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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결실의 조건 2가지 2117

LNCK 2009. 10. 6. 19:01

◈결실의 조건 2가지                     마13:31~33                   09.06.21. 설교스크랩


 

▲세계에서 일본인만큼 ‘작은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아무리 큰 물건이라도, 그것을 작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큰 부채도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쥘부채로 만들고,

덩치 큰 진공관 라디오도 트랜지스터라디오로 축소해 냅니다.


오디오 기기의 혁신을 일으켰던 워크맨 역시, 그 크기가 겨우 손바닥만합니다.

지금은 MP3에 밀려서 쑥 들어갔지만, 제가 청년시절에

그런 일제전자제품들은 거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학자들은, 일본이 가장 일본다울 때는

‘작은 모습을 띨 때’라는 주장을 합니다.

자기 나라 안에서 그런 ‘축소지향적’을 지켜나갈 때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역으로 ‘확대지향적’으로 나갈 땐.. 자기 나라 뿐 아니라

주변국과 세계가 모두 불행에 빠진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요?

그래서 세계인들은 일본인의 그런 성향을 우려해서

그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럽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원래 슈마허가 쓴 경제서적의 제목인데

요즘에 와서는 전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도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큰 게 좋고 훌륭하다’는 식의 말씀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처럼 ‘겨자씨’라든가 ‘누룩’의 비유,

또한 마25장에 나오는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 등,

또는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귀하게 보신 점 등등을 보면,

<예수님 역시 작은 것을 매우 가치 있게 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작은 것이면.. 무조건 아름답고 귀한 것인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자칫 그렇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그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본문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천국을 설명하는 비유이지만,

그것을 열매 맺는 일에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크게는 ‘하나님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답은 ‘생명 심기’

작게는 ‘내 하는 일에 열매가 있기 위해서, 거기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답은 ‘생명을 계속 심기’

 


◑1. 생명을 심기


▲오늘 예수님이 비유 드신 겨자씨나 누룩은.. 둘 다 작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언젠가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이 가져온 겨자씨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볼펜으로 점 하나 찍어 놓은 정도의 크기더라고요. 

그런데 이 겨자씨를 심고 몇 년 지나면 한 3~4 m 까지 자란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 거기에 새가 깃들만큼 무성한 나무가 된답니다


누룩 역시 서 말 밀가루에 비하면 너무나 적습니다.

우리가 빵 만들 때 베이킹파우더를 넣지요. 

밀가루 서 말이면 거기에 얼마나 넣나요?

아마 한 두 스푼이면 충분히 부풀어 오를 겁니다.


겨자든 누룩이든 지극히 작지만.. 나중엔 전체를 크게 변화시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작은 것이면 다 아름답습니까?

정말 작은 것이면 무조건 다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요?


답을 말씀드리면.. 성장하고 열매 맺는 것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느냐 하는 게 관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15:5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양분을 받는 것은 나무뿌리로부터 입니다.

땅바닥엔 제 아무리 오래 있어봐야 땅 자체가 자양을 주지는 않습니다.

뭣보다도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살지, 떨어져 나가면 못 삽니다.

금방 죽습니다.


그러니까 가지는 포도나무 줄기에 꼭 붙어 있어야 하고,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무만 그렇겠어요? 우리 인생은 안 그렇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뭔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공급받아야 하고, ‘생명’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던 작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없는데 크기만 크다? ..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작더라도 생명이 있다면.. 거기엔 열매가 달린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을 파악합시다.

공부할 때보면, 공부 못 하는 학생은.. 지금 공부하는 내용의 핵심을 파악 못합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뭐가 핵심인지 금방 파악해 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생명(핵심)이 뭔지 그것을 모르고.. 엉뚱한데다가 힘을 쏟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최우선으로 힘을 쏟아야 할 것은 생명을 심는 일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교회는 재정의 40 %를 선교하는 데 씁니다.

미자립 교회나 해외 선교사, 또는 각종 기독교 관련기관,

또 탈북자들을 위해 매달 엄청난 액수의 비용을 지출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생명을 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요,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또 다른 어떤 교회는,

교회가 부흥한다 싶으니까 주차장 부지를 사고,

교회를 확장하고, 수양관을 짓는 걸 봤습니다.


물론 생명을 심으려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제가 보기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잘 사용하면 현재로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계속 부수고 짓고 하는 겁니다.

사실 건물은 사용개념이지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습니까?


벽돌 한 장을 심으면 그게 30개, 60개 100개로 늘어나나요?

교회는 말씀 증거하는데 열정을 쏟고, 예배에 집중하고,

양육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그게 생명을 심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도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지요?

사도들이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은 뒷전에 두고

구제하는 일에 열심을 내다가

히브리파, 헬라파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행히 예루살렘 교회는 즉시 그 일을 시정하고, 생명 살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지금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에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들 외국땅에서 공부를 하거나, 또는 회사를 다니거나, 사업을 하거나

가사 일을 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외롭고 힘겨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교회는 어머니처럼 우리를 포근하게 해 줍니다.

거기엔 좋은 교제가 있고, 나눔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에 나오면서 최우선으로 할 일은, 그 어떤 일도 아닙니다.

생명을 심는 일입니다.


예배와 기도와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받는 일입니다.

언젠가 주렁주렁 달릴 열매를 위해서

생명 되는 것을 많이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동안 음악적으로, 경제적으로,

또는 다른 어떤 면에서 진보가 있다 할지라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아야 될 것은 분명 생명을 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언제 볼 수 있을 지 그것은 불문에 부치시고

우선은 생명 심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누룩이 큰 밀가루를 삼킨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밀가루와 누룩의 관계를 유심히 보시면,

사실 밀가루는, 자기가 누룩을 다 삼킨 것으로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지요

좀 있다 보니까 몇 백 분지 일도 안 되는 누룩이.. 밀가루 전체를 다 변화시켰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이렇게 누룩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그 자체가 영향력입니다.

밀가루 쪽에서는 굴욕이지요?


그래서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큰 욕이 뭔지 아세요?

“이 서말 밀가루 같은 놈아!” 하는 것입니다


덩치만 크고 양만 많았지 자체에 생명이 없으니까.. 이런 욕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결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영향력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반성

우리는 그 동안 크기나 양만 우선적으로 추구했지, 생명력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들조차도.. 성공했다는 기준은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게 없습니다.

부자 되고 유명해지고 출세하면 ‘저 사람 성공했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개념으로 보자면 성경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솔로몬일 겁니다.

그는 인간의 가장 큰 우상인 ‘돈 섹스 권력’을 모두 한 손에 틀어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 중에 가장 황금을 많이 가졌던 사람이었고,

부인들은 무려 1천명이나 두었다 그랬습니다.

권력 역시 초유의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그런 솔로몬을

가장 모범적인 신앙인이라고 말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건 성공도 아니고 어떤 결실도 아니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겐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과는 격이 다릅니다.

다윗은 광야를 헤맸지만 그 거친 광야에서도

생명을 심고 그것 때문에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도 바로 그것입니다.

잘못 목회하면 우리교회는 솔로몬을 양성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1, 솔로몬2, 솔로몬3. 솔로몬4...


만약 이런 식이 된다면, 제 목회는 망한 목회가 되는 것입니다.

광야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 교회는 다윗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 때문에 오늘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사명에 불타는 그 생명의 약동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불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열매를 위해 생명을 심고, 그 생명 있음의 은혜에 매일 감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 일을 계속 반복하시라


열매 맺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생명을 심으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또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사실 이것은 처음 할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두 번째도 역시 생명을 심는 일인데 문제는 한 번 심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일을 계속 반복하라는 얘깁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드린 대로 생명은 그 자체의 힘이 있기 때문에

생명 있는 곳에는 언제나 뭔가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그런 얘기를 하지요?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뿐이니라”(고전3:6~7)


이 말씀을 보면 생명에 관한 일은 하나님 고유의 일로서

우리 소관 밖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심고 물주는 일’입니다.


그 외에 생명 자체에 우리가 뭔가 하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매를 얻기 위해 할 일은 생명 심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심고 물주는 일을 계속하면

자라서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일은 하나님께서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아닌,

이 ‘계속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뭐가 좋다 싶으면 그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잘 아는 그 일이 실제로 하려고 하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계속 심는 일을 잘 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선, 좋은 일이다 싶으면 우리는 그것을 일상화시켜야 합니다.

일상화 시킨다는 것은 당연히 늘 하는 일처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실 이것보다 무서운 힘은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중에 자랍니다.

막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중에 정말 기가 막힌 얘기가 나옵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 다음 잘 들어보세요)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니라”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지요?

무슨 얘깁니까?

우리 일은 우리가 심고 나면 자고 깨는 사이 우리도 모르게 자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씨 뿌리는 자가 신경 쓴다는 얘깁니까, 안 쓴다는 얘깁니까?

안 쓴다는 얘기지요.


농부가 씨를 뿌렸어요.

그런데 밤에 나가서 언제 싹이 트나 계속 관찰 하는 농부가 있나요?

심어 놓고, 자고 깨고 살다 보면

어느 날 자기도 모르는 새 자라난 것을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노라”

이 말씀은 우리들에 대한 주님의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뭐냐고요?

“너희는 심기만 하고 그냥 살아라. 그러면 나머지 내가 다 해 줄께!” 그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순간 골똘하게 신경 써야 일이 될 줄 압니다.

그래서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일을 많이 못 합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 저나 여러분이 경험하는 것은 뭡니까?

신경 쓴다고 일이 더 잘 되던가요?

오히려 대부분의 일은 신경 안 써야 더 잘 됩니다.


그냥 일상처럼 지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된 것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2004년도, 2005년도에 출석인원 얼마를 채워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금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 때마다 모여서 그렇게 간절히 구했는데,

죽어도 그 명수가 안 되는 거예요.


그때 계셨던 지체들은 우리가 그 기도에 얼마나 목맸는지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결국 안 됐어요.


제 아내는, 그 목표에 도달하면 다같이 자르려고 케잌도 만들 계획을 세웠는데,

결국은 못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때 참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사람 수에 대해서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 그냥 지냈습니다.

그런데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어느 날 보니까 그 수를 넘었더라고요.


그때 제가 알았습니다.

“아! 일은 잊어 버려야 되는 거구나.

그냥 잊고 자고 깨고 열심히 살다 보면 되는 거구나”


그래서 나이 든 처녀 총각들이 결혼하고 싶으면

오히려 잊어먹어야 결혼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목사님! 저 올 연말까지 결혼할 거예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이고 올해 저 자매가 결혼하기는 또 틀렸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까짓 것 기왕 늦었으니 주님 일이나 맘껏 하면서 살아야지’

그러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자고 깨는 사이 어느 날,

‘어, 내가 결혼했네, 어, 애가 생겼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일상화 시킵시다.

여러분은 새벽기도 한 번 나오려고 하면 밤새도록 새벽기도 묵상하다 못 나오지요?

일상화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새벽기도에 대한 의식이 없습니다. 

매일 하는 일이니까 그냥 하는 겁니다,


뭔가를 자꾸 주장하면 반대로 그 일이 더 안 되기 쉽습니다.

교회 여기저기에다가 ‘기도하자’ ‘전도하자’ 이런 것을 써 붙이면 

‘이 교회 기도 안 하는 교회구나’ ‘전도 안 하는 교회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일상화시킨다는 것은 무서운 힘인 것입니다.

뭔가를 반복적으로 시도해서 그게 습관처럼 몸에 배면

그 힘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연습도 가끔 하면 어렵지만, 그게 늘 하는 일처럼 일상화되면

그건 자기도 모르는 새 실력이 되는 겁니다.

계속 심기 위해서, 일을 몸에 배도록 반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후략)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