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625, 광복절 관련 설교 모음
◑구한말 근대사와 기독교
◑삼일절 설교
신사참배와 주기철 목사 순교자와 남겨진 그 가족 이야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 자가 받는 복 (중에 삼일절 기록 나옴)
◑한국전쟁 625관련 설교
윌리엄 해밀턴 쇼 이야기 (선교사 아들로 625 참전 전사)
◑광복절 설교
(갑자기 신비하게 해방이 왔다) 하나님의 신비한 회복 역사
◑기타 역사 관련글
우리 민족이 가진 사명감 때문에 우리 역사에 고난이 많았다
......................................... 그 외 조각글 모음 ..............................................
◑삼일절
▲오늘은 삼일절, 과거에 일제는 우리나라를 너무 괴롭혔다.
우리 언어를 말살했다. 창씨개명을 통해 우리 이름을 못 쓰게 했다.
선조들은, 일제에 맞서서 비폭력 무저항 운동(31운동)을 일으켰다.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만방에 선포했다.
그 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투옥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나라에 대해 완벽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기묘하게 섭리하셨다.
일본이 승승장구하면서, 그 기세가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1945년에 해방될 것을, 기한을 갖고 계셨다.
아무도 몰랐지만, 하나님은 줄을 그어놓고 계셨다. 일본은 패망했다.
기록에 의하면, 그때 당시 성도들은 크게 2가지 문장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주여,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나간 얘기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라는 식으로 기도드릴 필요는 없었다.
주님은 놀라운 섭리와 완벽한 계획 속에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 사실 우리 민족이 한 행동은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독립은, 하나님의 때에/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의 압제가, 영원한 것도 아니었고, (지나고 보니)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625 한국전쟁
▲625때 순교자 임인옥
황해도 재령읍 서부교회 임택권 목사님의 딸 임인옥은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 받아 재령읍 서부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맡고 있었습니다.
임인옥 선생은 6.25가 일어난 후에도 은밀히 자기 집에서
학생들을 모아 놓고 신앙을 지도하였습니다.
유엔군이 북상하자 공산군은 민족주의자 기독교인들을 사살하고 도피하였습니다.
이 때 임인옥 선생도 다른 교인들과 함께 재령읍 보안서에 구금 되었다가
끌려갔는데 한 사람씩 총살시켰습니다.
드디어 임인옥 선생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또렷한 말투로
"나는 기도하다가 죽겠어요"하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총소리가 나더니 임인옥 선생님은 기도하던 자세로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라고 쉽게 말합니다만
순교자야말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죽습니다.
엄청난 오해, 때로는 누명을 가지고 죽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정 말년에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만
그때마다 문제가 많았고,
또 공산치하에서도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만
순교자는 오해가 많습니다.
죽이는 자가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너를 죽인다’고 하는 법은 없습니다.
반동분자이기 때문에 죽인다고 합니다.
나라의 법을 어겼다고 하고,
왕을 배반했다고도 하고,
뭐 여러 가지로 이름을 붙여서 죽이기 때문에
사실 순교자 그 자체로 보면 엄청난 오해 속에 죽어갑니다.
625 공산치하에서 많은 사람이 죽을 때
‘당신은 예수 믿기 때문에 죽인다’ 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저래 구실을 만들어서, 국법을 만들어서 나라의 법을 어겼고,
반동분자니까 반정부 일을 했으므로 죽인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순교자에게는 엄청난 누명과 오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 모든 비밀이 다 드러날 것이다.
감춰진 것이 다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곽선희
▲시험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다.
이제 나이가 드니까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제(곽선희 목사) 호적은, 신학교 기숙가가 있던 중구 회현동 100번지이다.
방학 때가 되면 학생들은 다 집으로 가지만, (집이 이북이라서) 난 갈 데가 없었다.
겨울 방학에도 기숙사에 남아서, 할 일이 없으니까 책만 읽었다.
경제적으로도 너무 어려웠다.
주님이 나를 625 전쟁 통에서 건져 주신 것도 감사하고,
광산에 끌려갔다가도 살려주신 것도 고마웠지만,
지금 내가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하나님, 이거 지금 너무하지 않습니까?’ 라고 푸념했다.
하나님이 나의 그 기도는 안 들어주셨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 많은 시련 다 겪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 때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나’라는 약속이 있었는데... 그게 안 보이니까 그 때는 매우 괴로웠다.
그런고로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험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다는 것을!
오늘 내가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 뒤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다는 것을!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미 없는 시험은 없다.
그 속에 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
약속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순교자들처럼, 이 세상에서 못 받으면,
천국에 가서 갑절로 반드시 받을 것이다.
▲한번은 제(유기성 목사)가 서울 어느 큰 교회의 부흥회에 초청되어
그 교회에서 마련해 준 서울의 최고급 호텔 숙소에서 지냈습니다.
정원은 잘 꾸며져 마치 산속의 고급 별장 같았고,
유럽식으로 꾸며진 방도 너무 아름다워, 잠자며 시간보내기가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새벽집회를 인도하고 난 후,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커튼을 젖혀 보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핀 정원이 내다보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뭐기에 이런 호강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제 머릿속에 할아버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친할아버지를 생전에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625전쟁이 터지기 전에 평양 사동교회를 담임하고 계셨는데,
전쟁이 나자 가족을 모두 남쪽으로 내려보내고, 혼자 남아 교회를 지키다가
인민군들에게 끌려가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할아버지 생각을 하다가, 객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이런 호강을 누리는 것은,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후손에게 물려주신 상급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소위 ‘옥토밭’ 목회자였습니다.
이렇게 뒨 배경에 할아버지의 순교의 피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평생 ‘돌짝밭’을 일구시다가 순교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그 분이 받으셨어야 할 상급을, 손자인 내가 대신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 나는 ‘돌짝밭’ 사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옥토밭’ 만을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옥토밭’에서 호강을 누리다가, 훗날 주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 ‘돌짝밭’에서 피와 땀을 흘릴지라도,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큰 상급을 받게 된다면,
그보다 더 소망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현실의 신앙생활 여건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런 불공평함 때문에 주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다가오는 미래천국에 대해 눈을 뜬다면,
우리는 이런 불공평이 <원망>의 조건이 아니라, <감사>의 조건임을 알게 됩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이상현 박사는
우리 기독교의 특성을 말하는 중에 그 하나가 <주변성>이라고 했습니다.
‘주변성’이란, 중심에서 쫓겨나고/ 중심에서 밀려난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밀려나서 갈릴리에서 살고,
예루살렘에서 쫓겨나서 사마리아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강요된 주변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집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나그네’들이 625후 한국경제를 주도했습니다.
이북에서 피난 온 영락교회가, 한 때 한국교회의 주축을 형성했습니다.
<최영식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中에서
◑광복절
▶연세가 드신 분들은, 그 비슷한 경험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1945년 8.15 해방 직전에, 한국 상황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일제(일본제국주의)가 우리가 먹는 숟가락까지 다 뺏어 갔어요.
그거 녹여 가지고 군함 만든다고 숟가락도 못쓰게 했지요.
그런가 하면 교회에 매달아놨던 종까지 다 가져갔어요. 무기 만든다고...
거기에다 공출이다 뭐다 해서 참 어렵고 가난했고,
풀뿌리로 연명을 해야 하는 그런 때인데.. 어느 날 갑자기 8.15해방이 되었습니다.
박지순 목사님, 그 키 큰 양반이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저희 할아버지가 장로님인데, 붙들고 끌어안고 엉엉 울면서
“해방됐습니다. 해방됐습니다.” 하시는데, 아~ 참 감격스럽데요.
그 때 제(곽선희 목사)가 14살이었는데, 좌우간 해방은 좋은가 봅니다.
그런데 말인데요. 한 달 동안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싸우는 사람도 없어요.
욕심 부리는 사람도 없어요. 매일 먹고, 춤추고, 둥실 둥실 춤추고 다녔고요.
교회에서는 매일같이 예배 드렸고요. 그 공출 당했던 종을 걸어놓고, 하루 종일 종쳤어요.
하루 종일~ 너무 너무 좋아서~ 해방의 기쁨을 알리는 종을 쳤던 것이지요.
자! 이런 감격, 있을 만 하지 않습니까?
▶저(곽선희 목사)는 늘 복음이라는 것 늘 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경험할 수 있어도
민족적으로 경험하는 일을 한 번 본 일이 있다.
그것이 바로 8.15해방이다.
36년 동안 우리가 일본 사람들의 그 압제 하에 있다가,
특별히 그 전쟁 통에 그 막바지에 가서는 얼마나 어려운 핍박이 있었는지 모른다.
자, 교회에 문을 닫지 않나. 교회에 있는 종까지 다 떼어갔다.
그걸 갖다가 무기 만든다고. 종도 가져갔다.
그리고 교회에서 일본말로 찬송을 부르라고 말이지.
그래서 찬송가를 조사를 하고 일본말로 부르라고 했다.
또 몇 장 몇 장은 부르지 말라고, 문간에서 조사를 하고
그것을 떼어 버리던가 찢어버리지 않는 찬송가는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자, 이렇게 핍박이 심하고. 또 그뿐인가?
공출이라 해 가지고 쌀 같은 것 다 빼앗아 가고,
그리고 젊은 사람들 전부 끌어내다가 군대에 내보내고, 징용에 내보내고 그랬다.
집집마다 한 식구는 전부 잡혀가고 없었다.
이렇게 아주 어려운 고비를 당하고 있을 때, 그때의 고통은 말로다 못했다.
뭐 이런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모든 면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가 해방이 되었다.
일본 사람이 망하면서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해방이 될 때
너무너무 좋아 가지고 좌우간 한 달 동안 모두가 춤을 추었다.
그때 춤추고 기뻐하던 모습을 말로도 못한다.
한 달 동안 일하는 사람도 없었고 직장에서 일도 없었다.
그리고 다행한 것은 그 사람들이 공출하느라고 쌀들 모아 놓았던 것,
마당에서 쌓아놓았던 것들이 많았는데,
그거를 갖다가 나누어 먹으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매일 잔치, 교회도 매일 모이는 것이다. 주일날만 모이는 게 아니고 매일 모였다.
그리고 부르지 말라 했던 찬송만 부르는 것이다. 목이 터져라 하고 불렀던 것이다.
바로 이런 감격, 이게 복음(유앙겔리온, 승전 소식)이다.
이때는 뭐 원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적도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 좋으니까. 그런 기쁨, 그게 복음이다. /곽선희
▲손기정 마라톤 우승자 한 분을 이야기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1936년 당시는 사람은 2시간 30분 안에 마라톤 코스를 달릴 수 없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 벽을 깬 사람이 손기정입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그 벽을 깨어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손기정은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일본 선수로 출전하였습니다.
두 달 전에 베를린에 도착하여 현지 적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일본 일장기가 달린 선수복을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회까지 유니폼을 더럽히기 싫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일장기를 보이기 싫어서였습니다.
마라톤에 일등한 후 금메달리스트들이 모여 독일 국빈들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싸인 할 때에도 <손기정 Korea>라고 썼습니다.
수많은 신문 기자들이 어떻게 훈련하여 일등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손기정이 대답하였습니다.
“독립군들이 바지에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달고 훈련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달리는 연습을 하였지요.”
이를 악물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1946년 베를린 우승 10주년 기념식에서
백범 김 구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자네 때문에 세 번 울었네.
첫째, 나라 없는 청년이 우승하였다는 서러움에 울었지.
둘째, 일본 사람들이 자네가 필리핀 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죽었다는 소문을 내서 울었지.
셋째, 독립이 안 되었으면 자네 우승이 영원히 묻힐 뻔 하여
독립하며 감격하여 울었지.”
그렇습니다.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역사관, 시각
이런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여러분, 서울과 평양에서는 남북친선축구경기가 열리고
남북문화공연단이 서로 방문공연이 이뤄진다. 그러나 이것만 봐서는 안 된다.
30키로 북방 휴전선에 가면, 남북이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서로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이것만 봐서도 안 된다.
올바른 ‘대북관’을 갖기 위해서는.. 여러 면을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도 보고.. 현재도 보고.. 미래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625세대는 ‘과거’만 보고, 신세대는 ‘현재’만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 부활, 추수, 성탄, 성찬,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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