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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배설물’로 여긴 이유 1851

LNCK 2009. 4. 20. 16:39
 

◈바울이 ‘배설물’로 여긴 이유               빌3:1~16                09.03.22.설교녹취

                                                                            *원제목: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천국시민의 삶


▲바울의 다메섹 경험... 그의 가치체계를 변화시키다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경험한 이후로

자기가 이전에 보배로 여겼던 세상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다.


사실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바울처럼, ‘배설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바울이 버린 ‘배설물’이 좋다고,

그것들을 부지런히 자기 바구니에 주워 담는 사람들이다.

그 ‘배설물’을 차지하고자, 부모/형제/친구도 없다. 고소하고 싸운다.

(똥 가지고 다투는 말똥구리들이나 하는 일을, 성도가 하고 있다)


왜 바울과 21세기 나는 이렇게 차이가 날까?

- 바울처럼 강력하게 예수를 만난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도 바울처럼,

-햇빛보다 더 밝은 강력한 빛으로 예수를 만나고,

-천상의 음성을 듣고, 내 곁에서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고,

-삼층천에 올라가는 체험을 한다면

-물론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것을 포함해서

어쨌든 어떤 형식으로든지 나도 예수를 강력하게 만나면

나의 가치체계도.. 바울처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세상적 자랑거리를.. 반대로 해로 여기다.

바울은 자기의 7가지 자랑거리를 말한다.   빌3:4~6

8일 만에 할례 받은 것/ 이스라엘 백성/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이상 4가지는 태생적 자랑거리)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할 정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

                                                                            (이상 3가지는 후천적 자랑거리)


그 외에도 위 본문에는 없지만, 가말리엘 문하 수학도 바울의 자랑거리다.

혹자는 이것은 ‘오늘날 박사학위 여러 개와 맞먹는다’고 말한다.


이것들을 자기가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 빌3:7

왜냐면 자기가 경험한 예수가 더 크고 고상하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날 무엇이 당신의 자랑이신가?

장로 교단/ 무슨 학위/ 아파트 평수/ 빠지지 않는 외모/ 뭐니뭐니해도 머니/

준수한 자녀/ 지적 능력/ 만능 스포츠맨/ 교회 몇 년 봉사/ 몇 대 째 무슨 집안...


-이런 것들을 아직 해(害, loss)로 여기지 못하고, 도리어 늘 자랑으로 여기며 산다면

나는 아직 예수를 깊이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저 유아기적 신앙인인 것이다.

 

▲바울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 안에서 자랑하라> 라고 말씀한 참 뜻은?  고전1:31 

예수님 안에서, 남편 자랑/자식 자랑/집안 자랑하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을 자랑하라'는 뜻이다.

공동번역을 보시라 

그러므로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고전1:31

 

▲인간은 안 좋은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택하게 되어있다.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좋은 것 선택하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을 먹을까?  ...  좋은 것을 선택해서 먹는다.

무엇을 입을까? ...  좋은 것을 선택해서 입는다.

무엇을 할까? ... 자기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서 행한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배설물’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말은 ‘배설물’(똥)이지만, 사실은 나에게 아름답고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가치체계가 바뀌지 못한 것은

예수를 약간 알기는 알지만,  

바울처럼 아직 깊이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울처럼 깊이 만나는 작업은.. 일생의 과제이다. 하루아침에 안 된다.)


▲여러분, 사람은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항상 바뀌게 마련이다.

어릴 적에 이 세상 최고의 가치는... 인형, 과자, 구슬, 장난감, 자전거 등이었다.

어릴 적에 최고로 부러운 친구는... 동네 수퍼나 제과점 아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른이 되어서는, 그저 가지라고 해도 사양한다.

어른에게는 쓸데가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나중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여길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천국에 올라가서 보면

영락없이 ‘배설물’(똥)이 맞다. 영생의 삶에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하니까, 자연적으로 내려놓는다.

어릴 적에 그렇게 소중하게 갖고 살았던 ‘물총, 딱지..,’

세월이 지나면, 그것들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릴 적 소중했던 가치들을 포기하게 된다.

(아직도 세상의 배설물이 좋게 보이는 사람들은.. 그것을 아직 발견치 못했기 때문)


▲부끄러워할 때가 올 것이다.

어느 집 딸이 어렸을 때, 5천원 권 지폐를 그렇게 좋아했다.

항상 5천원만 손에 쥐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1만원을 줘도 마다하고 ‘오직 5천원’이었다.

그래서 아빠가 ‘너는 옛날에 1만원도 모르고, 5천원만 최고인줄 알았다’고 놀린다.

그러면 그 딸이 막 부인한다. '자기는 그런 적이 생각 안 난다'고...

 

우리 모두가 그런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어려서, 무엇이 진정 더 가치 있는지.. 구분을 못했다.

지금 장성한 우리가.. 그런 그 때를 뒤돌아보면,

얼굴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몰라도 너무 몰랐으니까...


앞으로 그런 때가 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좋다고/가치 있다고/소중하다고’ 행하는 많은 일들이

그 때가 되면 ‘내가 왜 그리 어리석었던가?’ 하며 후회할 날이 온다는 것이다.

‘바울이 배설물로 여긴 것이 사실이었구나!/성경이 진리였구나!’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여러분, 싸구려를 명품 값을 주고 사 보신 적이 있으신가?

모조품, 짝퉁을.. 속아서 제 값을 주고 산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 열불이 난다.

가끔 롤렉스시계, 또는 비싼 귀금속을 몇 백 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1~2십만 원짜리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마 속이 상해서 며칠 동안은 부아가 치밀 것이다.


그리고 그 짝퉁을 쳐다보면, (어제까지는 그렇게 멋있었는데)

‘내가 미쳤지!’ 하면서 한탄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많은 성도들조차, 속고 산다는 것이다.

성경이 분명히 ‘배설물’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성경에 써서 인증하셨는데도

그 짝퉁을 진품으로 믿고.. 우리는 오늘날 귀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공동체가 그 짝퉁(현세적 기복신앙)을 공개적으로 장려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때가 되면,

우리는 ‘평생 애지중지하며 살아왔던 그 짝퉁인 자기 인생’을 쳐다보면서

‘내가 미쳤지!’ 하면서 쳐다보기도 싫어질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큰 비극이 아닌가!  며칠 부아가 치밀다가 끝날 일이 결코 아니다.

가짜 롤렉스 시계, 가짜 루이비똥 가방을 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패착이다.


▲(주제 강조 또 반복) 사람들은 항상 자기 눈에 보이기에, 좋은 것을 택하게 되어 있다.

만약 경차와 중형차 중에 공짜로 한 대 골라서 가지라고 하면.., 모두 중형차 고른다.

공짜로 짝퉁 옷과 명품 옷 중에 한 벌 선택하라고 하면.., 모두 명품을 고른다.

사람은, 자기 눈/경험에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오늘날 우리가, 바울이 배설물로 버렸던 것들을 열심히 주워 담고 있는 것은

그것이 내 눈에 좋게 보이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바울처럼 예수를 깊이 알지/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러면, 결국은 크게 땅을 치고 통곡하고 후회할 날이 이른다는 것이다.  약5:1, 계6:15참조

성경/하나님의 말씀을 액면가 그대로 믿지 않았으니까!

 

▲제 경험을 나누면

저(설교자)는 어릴 적부터 반찬 중에 유독 갈치를 그렇게 좋아했다.

그래서 항상 갈치 반찬이 상에 오르길 바랐고, 갈치조림을 외식하러 다녔다.

그런 제가 요즘은 갈치를 잘 먹지 않는 계기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제가 경남 남해도에 집회하고 돌아올 때,

전날 밤에 잡았다는 은갈치를 한 박스 선물 받았다.

집에 와서 그 갈치를 먹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정말 기가 막힌 갈치 맛이었다.


그래서 그 싱싱한 갈치를, 한 달 동안, 온 식구가 집에서 반찬해서 잘 먹었다.

갈치가 떨어지자, 딸은 ‘아빠, 남해도에 집회 또 가시라’고 채근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남해도 싱싱한 갈치 맛을 본 이후로는

동네 수퍼에서 파는 갈치에 대해 맛을 잃었다는 것이다.

옛날에 그렇게 갈치를 좋아했었는데..,


진짜 ‘상上품 은갈치’ 맛을 보고 난 다음에는,

옛날에 제가 ‘싸구려 냉동갈치’를 멋모르고 맛있게 사먹었던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마치는 말

오늘도 내가 영원한 생명(영생)보다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 쾌락이 더 좋아보이는 것은

그래서 그것들을 배설물로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들을 달라고 주님께 강청하는 것은,

내 가치체계가 아직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요,

 

내 가치체계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는,

내가 예수를 알고 믿지만, 바울처럼 강력하게 알고/체험적으로 믿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천로역정'과 같은, 광야 40년 같은, 신앙의 여정이 필요하다.

점점 예수를 알아가면서, 장성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세상 명예, 물질, 외모, 직위... 이런 것들을 자랑하던 사람이

그런 것 다 포기하고/무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맛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맛본다’는 말은... 리얼하게 경험한다/체험한다는 뜻이다. 시34:8, 벧전2:3


주님,

세상이 저를 유혹하고 손짓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주님을 맛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최고의 가치로, 최고의 만족으로,

최고의 즐거움으로, 최고의 영원한 가치 있는 것으로

누리도록 저를 도와 주시옵소서



.......................................... 더 읽으실 분 ............................................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경험... 신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경험이야말로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이고,

기독교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 사건이다.


혹자는 십자가에 달린 한 편 강도가 구원받은 사건을 두고서

‘사람을 상해한 강도도 구원받는데, 나 같은 사람도...’ 하면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마찬가지다. 바울은 예수 믿기 이전에, 성도들을 핍박한.. 그것도 주동인물이었다.

다른 사람은 다 사도가 될 수 있어도, 바울만큼은 안 된다.

왜냐면 그는, 성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넘긴 사람이었고, 성도를 죽이는데도 가담했다.


그런 훼방자, 포악자, 핍박자가 변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가 된 것은

기독교 복음이야말로 <은혜의 복음>임을 극명하게 잘 드러내 보여준다.

동시에, 기독교 복음이야말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행위가 아니다)

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 물질과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