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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회개 2813

LNCK 2011. 1. 4. 11:21

 

◈다니엘의 회개               단9:7~11            2010.12.  설교스크랩, 정리


 

▶오늘 우리의 절실한 희망

옥한흠 목사님께서 2003년 사랑의교회에서 은퇴 인터뷰를 하실 때,

질문자 한 사람이 옥 목사님께 ‘한국교회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옥 목사님은 선뜻 자신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하셨다.


그러면서 희망적이라고 하신 말씀은

“그래도 의인 열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이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바라보시고, 주목하시는 그 의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그것이 오늘 위기에 처한 우리 공동체의 ‘가장 절실한 희망’이다.

그런 의인이 바로 다니엘이었는데..


◑다니엘의 회개


단9장은 <다니엘의 기도>인데, 별명은 <부흥의 기도>이다.

다니엘은 그 기도를 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단9:2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읽고서 깨달았다.

깨닫고 나서 그가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1.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이 중요하다.

성경을 읽을 때 생각thinking이 필요하지만,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은 결정적이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어 내려갈 때, 생각을 하면서, 개념을 갖고서 읽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빛을 환하게 비추실 때,

내 눈이 밝아지게 되고, 그러면서 성경 속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읽었던 그 익숙한 말씀도,

어느 날 성령이 빛을 비추실 때, 그 말씀이 굉장히 중요하고 심오한 말씀으로

내게 깨달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조명’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성령의 조명’이 누구에게 임하는가 하면,

갑자기 예기치 않은 때에 임하기도 하지만,

평소에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성경읽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임하신다.


성경읽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 또는 거의 안 하는 사람은,

성령 하나님께서 조명을 비추실 때, 그 조명을 내가 받을 수 없게 된다.

내가 성경을 덮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공동체에는, 다니엘처럼, 성경을 읽다가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그 공동체를 살리는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음성/뜻을 받아서, 공동체에 전달해 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주님은 마음을 다해/힘을 다해/뜻을 다해서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내가 전심으로 성경을 읽어서, 하나님께 말씀을 받고

     그 받은 말씀으로써 우리가 처한 공동체를 살리는.. 그런 역사가 지금 필요하다.

     그런데 그만큼 전심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지금 거의 고갈되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다니엘은 남달랐던 것이었다. 



▶2. 성령이 조명하시면, 성경을 읽다가, 죄를 깨닫고 집중적으로 회개하게 된다.

 

본문에서 다니엘은, 4번씩이나 반복해서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단9:7, 이는 그들이(우리 민족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9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1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범죄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지금 다니엘의 기도가, 정말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회개임을 뜻한다.


     성령의 조명이 내게 비춰질 때,

     성경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죄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요16:8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하게 된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죄를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성령의 조명’이 점점 사라지면서, 동시에 ‘신앙의 사변화’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기독교가 무능하게 되는 이유는, ‘신앙의 사변화’가 점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죄를 머릿속으로만(사변적으로) 해결/회개한다는 것이다.


죄의 심각성에 대한 통회자복이 없고,

회개를 하더라도.. ‘까짓 것 회개 하지 뭐’ 이런 식으로 회개한다.

죄의 심각성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통회자복도 없는 ‘회개의 사변화’일 뿐이다.


다니엘은 무너진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회개할 때,

위에서 보았듯이, 죄의 실체를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다. 4번이나 '회개합니다'고 반복해서 고백했다.

‘회개의 영’이 다니엘에게 강력하게 임했던 것이다.


다니엘에게 성령 하나님의 밝은 빛이 조명이 되어 비춰주시니

자기 민족 이스라엘의 죄가 너무 무겁고 심각하게 보였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 지금 우리 공동체를 살릴 사람은, 의인 10사람이다.

     다니엘 같이, 성경을 읽고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다니엘 같이, 성령의 조명으로, 회개의 영이 강력히 임한 사람이다.

     그런 10사람이 우리 공동체에 과연 존재하는가?

 


▶3. 다니엘이 깨달은,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변수 - “죄”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깨달았던 것은,

이 세계 역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 세계 역사가 변하고, 바꾸어지는 어떤 틀이 하나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죄’임을 깨달았다.


자기 백성들이 범죄할 때, 회개로 인도하시고,

또 안 되면 를 징계하여 포로로 보내기도 하시지만, 결국 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


다른 백성들이 범죄할 때도, 하나님은 회개로 인도하시지만,

안 되면 징계하시고, 결국 멸망시키신다. (결국 구원하지는 않으신다.)


어쨌든 ‘죄-회개-용서-회복과 구원’이

인류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어떤 잣대/틀/기준이라는 것이다.

다니엘이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리도 만약 다니엘처럼,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기도할 때,

     우리 개인도 다니엘처럼, 민족을 위해 간절히 애통하며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죄를 몰살시키고, 씻어주는 십자가의 능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처럼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게 된다.

     어떤 은혜와 선물보다 더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 ‘죄를 씻어주는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죄를 죽이는 십자가의 능력’을 발견했는가?

이것은 간절히 회개한 사람만이 발견하는 십자가의 능력이다.

'신앙의 사변화'에 속한 사람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능력이다.



▶4. 진정 회개한 사람은.. 주님께 대한 갈망이 생긴다.

그래서 이렇게 죄의 권능을 깨닫고, 동시에 십자가의 능력을 깨닫고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갈망이 생기느냐 하면, 거룩하신 주님께 대한 갈망이 생긴다.


단9: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다니엘이 기도로 간구한 것을 보시라. ‘주의 얼굴빛’이다.

이것은 ‘거룩하신 주님 자신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물질도 주시고, 승진도 주시고...

     이렇게 ‘나의 필요’를 위주로 간구하지만,

     다니엘이 주로 간구 한 것은, ‘주님 자신’이다.

     주님이 은혜의 얼굴빛을 비춰주시면.. 우리 공동체가 비로소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래 기도자의 모습이다. 이것이 의인의 기도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런 의인 10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부르짖어 기도해도

그 간구의 내용이 ‘복, 문제 해결, 사업 번창’ 이런 것들이 주종을 이루면..

그런 공동체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결국 멸망의 내리막 길을 걸을 것이다.


이런 ‘주님 자신을 구하는 기도’, 주님의 거룩함을 구하는 기도를 간절히 드리다 보면,

내 개인적 기도제목, 내 개인적 갈망은 다 잊어버리게 된다.

너무 중요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사소한 기도는 당연히 잊어버리게 되어 있다.


또한 하나님도, 다니엘에게 부어주셨던 은혜처럼,

그런 기도자에게 ‘그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은혜’를 부어 주신다.

그래서 그런 기도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성령이 그를 도와주신다.


이런 기도의 클라이맥스에 올라간 다니엘은, 이렇게 기도드린다.


단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이런 기도자가 있으면,

그는

자기 가정을 살리고, 자기 주위를 살리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살리고, 자기 민족을 살릴 것이다.

결코 자기 한 사람만 살지 않는다. 반드시 주위를 다 살리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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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3809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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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다니엘


단9:18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예를 들면, 법정과 재판정은 공의가 집행되는 곳이지만,

그 재판정에서 죄인이 당당하고 교만하게 구는 것과,

거기서 죄인이 울며 자비를 구하는 것은,

공의가 집행되는 곳이지만, 긍휼이 가미될 것이다.


다니엘은 지금,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인정하지만, 그러면서도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도 회개할 때, 이런 자세가 당연히 필요하다.                              ▣ 죄, 복된 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