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목자)의 마음 마9:35-38 09.03.22.설교스크랩, 축약
▲버려진 영혼들의 상태는 ‘속수무책’
한 분 목사님이 어렸을 때 경험했던 이야기 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2마리 사다가 기른 것이 계기가 되어, 닭을 몇 마리 기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시장에 들러서 배추 잎사귀도 주워 오고,
사료도 사다 먹이면서.. 닭을 길렀습니다. 그렇게 병아리를 키워 중닭이 되면
집안 식구들이 제게서 그 닭을 사서 고아 먹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닭장을 들여다본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하얀 닭 한 마리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채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닭은 수탉이었는데 꽤나 큰 놈이었습니다. 가만히 옆구리를 들추어보니
누군가가 옆구리를 날카로운 칼이나 송곳 같은 것으로 뜯어 낸 듯했습니다.
하지만 왜 그 닭이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 즉시 알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닭장을 잘 살펴보니, 닭장 속에 들어간 쥐가, 자고 있는 닭의 날개 속으로
들어가 살을 마구 물어뜯어서 파헤쳐 놓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쥐가 그렇게 물어뜯는 동안, 닭은 감각도 없는지
가만히 앉아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닭장에 쥐가 들어올 만한 구멍을 모두 막아 버리고 나서야
닭들이 더 이상 같은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구원의 길이신 그리스도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버려진 영혼들의 상태도 이와 같이 속수무책입니다.
교사는, 목자를 떠난 사람들은
쥐에게 물어뜯기면서도 스스로 아무 대책도 세울 수 없는
‘닭장 속에 갇힌 닭’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보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불쌍한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을 안 사람입니다.
예배 때 만날 수 없었던 사랑하는 영혼들을 주일 오후나 늦은 밤 심방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잃어버린 영혼들을 붙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며
평일이나 토요일 오후, 이 골목 저 거리에서 전도하다가
주일이 왔을 때, 말씀을 들고 그들 앞에 서 보십시오.
그들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이라는 사실을 느낄 것입니다.
◑1. 무리를 보시는 아픔..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9:35~36
▲여기서 ‘민망히 여기시니’(에스프랑크니스데)의 원래 뜻은
‘창자에 이르기까지 감동을 받아’(be moved to one's bowels)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목자 잃은 양 같이 고생/유리하는 그들의 영혼 상태를 보실 때
예수님께서 내면 깊이 창자가 흔들릴 정도로 가슴 아파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우리 정서에 맞게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마음 아파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내버려진 자가 되고 있음이라.’
▲또한 ‘무리를 보시고’ 라고 할 때, ‘본다’는 말도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사물의 배후를 꿰뚫어 보는 영적인 통찰 또는 직관을 갖고 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단지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인간의 비참한 상태가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권세에 의하여 괴롭힘을 당하며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은 자처럼 내동댕이쳐진
인간들의 영혼의 원래 모습을 바라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의 현 상태를 통찰하셨을 때, 그 상태가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
주님의 마음에는 찢어질 듯한 아픔이 그치지 아니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시각과 마음 자세야말로
교사가 갖추어야 할 자격 중 가장 필수적인 것입니다.
탁월한 성경 지식과 섬김도
이러한 시각과 마음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참된 영적 부흥을 주실 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에 대한 이러한 시각과 마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각성’과 ‘영적 부흥’을 통하여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목자 잃은 양 같은 자기 백성들을 바라보셨던
마음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위하여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평범하게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 친구들을 보면서
예전에는 그저 '예수님을 믿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데 그쳤다면,
어느 순간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 없이는 그들을 바라볼 수 없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됩니다.
그들 영혼의 심각한 상태를 깨닫고 그들을 돕기 위하여
무언가 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 같은 다급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 상태를 깊이 염려하고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교사의 섬김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에 무리를 보시며 고통스러워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지금도 이 세상을 향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를 교사로/또는 다른 사명자로 부르시는 까닭입니다.
오늘 나의 섬김은, 참으로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아픔을 덜어 드리고 있습니까?
◑2.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인간의 실존 ; 각기 제 길로 간 양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 영혼의 상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지적과 같이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간(사53:6) 모습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래 인간은 항상 자기 눈에 더 좋아 보이는 길을 갔지만,
그 결과는 고작 고통하며 유리하는 삶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행복한 삶을 살려고 아등바등 해 보지만,
그들의 의지나 노력과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 고통과 아픔이 그치지 않는 것도
바로 인간 존재의 이면에 있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상황’ 때문입니다.
▲달라진 가출 원인 : 향락
청소년 문제아는 항상, 문제가 있는 가정의 산물이라고 알려져 왔지만,
때로는 아무 문제없는 가정에서도 가출하는 청소년들이 생기는 경우를 봅니다.
(청소년 전문가들의 견해도 이런 정황에 무게를 실어 줍니다.)
경제적으로 아무 어려움이 없고, 부모가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데도,
집을 나가는 그들에게 그 사유를 물으면 종종 이런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인생을 화끈하게 즐기기 위해서 가출하는 거예요!"
요즘은 가정 문제가 아니라 마음껏 향락을 즐기고자 하는 욕망이
가출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잠시 누릴 쾌락 때문에
부모의 따뜻한 사랑도 가족 관계도 귀찮아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수동태적 고생과 유리
본문의 ‘고생하며 유리하다’ 라는 말은 희랍어 원문에서는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여
스스로 유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들을 유리하게 하므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주님이 사도들을 파송하셨고 우리를 교사로 세우셨습니다.
▲무지한 양떼를 어찌합니까..
오늘날 우리나라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 전해졌다고는 하지만
교회 안의 신자들은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바위처럼 굳어져 가며,
교회는 신령한 기쁨을 잃고 싸늘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진실성조차 의심스러운, 천국 가는 티켓 달랑 한 장 들고
거짓된 사랑의 교리에 죄악된 마음을 달려가며
교회를 떠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을.. ‘구원받은 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마음을 가진 교사의 불붙는 헌신이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이제 복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져 내려
주님의 품안으로 쓰러져 안길 듯한 영혼들을 누가 섬길 것입니까?
누가 사실상 불신자나 다름없는 (신)자들을 찾아가서
십자가의 사랑을 가르쳐 주어 참 신앙의 길로 돌이키게 할 것입니까?
주님께서 그런 영혼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도록
복음의 비밀을 맡기신 교사들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3. 소명을 잃은 사람들..
▲제사장과 지도자에 대한 경고
에스겔 34장에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나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그렇게 고생하며 유리하도록 내버려 둔
제사장들과 목자들을 향하여 준엄한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겔34:1~10
▲선한 목자가 그립습니다.
교사로 부름 받았으면서도 주님이 맡기신 양떼에게 그 마음을 쏟지 아니하고,
형식적인 섬김으로 삯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자기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양떼들에게 항상 거짓으로 가르치고,
자신들은 조금도 사모하지 않는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라고 교훈합니다...
양들이 못된 짐승의 습격을 받아 찢기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 곳에
함께 있어 주지 못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던 우리가
영혼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데는 얼마나 인색하였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섬기는 동안,
변화 받아야 할 영혼들은 복음에 대한 감격에서 점점 무뎌졌고,
크나큰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깨닫기보다는
냉랭한 개념에 애처롭게 얽어 매인 채 지식에조차 빈약한 사람들로 변해 갔습니다.
우리가 분명한 복음 진리를 정직하게 가르쳐 주었더라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여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의 가르침에 함께 했더라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을 영혼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습니까?
이 모두 교사인 우리 안에 ‘주님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 아닙니까?
◑4.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기까지..
▲교회 안에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눈물이 마를 때에는
언제나 거짓과 탐욕이 가득하였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반영하지 않는 교사 생활은 단지 사람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 앞에서 안일한 풍조를 따라 형식적으로 섬기지 말고
주님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참된 섬김의 길에는 항상 고난이 따르고, 같이 고민하는 동지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교사는 자기를 기쁘게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영혼들을 섬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오늘날 죽은 자와 방불하리만치 영혼들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이때에,
우리가 이런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눈물로 기도하며 영혼들을 섬긴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작은 섬김, 큰 은혜
사랑하는 교사님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제껏 교사로 섬기는 동안
주님은 한번도 우리를 홀로 버려두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섬김이었지만, 우리의 작은 섬김을 사용하셔서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을 전파하게 하셨고,
우리의 가르침을 통해 그들이 주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은혜는 우리의 작은 섬김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좀 더 충성스럽게 영혼들을 섬겼더라면,
우리가 좀 더 주님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전도하기를 힘썼더라면,
좀 더 빨리 우리의 복음 사역이 더 풍성한 열매 얻기를 불붙는 마음으로 사모하고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도록 열렬히 기도하였더라면,
우리의 교회 학교에는 지금쯤 더 많은 영혼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섬겼을 텐데..
오 주님.. 우리의 태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설교 스크랩, 축약 ▣ 리더쉽,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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