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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비통함을 제게 주소서 P2 / David Wilkerson

LNCK 2011. 8. 16. 21:02

◈주여, 비통함을 제게 주소서 P2     암6:1~6     02.09.15.데이빗 윌크슨 목사님 설교 일부녹취

                                                                          *부제: 다가올 폭풍 속의 유일한 소망

 


*11분48초부터 P2 (아래 영상) 재생



▲편안한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들 중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지금 시각이, 최후 심판에 점점 더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정말 중요하게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은 정말 그런 점들을, 염려하고 계십니까?

그들이 죽어서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런 점들을, 전혀 염려하지 않고, 편안하게? 잘 지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심각한 잘못입니다.

여러분의 편안함은.. 주님의 은총이 아니라.. 영적 나태함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통함 없이, 걱정만 하는 (한심한) 사람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교회뿐만 아니라

정치도 전 세계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터넷과 TV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저 ‘요즘 돌아가는 세상이 너무 걱정스러워!’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 원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요즘 비통해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이런 상황가운데,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있기는 있지만, 매우 극소수입니다. 소수점 이하입니다.

이런 상황을 주님 앞에 가져가서,

금식하며 슬퍼하는 사람을, 지금 찾아볼 수 있습니까?

금식이 힘들면, 한밤중에 깨어나 기도하는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화 있을진저.. 취하여 먹고...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포도주를 마시며...

요셉(북왕국)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암6:1~6


히브리 원문을 보면,

그들이 북왕국의 폐허에 대해 비통해하며,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해, 고통하지도 않았고,

비통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웃기는 한담을 하면서 서로 낄낄거리고,

심지어는 즐겁게 함께 찬양하기도 했을 것이며,

먹고 교제하고, 서로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피폐해져가는 상황과 현실에 대해서는

그들은 전혀 울거나, 비통해하고, 기도하고,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며, 거부감을 나타내었습니다.


암6:1~6절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북이스라엘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마냥 즐거워만 하고, 비통해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또한 자녀들의 죄를 고백하는 경건한 성도들을,

지금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 일(비통함)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죄와 모든 동족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백했습니다.


이제 종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1:6~7


그는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죄를 범했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회개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파괴와 폐허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한 번도 ‘하나님, 왜 입니까?’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도록 허락하셨는가요?

왜 그렇게 극심한 모욕과 많은 살육을 허락하셨는가요?’


느헤미야는, 요즘 우리 미국인이 묻는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911후에 미국 크리스천 가운데, 이런 질문이 많았습니다.


▲비통함이 전혀 없는 현실을 보십시오.

911 직후에, 일부 목회자들은 TV와 라디오에 출연해서

‘911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큰 재앙을 당하고도,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니!’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911이 일어난 배경에는 백가지의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 한 가지인, 신앙적 관점에서 볼 때

‘911은, 하나님이 미국이 깨어나길 원하셔서 막지 않으신 것입니다.’


거기에 희생된 희생자들은,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고귀하게) 희생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궤계(911)를 얼마든지 막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막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의 궤계를 중지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미국에 대한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미국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민들이, 지옥 가운데서 영원히 잠들려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두 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우리에게, 또한 전세계에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재앙과 심판의 날은, 정말 도적같이 찾아오고, 반드시 닥친다고요!

그 예고편을 우리가 본 것입니다.


▲평소에 기도하던 느헤미야, 비통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스스로 질문해 봅니다.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터인데,

왜 유독 하나님은, 느헤미야에게만 비통한 심정을 주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타락함을 바라보는 당신의 비통한 심정을,

유독 느헤미야 한 사람과만, 나누기 원하셨던 건가요?


그것은 평소에 느헤미야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더불어, 나의 결단도 꼭 필요합니다.

제가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부르심에 대해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특별히 택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신이 감당하는, 자원하는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느헤미야처럼요.


하나님의 부르심과 본인의 응답이 같이 갑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대부분 응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응답 안 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습니다. 눅14:18~19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이곳 페르시아 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일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수산궁에 오래 머무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페르시아 황제의 비서실장(술관원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황궁에 더 오래 머물러야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일으키실 것을 확신합니다.’


대신에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것은 제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의 심장을 제게 주소서.’


여러분은, 비통함으로부터 멀어지고

수동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크리스천으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느헤미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처럼 부르짖으십시오.

‘오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모욕받고 있습니다.

대적은, 주님의 신실함의 증거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이 시대의 기도하는 성도이십니까?

정말 기도하는 성도는.. 비통함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 비통함에서, 여러분은 ‘일생의 중대결정 lifetime decision’을 내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 분의 심장을 열어서, 여러분께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장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당신의 교회의 상태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상태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자, 상태를 잘 보았느냐? 정말 비참하지 않느냐?’


이때 여러분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네가 주님의 부담을 담당하려 한다면..

네가 회복의 도구로 쓰임받기 원한다면..


여러분이, 자기 말고 다른 누군가가 여러분 가족을 위한

회복의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나는 너의 마음에 불을 주었다.

나는 너에게 나의 심장을 주었다.

나는 나의 비통함을 너에게 보여 주었다.

네가 그 비통함을 느끼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지난 50년 동안, 비통함 없이, 주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저는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Never!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Never!


저는 압니다.

설교가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령한 사람이 받은 계시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지 않습니다.


비통함 없이, 슬픈 마음으로 하는 금식 없이,

깨어진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기도 없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벽은 결코 재건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통함의 세례’ 없이 시도하는,            *‘위에서 부어주시는 비통함?’ 또는

그 어떤 것도,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통함 속에 푹 잠기는 것’


여러분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시작할 때,

여러분이 녹아지고 깨어지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

여러분이 주님과 마음을 나누게 될 때,   주님과 똑같은 마음을 품게 될 때

그제야 여러분은 비로소 비통함 anguish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이것은 폐허 상태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의 모태(시작 포인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고통의 굵은 베옷을 기꺼이 입는 종들만

하나님의 언약을, 이 시대에 이루어갈, 권위와 권리를 갖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언약”을 설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우리가 구원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교회(성도)는 구원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이론으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비통함)을 아는 사람만이, 언약을 성취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무조건 ‘언약’이, 여러분의 가족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비통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는 제 자녀들이 지옥에 가도록, 보고 있지 않겠습니다.

주님, 제 부모, 배우자가, 멸망 길을 가도록, 구경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비통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비통함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지,

그래서 가족과 이웃을 전도하는 것이지..

그저 하나님의 (구원)언약만 믿고, 비통함 없이 지내는 사람들에겐,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후략


*관련글/ 주여, 비통함을 제게 주소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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