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연도 알 수 없음

구속사역 과 성령사역 2289

LNCK 2010. 2. 1. 13:55

 

◈구속사역 과 성령사역                      요16:7~15             -설교스크랩, 출처- 

 


성령의 사역이 굳이 왜 필요한가요?’

이런 질문에 대한 가장 손쉬운 대답은,

‘맨 손으로 땅을 파기’와.. ‘삽이나 곡괭이로 땅을 파기’의 차이를 듭니다.

또한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는 것’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차이를 듭니다.

그럼 오늘 나는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그런데 ‘성령의 사역’이 뭔지.. 그 개념이 모호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양하게 배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성령 하나님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거든요..



◑구속사역과 성령사역


▲2개의 값이 치러졌습니다.

시카고 무디 교회의 담임 목사로 라디오 방송과 집회를 통해 유명한

어윈 루처의「실패한 인생,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중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어윈 루처의 설교보기 참음으로 기다리는 신앙 1888 


당신은 서점에 가서 두 권의 책을 사고서도

하나는 그 가게에 두고, 한 권만 집으로 가져오겠습니까?

만일 실수로 그렇게 했다면.. 다시 가게에 가서, 나머지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미 당신은 두 권의 값을 치렀기 때문에

한 권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용서이며, 다른 하나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둘 다 모든 값이 치러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자신의 임재와 사역을 믿고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도록..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세례요한의 2가지 방향 소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요한이 동일하게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요1:26, 33-34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요1:33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붙드는 만큼.. 성령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2가지 방향 사역

①구속사역 ; 주님께서 십자가의 구속을 완성하시고

②성령사역 :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일이 이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20:21~23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은 후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주님은 부활하시어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꿈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죄를 사하는 권세를 받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성서의 2방향

①십자가의 구속을 기록한 복음서가 있는가 하며

②성령님의 역사가 기록된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이

신약성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절음발이 신앙인입니다.

온전하지 못한 보기 흉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성령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1. 인격적인 성령님 요16:7-11


성령은 "기"와 같은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철저히 완벽한 인격이신 분입니다.

사랑하시고(롬15:30), 세상을 책망하시고(요16:8),

때로는 근심하시고(엡 4:30), 중보하시는 분(롬8:26)이십니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루크는 "힘이 너와 함게 하기를"과 같은 말로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 또는 우주에 충만한 어떤 힘을

인간이 조절하고 이용하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우주선을 기氣를 이용해 움직이게 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이것은 서구인들에게 상상력의 세계를 자극하는 놀라운 작품이면서

동시에 뉴에이지적인 가치관을 온 세상에 퍼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많은 영화와 만화들이 이런 류의 비인격적인 힘을 이용하는 것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을 심각하게 오해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영적인 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영적인 힘에 인격성을 배제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성령에 대해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실상을 말씀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7절)


그 실상의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떠나가지 아니하시면

보혜사가 우리에게 오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그분을 우리에게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마음대로 이용하고 불러오는 우주의 힘이 아니라

는 말씀입니다. 주1)


그러나 성령님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책망하시는 분입니다.

특히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본문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8


책망한다는 것은.. 인격적인 의지를 가지고 관철시키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기"와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생각보다 더 고결한 목표 즉 교육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인간을 대하시는 분입니다.


▲2. 내주하시는 분   요16:7-11


주님은 당신이 떠나시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실 만큼, 성령을 신뢰하셨습니다.

그 분을 높이셨습니다.

그분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보다, 더 유익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은 우리 속에 계시는 분, 내주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


이것은 엄청난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늘 성령님, 즉 거룩한 영이 거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의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

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6


우리 안에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십니다.

최고의 위대한 완전한 영이신 성령님이 나와 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주하시는 성령님’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약에서처럼 사람을 사로잡아 일정한 시간 내에 기적을 일으키시고 떠나시는

그런 차원의 관계가 아니라, 영영 내 속에 살아계십니다. 그분이 내 생명이 되십니다.


마치 햇볕 아래서 촛불이나 전등이 무의미하듯

성령의 임재는 다른 잡스런 영들의 활동을 무력하게 합니다.

거룩한 성령이 임재해 있는 사람에게

더러운 영들이 감히 접근도 못합니다.


성령인 내 안에 계시는 것은 모든 악한 영들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음을 듯합니다.

이것이 지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7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이 생각하는 단순히 도덕적인 삶이나

득도나, 기적의 체험정도가 아니라,

그분의 거룩한 영이 내 생명이 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


이스라엘의 선생이고 산헤드린의 의원인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할 것을 이야기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것이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가 이스라엘의 랍비 한 민족의 신앙과 정치와 법의 탁월한 지도자였지만,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직 상관 없는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님의 성령의 내주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고전12:3절에 보면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의 내주하심은 성령으로 충만한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 거하시지만,

그분의 영이 내 속에서 세력을 얻지 못하시고 변두리에 천대받으며

마치 없는 분처럼 멸시를 당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그분을 인정치 않고 인격으로 대하지도 않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고통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멸시를 당하시고 인내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4:30


더욱이 그분을 소멸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분은 인격적인 타격을 받기도 하십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 (살전5:19)라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그분의 의사를 존중히 여기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성령으로 사로잡혔다, 그분이 충만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

순종으로 자아를 비운만큼 그리스도인에게 이루어집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랑해서 한 연인과 결혼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늘 곁에 따라 다니는 남편과 아내 사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면 자식과 함께 사는 아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집에 살면서, 옆에 있으면서도, 무시하고, 의견을 묻지도 않고,

말도 못 꺼내게 하고, 나의 의향은 들을 생각도 없이 자기 맘대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차라리 따로 살면 모르겠거니와 한집에 살면서

이러는 것은 너무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을 결코 이런 식으로 대우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내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을 근심케 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3. 진리의 교사인 성령님  요16:12~13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고대 노르웨이 뱃사람들은 지혜와 용맹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배로 북대서양의 먼 바다까지 항해하곤 하였습니다.


콜럼버스 시대보다 몇 세기나 앞서서,

그들은 미국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놀라운 해양활동을 하였지만

어떤 과학적인 항해 도구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바다에서 나갈 방향을 찾는데 무엇을 사용했는지

현대인들이 안다면 신기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항해할 때마다 커다란 새장에, 여러 마리의 갈가마귀를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거나 항로를 이탈했을 때는

갈가마귀 한 마리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러고는 갈가마귀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 방향을 잡아 날아가는 쪽으로

배를 몰아갔습니다.

그들은 갈가마귀가, 자신들을 육지에 안내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처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또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나갈 방향을 지시해주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내 의지와 죄악으로 가두어 놓지 말고,

높이 인정하고 그분에게 주목할 때

우리에게 길을 알려 주십니다.


다시 말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의 하나는

인생의 바다에서 길을 잃었을 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2~13


이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요14:6

예수님께서 본인이 친히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친히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15:26


▲자의적이지 않습니다. 성령님도 듣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성령님은 실제로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10


그런데도 성령께서 자기의 것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듣는 것만 말씀하신다고 하시니

얼마나 철저히 하나님께 의존적입니까?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신 분인 성령님도, 듣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우리 같은 무지한 인간들이야 얼마나 더욱 절실하게

듣는 것을 말해 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 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2:11


▲성령님은 도서관의 사서

A. B. 심슨이 쓴 「성령님에 대한 묵상」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평소에 국회 도서관의 귀중한 가치에 대해 역설해온 한 유력한 하원의원이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의원님같이 바쁘신 분이 연구와 조사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도서관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며,

주어진 논의 주제가 어느 책의 몇 페이지에 있는지를 그렇게 잘 찾으십니까?"


그 하원의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아주 훌륭한 우리의 사서 덕분이지요.

그는 모든 책과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완벽하게 그 일을 해냅니다.

우리는 다만 필요한 주제와 관련된 권위 있는 책을 찾아달라는 메모를 써서

사무실의 어린 사환을 시켜 그에게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환은 얼마 안 있어 우리가 원하는 정보가 담긴

책의 해당 페이지를 펼쳐서 가지고 돌아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서(성령님)가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성경을 훨씬 더 잘 이해하시며,

우리의 관찰자며 안내자로서 성경의 의미를 알려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삶의 모든 필요 가운데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시각과 이해할 수 있는 기관을 주시는 것은

성령님의 특별한 사역입니다. 그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은 거룩한 것들과 그 실체들을 직접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을 의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자기 스스로 생각나는 것과 세상에서 들은 지식들로

하나님을 연구하여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4.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령님   요16:14~15

 

성령님의 사역의 특징의 하나는..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16:14


성령의 역사의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서는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봉사하는지/그렇지 않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면.. 성령의 역사이고

그렇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높이면.. 성령과 관계없는 인간의 일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늘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후략)

 

....................................


 

주1)

소위 말하는 "기"라는 것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인 성령님을 배제하게 만듭니다.

인격성이 배제된 영성의 위험성은 사탄에게 얼마든지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의 심각성은, 영들의 개념에 인격성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은 자신들이 책임을 지길 원하며,

과학과 기술과 이제는 영적 영역까지 확대하여

하나님(성령)을 배제하려 합니다.


이제는 영적인 세계까지 인간이 자기 맘대로 조작할 수 있다고 착각하여,

하나님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영성을 찾는 현대인들의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이 가지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뉴에이지적 발상의 문제입니다.

내 내면을 바꿀 필요가 없이 이용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그런 우주의 힘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비성서적인 가치관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영적인 실체가 인격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성령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