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우리를 열매 맺게 합니다. 롬7:1~6 10.02.21.설교스크랩
◑서론 :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
▶롬1:16~17절은,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거 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은
-복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의 큰 주제는
-우리 영혼을 구원시키는 복음의 능력과,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변화 : 본문 롬7:4~5절에는 ‘열매 맺는다’고 표현했는데, 설교자는 ‘변화’라고 썼음. 같은 뜻임.
▶비록 우리 가운데 죄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덮어지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믿음으로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죄가 없어지고, 행위가 의로워져야 구원을 받는다’는
유대인의 구원관과는 전혀 반대인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1)’라고 말합니다.
이런 바울의 구원관은 당연히 유대인들의 반발을 가져 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가 전한 복음을 비꼬면서 이렇게 조롱합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면, 죄를 더 많이 지으면 될 것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 말들을 이렇게 인용해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롬6:1)’
유대인들은 복음이 오히려 사람을 타락하게 하고
죄를 짓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롬6:2)’고 말합니다.
헬라어로 말하면 ‘메 게노이토’라는 말입니다.
이 문구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구로서 강력한 부정의 의미입니다.
한글어로 더 정확하게 번역을 한다면 앞에 ‘결코’라는 말을 넣으면 될 것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또는 ‘하나님께서 금하셨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결코 더 죄 가운데로 들어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게 하고,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사람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고,
또한 계속해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로마서를 묵상하면서
마음 깊숙이 새겨야 할 것이 바로 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비록 우리가 유대인들과 똑같이 복음을 비난하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하찮케 생각하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복음이 나를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에 대해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까?
오늘 이 부분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본문 해설
▶본문에 앞서 롬6장에는 ‘왜 율법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본문 롬7장에서는 ‘왜 율법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는가?’에 대한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들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에는 확신이 있지만,
율법으로는 사람이 변화 받을 수 없다는 것에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이야기하는 핵심은
율법은 사람을 구원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복음은, 사람을 구원시키고, 또한 변화까지 시킵니다.)
▶7:1절 율법과 결혼한 운명인 자연인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결혼한 남자의 아내 주관을 의미?)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1
바울은 먼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이 관계를 율법과 결혼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관하다는 말은 헬라어의 ‘퀴리류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왕이 백성들을 통치하거나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결혼이라는 개념은 동등한 남녀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여성이 남성의 지배를 받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성을 파트너로 보기보다는
소유물이나 재물로 보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남성으로 보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여성으로 보아서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은, 율법과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율법과 결혼한 상태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모든 인간 안에는 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확장을 막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에 율법을 주셨습니다.
중생하지 않는 인간은 그 안의 강한 죄성을 가지기에
그 강한 죄성을 억누를 더 강한 것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간염과 같은 병이 있는 사람의 치료하기 위해
강한 약품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강한 약품은 사람 안에 있는 질병을 변화(치료)시키기보다는
그것이 확장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이 이와 같이 인간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죄의 확장을 막는 역할만을 합니다.
그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다가 한 가지라도 어기면
모든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약2:10
예를 들어 우리가 교통법규를 매 번 지키다가 한 번 어긴 것이
경찰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전에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이번 한 번만 어겼다!’고
아무리 항변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긴 것이 법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 중에 율법으로 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결국 아담의 원죄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율법과 결혼한 우리들은,
계속해서 율법의 정죄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율법은 앞에서 이야기한, 변화받기 전의 남편처럼
여러분들을 계속해서 다그칠 것입니다.
‘너 왜 예배 안 드리냐?’ ‘왜 성경책 매일 안 읽냐?’
‘너 왜 새벽예배 매일 안 드리냐?’ ‘너 왜 헌금을 조금만 드리냐?’
율법으로 우리는 매일 정죄를 당합니다.
나만이 정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나는 예배를 드리는데 너는 왜 예배를 안드리냐?’
‘나는 이렇게 사는데 너는 왜 이렇게 사느냐?’
그러기에 율법이 있는 곳에는 정죄와 판단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감시자가 되어 사람들의 눈치만 보는 것입니다.
은혜와 사랑 대신 규율과 통치만이 있는 것입니다.
'예화'속의 (맨 아래에 있음)의 아내처럼 주1)
남편의 눈치를 보고,
남편이 큰 소리만 해도 심장이 떨리며 조마조마 하며 살게 됩니다.
남편을 사랑해서 남편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무서워서 그 말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남편을 두려워하는데 무슨 사랑이 있겠습니까?
그 안에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율법은 사람을 강퍅하게 만들고, 사람을 메마르게 만듭니다.
가정의 규율이 꽉 잡혀 있는 집을 보십시오,
겉으로 보기에는 질서가 있고, 집 안에 규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랑이 없습니다. 남을 용서해주는 사랑이 없습니다. 주2)
▶2~3절, 그리스도와의 결혼 생활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메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그에게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2~3
이렇게 율법과의 결혼생활을 하던 우리는
복음을 통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율법과의 결혼 관계가 끝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면 음부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또한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후에 결혼하는 것은 아무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6장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게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6:3)”
결국 우리는 육신을 근거로 율법과 결혼했던
나는 이제 죽고 그리스도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이 결혼에 대해서 나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으로서 율법과의 결혼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신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어떻게 대합니까?
옛 남편인 율법이 우리를 대하는 방법이 정죄와 억압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하는 방식은 은혜라는 방식입니다.
은혜를 허물을 감싸주고, 죄를 덮어 줍니다.
그 분이 먼저 십자가를 지시고, 먼저 희생하시고,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내 연약함 때문에 그 분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와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우리는 지난해에 로마서의 설교를 통해
복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거지에게 왕의 옷을 입혀 주는 예화’ (다음 호에 예정)
를 이야기 해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덮어 주십니다.
내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사랑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결혼생활입니다.
나는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덮임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의 삶의 일주일을 몰카 동영상으로 촬영을 해서
주일예배 때 방영한다면, 과연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분이 누가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여기서 설교하는 저 역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예배드릴 수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의 거룩한 희생은
우리의 어떤 끔찍한 죄도 덮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치 거지에게 왕의 옷을 입혀 주듯이 내 죄를 덮어줍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덮어 주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율법에서 어린양의 피는 단순히 순간 적인 죄를 대신해 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는 우리의 심령 가운데 흘러서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시킵니다.
이 부분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3-1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역사로 본질적으로) 변화시켜
이제는 타인의 지적과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그러기에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복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 섬김의 모양과 성격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4절,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게 (변화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사람은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열매가 있게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이야기 하는 율법과 복음의 커다란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은 비록 그 당시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으나, 열매가 없습니다.
반대로 복음은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열매를 맺게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 영혼을 구원받게 함과 동시에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반드시 생기게 합니다. 그 결과물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열매인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결혼한 이유는
우리의 영혼 구원과 함께 우리 삶의 변화를 가져 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열매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바울은 이 열매를 은연중에 자녀(열매)와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결혼의 목적 중의 하나는 자녀를 낳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목적은 자녀를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열매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의 변화입니다.
우리 삶에서 겉모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내 삶이 변화를 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5절, 반면 율법은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롬7:5)”
바울시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율법을 지키면 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규칙이나 법칙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오히려 율법을 지킴으로써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오히려 악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위 밑줄)이 로마서의 해석 중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지난 회 '죄가 율법을 이용한다' (클릭) 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이 악한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은
율법이 죄를 이기거나, 사람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아십니까?
율법조차도 내 안에 들어오면 나를 합리화하고, 나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복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열매 맺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이야기 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합니다.
▶6절, 율법으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서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바울은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확신 있게 말합니다.
오직 복음의 은혜로만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끝맺으면서
여러분! 오늘 바울이 이야기 하는 로마서의 본문이 얼마나 위험한 본문입니까?
만약 이 본문을 당시 유대인들이 읽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 같습니까?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바울을 죽이지 못해 안달을 했는지를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그것(율법)이 사람을 구원할 수도 없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복음만이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이란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치욕의 포로생활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귀환한 이후에는 율법을 생명같이 지켰습니다.
이 율법만이 우리를 지켜주고, 구원해 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율법을 비판하는 사람은 유대인의 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이 생명같이 여겼던 그 방법이
우리를 구원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들에게는 어떤 아픔이 있습니까? 어떤 과거의 삶이 있습니까?
그래서 이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셨습니까?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재태크를 합니다.
배우지 못해 서러움을 받은 사람은 교육만이 가정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교회에서
부족한 것을 이야기하면 그것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가정과 교회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을 살리고, 우리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은혜의 복음’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 죄를 덮어 주는 은혜만이,
(이게 지식적으로 아무 감동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감동을 줍니다.)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를 변화시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습니다.
이 확신과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 우리가 다시금 복음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붙듭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는 것이 복음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가정을 변화시키고,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이 복음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은혜의 복음만이 우리를 죄성을 깨뜨리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복음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은혜 앞으로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 가운데 차고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메마른 우리들의 심령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다시금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주간 우리 삶에 이 은혜가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편집자의 변辯
A : 위 설교문은 율법이 갖는 역기능, 율법의 위험성에 대해 잘 설명했습니다.
맞습니다. 율법은 반드시 그런 역기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무조건 나쁜 것, 100% 위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일면만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몇 구절 뒤에 롬7:12절에서 ‘율법도 거룩하고 선하다’고 했습니다.
선한 율법이 마치 ‘강도의 손에 쥐어진 칼처럼’ 잘못 사용되어진 것이죠.
물론 자연스럽게 잘못 사용되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 설교문은
‘복음으로 선한 열매를 맺는다’가 핵심이요, 초점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그 이유는, ‘복음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B : 그래서 복음으로 내면이 변화된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자원해서 그 법을 사랑하고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도덕적 완벽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신약성경의 전반적인 흐름입니다. *관련글/ 구약과 연결해서 보는 바울의 믿음론
위 설교문은 본문 롬7:1~6절에 의거, A부분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B부분을 고려하시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평소에 B 부분을 강조하고,
A 부분을 많이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로마서를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편집자
...................................
주1) ▲도입 예화 : 사람은 무엇으로 변화되는가?
한 교회에서 청년시절부터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결혼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연애시절 서로에 대해 신앙의 존경감과 호감을 가지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성격이 영 달랐습니다.
남편은 매우 꼼꼼한 성격이었습니다.
매일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테이프로 붙어 내었습니다.
창틀이나 선반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면 아내에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반면 아내는 털털한 성격이었습니다.
가끔 접시를 깨기도 하고, 옷을 아무 곳에나 벗어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내에게 계속해서 잔소리를 했습니다.
아내 역시 남편에게 남자가 대범하지 못하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둘의 사이는 점점 더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가정의 위기가 더해지자 남자가 어쩔 수 없이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목사님은
‘남편 집사님! 이제부터는 아내가 실수를 할 때 아내의 실수를 탓하지 말고,
그 아내를 위로해 주세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죄를 덮어 주고, 구속해 주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은 이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의 자신의 가정생활을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내를 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깨었습니다.
접시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남편이 방에서 뛰어 나왔습니다.
아내는 순간 긴장이 되었습니다. 또 남편이 얼마나 나에게 화를 낼까?
그런데 남편이 깨진 접시는 보지도 않고 아내의 손을 잡고
‘어디 다친 데가 없어?’라며 아내의 몸을 살피는 것입니다.
순간 아내는 그동안의 서러움과 남편의 배려해 감동을 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반복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이제 자신이 실수하면
혹시나 남편이 놀라지 않을까봐 더 조심하게 되었고,
서로의 갈등이 치유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과정을 통해 남편은,
사람이 변화가 되는 것이 지적이나 야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덮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2) 관련 예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심한 분쟁으로 인해 교회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교회 임직자들이 모여서
왜 우리 교회가 이런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교회의 내규가 약해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교회 임직자들이 몇 달을 밤을 새며 교회에 완벽한 내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규에 근거에 담임목사님을 초빙을 했습니다.
사방의 교회에서 건강한 교회가 탄생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규에 비추어 교회를 운영하다보니 모든 것이 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의 행동도, 성도들의 행동도,
결국 교회 안에 불신과 다툼이 생기고 지금은 오히려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법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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