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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안에 있는 생명 3409

LNCK 2012. 1. 19. 17:29

 

◈피 안에 있는 생명               요6:53~56,  고전10:16        앤드류 머레이,  스크랩 글,

 

▲아래 말씀들은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6:53-5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10:16


물을 세탁하는데 사용하면 그것이 깨끗이 씻어주는 역할을 합니다만

물을 마시면 신선해지고 새로워지는 효과가 납니다.

이렇게 물이 이중적인 효과를 내듯이, 거룩한 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충만히 알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 피를 마시는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씻는 것과  마시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물로 씻는 일도 필요하고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물을 마시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고 또 생명을 유지케 하는 일입니다.


물로 깨끗이 씻지 않으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만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아예 살지를 못 하는 것입니다. 


오직 물을 마심으로써만 생명을 유지하는 능력의 충만한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즉 그 피의 효과를 마음을 다하여 누리지 않고서는) 

영생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자의 피를 마신다"라는 말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습니다만

     유대인들에게는 그 말이 더더욱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피를 마시는 일’은 모세의 율법으로 엄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피를 마시면 극심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예 피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피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1. ‘그 피를 마신다’는 표현은 어떠한 축복을 묘사하는가요?


물로 씻는 것보다, 물을 마시는 것이..

훨씬 더 친밀하고 더 강력한 효과를 냅니다.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교제 속에는

‘깨끗이 씻음’이나 ‘거룩하게 함’보다 훨씬 더 깊은 축복이 있습니다. 


아니 이 ‘그 피를 마신다’는 표현이 시사하는 축복의 영향력이

얼마나 널리 미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 피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속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무언가를 행할 뿐 아니라 우리 속에서 무언가를 행합니다. 

곧 우리의 속을 전연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라는 주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사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두 종류로 구분하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육체와 영혼의 자연적인 생명을 지녔습니다.

그들 가운데 경건하고 선한 뜻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주님은 그들이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는"한

그들 속에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하늘의 생명, 그리스도 자신이 소유하셨고

그가 친히 베푸시는 생명이..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그 외부로 부터 영양분을 받아야만 합니다.

자연의 생명은 빵과 물로써 자연적으로 영양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생명은.. 예수님 자신이 주시는 하늘의 양식과 음료로

영양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그리스도의 생명 바로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곧 그가 인자로서 이 땅에서 사셨던 그 생명 말입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 우리 주님은 그 생명의 본질을 설명하시면서 

더욱더 강력하게 이 점을 강조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임하신 것은 무엇보다도

육체가운데 있는 영생을 드러내며

육체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그것을 전달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영생이 신적인 능력 가운데 거하고 있음을

육체적인 몸 안에 그 생명이 거하고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자기의 살을 먹고 자기의 피를 마시는 자들은

곧 그의 몸을 그들을 유지하는  능력으로 삼아

거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들의 몸 안에서도 영생의 능력을 체험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들을 다시 살리리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영생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서, 그 몸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의 몸도 그 생명을 소유하게 되고

마지막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료다"라고 하셨습니다. 요6:55

이 땅의 양식은 참된 양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참된 생명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참된 양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가져다주고, 유지시켜주며, 더구나 그림자처럼이나..

그저 상징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그렇게 자주 반복하신다는 것은

곧 주 예수님의 살과 피가, 충만하고도 참된 의미에서

영생이 우리 속에서 영양분을 받고 유지되는 참된 양식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료다"


이 양식의 실재와 능력을 지적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일은

주님과의 지극히 완전한 연합의 효과를 이루어 냅니다.

그의 살과 피가 그런 영생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기서 그를 믿는 자들은

그저 그에게서 마음에 이런 저런 영향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의 지극히 친밀하고 또한 영구히 지속되는 연합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그러므로 인자의 피를 마시는 축복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요, 그와 함께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연합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이냐 하는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요6:57)


우리 주님과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처럼,  

주님과 우리의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나뉠수 없는 신적인 본성에 있어서 두 위격이 참으로 하나이신 것처럼

그렇게 (피를 마시는) 사람이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몸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말미암아 영생을 나누는 존재가 되었고

우리 주님 자신의 생명을 나누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 축복을 충만히 받기를 사모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다"라는 거룩하고도 신비한 표현을 통해서

성경이 베풀어 주는 모든 것들을 조심스럽게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1. 영적으로 흠뻑 피에 젖음

"마신다"는 것은 그 피의 능력에 관하여 우리가 깨닫는 모든 것들을

믿음으로 우리의 영으로 깊이 진정으로 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연사의 말에 흠뻑 빠져서 그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경우에

그 사람의 말을 "마신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의 보배로움과 능력에 대한 감각으로 가득 채워질 경우

그가 그 피에 대한 생각에 완전히 빠져서 기뻐할 경우에..

 

내 마음이 전심의 믿음으로 그 피를 스스로 취하고

내 속마음으로 그 피의 생명을 주는 능력을 납득하려 힘쓰는 경우에

내가 "예수의 피를 마신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 피로 말미암는 구속과 깨끗이 씻음과 거룩하게 함에 대해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모든 내용을

그의 영혼 깊은 곳으로 흡수해 들이는 것입니다.

이 표현에는 아주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로 말미암는 충만한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이 표현이 아주 영광스럽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코카콜라 사장이 '내 몸에는 코카콜라가 흐른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성도들은 '내 몸에는 예수님의 피가 흐른다' 라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2. 성찬식에 참여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표현을

거듭거듭 사용하심으로써 이보다 더한 것을 의도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제정하신 성찬식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는 가버나움이었고, 

이 말씀이 훗날 성찬식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확증되기 때문입니다. 주1)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전달받는 일은

영생을 유업으로 받기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수적입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엡1:23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협력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느니라" 엡4:15~16


▲3. 피로 하나됨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고전6:15~16

그리스도께서 몸과 영으로 우리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다시 "우리는 그의 몸과 그의 살과 그의 뼈의 지체라"는 영광스러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주님의 살과 피 안에서 하나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사도는 그 하나됨의 역사가 너무나도 높고 귀하여

그것을 해명하기 보다는 그저 그것에 대하여 놀라워하는 것입니다.  


성찬에는 그저 신자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누리는 것보다

더한 의미(하나됨)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76문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주2)


‘그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과연 지극히 친밀하고

가장 완전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발효되는

그러한 깊고 깊은 영적 신비인 것입니다.


내 영혼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피의 연합을 충만히 누리고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실 때에 드러내 보이신 바로 그 기질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자가 될 때,

그것이 바로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피는 몸에 생명입니다.

※우리도 '피를 나눈 형제, 한 핏줄, 내 핏덩어리(자녀)'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몸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기를 바라면

거기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초인간적인 강력한 방식으로

그 피가 하늘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강건케 할 것입니다.

피 속에서 부은바 된 생명이, 그 사람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생명이 죽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일이

어떻게 주님의 하늘의 생명에 고귀하게 참여하는 것이 되는지를 깨닫는 데서

믿음의 가장 고상하고 영광된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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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를 마시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관한 가장 깊은 신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말을 앞에서 이미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주 예수께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표현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시기를 구할 때

깊고 깊은 경외심을 갖고 그에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충만한 연합을 사모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올바로 배우게 됩니다.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리라"


그저 죄 용서함으로만 만족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풍성히 마시게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 자는

영혼과 육체의 구속의 그 충만한 능력을 체험하여 예수님께 있었던 것과 동일한 기질을

그 자신도 진정으로 소유하게 되기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이 "피를 마시는 일"에 그저 작은 부분만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의 목표와 동일한 목표

즉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리라"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아서 힘쓰는 사람은 

영생의 능력이 자기 몸에서 역사하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이 말씀들이 너무 높다거나 너무 비밀스럽다거나 하는 선입관 때문에

두려워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늘의 사고방식을 갖기를 사모합니다.

그가 하늘에 속해있고 또한 그리로 향하여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로서 오는 양식과 음료를 얻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갈증이 없이는 음료를 마시는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모하고 그와의 완전한 교제를 갈망하는 것이 바로 갈증이요

그것이야말로 피를 마시기 위한 가장 좋은 준비인 것입니다.


갈증 있는 영혼이 이 생명을 주는 음료를 마셔

하늘로부터 말미암아 새로워지게 되는 것은..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를 마시는 일이 하늘의 신비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만유의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계시고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계신

하늘에도 또한 "뿌린 피"가 있습니다. 히12:23~24


성령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실 때, 말하자면 손으로 붙잡고 가실 때 

우리의 인간적인 이해력의 범위 이상의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나 그의 생명에 대하여

그 피 가운데 우리의 몫에 대하여

그리고 그 피의 살아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생각들은

그가(성령께서) 예수님과 우리의 연합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그 영광스러운 현실의 그저 희미하고 가느다란 빛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피를 실제로 받아들이고 말 그대로 그 피를 마시는 증거를

과연 우리의 몸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몸의 각 지체가 하나씩 정맥을 통해서

심장에서 계속해서 새로이 흘러나오는 피를 받는 바로 그곳이 아니겠습니까? 

건강한 몸은 각 지체마다 끊임없이 풍성하게 피를 받아 마시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예수와 연합시키시는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께서

이처럼 피를 마시는 역사를 내적 삶의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마시는 일에 대하여 하신 말씀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어려운 말"이라고 하며 불평하자

주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신적인 신비를 우리 속에서 생명과 능력으로

그 신비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속에 거하시는

참된 살아 있는 체험으로 만드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에게 베풀어지리라는 고요하며 강하고 확정된 믿음의 기대가

반드시 우리 편에서 있어야 합니다.

그 보배로운 피가 할 수 있고 또한 베풀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정말로 우리를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극한 확신과 기쁨으로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주님, 주의 피가 제게 생명을 주는 음료입니다.

저를 그 피에 씻으시고 깨끗하게 하신 주께서

날마다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기를’ 가르치사

제가 주 안에 거하고 주께서 제안에 거하시도록 만드시옵소서."  

주께서 반드시 구하는 그것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주1)

개혁교회에는 성찬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개혁자 츠빙글리의 이름을 따라서 불리는 한 가지 견해에 따르면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저 영적진리의 증표 혹은 상징물로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가, 우리의 몸에 영양을 주고 새 힘을 주는 것과 똑같이

그만큼 확실하게 - 오히려 그보다 더 확실하게 -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닫고 우리의 것으로 삼은 주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영혼에 영양을 주고 새롭게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이름이 붙어있는 또 다른 견해에 따르면

성찬에 참여하는 일에는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모종의 감추어진 방식으로 사람이 깨달을 수 없는 방식으로

그러나 그러면서도 진정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로부터 영양을 받아서

심지어 우리의 몸조차도 주님의 몸의 능력을 통하여

영생의 능력에 참여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몸의 부활과 성찬시에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일과 연관을 짓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성찬이 요구하는 육체적 임재는 여기서(성찬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그것이 우리의 영에게 영생에 대한 의심할바 없는 확신이 될 뿐 아니라

육체의, 불멸까지도 확신하게 해준다.


이것이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부끄럼없이

그것은 너무나 높은 신비여서  나의 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고

나의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시인할 것이다.

내가 깨달을 수 있는 것 이상을 내가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살이 그렇게도 무한히 먼 거리에서 우리에게 도달하여

우리의 양식이 된다는 것이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것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해력으로 납득할 수 없는 그것을 믿음으로 포용하여야 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그의 살과 피를 신성하게 전달하셔서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심어주시며

그것이 마치 우리의 뼈와 골수를 찔러 관통하듯 한다는 사실 말이다."


주2)

"그러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가 흘린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답은 이렇습니다. 


"그것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으심을 포용하여

죄사함과 영생을 받는다는 뜻임은 물론,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고

또한 동시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신성한 몸과 점점 더 연합되어

우리가 -물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위에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의 살 중의 살이 되며, 그의 뼈중의 뼈가 되어,

영원토록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배를 받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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