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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으로 받으라

LNCK 2011. 8. 22. 13:26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1:19~21           01.09.02.설교스크랩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1:19-21

 

 

◑서론

 

▲성도는, 이미 말씀으로 태어난 존재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임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 야고보는 이미 약1:18절에서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난, 태어난 존재입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우리는 떡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본문의 주제 - 말씀을 듣는 자세!

그래서 본문 약1:19-21을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라>로 봅니다.

그저 <사람과 대화를 귀담아 들어라> 라기 보다는...

 

18절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에 이어

21절에도 ‘도(말씀)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고,

22절도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런 전체 문맥은, 19절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에서

‘듣기’란 단지 ‘사람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1차적 뜻입니다.

 

▲말씀의 무한한 능력

서양의 격언 가운데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Any fool can count the seeds in an apple, but only God can count apples in a seed

아무리 바보라도 사과 속에 있는 씨앗의 수는, 쉽게 셀 수가 있다.

그러나 씨앗 속에 있는 사과의 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세실 수 있다."

 

사람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시다는 뜻입니다.

사과를 쪼개봅니다. 그 속에 기껏해야 10개 이내의 씨앗이 들어있습니다.

어린 아이라도 쉽게 그 수를 셀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씨앗을 땅에 심습니다. 자라서 나무가 됩니다.

수백 개, 수천 개의 사과가 달립니다.

그것도 매년 그만큼 많은 사과가 달리게 됩니다.

 

또 거기에서 나오는 씨앗을 땅에 심으면 나무가 되고,

거기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과가 달리게 됩니다.

그 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세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과라고 하면 대구가 유명합니다. 대구의 근교는 과수원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구에 사과나무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 100년 전에 스코틀랜드의 선교사님 한 분이 대구로 파송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은 대구의 기후풍토가 자기 고향 스코틀랜드와 비슷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 뒤뜰에 사과나무 씨앗을 몇 개 심었습니다. 1884년 경입니다.

 

 

 

그는 얼마가지 않아서 대구 근처가 사과나무로 빽빽이 둘러싸일 것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때 그 분이 심었던 몇 개의 씨앗을 통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과가 열렸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과가 열릴 것인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내 수중에 있는 사과 몇 알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괴로워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가 당하는 화를, 복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가 잃어버린 사과씨앗(말씀)을 통해

(우리가 사실 잃어버린 것은, 사과이기 이전에, 사과씨앗입니다.)

엄청난 수의 축복과 열매를 안겨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1.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1:19~20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해 함과 같이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존재요, 영적 존재는 영의 양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1:18

그때부터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말씀을 늘 가까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이 소생하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 그것이 19절 말씀입니다. ↖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까?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용기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새 힘을 공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대신에 불평의 말, 세상적인 말, 부정적인 말은.. 말하기를 더디 하십시오.

 

야고보가 이렇게 권고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듣기는 더디 하고, 말하기는 속히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형통합니까?

그렇다면, 말씀의 씨앗을 많이 심은 결과입니다.

씨앗을 심지도 않았는데, 열매가 풍성할 수 없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삶의 방향을 정할 수가 있습니다.

 

악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말씀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내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서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주신 길이 괴롭다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여러분! 시험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입니다. 축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 시험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십니다.

그러니 힘들다고 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성내지 맙시다.

어떤 일에든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순결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21a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약1:21a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에 들어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먼저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이 화랑에 전시가 되었습니다.

때를 맞춰서 친구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화가는 친구들을 먼저 그림들 앞으로 인도하지 않고,

지하실로 그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음료수를 간단히 대접하고 난 뒤에 갑자기 불을 꺼버렸습니다.

지하실에 불을 꺼버렸으니까 얼마나 캄캄했겠습니까?

놀란 친구들을 향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10분 동안만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세."

그는 10분 뒤에 다시 불을 켰습니다.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인가?"

 

"왜 그런 줄 아나? 자네들은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보느라고 눈이 너무 타락했어.

그냥 그대로는 그림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네.

그러니 캄캄한 곳에서 우선 눈을 깨끗하게 씻고 난 뒤에야

내 그림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걸세."

 

음악가들도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정말 애호하는 음악이 있다면,

그 음악을 한 음, 한 음 짚어가면서 듣기 위해서

먼저 ‘귀를 깨끗이 한다’고 합니다.

 

다른 소리를 일절 듣지 않고, 먼저 귀를 조용히 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자기가 애호하는 음악을 듣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 속에 더러운 욕망들, 세상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 속에 있는 인간적인 더러운 욕심들을 깨끗하게 떨쳐버려야 합니다.

교만한 생각과 선입견 그리고 고정관념 등을 다 떨쳐버리고

어린 아이와 같이 깨끗한 마음이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 제대로 심겨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공회 앞에 섰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천사의 얼굴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공회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이 은혜를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를 치면서, 스데반을 성밖에서 돌로 때려죽였습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씨뿌리는 자가 밭에 나가서 씨를 뿌렸습니다.

길가에, 돌밭에,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앗들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진 씨앗들은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땅, 옥토가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 제대로 심겨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랍비가 자기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진리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일 가운데서도 우리는 쉽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단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진리는 저 길바닥에 있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입니까?"

 

랍비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 왜 세상 사람들은 그 흔한 진리를 쉽게 터득하지 못합니까?"

 

그 때 랍비는 중요한 일깨움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조금만 허리를 굽히면 얼마든지 진리를 쉽게 주울 수가 있을 텐데,

마음이 교만하고 뻣뻣해서 허리를 굽히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터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의 밭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더러운 욕심들, 인간적인 욕망, 교만한 생각, 뻣뻣한 마음,

고정관념, 선입견 등이 없어지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21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1:21b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말씀이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제가 기꺼이 받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때,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것이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성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얼굴을 내비치질 않았습니다.

그저 사환을 보내어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전갈만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나아만 장군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그 때 만약 나아만 장군이 성을 내면서 그냥 돌아가 버렸다면

그는 문둥병을 고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종들이 극구 만류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는 엘리사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면.. 그가 계집종이라 하더라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힘든 일을 당하셨습니까?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이런저런 일로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가득 차 있습니까?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른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심령에 평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평안의 열매를 거둡니다.

말씀의 씨앗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할 때' 뿌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