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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존재 자체로 선 입니다

LNCK 2011. 12. 22. 09:37

www.youtube.com/watch?v=E_jN24H2-80

◈존재 자체로 선 입니다             마1:12, 23     모두 펀 글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마1: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오늘 마태복음의 예수님 족보를 쭈욱 읽어 내려가는데

스알디엘이라는 이름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스알디엘은, 포로귀환시 최초로 성전을 지었던 스룹바벨 총독의 아버지이며,

      여호야긴의 장자 입니다. 대상3:17

 

사실 예수님 족보를 읽으면서 몇몇 중요한 인물들,

말하자면 성서에서 그들에 대한 얘기가 소개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얼마간 알고 있고, 그래서 귀에 들어오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읽는 것이 지루하고

그래서 읽지 않고 건너뛰고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스알디엘이라는 이름이 새삼스러운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무리 역사상 미미한 존재였을지라도.. 혹시 이 스알디엘이 없었으면

그 뒤의 예수님의 족보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미미함을 넘어서 죄인일지라도.. 그 존재는 대단히 의미가 있습니다.

 

저의 선배 형제 중의 한 형제님은, 기분이 좋으면

“Ens est bonum”이라는 말을 즐겨 하십니다.

존재 그 자체로 선이라는 뜻인데,

이 선배님의 해석은..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교회나 선교회를 나가지 않고 존재해준 것만으로도 선이라는 것입니다.

 

실상 오늘의 우리 교회나 선교회가 있기까지

오늘 제가 이렇게 살 수 있기까지

수많은 선배들이 교회나 선교회를 버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대부분, 우리 교회나 선교회의 역사에 남아있기는커녕,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를 지킨 무명용사와도 같은 분들.

하여 저의 혈육의 조상이든, 교회나 선교회의 선배든

저보다 앞 선 분들이.. 비록 형편없었더라도 너무도 고맙습니다.

 

     *스알디엘: 포로귀환시 최초로 성전을 지었던 스룹바벨 총독의 아버지,

      여호야긴의 장자  대상3:17

 

      느12:1, 대상3:17, 학개1:12, 눅3:27, 학개2:2  

                                                                 

 

◑불완전한 인간성을 수용하시는 예수님

 

저는 가끔 아이들을 만날 때 이렇게 묻곤 합니다.

“네가 예뻐서..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실까?

아니면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시니까.. 네가 예쁜 걸까?”

 

그리고 “네가 예뻐서.. 엄마 아빠가 너를 사랑해 주실까?

아니면 엄마 아빠가 너를 사랑하시니까.. 네가 예쁜 걸까?”

 

아이들은 대부분 어리둥절해하지만

익살스럽게 “제가 예뻐서요!” 라고 하는 아이들도 가끔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뿐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예쁘고 잘 해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 족보에 나타난 복음은..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역사적 실존인물로,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의 불완전한 인간성 그 자체를 사랑하러 오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간혹 연약하고 뭔가를 잘 하지 못하는..

인간적 한계를 보이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가끔은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요하시거나,

우리가 뭐든지 잘해야만.. 우리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성 자체는, 태어나면서부터 한계를 지니며

죽을 때까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마치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불완전한 인간성 자체를 끌어안도록 하기 위해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불완전한 인간성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육신은, 우리의 불완전한 인간성을 위한 기쁜 소식입니다.

 

역사 속으로 오신, 참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탄생을 준비/맞이하는 것은

인간성 자체로서 본질적 한계를 가진 우리와 이웃을 수용하는

변화된 삶을 살겠다는 나의 결심이기도 합니다.

 

 

“Ens est bonum”

존재 그 자체로 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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