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삶의 밑바닥에서 나온다 엡5:20 2006년경 설교 녹취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5:20
◑1. 삶의 밑바닥에서 비로소 깨닫는 감사
▲암이 축복이다?
최근 의사들의 암투병기가 신문에 나온다.
거기 보면, 어떤 의사는 산을 쳐다보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아내의 웃는 모습이, 작은 일상사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고 고백한다.
또 다른 의사는, 암에 걸린 후에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고
일상의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암이 결과적으로 축복이다>는 지론을 폈다.
▲맨발로 풀밭을 걸어보고 싶어요
태어날 때부터 면역 결핍증으로 태어난 12세 소년이 있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고, 감염되면 면역 결핍으로
쉽게 죽기 때문에, 그 소년은 플라스틱 무균실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골수이식수술을 받고서 무균실을 나오게 되었는데,
“무균실을 나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질문 받았다.
“맨발로 풀밭을 걷고 싶어요!” 소년의 대답이었다.
한 가지 더 “엄마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정말 소중함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마음 놓고 풀밭을 걸을 수 있고, 가족의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소중함을 무심코 지나쳐 버리고, 감사할 줄 모른다.
그러나 위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그런 감사가 나올까?
그것은 삶의 밑바닥에 내려가서 깨닫는 진리 때문이다.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가면,
사소한 일 하나 하나가 감사하다는 것이다.
◑2. 바울의 감사 이유.... 밑바닥에 내려갔으므로
▲감옥에서 감사한 바울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5:20
위 성경에서 보듯이, 바울은 본인 스스로 범사에 늘 감사했다.
바울은, 우리가 알다시피, 시련을 많이 당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도 감사 기도를 드렸다.
빌립보에서 옷을 찢기고 매를 흠뻑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밤에 찬미했다.
▲질병에 걸려서도 감사
예수 잘 믿으면 병에 아주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다.
예수 잘 믿어도 병에 걸릴 수 있다.
늙어 죽는 것은, 병들어 죽는 것이고,
늙는 것은 자동으로 병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늙으면서, 자연 병들게 된다.
바울에게도 질병. 육체의 가시(자기를 계속 찔러서 괴롭힌다는 뜻)가 있었다.
그것은 사탄의 사자(사탄처럼 끊임없이 공격하고 괴롭힌다는 뜻) 이었다.
▶약할 때 강하니까, 약한 것도 감사
바울은 자기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 기도드렸다.
그는 자기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머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병으로 신음하며 약할 그 때.... 자신이 도리어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하나님의 은혜는 능히 질병을 지니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족하다는 뜻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0)
▲고통 중에도 감사.... 삶의 밑바닥 체험 때문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감옥, 질병, 여행의 위험 등 이루 나열하기 힘든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앞서 서두에서 암 환자들의 예에서 보듯이....
삶의 밑바닥 체험 때문이었다.
아래 성경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 3:8)
사도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가 아니다.
그의 학력을 말하자면, 요즘의 하버드 대학 출신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늘 낮은 자리에 처했다. 또한 처해 졌다.
거기서 은혜가 고백되고, 감사가 고백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오늘 내 입에서 은혜의 고백/감사의 고백이 없는 이유는
아직 내가 더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
더 밑바닥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뜻.
♣ 십자가를 앞두고 감사하신 예수님
고전 11:24절에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예수님은 떡을 떼시면서 축사(유카리스테오: 감사하다, give thanks)하셨다.
그 떡은 앞으로 십자가에서 찢겨질 당신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잔은 앞으로 십자가에서 흘리실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감사하셨다.
십자가의 정신이란 그런 것이다....가장 낮아지는 것이다.(여러 의미 중 하나)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지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하늘보좌를 내려놓으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이 세상에서도 제일 낮은 종의 모습을 입으셨고
종보다 더 낮은 죄수의 모습을 입으셨고
죄수 중에서도 가장 천한 죄수 - 십자가를 지는 죄수로 내려가셨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은 없었다.
그런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는 것을 앞두고 감사드리셨다.
그런 십자가의 정신이 바로 바울에게 나타났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바로 그것이다.
◑3. 나의 감사 이유 .... 밑바닥에 가면 가시도 감사하다
▲십자가를 비추어 보면, 내 삶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고통 저주를 다 담당하셨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미 내게 주셨다.(엡 3:8)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내게 쏟아 부어 주셨다.(엡 1:3)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셔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엡 1:4)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셨다.
현재도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신다.(롬 8:28)
미래도 이 모든 풍성한 은혜를 계속 쏟아 부어 주실 것이다.
우리가 현재도 이 모든 풍성한 복과 은혜를 감사하고 있지만
바닥에 내려가 보면 더 절실히 알게 된다.
지금 교회에 앉아서 하나님 말씀을 청취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숨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감사가 나온다.
바닥에 내려가 보면 안다.
바닥에 내려가 보기 전에 깨달으려면, 성령충만을 체험할 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때로 삶의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하신다.
거기서 인생을 보게 하신다.
그러면 물 한 모금 삼킬 수 있는 것도 감사,
산천초목 자연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스코틀랜드 시각장애 설교자 조지 마태슨의 기도
[과거] 저는 저의 장미에 대해서는 수 천 번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나 제 가시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감사드린 적이 없습니다.
[현재] 저는 저의 현재의 십자가에 대해서
앞으로 보상을 받을 저 천국을 바라보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미래] 제게 저의 십자가의 영광을 가르쳐 주옵소서.
제게 저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제가 고통의 길을 따라 주님께로 나왔다는 것을 보여 주시옵소서.
제 눈물이 제게 무지개를 만들었다는 것을 제게 보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가시에 대해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회개하고
앞으로 그 가시의 가치를 깨닫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장미도 우리에게 은혜가 되게 하시지만
가시도 은혜가 되게 하신다.
가시 때문에 우리가 더 겸손하게 된다.
가시 때문에 주께로 더 나가게 된다.
가시 때문에 ‘연단된 인격’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내게 안겨 준다.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가게 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가시가 변하여 우리의 무지개가 되는 것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시 103:2)
▲왜 하필 납니까?
그레시야 번햄은 1년 이상 모슬렘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되어 고통당했다.
특히 자기 눈앞에서 남편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는 고통이 있었다.
그녀는 구조되어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질문 받았다.
그 중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하필 납니까?”라고 불평해보지 않았느냐는 것.
우리 역시 “왜 하필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해 본다.
그 질문에 대해 그레시야 번햄은 이렇게 답변했다;
예 맞습니다.
저도 ‘왜 하필 납니까?’라는 질문을 인질로 잡혀있던 1년 동안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하필 납니까?’라는 질문을 조금 다른 각도로 던져보았습니다.
왜 하필 하나님, 저를 미국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왜 하필 저를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까?
왜 하필 제가 하나님 은혜로 건강한 자녀들을 얻게 하셨습니까?
지금도 세계는 오두막 집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하필 제게 크고 편안한 집에 살게 하셨습니까?
지금도 세계는 직장이 없어서 쩔쩔 매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하필 제게 직업을 선택해서 살 수 있게 하셨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자신이 당하는 고통은 조금 밖에 안 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은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왜 하필 납니까?’를 고통에 몸서리치며 하나님께 하소연하는가?
아니면 ‘왜 하필 납니까?’를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며 감격하는가?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나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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