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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우리가 찾는 예수와 우리가 찾은 예수 2683

LNCK 2010. 10. 9. 22:56

◈우리가 찾는 예수 우리가 찾은 예수는 다른 모습               눅2:40~52                  출처보기



▶도입 일화

어떤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막상 만나서 보면, 내 기대감에 너무 어긋난, 그의 전혀 생소한 모습 때문에,

내가 적지 않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혹시 그런 경험 해 보셨습니까?


송 장로님께서 이러한 경험을 하셨던 듯합니다.

북한에 계신 생면부지의 부친을 만나시기 위해,

오랫동안 생존 여부를 찾고 그 날을 기다렸다가,

정작 만나시고 난 뒤에, 상당히 실망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장로님께서 생각하였던 아버님과, 만난 후에 드러난 아버님의 모습은

철저한 북한 공산당 간부로서 철저히 이데올로기에 물들여 있어서 너무나 차이가 났습니다...


본문에서, 모친 마리아가 그런 생소한 느낌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줄거리

본문은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잃었다가, 다시 만난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이전에는 예수가 아기 예수로 소개되고 있지만,

본문에 예수는 이제 성인(12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아기 예수와 성인이 된 예수의 모습에는

긴장감(뭔가 다른 모습)이 흐르고 있음을, 누가는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자, 이제 누가가 묘사하고 있는 장면으로 몰입(沒入)하여 봅시다.


예수님의 부모는 매우 경건하여,

매년 유월절이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하였습니다.  :41

그런데 이번 경우는 유별나게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12살이 되어서, 성인이 된 다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주1)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하루 지나고 확인을 해보니, 예수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당시에 일행이 무리caravan를 지어 다녔으므로,                       :44

아마 일행 중에 있을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허겁지겁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유월절이라는 큰 명절에 원근각처에서 몰려온 순례객들로

예루살렘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혼잡한 도시에서, 겨우 12살 밖에 안 된 시골뜨기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찔한 순간이 아닙니까?

혹시 강도를 만났거나, 아니면 군인들에게 붙들려 간 것은 아닐까요?

무려 사흘 동안이나, 아들을 찾고 헤매는 어미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46


▶우리도 예수를 찾아 헤맬 때가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예수를 잘 모시고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배 시간에, 기도 시간에, 이 모임 저 모임에 예수를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득 ‘내가 지금 예수를 잃어버리고 있구나’ 하고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고,

내 삶은 메마르고 공허해 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과연 지금 어디 계시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환란을 당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면 바쁜 중에 예수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잃어버렸으면 찾으십시오. 즉시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찾을 것입니까? 기도를 하든지, 금식을 하든지,

성도의 교제를 하든지, 아니면 고행을 하든지,

아무튼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예수를 찾자’가 이 설교의 포커스는 아닙니다...)


▶드디어 찾았는데, 보니까 ‘전혀 다른 예수’

그런데 마침내 성전에서 아들을 찾았습니다.

마리아는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 예수의 대답이 (어쩌면) 뜻밖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

라고 도리어 엄마를 꾸짖는 것이 아닙니까? 주2)


무슨 이 따위 아들이 있습니까?

마리아는 자신이 예상한 예수가 아닌 전혀 다른 예수를 만나고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제 성인이 되어 성숙했다고 생각한 예수와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로 성장한 예수는 전혀 다른 예수였습니다.


   그는 지금 당대의 랍비들과 더불어 맞장기를 뜨고 있습니다.

   랍비들과 더불어 율법에 관하여 설문설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이때까지 배운 바 율법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고

   당시 랍비들과 대화를 하고 있을 정도로 예수는 성장하였습니다.


   이제껏 사흘 동안이나, 마리아가 애타게 찾은 예수는

   자신의 치마폭에 싸여서 자란 예수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영향력이 먹혀 들어가는 예수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를 만나고 보니, 그 동안 내가 알던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예수도 마찬가집니다.  ←이 설교의 포커스

이 대목, 바로 예수가 도리어 부모를 나무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이제껏 우리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혹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예수와 동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리아와 요셉이 그렇게 하였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교회에 올 때에, 여행을 떠날 때에,

사업을 하러 갈 때에, 직장에 갈 때에, 학교에 갈 때에,

당연히 예수님이 나와 함께 동행 하신다고 여깁니다.

(만약 동행한다고 못 느끼면,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의 모친처럼,

사흘을 헤매더라도, 열심히 잃어버린 예수를 내가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찾은 예수는,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하는

엉뚱한 예수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시 만나 예수가

우리가 예상하지도 못한 말을 하시는 분임을..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기대했던 것들(무조건 내 기도응답, 내 소원성취)은.. 거의 안 주시고,

내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내게 요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저런 불협화음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예수를, 그동안 너무 어리게 보아왔기(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인으로 훌쩍 커버린 예수를

내 어린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면이.. 사실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누가는, 본문에서, 이제부터 보통 사람들의 기대치를 넘어선,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으로 자란 예수의 모습을 보여 줄 텐데,

그 분은 바로 엉뚱한 예수입니다. 당대 사람들의 상식과 기대치를 뛰어넘는,

우리의 안목과 인식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어쩌면 부담이 되는 예수입니다.

 

누가가 이 본문을,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한 이유는,

앞으로 등장할 예수는,

보통 사람의 기대치와 전혀 다른 예수임을.. 어쩌면 누가복음 전체의 서론 격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해법 제시: 마음에 두니라!  but his mother kept all these sayings in her heart. 2:51 

다시 찾은 예수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섭섭하게 만듭니다.

그런 경우를 위해서 누가는 모델 역할로 마리아를 준비하여 두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말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였다고 ‘나와는 맞지 않아!’하고 포기하고 내팽개치지 않고,

‘마음에 두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영어로 pondering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이리저리 생각하며 지켜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해가 미치지 못할 때, 마리아를 본받으십시오.


아이를 잃고 애써 찾았지만, 엉뚱한 소리를 들은 어미가 보여준 모습,

마음에 두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지금 당장은, 예수가 내게 전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런 회의는 어쩌면 10~30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와 성경을 부분적으로 믿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모친 마리아처럼 마음에 두고 생각할 때,

내 믿음이 그 수준에 오르면,

예수님의 말씀, 방식, 요구, 기도응답이 진리이며, 가장 좋은 것임을

내가 반드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보다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 증언에 의하면.. 반드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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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유대 사회에서 성인식(Bar Mitzvah: 율법의 아이)은 각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로 성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엄마의 품에 의존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고대 농촌사회에서 남자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의 여자들의 세계에서 보냅니다.

따라서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평생 매우 강하게 감정적으로 결합되어 지내게 됩니다.


남자아이에게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이러한 모성애적인 관계와의 연줄을 끊는,

나아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종종 고통스럽고 어려우며 긴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 나이가 되면 엄마로부터 독립하여 평생 자신의 직업,

즉 소명을 찾아서 혹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어른으로 인정을 받음은 ‘율법의 아이 Bar Mitzvah’로 인정을 받으며,

율법이 정한 규례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엄마의 품에서 율법을 주야로 공부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가정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자식으로 성장하였음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나이를 기념합니다.

따라서 유대사회에서 성인식은 친구와 친지들을 초청하여

매우 거창하게 파티를 열고 기념 축하합니다.



주2) 눅2:49절의 번역차이

개역과 일부 영어성경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라고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원문성경에는 ‘집’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아버지께 있어야 할 줄 모르셨습니까?’)


번역자들은, 예수가 지금 성전에 계시니까

내 아버지의 집, 즉 성전에 있는 줄을 몰랐습니까? 라고 대답한 것으로 의역합니다.


그러나 KJV성경은, 

‘지금 아버지의 일Father's business을 하기에 바쁜데, 왜 이렇게 찾아 오셨습니까?’

또 다른 성경은

‘지금 아버지의 일일father's affair을 하기에 바쁜데, 왜 이렇게 찾아 오셨습니까?’

라고 번역합니다.

어쨌든 예수님이 도리어 부모를 꾸짖고 게시는 것입니다.


사흘 동안 헤매며 찾은 아들이 이렇게 대답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섭섭하겠지요. 얼마나 섭섭하고 억울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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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일화

미국에서 열심히 목회하는 한 목회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열심히 목회해서 교회도 부흥하고, 교회도 평안했다.

오랫동안 미국 교회를 빌려 쓰다가 기도로 준비하여 건축을 하게 되었다.

온 교회가 하나 되어 기도하고, 깊은 마음의 헌신을 통해 교회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었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헌금도 했다. 은행 융자도 얻었다.

그런데 막판에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늘어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교인들은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해 온몸으로 뛰면서 헌신했다.

직접 건축 자재를 나르기도 하고, 밤에는 자재를 지키기 위해

남자들은 조를 짜서 번을 서기도 했다.


온 교회가 마음을 합해 몸으로 봉사하는데도, 건축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며칠 안으로 준비를 해야 하는 돈이 52만불(약 6억) 정도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은행 융자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온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했다. 목사님도 금식하면서 몸부림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앞으로 보름 안으로 52만불이 준비가 안 되면

교회 건축 마무리할 수도 없고, 부도가 나서 교회는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교인들과 온 몸으로 뛰고 있는 것 하나님도 아시잖아요.

어디 돈 빌릴 수 있는 은행도 없는 것 하나님도 아시잖아요…”


목사님의 몸부림에 가까운 기도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내 사랑하는 종아, 내가 원하는 것은 큰 건물이나 화려한 교회당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다.

너는 52만불을 원하고, 큰 교회당을 원하지만, 나는 너를 원한다.”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하고 있느냐,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what to do”를 원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늘 무엇을 행하는 것에 더 큰 마음을 두고 산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했느냐(what to do)보다는

어떠한 존재가 되었느냐(what to be)를 더 원하신다.                                                   영적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