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이 떠남, 임함 겔10 :18 09.09.04.설교녹취 中文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물더니' 겔10 :18
◑하나님과 함께 슬퍼하는 사람
▲오늘날 교회를 아끼는 사람은 2부류가 있다.
-교회가 어떻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과,
-교회의 어떠함을 보면서.. 조용히 울며 기도하는 사람이다.
느헤미야는 조용히 울며 기도했다.
느1: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오늘날 이 땅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이 찾으시고 불러 쓰시는 사람은..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다.
즉, 주님과 함께 우는 사람이다.
뭐가 어떻다고 지적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과 함께 울지 않는 사람이,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은.. 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 느헤미야와 같은 눈물 없이..
교회가 어떻다고 비판만 하는 사람은
사실은 한 가지 악을 더하는 (비판의) 죄를 범할 뿐이다.
▲에스겔도 (느헤미야처럼) 울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았는데,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는.. 그런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겔10:18
그때는 아직 성전이 완전히 불탄 주전 586년보다 .. 약 7년 전이다.
에스겔이 2차포로로 잡혀온 시점이 주전597년이며, 그로부터 5년지난(겔1:1) 약 주전593년 경에
에스겔이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예언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성전은 예루살렘에 아직 당당히 위용 있게 서 있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장면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증한 모습들을.. 에스겔은 환상으로 보게 된다.(겔1~10장)
이 환상을 보고서, 성경에 ‘에스겔이 울었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안 나오지만,
그가 안타깝게 (에스겔서를 쓰면서) 예언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 나라를 사랑했는지.. 울면서 예언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비슷하게 9:8절에 '부르짖었다 cried' 나옴)
◑하나님의 영광이 내게서 떠난 증거
그런데 인간의 죄와 불순종은, 하나님의 영광을 내게서 떠나게 하는데..
▲1.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늘 탄식 가운데 살게 된다.
살아있지만, 영혼이 거의 죽은 빈사상태이기 때문에,
영적인 기근이 늘 있기 때문에.. 늘 목마르고, 늘 탄식하며 살게 된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행복하던 시절이.. 몇 년 전 옛날이야기로 기억한다.
삶이 메마르게 된다. 공허하게 된다.
▲2.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개인과 공동체에서.. 비전을 상실한다.
비전을 상실하면.. 자기가 왜 살아야 되는지.. 이유를 모르게 된다.
오늘날 청소년/청년들 가운데 ‘I don't know, I don't care’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청년들이 비전을 상실했다는 증거다. 그저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대신에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래서 바쁘게 사는데..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조건 질주한다. 남들 가는 데로 따라간다.
이것은 우리 어른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상실됨으로 말미암아
자녀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꿈과 비전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개인과 공동체에서.. 열정passion을 상실한다.
저희 부모님 세대는.. ‘열정’이 있었다.
제가 4~5살 때는, 어머니들이, 저녁 예배는 물론이요,
새벽기도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셨다.
그때는 교회당에 의자도 없었고, 냉난방도 거의 되지 않았지만,
방석 하나 깔고 앉아서,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기도하곤 했었다.
오늘 당신에게 ‘주님을 향한 열정’이 불타고 있는가?
설교자라면 설교하고 싶어서 막 몸과 입이 근질근질해야 한다. 설교시간이 기다려져야 한다.
만약 그것이 싸늘하게 식었다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간절히 구하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그런 열정 상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내게서 떠난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부모들이, 청소년 자녀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자녀들이 ‘열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축 늘어져 있다.
컴퓨터 게임을 할 때를 빼고는.. 보통 축 늘어져 산다.
부부지간에도, 열정이 상실되면.. 다른 자극/중독거리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래서 종종 사건들이 일어난다.
부부지간에도.. 열정이 사라지지 않도록.. 열정의 불을 지켜내어야 하는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개인/가정/공동체에 거룩한 열정passion도 같이 임하게 된다.
▲4. 영적 감각이 점점 더 무뎌진다.
처음에는 작은 죄에도 민감하게 회개하지만,
나중에는 웬만큼 죄를 짓고도.. 잘~ 살아간다.
처음에는 기도 안 하면.. 큰 일 나는 줄 알지만,
나중에는 기도 안 하고도.. 끄떡도 없이 잘~ 살아간다.
그들이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둔하게 된다. 롬1 :22
얼굴이 뻔뻔하게 된다. 사3 :9
내 죄에 대한 애통이 사라지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슬픔이 사라지고,
이런 모든 현상은, 하나님의 영광이 내게 고갈되어서..
결국 내가 무뎌지고, 강퍅해졌다는 증거다.
그래서 예배에 늘 참석하지만, 찬양에 힘을 잃어버린다.
억지로 마지못해 입을 벌려 찬양하지만, 시간만 때우는 찬양이다.
그러면서 점점 종교인이 되어간다.
▲왜 이스라엘에/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가?
이스라엘에/나에게 죄가 있어서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의 죄와 허물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며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그 거리를 좁혀나가야 하겠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즐거움이 생긴다.
▲하나님은 항상 영광가운데 임재하시고, 영광가운데 일하신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일을 봉사로 섬길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영광/은혜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기운이 예배당에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성령님이 내 마음을 강하게 터치할 때도 있고,
혹은 내 마음에 강한 확신을 주기도 하고, 뜨거운 열정/ 또는 애통을 주기도 하는데...
출애굽 때 10가지 재앙이 임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고센 땅을 붙들고 있음을.. 그들은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손’이 자기들을 지키고 계심을.. 그들은 확신했다.
그들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모두 다 순종해서 애굽을 떠났던 이유가..
여호와의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홍해가 갈라져서 마른 땅같이 지났을 때에도
미리암의 노래에 맞춰, 백성들은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무슨 바닷길이 갈라진다고 할 때.. 거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영광이 임하니까.. 두려움도.. 놀이가 된다.
저는 기도원 체질이 아니라서, 가끔씩 혼자 prayer trip을 떠난다.
얼마 전에 미 동부 바닷가에 가서, 혼자 2박3일 기도하고, 책을 읽는 시간을 보냈다.
거기 겨울바다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황량한데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저는 기도하며, 예배하며, 해변을 걷는데, 보니까 갈매기들이,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은데도, 오히려 즐기듯이 그 위를 떼를 지어 날고 있었다.
때로는 파도위에 앉아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때 성령께서 제게 이런 마음을 주셨다.
‘얘야, 지금 이 새들이 나의 임재 안에서 놀고 있단다’
비록 비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휘몰아쳐도,
주님이 자연과 만물을 붙들고 계시므로,
저 갈매기들은, 그 비바람 치는 파도 위에서도, 즐겁게 파도를 타며 놀고 있는 것이었다.
‘너는 먹구름 가운데서 놀라지, 비바람 가운데서 무섭지?
그러나 저 갈매기들은, 나의 임재 가운데서, 놀이하고playing 있단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먹구름과 비바람 속에서도,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면
나도 저 새들처럼, 그 상황을 놀이playing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홍해가 갈라지는 전후 사정은..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두려운 역사였지만,
하나님이 임재하시니까.. 그 무서운 역사는.. 미리암의 찬송처럼.. 춤과 놀이로 바뀌어졌다.
나는 해변을 좀 더 걸어보았다.
그러자 내 눈앞에 잔잔한 포구가 들어왔다.
바깥 바다는 비바람이 치고 파도가 거세지만,
방파제 안쪽으로 보호되는 포구는.. 물결이 잔잔했고.. 거기에 여러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비바람이 심하게 치더라도, 안전한 나의 포구로 들어오렴.’
주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주님은 절대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를.. 절대 내팽개치지 않으신다.
제가 중3학년 때, 하루는 친구와 가출했다. (지금은 다 회개했다.)
북한산에 갔는데, 산장지기를 잘 만나서
도리어 그가 우리 두 사람에게 라면도 끓여주고, 성경말씀으로 잘 권고해 주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아침에 안전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휴대폰 없던 시절)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분 자녀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그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
제가 그런 것을 평소에 늘 느낀다.
주님은 좀처럼, 함부로,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신다. 결코 못 본체 안 하신다.
▲오늘날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잘 드러날 때는.. 죄인들이 주께로 돌아올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죄인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오늘날 우리 공동체에.. 넘치도록 임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