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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충돌하는 복음의 능력 2121

LNCK 2009. 10. 9. 02:40

◈세상과 충돌하는 복음의 능력                 마20:25-28              -펀 글 정리, 출처- 

 

 

복음이 세상 논리와 충돌하는 면이 있다고 하는데,

아래 글은 그런 점들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연구하실 분들은.. 이 화면 왼쪽 아래에 검색하는 네모 칸이 있습니다.

거기에 '역설'이라고 치시고, 검색해 보십시오. 그래서 복음의 역설paradox에 관한 글들을 골라서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오늘 나는, 세상 논리와 충돌하는 면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가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복음을 믿는다고 하지만, 복음으로 살지 않고, 세상 논리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복음의 능력/영광/은혜/보화들을.. 그게 도대체 뭔지.. 아직도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는지요?


 

▲1. 나의 약점을 감추고 vs 나의 약점을 드러내기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에,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었다.

그것은 회사 간의 계약을 성사시키고 이윤을 내기위해

최대한 나를 감추고, 경쟁상대를 밟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회사는 이윤이라는 분명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에,

나는 마치 도박장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약점을 찾는 사람과도 같았다.


하지만 수도원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했고,

상대방을 높이고 나를 낮춰야만 했다.

이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고, 익숙하지 않은 내게 힘들게 다가왔다.

 

'자기 약한 것을 오히려 자랑한다'고 한, 사도바울의 말씀을 묵상해 본다.

그 약한 것들 때문에.. 오히려 주님의 능력이 내게 머문다는 것이다.


 

▲2. 자기를 높이기 vs 자기를 낮추기 


세상은 저마다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교회는 상대방을 드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기쁨과 평화를 얻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참으로 이상한 집단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나를 낮추며 기쁨을 찾는가?

저마다 높은 자리를 향해 달려가고,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려는 세상 사람들의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겸손은 하늘나라의 열쇠이다.

가나안 여인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다.(마15:21-28)

그러자 예수님께서 감복하시어 가나안 여인의 청을 들어주신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처럼 겸손은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이다.


백부장이 “주님, 저는 주님을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8:5-13)”라고

말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백부장의 말에 감복하신다.

이처럼 겸손은 주님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겸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근본이 되는 덕목이다.

세상은 상대방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려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낮추며 기쁨을 얻는 사람들이다.



▲3. 무한 욕심 내기 vs 내 몫이 아닌 것 탐하지 않기  


언제부터인가 나는 “인생에는 내 몫과 내 몫이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은 너무너무 갖고 싶은데, 내게는 없고 다른 이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것을 갖지 못한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 평화는, 이렇듯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할 때 깨지기 시작한다.

또한 어떤 것은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데, 계속해서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집안 환경이나 개인적인 성격 또는 상황 등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내 몫과 내 몫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내 몫이 아닌 것을 탐하지 않고,

싫지만 내 몫인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이렇듯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아, 나는 그리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것은 내게 평화를 주었다.


“내가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아는데

수십 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는 항상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마음으로부터 놓을 때,

우리에게 진정 평화가 찾아오고, 인생에서의 자신의 몫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언제인가 나는 그저 보잘것없는 사제인 내 모습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에

주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나의 보잘것없는 모습과, 내 몫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였던 것이다.

그런 후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영적위안 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충만함은 지금도 여운이 되어 내게 남아있다.



▲4. 주연 배우 되기 vs 엑스트라의 영성 


세상 사람들은 늘 무대 중앙에 있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람들로부터 갈채 받는 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

어느 단체에서든 자신이 소외되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될 때,

우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기에 우리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너무나도 낯선 세상의 논리이다.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때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눅22:24, 마20:25-28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추종하며 따랐던 제자들에게

“내가 아니라, 저분을 따라라”며 자신의 제자들을 기꺼이 주님께 보낸다. 요 1:35-37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님을 잘 알았고

또 기꺼이 사람들에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밝혔던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힘든 부분이다.

같은 일을 함께 했는데,

나보다도 옆에 있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내가 기꺼이 나를 드러내지 않고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무대 중앙에서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때,

나는 그 무대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지나 다니는 사람,

즉 엑스트라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역할에 정말 기쁨을 가질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다볼 산에 오르시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올라가셨다.

그 때 남아있던 다른 제자들은 어떤 소외감을 느꼈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는 이처럼 기꺼이 그 주변인물이 될 수 있는가?


사실 우리들의 욕심은 모두 자신이 중심이 되고자 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평화(심령 천국)를 잃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럴 때 우리가 기꺼이 자신을 비우고 그 몫을 다른 이에게 내어줄 때,

우리는 참된 기쁨을 얻게 된다.


다른 이가 드높여 질 때, 나는 기꺼이 그를 위해 낮아지면서,

‘섬기는 자가 더 큰 자’라는 예수님 말씀으로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살자.


엄밀히 말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엑스트라이다.

그 누구도 주연 급 배우를 맡을 수 없다.

오로지 주님만이 이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시다.


따라서 우리 삶에서 “그분은 드러나고, 나는 낮아져야 한다(요3:30)는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는 기꺼이 엑스트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엑스트라의 영성이다.


이 세상에 진정한 의미에서 주인공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주님만이 이세상의 참 주인공이시다.

그 분은 만왕의 왕, 하늘 황태자이시지만,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십자가에서 달리시기까지 낮추셨다. 빌2:6~11


따라서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자신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자신을 우두머리, 주인공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아랫사람들과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스스로 엑스트라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아랫사람들과 다른 이들을 드높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몫은 모두 엑스트라이며,

오로지 그분만을 드높이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낮아져야 한다.


나는 오늘도 엑스트라의 삶으로서의 기쁨을 꿈꾼다. <생활성서 09년 8월호/정리                 ▣ 복음 관련     


 

주. '오늘 내가 이렇게 복(성공/출세) 받은 것을 보니

그래도 내가 예수를 제대로 믿어서 그런가보다'  ... 이런 말이나 자랑을 하지 맙시다.

그것은 믿음 없는, 샤머니즘입니다. 참 믿음은.. 자기를 낮추고, 예수만 높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내가 예수/ 십자가 가진 것을 자랑한다' .. 이렇게 말합시다.

 

또한 '내 등 뒤에 세상 권세(빽)가 있다' 고 자랑하는 사람도

앞으로는 '내 등 뒤에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고 자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