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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니까 날아오른다

LNCK 2010. 11. 15. 17:40

 

◈바람이 부니까 날아오른다        사40:27~31             출처보기

                                                                        

언젠가 메뚜기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메뚜기는 날개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날개가 너무 작고 뻣뻣하기 때문에

잘 날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메뚜기의 몸통도 공기 역학적으로 볼 때 날기에 적합한 모양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메뚜기가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놀라운 점프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탄력성 있는 풀잎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하늘로 오르면,

바람을 타고 수십~ 수백, 때로는 수천 킬로미터까지 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메뚜기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드림 팀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 요셉, 다윗, 다니엘은

각자 인생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은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즉 그들의 환경이나 배경, 배움 같은 것은

성공을 보장하거나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인생의 어떤 시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세찬 바람이 불어왔고,

그들은 (시련의) 발판을 삼아 힘찬 도약을 할 수 있었으며,

그 세찬 바람을 타고..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가진 재능이나 능력, 환경, 배움 등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은혜의 바람이 불어온 시기,

삶의 도약을 이룬 시기는 언제였을까요?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던 때가, 도약의 시기였습니다.

 

요셉은 왕궁 감옥의 죄수로 있었던 때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한 도약의 시기였습니다.

 

양치기였던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이 도약의 시기였고,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갔을 때, 왕이 꾼 꿈을 해석하지 못하면

죽을 운명이었던 때에.. 바로 도약의 시기를 맞았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도 메뚜기와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가방 끈의 길이, 배경, 재능, 물질의 소유 정도가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기에 부족해도,

 

하나님의 은혜의 바람이 불어올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힘껏 도약할 수 있다면,

우리도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처럼 놀라운 성취를 이루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도약을 위한 발판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브라함에게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희생과 포기가 발판이었습니다.

이삭 빼고는 뭐든지 아낌없이 다 바치겠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두려워하는 그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바쳤을 것입니다. 그 포기가 발판이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이라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결코 자포자기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 감옥의 성실이 발판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죽기로 각오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에 따라 2%의 가능성에 도전했는데, 골리앗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골리앗보다 크시다는 그 ‘믿음’이 발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기도해서, 바벨론 왕의 꿈을 해석하는 것이 발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왕의 깊은 속마음까지도 다 아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단2:29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큰 문제가 도약의 발판이 된 것입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희생과 포기,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인생의 밑바닥이자 최악의 환경,

앞길을 가로막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원수,

급작스럽게 닥쳐 온 삶의 큰 위기들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도약의 발판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믿음의 사람들에게 도약의 발판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 인생을 흔들어 놓으시거나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의 문제와 위기를 올바른 자세로 받아들였을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가 믿음의 바람을 탈 수만 있다면,

삶의 문제와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놀라운 성취와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십시오.

큰 바람이 불어오면, 도리어 털썩 주저 앉기가 일쑤입니다.

 

몇 년 전 유럽 유학생 수련회에 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이 단락 펀 글)

유럽에 가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얼마나 복 받은 학생들입니까?

그러나 겉보기만 그렇지, 다들 하나같이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환경도 아니었고, (유럽처럼 아름다운 환경이 또 있나요?)

학업도 아니었고, (유럽의 대학은, 그래도 우수한 대학들이잖아요)

재정도 아니었습니다. (유럽으로 유학갈 정도면, 그래도 중상류층입니다.)

마음의 상처,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강사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 중,

[소외감, 열등감, 쉽게 포기, 좌절감, 죽고 싶은 마음]

이 5가지 중에, 3가지 이상인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했을 때,

거기에 모인 유학생들이 거의 다 손을 들었습니다.

 

유학을 갈 때는, 자신도 주위에서도 기대가 컸었는데,

막상 유학생활을 해 보니, 거기도 천국이 아닌 것입니다.

열등감도 크고, 외로움과, 인간관계의 상처로 인한 어려움.

마음에 상처를 잔뜩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금방 우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기도를 할 때도 처음에는 기도 소리가 없었습니다.

벽을 대하듯이 답답하고 메말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었고

나중에는 통곡하였습니다.

 

유학을 떠났다고, ‘바람’을 탑니까?

결혼을 했다고, ‘신바람’이 나는가요?

학위를 받았다고, ‘날아갈 것’ 같습니까? (2주간 정도는 좋겠죠) 

아닙니다.

 

우리는 주를 앙모하는 (간절히 바라는) 자가 되어,

독수리같이, 또는 메뚜기같이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힘은,

벼랑 끝에 주어졌을 때.. 비로소 발휘된다는 것이..

이것이 신앙의 딜레마요, 아이러니 입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다니엘도..

그런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았더라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학생들 같은 위기와 외로움과 괴로움이 찾아올 때,

더욱 힘써 주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 위기의 세찬 바람이.. 오히려 타고 나르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누가 그랬냐고요?

위에서 말한 아브라함, 요셉, 다윗,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그런 '세찬 바람'이 없었더라면..

보통 사람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약할 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아브라함은 담대히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억울한 모함에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다윗과 다니엘은 자신을 해하려고 하고 다들 떨고만 있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행동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평소에 아주 작은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했고,

늘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에 위기와 고난이 찾아왔을 때

오히려 그것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날 수 있음을 믿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이라는 절대 한계 속으로 당당히 발걸음을 옮기셨고,

그 죽음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부활 생명으로 힘차게 날아오르셨으며,

그것은 온 인류의 구원이라는 놀라운 성취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날아오를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가 가진 날개가 작고 뻣뻣해도,

내 몸이 공기 역학적으로 부적합한 모습을 가졌어도

하나님의 은혜의 (환란의)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는 멋지게 날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평소에 신앙생활 잘 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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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 야곱의 성공은, 거부巨富가 아니라 얍복강

하나님은 새 땅에서 야곱을 성공케 하셨습니다.

비록 일찍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야곱은 하란에서 20년을 살면서 크게 성공합니다.

 

야곱의 진짜 성공은, 하란에서 20년 만에 거부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거부가 돼서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

얍복강 가에서 있었던 하나님과의 씨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완결이었던 겁니다.

 

에서가 그의 가족을 죽이려고 군사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위협 앞에서는, 재산도.. 가족도..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 밤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씨름에 져 주셨습니다.

 

그제야 야곱은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절름발이가 된 채

다시 거듭난 영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이제 그는 성령에 강력하게 지배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야곱의 하란의 성공’은 똑같이 올 것입니다.

이 성공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처럼 열심히 일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야곱에게 있었던 얍복강의 씨름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그 씨름이 없었다면, 야곱은 형 에서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20년 노력은 그저 허무한 신기루 같았을 것입니다.

 

얍복강 가에서의 씨름이란 게 뭘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너지고 항복하고

그 분께 내 삶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절름발이로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씨름은 기필코 통과해야만 하는 필수 과정입니다.

만약 이 성공이 없으면 여러분의 성공은 절반의 성공,

아니 10%의 성공이라고도 부를 수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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