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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종이 되고 싶습니다 2599

LNCK 2010. 8. 13. 21:57

◈사랑하는 종이 되고 싶습니다          창31:42, 갈5:6              10.03.16.설교스크랩, 정리


 

◑특별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레오나드 레이븐 힐의 책에 보면

창30:1절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를 인용하면서,

부흥을 위해서 이런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부흥을 주시지 않으면 제가 죽겠습니다.’

‘영적인 자녀를 낳지 못하면, 제가 죽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설교자가 목회를 시작할 때, 서울에서 약 5년 동안 목회를 했었는데

실패해서 부모님이 계신 울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개척교회를 오랫동안 하면서, 제일 마음에 괴로웠던 한 가지가 이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나? 내가 진짜 목사 맞나?’

내가 진짜 목사인가?

밥벌이를 위해서 목사 하는 것인지, 영혼들을 위한 것인지.. 나중에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늘 20명 혹은 25명이었고.

개척교회 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밥벌이하기 위해서 목사가 됐나?

내가 성도들을 위해서 있는 것인지,

성도들이 개척교회 목사 먹여 살리려고 있는 것인지... 그게 헷갈렸던 겁니다.


‘이러면서 내가 무슨 주의 종인가?

주의 종이라고 하면, 복음을 전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라고 부른 것인데,

맨날 스물 몇 명 데리고 있으면서, 내가 무슨 주의 종인가?

나를 통해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것이 저의 마음속에 큰 고통이고, 고민이었습니다.


“주님, 나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길 원합니다.”

하다못해 100명이라도, 나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어나길 원했습니다.


사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헷갈리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교회는 너무나 많습니다. 목사도 너무 많습니다.

목사 한 두 명 없다고, 세상에 문제 생길 것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가 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목사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이것이 헷갈리는 목회를 하는 분들이 우리나라에 꽤 계십니다. (양해하시고 들어 주세요)


그런 분들은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주님, 정말 주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습니까?”

 

목사로 불렀다면 영혼들을 구원하라고 부르신 것이지,

구멍가게 해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를 통해서 실제로 구원받는 사람들은 생겨나지 않고,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 것이 주의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정말 주의 일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먹고 살다 온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생결단하고, 매달렸습니다.

1년에 1주일만이라도, 이렇게 한 번 매달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교회 크기와는 상관없이

정말 영혼을 사랑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섬긴 자들은 인정해 주시고 상을 주십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역자로서 자기 자신을 볼 때, 그런 고민과 갈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개척교회에서 10~20년 연단을 받은 후에, 훌륭한 목회자로 탄생합니다마는

그냥 이해하고 들어주십시오. 이렇게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목자pastor는.. 엄밀한 의미에서 따르는 성도가 있어야, 목자입니다.

양떼가 없으면 목자가 아닙니다. 물론 특수목회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다른 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고민이고 탄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창30:1절처럼 죽을 각오로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갑자기 교회들이 성장하기 시작하고

    요즘엔 아주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저의 책을 읽고, 설교를 듣고,

    목사들과 성도들이 회개하고 변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변화되고, 구원받고 가정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제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목회의 열매가 많이 맺혀지면 뭐하나? 내가 주님과 합한 사람이 되어야지.

성도가 많이 모여지면 뭐하나?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고민입니다.


서울에 교회가 생겨난 이후부터는, 이것이 제 고민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변화되면 뭐하나? 내가 변화되어야지.

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것 때문에 고민하고, 진지하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저희 교회가 생긴지 5년 되었는데, 그 5년 동안 제가 고민한 부분입니다.

목회적 성장이 아니라, 나의 영적인 성장에 대해 고민한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까?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될까?

(교회 성장 이전에) 어떻게 해야 내 자신이 변화되고, 성장될까?’


    결국 제가 도달한 지점은

    ‘제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

    억지로, 나의 결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마치 연인이 연인을 사랑하듯

    주님을 자연스럽게, 뜨겁게 사랑하는 관계로.. 제가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의 종으로서, 외형적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말 주의 종들이, 자기를 통해서 영혼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부흥이 일어나지 못한다면,

라헬이 고민하고 씨름하고 그런 것처럼

“아이를 낳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죽겠다.”

그렇게 협박이라도 하면서,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목회는 본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서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적’이 되어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진짜 성령이 임하시고 역사하시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시골이라도 부흥합니다.

시골이라서, 어촌이라서..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부흥만 일어나 보십시오. 사람들이 어딘들 찾아서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어느 식당 맛있다고 하면 방방곡곡 구석구석 다 찾아 가지 않습니까?

    요즘은 꼭 좋은 장소에 있어야, 음식장사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맛만 있다면 어디라도 찾아갑니다.


그런데 성령이 역사하시고 부흥이 일어나보십시오.

그러면 시골 교회라도..

그 마을 인구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들이 생깁니다.

사방에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핑계대지 말고 기도해서, 성령 충만 받고 성령이 역사하면, 어디서라도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역이 커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 주님이 인정하는 사람,

얼굴이 빛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음으로서, 주님 얼굴을 반사해서 내 얼굴에 빛이 나야 됩니다.

주님을 앎으로써,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인격과 성품이, 그 사람 속에 임함으로써

그래서 얼굴이 빛나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성실함만 갖고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 됩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창31:42


그 앞에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 야곱은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밤에 눈 붙일 겨를 없이 양을 쳤을 정도로 이렇게 성실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실해야 됩니다. 그런데 성실하게 사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목회도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성실한 것만 있었다면, 야곱은 이용만 당하고 그것으로 인생이 끝입니다.


저 불의한 라반이 품값을 10번이나 속이는데,

일만 시켜먹고 이득은 라반이 다 취해버리고,

야곱은 자기 집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에 뭐라고 나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외삼촌이 공수로 돌려보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회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의 비결을 알게 됩니다.


    성공의 비결은 단순히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하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건 기본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고,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게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자꾸 잘못된 믿음을 배워 왔습니다. 그냥 믿어라, 그게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진짜 믿음은 실제입니다. 실상이 있습니다.

그 실상이란,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13:5 하반부)


▶1. 기름부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삶, 그게 기름부음입니다.

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주님의 임재! 나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주님의 임재,

그 실제적인 주님의 임재! 그것이 기름부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38)


그게 기름부음입니다.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게 기름부음이에요.

그게 힘입니다. 그게 비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하고 함께 하는 걸, 평소에 느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한 번 손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내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심을 느낀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걸 아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그 임재의 체험을 종종 느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에 나오지 않습니까?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는데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안에 함께 하신다고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4:12


    하나님의 임재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에도 주님을 느낄 수 있고,

    영혼을 사랑할 때에도 주님을 느낄 수 있고,

    형제를 사랑할 때에도 주님을 느낄 수 있고,

    가난한 자를 사랑할 때에도 주님을 느낄 수 있고,

    원수와 핍박자를 사랑할 때에도 주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천국의 기준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엄청나게 놓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서 무엇이 귀한 줄 모르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려고 하고, 사역자가 되려고 하고, 선교사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진짜 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역자 되었다고 천국에서 상이 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많이 하십시오.

사랑이 많은 집사가, 사랑이 적은 지도자보다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을 때가 기회입니다.

나에게 아무 감투도 없고, 아무도 무엇인가를 시켜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소외된 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완전히 다릅니다. 교회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회입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천국에 오기 전에, 천국 상급을 많이 쌓을 텐데..

내 성질 죽이고, 이웃을 사랑하고 살면서

하늘나라에 엄청 상급을 쌓고 내가 천국에 올 텐데...’


여러분 지금 살아 있는 것이 복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한 말씀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말씀입니다.

이런 것이 대단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는 것이 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세요. 사람이 많이 모이면 짜증나는 일도 많습니다.

다 사랑하는 기회로 만드세요.


    신앙생활은 오묘한 것입니다. 평범한 일을 비범한 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일을 큰일로 만드는 것입니다. 흔한 일을 영광스러운 일로 만들고

    이것은 사랑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하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사랑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이웃들 앞에서.. 늘 겸손합니다.

여러분 얼굴을 뵈니까 대부분 환한데

사랑하는 것 외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만을 버리세요. 교만이 여러분을 작은 자로 만듭니다.

교만이 여러분의 인생을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만듭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못 보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은 다 보는데 자기 자신을 못 봅니다. 교만을 버리세요.


바울이 뛰어나서 바울이 아닙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겸손해서 바울이 된 것입니다.


영적인 승진.. 즉 쓰임 받느냐, 쓰임 받지 못하느냐,

크게 쓰임 받느냐, 크게 쓰임 받지 못하느냐.., 이것은 겸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성경에 어린아이로 나오잖아요.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셔서 감사하나이다.’


한국 목사들은 대체로 너무 어른스럽습니다.

외국 사역자들 가운데,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분들 보면,

한국 목회자들하고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아이 같습니다.

그래서 종종 장난도 잘 칩니다.


여러분이 신학생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말씀드립니다.

반드시 여러분은 천진난만하십시오. 겸손한 사람은 어린아이 같습니다.

표정도 근엄하면 안 됩니다. 얼굴 표정도 어린아이 같아야 합니다.


말하는 것도 너무 목사스러워서는 안됩니다. 목사의 억양 버려야 합니다.

제스처도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연출하면 안 됩니다. 연예인이 아닙니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 제스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겸손한 자가 되세요. 겸손한 자가 되면 얼굴표정도 어린아이 같습니다.

말하는 것도 어린아이 같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되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라고..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5:6


여기 보면 레아가 나오고, 라헬이 나오는데

레아는 좀 덜 예쁘고, 라헬이 더 예쁩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라헬이 못됐습니다.

예쁜 여자들이 얼굴값 한다고.. 대부분 못됐습니다.


여기 본문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라헬이 좀 못됐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집을 떠날 때 우상(드라빔)을 몰래 숨겨가지고 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라헬이 얼굴이 예쁘고,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해도,

우상숭배하고,

남편에게 함부로 대들고..

전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그 당시 지구상에서 최고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최고의 하나님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의 부인인데, 이 라헬이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속에 우상이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거 같고, 겉으로는 참 믿음이 좋은 것 같아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우상이 없는지 살펴봐야 됩니다. 우상을 제거해야 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내가 라헬일수도 있고,

    내가 무턱대고 라헬을 연모하는 야곱일수도 있습니다.

    둘 다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주님 한 분만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당대의 최고 믿음의 조상인 야곱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야곱처럼,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헬을 좋아합니다. 

    그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들어갑니다.

믿음이 무입입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랬습니다. 갈5:6


복음은 그냥 공식이 아닙니다. 믿어야 될 어떤 신조가 아닙니다.

복음은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복음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사랑하고 저를 미워하는 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느니라.” 그 말씀에 나온 것처럼

절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믿음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중히 여기고,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것처럼

그리고 연인과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친밀히 교제하는 게.. 믿음인 것입니다.


결국 신자는 다른 게 아닙니다.

신자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신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구원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게 없이 신앙고백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게 없이

십일조/주일성수/기도/성가대/봉사하는 사람은.. 바리새인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와서 책망하십니다.

“나는 다만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노라.”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해도.. 불법을 행했다면서 버림받잖아요.

진정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사랑의 결핍의 결과가 불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랑이 식어짐으로 불법이 성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4:12


사랑과 불법 이야기를 같이 합니다. 사랑은 식어지고 불법이 성한다.

사랑이 없는 마음이 불법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불법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13:8, 10


하나님을 사랑하면 1계명에서 4계명을 지키게 되어있는 거고

사람을 사랑하면 5계명에서 10계명을 지키게 되어있는 거고

결국 사랑이 없으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해도.. 지옥 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신앙고백하고 교회 다니는 거, 십일조/기도/성경공부/성가대 하는 거,

봉사/선지자 노릇/귀신 쫓는 거/많은 권능을 행하는 거,

사역하는 거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사랑하는 거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8:3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불법을 행하는 자에 대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리라.” 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불법을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불법에서 벗어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천국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 가는 기준이

어떤 구절은 쉽고, 어떤 구절은 대단히 어렵게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기준에 맞추어야 하나요?

약간 커트라인을 높게 설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여러분, 사고율이 20%인 비행기를 타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천국영생을 가는 비행기도, 가급적 안전한(커트라인이 높은) 편이 낫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 천국 들어간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믿음은 그저 관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목회는 성도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끔찍이 아끼시는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큰 교회 세우는 그런 야망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영혼들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성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신앙생활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목회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국 가면 다른 거 안 재봅니다. measure

‘성경을 얼마나 잘 아나? 은사가 얼마나 많나?’ 이런 것들은 안 재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나온 것처럼 사랑이 없으면 다 헛것입니다.

사랑으로 행한 것만 천국에 기록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카운트 합니다. (셉니다.)


꼭 여러분이 선교지에 나가야 상을 쌓는 게 아닙니다.

꼭 여러분이 강대상에서 꼭 설교해야 상을 쌓는 게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천국 상급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냥 주변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게 되고.. 선교사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고 목사가 되니까.. 스스로 목사 노릇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외 모든 우상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해서 모든 수고와 희생으로 섬기는.. 그런 훈련과 영적 성숙을

날마다 이루어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 사 랑       

이게 신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