지 않는가! (웃음)


▲직장관계에 적용

여러분, 회사가 나를 뽑은 것을

지금 기쁨으로 여기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복덩이로 나를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 일로 인해 한탄하고, 근심하고 있는가?


그 여부에 따라 내가 ‘노아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망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판가름 난다.

 

나는 ‘노아 시대 사람들’을 무조건 비판만 하지는 않았는가?

나는 과연 어떠한가?



◑2. 죄악의 관영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가득 퍼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6:5


▲1. 죄악의 점점 퍼져 나가는 성격

어떻게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가득)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죄악이 아주 조금씩 퍼져 나가는 것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퍼지기 때문이다.


중년 남자들, 배가 불룩 튀어 나올 때, 그게 눈에 잘 안 보인다.

너무도 조금씩 오랜 세월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배가 3일 만에 이렇게 볼록 튀어나오면

무슨 대책을 세워도 세워서 이것을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조금씩 퍼져 나가기 때문에... 그 실상을 절실하게 못 깨닫는다.


죄가 이런 식으로 세상에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너무도 살금살금, 그러다가 나중에야 결국 깨닫는다.


▲2. 기준 standard의 문제

사회적으로도 2~30년 전에는 부끄러워서 말도 못 꺼내던 일들이

지금 세상에서 보편화되어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준이 없었다> 라기 보다는 <기준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행동하다 보니

오늘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게 되었다.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미워하시는 죄라도,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데...> 하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가 선두에 서서 죄짓기는 그래도 거림직하다.

그런데 남을 뒤따라 죄짓기는 비교적 쉬운 면이 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 홍수에 떠내려 갈 때(최후심판 때),

나도 같이 떠내려 갈 것인가?


이런 사실을 깨닫고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이 타락한 마지막 시대에

노아와 같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 되시기 바란다.



◑3.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6:8


세상은 죄악이 관영했지만, 그러나 노아는 달랐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마음에 들었다.

 

노아의 기준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6:9

사람과 동행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여러분, 우리는 이런 얘기 하지 맙시다.

우리는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요,

세상의 흐르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기준을 재점검 하실 수 있기 바란다.

노아처럼 되려는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이 그리 한다 할지라도,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기준이 하나님>이지 <세상 사람>이 아니다.  <08.05.11.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요약

 

[주제별 분류] 죄, 복된 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