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빌2:5~8 10.02.20.설교스크랩, 편집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성육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지위에 맞지 않는 대우를 받으면 견디기가 힘듭니다.
청년들이 처음 직장에 입사하면, 사소한 심부름부터 시작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섬김만을 받던 우리들에게는
이런 것은 매우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또한 내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였어도.. 내 경력에 맞지 않는 대우,
내 직급에 맞지 않는 보수 등에 대해.. 매우 힘들어 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본성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내 판단, 내 생각, 내 기준이 옳다고 여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이렇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내 판단은 옳고,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상대는 틀렸다’
는 식으로 쉽게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고치지 않는 한, 어쩌면 우리는, 지금부터 20년이 지나서, 40세가 넘어서도,
이 사회에서 여전히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아래 예수님의 삶의 태도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는 가정 하에, 사실이 그렇습니다.)
평소에 억한 심정이 많은 내 생각, 판단, 행동이 올바른가, 아닌가를.. 한 번 분별해 봅시다.
◑예수님의 낮아지심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통해
그 분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는지에 대해 함께 말씀을 배우겠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크게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으로 구별됩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예수님의 비하 Humiliation 와 승귀 Exaltation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는지를 보여 주며,
이를 통해 우리가 누리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이 설교에서는 낮아짐을 살펴봅니다.
높아짐은, 낮아지기만 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오늘 읽은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낮아지셔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으심의 전 과정을 이야기 합니다.
흔히 이 과정을 다섯 가지 과정으로 나눕니다.
‘성육신, 율법 아래 놓이심, 수난, 사망, 장사’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헬라어의 2가지 단어로 표현 됩니다.
하나는 ‘케노시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비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주의 주권적 통치자로서의 신적인 위엄을 포기하고
종의 형체를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는 ‘타페이노시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비하’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와 저주에 굴복하시고
수치스럽게 죽기까지 일생을 행동과 고난으로 순종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온 것은 이렇게 낮아지고, 결국에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과정은 단순히 예수님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과정이라고 말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배우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낮아지셨고,
우리들 역시 어떻게 낮아져야 할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적용
부부 불화의 본질적 원인은,
-자기를 비우지 않고 그저 대화로 해결하려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려는데 핵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비움(케노시스)이 되지 않으면.. 진정한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굴종이나 강제적 관계만 형성되겠지요.
자녀 불화의 본질적 원인도
-부모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려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기 비움은
-하나님을 포기하시고, 종으로 변신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자기를 비우면, 억울한 대우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당해 본 적이 없으면.. 지금 사랑의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그건 말뿐인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철저히 자기 부인, 자기 비움,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입니다.
나는 ‘말뿐인’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성육신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첫 번째 단계는 성육신이라는 것입니다.
성육신이란 ‘살을 가진 몸을 이루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 분의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분이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
그 자체가 그 분의 낮아지심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 자체가 낮아지신 것인데,
그 분은 우리의 육신 중에서도 천한 육신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은 목수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분이 우연히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가장 천하고 낮은 마구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갈릴리의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셔서,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권능의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은 조롱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나사렛 출신이라며 그를 놀렸습니다.
이 나사렛 출신은 평생 예수님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할 때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는 말로
그의 출신을 통해 그 분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이 땅에 살면서도 화려한 학력이나 경력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 분이 가졌던 경력이란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목수는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분은 항상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 분은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율법으로는 비난의 대상이던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분은 창기와 세리의 친구라는 비난의 별명까지 얻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목적, 낮아지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8:9”
이렇게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성육신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은혜를 누리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진리는 반드시 성육신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가 말/설교하면 변화되리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물론 말을 먼저 해야 하지만, 말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성육신incarnation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그 때 진리에 힘이 있습니다.
진리(말)로만 세상이 변화될 수 있었다면.. 주님이 세상에 직접 오실 필요 없으셨습니다.
대신에 선지자를 보내서, 얼마든지 말씀을 전파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육신하셔서,
말씀하신 진리를.. 몸소 행동으로 -삶과 죽음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성육신 적 삶에 지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노예 신분이었지만, 얼마든지 큰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성도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데는, '높은 지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 그룹 부회장까지 하신 분이, 퇴직 후 어느 호텔 매니저로 취업했습니다.
그 분은 그룹 부회장직에 있을 때보다, 호텔 말단직에 있으면서 더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왕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에 연연치 않고, 있는 처지에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러자 방송 출연을 많이 하게 되면서, 왕년 때 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위치/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처지에서라도 ‘감옥의 요셉 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육신 된 곳입니다.
오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는 이유는,
이런 성육신 적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기관적 교회 Institutional Church’가 아니라,
‘성육신적 교회 Incarnation Church’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는 말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그의 성육신을 묵상하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보게 됩니다. 이 시대는 치열한 경쟁 사회입니다.
이런 경쟁 사회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좋은 학력과 경력,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을 흔히 요사이 유행하는 말로 ‘스펙’이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스펙이란 무기와 갑옷 같은 것입니다.
이 스펙이 없으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스펙’은 우리의 삶을 위치를 결정해 줍니다.
스펙이 화려할수록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이 스펙을 쌓기 위해 달려갑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청년들도 이 스펙을 쌓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이 시간 내가 스펙을 쌓으려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예수님처럼 낮아지려는 마음보다는
세상에서 높아지고,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초라한 십자가보다는, 세상의 화려함에 내 눈이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쉽게 ‘십자가를 믿는다/사랑한다/따라간다’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가 낮아지는 것(비움)이며,
낮아지되 성육신 하는 (상대와 같은 처지까지 낮아지는 것) 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권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자기 삶을 통하여, 부활승천을 통하여 잘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 ‘능력’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든지, 낮은 자리에 처하든지..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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