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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세에 거듭난 여의사 이야기 外 2편

LNCK 2010. 1. 11. 07:12

58세에 거듭난 여의사 이야기 外 2편

  



▲눈에 띄게 생기발랄한 여의사

대개 병원에 가서 의사들을 접해보면, (의사 선생님들은 이해하고 들어 주세요.)

병원 일이 워낙 바쁘게 움직이고,

또 늘 아파서 얼굴 찌푸린 사람, 병으로 힘든 사람,

이런 사람들을 하루 종일 대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면,

방긋 방긋 웃고 얼굴이 생기발랄하고 활기가 넘치는 의사를 보기 드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병원에 갔다가, 눈에 띄는 여의사 선생님 한 분을 보았습니다.

그는 60대 여자 의사였는데 보기에 너무 달랐습니다.

그냥 옆에서 보기에 벌써 ‘아니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나!’할 정도로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른 의사였다고 합니다.


‘세상에 저런 의사도 있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해서 저런 밝은 얼굴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나? 어찌 저런 표정이 가능한가?’ 하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이분 이 더 놀란 것은, 그 여자 의사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옆으로 나오는데

두 다리가 모두 없더라는 것입니다.


▲남편 사별 후 자살 기도, 그 후 8년간 목숨만 연명하며 지내다

사실 이 여자 의사에게는 남다르게 많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의사로 활동하다가, 나이 50세에 갑자기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부부간 금슬이 남달랐던지라, 남편이 죽자 상실감이 너무 커서

그는 자살하기로 결심 하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었답니다.

그런데 두 다리만 잃고 목숨은 건졌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분은 인생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합니다.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었던 사람이니, 그때 이미 인생을 포기했었지만,

이젠 두 다리까지 없는 불구자가 되었으니, 무슨 소망이 더 있었겠습니까?


결국 이분은 노인 병원으로 환자로 보내졌답니다.

당시 50세였으니, 노인 환자들에 비하면 그 병원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년 동안 침대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든 의욕이 상실되고 그저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지만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8년 동안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목숨만 연명만 한 상태에서.. 세월만 보낸 겁니다.


▲58세에 어느 날, 전도를 받다.

그런데 이분이 8년째 누워있던 58세가 된 해였습니다.

병원에 가끔씩 와서 환자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얘기도 해주고,

전도도 하는 팀이 있었습니다.


그 팀의 한 일원(이하 팀원)이, 이 부인(여의사) 앞에 와서 섰습니다.

그 팀원은 이미 간호사로부터, 부인에 대한 얘기를 들고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남편을 잃은 것도 큰 고통이고,

죽기로 작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지금 두 다리를 잃고 살아남아서

8년을 침대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고 세월을 보내다니...’


그 팀원은, 침대에 누워 있던 부인을 보고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그 부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접근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드십니까?’

그리고는 서로 눈을 마주 치면서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팀원은 보기 흉하게 잘린 다리를 만져주면서

‘얼마나 힘드시냐, 얼마나 힘들면 당신이 이런 고통을 스스로 취했겠느냐’면서

잘린 다리를 자꾸 만져주고 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아마 그래야 신경도 통하고 피도 통하는 모양입니다.

 

▲마음이 열리고, 얼굴에 광채가 비치다.   

누구도 인생을 포기한 자기를 찾아와서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 팀원의 위로에 누워 있던 이 부인도 놀란 겁니다.


그 팀원은 ‘하나님이 당신의 고통을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끔찍한 고통을 당하신 것은

당신의 이 고통을 면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 부인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팀원이 복음을 전하면서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이 남다른 고통을 당했지만, 당신이 이 고통을 극복하고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틀림없습니다.

천사는 두 다리가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이 부인이 8년을 병석에 누워 있다가, 이 전도를 받으면서

자기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비추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전도하는 팀원이 보기에도,

이 부인이 30여분 함께 대화를 하는 동안에

얼굴이 밝아지고 광채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부인은, 마치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의사로 활동을 재개하다.

얘기(전도)를 마치고, 기도가 끝나고 나니,

이 부인은 간호사한테 휠체어를 갖다 달라고 하면서

8년 만에 처음으로 침상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부인은 자기에게 메시지를 전해준 그 팀원의 말대로,

아니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다리 없는 천사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의사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속에 새로운 소망이 생겼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목표를 제대로 잡은 것입니다.      

 

 

◑양의 침묵 (십자가를 지는 자세) 


제가 몽고에 갔을 때 양을 잡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몽고 인이 양을 잡기 위해 양을 끌고 오는 동안,

그 모습을 본 개는 이제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듯 요란하게 짖어대는데,

막상 끌려오는 양은 너무나도 잠잠하고 평화스러웠습니다.


양을 마당 한 가운데 거꾸로 눕힐 때에도 양은 전혀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양은 다른 가축의 경우처럼 정수리를 찍거나 혹은 목을 따서 죽이지 않았습니다.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기 위해

양의 배를 하늘로 향하게 눕히고, 배 가죽만을 칼로 조금 갈랐습니다.

그러자 속에 있던 밥통의 윗부분이 잘라진 틈으로 불거져 오르면서

피가 밖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자동마개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몽고인은 양의 밥통 옆으로 손을 넣어

양의 숨통을 눌러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무지막지한 사람의 손이 양의 배를 가르고

그 내장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숨통을 틀어쥐는데도

양이 신음소리를 한번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숨이 너머 가는 마지막 순간 허공을 향해 치켜든 네 다리를

파르르 떨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조리가 끝난 양고기를 시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양고기를 씹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 53:7절의 의미를 되씹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고난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았도다." (사53:7)


너무나 적절한 표현입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동물들 가운데

왜 구약의 사람들이 유독 양을 속죄의 제물로 즐겨 사용하였는지,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셨는지,

왜 성경이 하필이면 주님을 양에 비유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그날 확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양은 자기 생명을 남을 위하여 잠잠히, 그리고 기꺼이 내어놓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배를 가르고 속으로 손을 넣어 숨통을 눌러도

반항 한번 없이 자기 생명을 내어줍니다. 놀랍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여기서, 십자가를 지는 자의 자세를 엿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 내어놓으실 때, 잠잠하셨습니다.

묵묵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리스 박사의 재미있는 [동물학교] 비유                        출처 휘발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고전12:21

 

리스 박사의 재미있는 [동물학교] 비유가 있다.

어느 날 동물들이 모여 말했다: 

"21세기는 가까웠는데 우리가 그냥 있을 수 있느냐?

무엇인가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들은 교육만이 새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동물학교]를 세우기로 하였다. 

그리고 교과 과목으로 달리기, 나무 오르기, 날기, 헤엄치기 등을 정했다.  


오리수영, 날기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나무 오르기에서는 낙제점이었다.

달리기는 성적이 안 좋아서 방과 후 연습을 하느라고

물갈퀴가(발이) 너덜너덜해졌다.


토끼

달리기, 나무오르기는 잘했지만,

수영의 기초를 연습하느라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다.


다람쥐

나무 오르기는 성적이 좋았지만,

무리한 날기 연습을 반복하다가

근육에 쥐가 자주 났다.


독수리는 입학 할 때부터 문제아로 찍혔다.

가장 높이 날기, 활공능력에는 탁월했지만,

넓이 뛰기, 달리기에서는 늘 먼지만 일으키며

운동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졸업할 때까지 남에게 피해만 입히는

골칫덩어리로 왕따가 되었다. 

 

그 중에 점수를 제일 잘 받아 장학생이 된 동물은

예상외로 뱀장어였다. 

뱀장어수영도, 달리기도, 날기도 조금씩 할 줄 알아

가장 높은 평균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뱀장어는 뱀처럼 서구인이 혐오하는 동물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 초원에       

사는 야생 개두더지

학교에 '땅 파기', '굴 파기'

과목이 없어서 

아예 입학도 하지 못한 채

밖에서 교육세만 꼬박꼬박 냈다. 

 

이 동물들은 나름대로의 은사를 살리지 않고

동물들이 만들어 놓은 [동물 학교]에 매이거나, 서로 비교하며 경쟁했다.

이들은 모두 틀에 갇혀 무능력한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들은 자연으로 돌아가 창조주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게 본래의 모습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은사를 발견하고 살리며

모두가 창조 세계에서 자기 분야에서 저마다 두각을 나태 내며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자유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갈 5:3).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분의 통치를 받으며 산다면

각자 은사를 살릴 수 있고 이 시대의 창조적 소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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