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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못 보면 거지 왕초 된다

LNCK 2012. 1. 10. 10:00

◈천국을 못 보면 거지 왕초 된다         마20:29~34          출처



여리고 성에서 두 거지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부르짖어서

결국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본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회 속에 살고 있고 세상 속에 살고 있어요.

그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 ‘가치’라 그러지요.


건강이고 돈이고 그리고 승진이고 멋진 남자와 여자와 결혼하는 것,

자식들이 명문대에 들어가는 거… 이거 다 세상에서 좋은 ‘가치’들입니다.


이런 세상의 좋은 것(가치)들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경주를 뛴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경주를 의식하신 주님의 말씀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는 말씀이었지요.

그 세상 가치를 많이 얻을수록.. 나중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이러한 (세상 가치를 얻기 위한) 경주, 이게 바로 ‘거지왕초 경주’라는 겁니다.

얻으면 얻을수록.. 천국에서 거지 왕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거지 왕초란.. 거지 중에서도 가장 큰 거지가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얻어서 내 배를 채우려고 하는,

내 마음의 배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그러한 삶의 태도,

거지왕초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세상 ‘가치’에 대한 스케일이 크면 클수록,

천국에서는 스케일이 작아집니다.

‘가치’를 거기 세상에 전부 두고 있을 때!


여러분! 오늘 본문은 두 맹인의 치유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 사건을 단순히 ‘시각장애인들이 시각을 회복했다’라고만 본다면

너무 생뚱맞은 해석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본문의 전후 맥락 전체가 천국을 주제로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더군다나 이때는 어떤 때냐,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가 클라이맥스에 접어듭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시는 때입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에요.

그 다음 장 21장에 보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천국을 가져오셨고, 천국 가는 길을 여시기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수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을 때에 두 맹인을 고친 사건을,


단순히 ‘맹인들이,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고 나무라는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강청했기 때문에, 이들은 치유의 기적을 은혜로 맛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석한다는 것은 진짜 어폐가 있는 거지요.


두 맹인이 당신을 향하여 소리 지르며 고쳐달라고 다가오는 그 현실 속에서,

주님이 보고 계시는 것이 있었기에 마태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이 글을 지금 이 맥락 안에 집어넣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은 뭘 보고 계신다는 겁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물어 보세요,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제자들이 막 꾸짖습니다,

‘지금 왕의 대관식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들어가고 있는데,

아니 맹인들이 다 무엇이냐? 왜 너희들이 이 판에 끼어들어 소란을 피우느냐’

하고 꾸짖었던 것 같아요.


이때 주님께서 그들이 아무리 사람들이 꾸짖어도 그칠 줄 모르니까

그들을 불러 세우고 물어 보십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 질문이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불필요한 질문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요?

이 당시 유대사회에서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들의 생계유지의 유일한 방법은

구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실을 모르시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 시키시며 던지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을 통해서,

뭔가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 그럽니다.    :34

이 두 맹인에게서.. 주님은 무엇을 보고 계셨을까요?


방금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이모 (살로메)가 와서

자기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님께서 나라를 회복해서 왕으로 등극하실 때에,

영의정 좌의정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다른 제자들이 화가 나고 분을 냅니다. 그래서 서로 싸웁니다.

이 모든 모습 그리고 두 맹인의 현실, 주님께서는 그 사실이 오버랩 되는 거예요.


세베대의 아내도 그렇고,

세베대의 아들들도 그렇고

그들과 싸우는 제자들도 그렇고,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계급, 높은 자리를 놓고

서로 아옹다옹하며 싸우는 그 모습들이,

이 세상의 가치를 구걸하고 있는 천국을 못 보는,

천국에 대해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천국을 못 보기 때문에 구걸해야만 하는,


천국을 못 보는 맹인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하는

‘거지왕초’들로 보였다는 거예요.


거지면 되는데.. 제가 왜 ‘거지왕초’라는 표현을 씁니까?

그 구걸의 규모가 달라요, 구걸의 스케일이 달라요.

한 나라의 영의정과 좌의정이 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지 중에서도 왕초지요.


그 자리를 놓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선수를 칩니다.

그러한 모든 상태가, 두 맹인의 상태와 똑같이 여겨지고 오버랩 되고 있다는 겁니다.


눈앞에 다가온 천국, 코앞에 놓여 진 천국,

이 천국을 못 봤기 때문에 돈이라고 하는 것을 구걸하고 있고,

높은 자리라는 것을 구걸하고 있고, 명문대학을 구걸하고 있고,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로

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하는 구걸하는 맹인들이 되어 버렸다고

주님께서 보시면서,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계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최근에 나온 책이 한 권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라고 하는 책인데, 

상하이 푸단 대학에서 약관 30세로 교수가 된

위지안 이라는 여자 분이 쓴 책이에요.


그 책이 나온 게 금년인데, 최근에 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금년 4월에.

2009년에 암 말기 판정으로 1년 6개월 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생을 선고 받고 살다가

2010년 4월에 돌아가셨어요.


이 분이 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 6개월 동안에 돌아가시기까지

자기의 블로그에다, 자기가 30년 동안 앞만 보고 전력질주 해 왔던 인생에서

놓친 것들에 대해서


인생의 종점에 서서 그 동안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 생각해 내며 올린 글들을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그 책에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그리고 이분은 삶을 경주마로 비유 합니다, 눈을 가리고 앞만 보고 뛰는 경주마.

(경주마에 옆을 못 보고, 앞만 보이게 하는 눈가리개를 씌웁니다.)

그래서 ‘앞을 보고 전력질주 하는 대신에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


자! 이게 다 무슨 말일 수 있을까요?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마찬가지로.. 천국을 갖는 것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며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계신 하늘 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를 얻으려고 하는 거지왕초들이 되기 위한 경주에서

일등하기 위해 전력질주하지 말고

내 눈앞에, 내 코앞에 와 있는 천국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거예요.


이 분(위지안)의 말을 우리의 맥락으로 가져오면.. 그렇다는 겁니다.

천국은 나중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가는 것이고 지금 소유하는 것입니다.


근데 주님이 보실 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대해 맹인이 되어 버렸어요.

천국에 대해 맹인이 되어 버렸어요.


천국에 대해 맹인이 되면 유대사회에서 맹인 인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구걸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국에 대해 맹인이 되면,

이 세상에서 구걸하며 사는 사람 밖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 세상의 가치들을 가지고 배를 채우려고 하는, 그런 거지왕초들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불쌍히 여기는 이유는,

두 맹인의 형편에서.. 인류전체의 형편을 오버랩하며 보고 계시는 것이에요.


천국을 못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좋다는 것들을 길거리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인 줄 모르고,

그것들로 배 채우려 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천국과 세상의 가치는 서로 물과 기름 같아요.

천국을 마음에 갖게 되면 천국의 밀도와 이 세상에 좋다고 하는 것들,

건강이나 돈이나 출세나 이런 것의 밀도가 달라요.

그래서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배척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으로 마음이 지배돼 있는 사람은, 세상 가치를 빨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천국가치와 세상가치는 물과 기름 같으니까요!


그래서 ‘두 맹인’처럼 천국을 못 볼 때, 이 세상의 것들을 배를 채워서,

구걸해서 배를 채우려고 하는…


본문이 한 가지 보여주는 게 있어요.

모두가 다 그러한 맹인들의 처지에서 출발하는데,

‘무엇을 네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물어보십니다,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돈 좀 벌기를 원합니다’

또 구걸하는 거에요,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또 구걸하는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또 구걸하는 겁니다.


왜 거지근성을 못 버리는 겁니까,

주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네, 천국을 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좀 대답하자 이겁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그 천국, 보좌를 보기를 원합니다. 갖기를 원합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여러분 대답하세요! 빨리 대답하세요!.

(주님, 제가 천국을 보기를 원합니다!)

 

내년에는 돈 잘 벌기를 원한다, 내년에는 건강하기를 원한다.

맨날 새해 소원을 물어보면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하는 일 잘 되기를 원한다,

화목하기를 원한다.. 이런 것만 얘기하는 거예요.


전부 거지왕초들이에요 거지왕초들.

구걸하는 스케일이 남달라요, 사업이 잘되기를 원한다,

이게 보통 거지가 원하는 겁니까? 거지왕초나 원하는 것이지!


주님의 십자가로 순간순간 고개를 들고 치밀어 올라오는 거지근성을 죽입시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거예요, 이 세상의 가치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소원이 생길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이 거지 근성을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소원하는 힘을 ‘천국 소원’으로 바꾸세요. 환전하세요! 주1)


이 맹인들이 옆의 사람들이 아무리 꾸짖어도 굴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여’ 부르고 결국은 뭘 원하느냐 할 때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천국을 보기를 원한다는 소원을

강렬하게 소망으로 표현하면서 기다리자 이겁니다,

외치자 이겁니다 천국보기를 원한다고. 두 소경이 부르짖은 것처럼!


천국을 본 자라야만이, 이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도 바르게 볼 수 있고,

바르게 눈을 뜰 수 있고 내가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현실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천국을 보고 난 뒤에라야 바르게 깨닫고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로 세상의 가치들을 탐하는 모든 거지근성을 죽이고,

하늘만을 보기를 소망하다가 기어코 은혜를 입어 하늘을 보고,

이 땅의 모든 현실도 진짜(영원한 가치가 아님)로 보고, 살아갈 수 있는 천국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


주1) 세상 소원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천국 소원으로 바꾸라는 뜻.

물질에 대한 소원이 생기면.. 천국의 부요함으로 그 소원을 바꾸고(환전하고)

권세에 대한 소원이 생기면.. 천국의 (섬기는) 권세로 그 소원을 바꾸고 환전하면,

얼마 후에, 진짜 그 천국의 부요함과 권세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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