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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셔도 안 받는다 2769

LNCK 2010. 12. 1. 12:16

 

안 주시는 게 아니라, 주셔도 안 받는다                    요5:1~14          10.10.31.설교일부녹취



◑1. 주님의 은혜와 사람의 수용.. 둘 다 필요하다.


38년된 병자에게 예수님이 다가가셔서 물으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가 38년이나 병을 앓았으니, 낫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예수님은 당연한 것을 물어보실 리 없는데... 


38년이라는 세월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낫기를 원하게 만든 게 아니고,

낫기를 포기하게 만들었을 확률이 더 높다.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그의 생각이 ‘내가 낫는다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동안에, 병을 앓은 것이, 이 사람에게

‘나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고,

‘나는 이제는 더 이상 나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먼저 물어보신 것이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이 사람처럼, 낫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다 나을 수 있다는 얘긴가?  그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의 정서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무엇을 간절히 바라면, 이룰 수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월드컵 할 때도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적이 있다.


이 단락의 논지를 말씀드리면,

주님도 원하시고, 사람도 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 역사가 일어난다.

 

이 병자가 낫기를 소원하는 것만으로는, 역사가 일어날 수 없고,

예수님이 원하셔야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어야 했다. 하나님의 의지가 있고,

사람의 믿음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그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도 그것을 믿어야 했다.

그럴 때 비로소 그 약속대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2가지가 갖춰져야 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둘째는 성도의 믿음과 순종의 발걸음이 갖춰져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거야 뻔한 소리지!’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런데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주님이 원하셔도, 정작 사람이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 그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2. 주님이 주시기 원하셔도, 성도가 거부할 수 있다.


명확하게 증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10개라고 가정할 때,

10개를 다 받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많이 받는 사람이 6~7개가 아닐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1~2개를 받아서 사용한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제가 대체적으로 보니까 그렇다.)


하나님께서 10개를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데,

우리가 (원치 않아서) 못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 뉴스에 보니까, 프랑스에서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노조가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10대 청소년들까지 반대하고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의 주장은 이랬다.

정부가 은퇴 나이를 65세에서 67세로 늘이면,

그들은 ‘우리는 인생을 즐기고 싶다. 그렇게 늦게 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모두 조기퇴직을 해서 난리인데..

프랑스에서는 정부에서 더 일할 수 있게 해 준다는데,

국민들 중에 다수가 그것을 반대하고, 조기 퇴직하고 빨리 연금이나 받겠다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주셔도, 사람이 싫다고 거부할 수도 있다는 예를 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내게 일을 맡기신다는 데,

자기가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원치 않는다. 힘들다. 나는 부담스럽다’고들 말한다.


예수님이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시고자 하더라도

그 병자가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병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싫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다.


‘내가 나으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싫습니다.

내가 나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싫습니다.

나는 돌아갈 데가 없습니다. 내 가족도 나를 버렸고, 친구도 나를 버렸고,

차라리 나는 이곳에서 여기 있는 다른 병자들과 사는 것이 익숙합니다.

주님의 선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제발!’


그는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예수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미국에 유명한 여성부흥사였던 케서린 쿨만,

그 분에게는 신유의 특별한 은사가 있었다.

반세기 전에 미국에서 아주 잘 알려진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가 생전에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first choice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선택

하나님은 처음에 남자를 선택하셨을 것이다.

(반세기 전만 해도, 여성사역자는 힘들었다.

더구나 이혼한 사람은, 엄격한 미국의 청교도 사회에서, 사역자로서는 큰 장애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 일을 감당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하나님이 처음에 (캐서린 쿨만 대신에) 다른 사람을 고르셨다가..

그런데 그 사람이 그것을 감당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first choice 다 제쳐놓고 찾다보니까,

마지막에 맨 꼴찌로, 이혼한 여자인 캐서린 쿨만에게까지 차례가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제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것을 다 받지 못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실 것이다.


사람들은 ‘주님이 내게 이것도 저것도 안 주신다!’라고 불평하지만,

주님이 안 주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작 주님이 주시려고 해도

사람이 안 받으려고 하는데.. 확률상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받음으로써 지불해야 될 대가를 원치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축복이든, 성공이든,

명예이든, 능력이든..

높은 자리이든.. 섬기는 자리이든..

말씀의 은사이든.. 성령의 은사이든..


어떤 일이든 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일에는,

거기에 따르는 치러야할 대가가 반드시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니까 대가가 있다.

이제는 그 백성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목사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목사가 되고 나니까 지불해야 될 대가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갖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은사를 받으면, 그것을 섬기는 일에 제대로 사용해야 될 대가가 있다.


그런데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그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없기 때문에,

주님이 은혜/은사를 거절한다. 받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예수 믿고 싶다. 나는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은혜, 은사를 안 주셔서, 내가 지금 요 모양 요 꼴이다’

라고 불평하면 안 된다.


반대로 하나님이 내게 10개를 주셔도,

내가 대가 치르는 일이 두려워서 다 거절하고,

그저 편한 것 1~2개만 받아서 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본다.



◑3. 받은 것을 잘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원리는,

내가 원하고 하나님이 주셔서.. 내가 그것을 받은 후에

내가 감당을 못해서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38년된 병자가 나은 다음에, 예수님이 다시 그 사람을 만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14


무슨 뜻인가? 지금은 나았지만, 만일 죄의 삶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이전보다 더 큰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받는 것도 어렵지만,

    받은 것을 잘 지키는 것은, 어쩌면 더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불평해서는 안 된다.

    ‘왜 안 주십니까, 왜 요것밖에 안 주시나요?, 왜 빨리 안 주시나요?’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적당하게 지으시고,

    악인도 그 악인을 쓰기에 적당한 때에 일으키신다.

    우리가 너무 빨리 성급하게 받으려 하다가는.. 받은 즉시 잃어버릴 수 있다.


▲마치는 말

그러므로 ‘주님이 아무 것도 내게 안 주신다’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받기를 원치 않거나 ◑1

-내가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위에서 다루지는 않았음)

-내가 대가 치르기 무서워서.. 받기를 거부하거나  ◑2

-내가 받아도 즉시 잃어버릴 수 있어서..  ◑3

-내가 받아서 잘못 쓸까봐, 사명 감당 못하고 버릴까봐.. 기다렸다가 주신다. (이 대목 다루지 않았음)


하나님은 내게 그 많은 은혜와 은사들을

적당히 알아서, 때에 맞추어 주시는 것이므로,

이런 문제로 하나님께 너무 시험 드시면 안 된다.                               ▣ 리더쉽, 목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