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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순종 묵상

LNCK 2011. 12. 22. 21:46

 

 

◈마리아의 순종 묵상         눅1:38       펀 글 정리

 

눅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러면 누가 믿겠나!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믿는 이유는,

큰 복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소박하게나마.. 주님의 은혜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그런 소박한 꿈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일생을 더듬어 보면,

‘이러면 누가 기독교 믿겠나!’

하는 한숨과 탄식이 저절로 나옵니다...

 

메시아 탄생에 가장 크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여하신 마리아와 요셉이 맞이한

당시 상황은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이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동정녀 탄생으로부터 시작해서

‘마리아의 아들 목수’ 라는 표현은, 좀 난감하지요.  막6:3

(원래는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러야 하거든요.)

 

아마 남편 요셉이 일찍 죽어서, 그렇게 부른 모양이죠?

어쨌든 남편이 일찍 소천했으니.. 여자 힘(싱글 맘)으로 자녀들을 길러야 했습니다.

장남 예수를 포함해서요..

 

그리고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자기 눈으로.. 자기 장남이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히는 것을.. 봐야하는 고통입니다.

 

이러고 누가 쉽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겠으며..

이러고 누가 쉽게 예수를 따르겠다고 자원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실상을 따지고 보면.. 결코 쉽게 믿거나, 쉽게 따를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눅1:38

라는 고백은,

절대로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될 고백이라는 뜻입니다. 신세 망치기 십상입니다.

 

(물론 성령님이 도우시고, 매 순간 감동을 주셔서, 능히 그 시련을 기쁨으로 감당했겠지만,

또한 천국에서 상이 어마어마하게 크겠지만)

 

인간적/세속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께 헌신하고, 예수님을 십자가 지고 따른다는 것..

쉽게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뜻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으로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황당하고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두 사람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도 그랬습니다.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침묵 가운데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와 요셉은 한 평생 자신들에게 주어진 참으로 난감한 상황 앞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늘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며,

늘 인간적 시각을 접고..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려고 숱한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마리아와 요셉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 한 가지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장대비가 퍼붓는데 우산도 없이

실성한 얼굴로 혼자 중얼거리며 지나가면, ‘미쳤구나!’ 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일생이 아마 그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 글의 주제는

기독교 신앙은.. 결국 ‘내세지향적’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결코 모든 상급/보상/응답/만족이 다 주어지지 않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또한 예수님의 일생을 보십시오.

현실에서 무슨 상급/보상을 받았습니까?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특히 사역자들이

내적으로 심히 갈등하는 것은,

자기들이 엄청 고난을 당하는데,

현실에서 상급/보상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데.. 깊은 갈등과 딜레마가 있습니다.

 

우리 잘못입니다.

‘너무 현실 중심적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성경적 기독교 신앙은

‘현실 중심적’이 아니라

‘천국 중심적’인 신앙입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일평생 쉴새없이 고난으로 점철된 모친 마리아의 삶을 묵상하면서,

내 잘못된 ‘현실 중심적 신앙관’을 대폭 개편합시다!

 

 

◑삶의 고비마다

 

삶의 고비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일생을 두고 이 대답에 충실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전생애를 아들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 놓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삶의 고비와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하늘을 보며 삿대질 하지 말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리아는 늘 처음의 마음을 되돌아보고 가다듬으면서 새롭게 일어섰을 것입니다.

처음 천사 가브리엘의 문안인사를 받고 도대체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했던 것처럼

살아가면서 삶의 고비마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물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단 한 번의 ‘믿습니다’라는 대답으로

단단한 믿음으로 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고

깊이 나를 사랑하시며 나의 삶을 선으로 이끄심을 거듭거듭 되새기며 살아간다면

더불어 믿음도 커나갈 것입니다.

 

 

 

◑은총의 시작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이 순종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놀라운 미래가 기대되는 드라마틱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순종하신 이후,

마리아가 경험하게 될 현실은 사실상 처절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응답에는

그분의 전 생애를 바쳐 하나님의 뜻을 몸소 실천하신

순종의 모습이 (미리)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고 낳으신 것뿐만 아니라,

전 생애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사셨습니다.

그것을 바로 은총의 삶, 복된 삶이라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흔들리는 유혹 중 하나는,

현실에서 우리가 십자가의 고통을 잘 참으면

가까운 미래에 내가 기대하던 대로 이루어지겠지 하는 보상심리로

신앙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실은 그 순종의 고통을 짊어지기로 결심하셨을 때부터

하나님의 은총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예’라고 순종하면서,

현실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그 마음 자체가 복된 삶, 은총의 삶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은총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 이후의 적절한 보상만이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은총의 한 면만 보는 편협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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