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도둑 마22:8-14 출처보기
◑서론
천국은 왕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열어놓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과 같은 것인데,
본문의 초점은, ‘예복을 입지 않아서 쫓겨난 일’에 맞춰집니다.
그러면 왜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쫓겨났으며,
또 '예복'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본문을 <기쁨>이라는 단어로부터 출발해서 살펴봅니다.
왜냐하면 이 ‘혼인잔치 비유’의 핵심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잔치’가 가지는 의미가.. 기쁨, 축제 이런 것입니다.
잔치, 그것도 이 세상에서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라고 비유하신 것은
기쁨의 극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국 황태자의 결혼식이, 세기의 결혼식이 되듯이,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의 혼인잔치’입니다.
그래서 보통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기쁨은,
전 국민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조시대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개념은,
그 왕의 기쁨이 내 기쁨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백성은.. 왕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여깁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포인트를 반복해서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호 ☞ (피바람) 결혼잔치 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쁨’은.. 인간이 자체 생산 해 내는 것은, 불완전한 기쁨, 죄의 낙을 누림이요,
인간의 참된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에 내가 동참하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기쁨’은 하늘의 언어입니다.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땅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신으로부터
하늘의 신들의 소유물이었던 불을 훔쳐서, 땅 위에 사는 인간들에게 가져다줍니다.
그것으로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청동사슬로 묶이는 등 고초를 받게 되는데,
(이건 신화입니다. 실제 사건은 아닙니다.)
‘불’은 원래 하늘에 있는 신들의 것이었는데.. 훔쳐옵니다...
마찬가지로, 기쁨은 원래 이 땅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부터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기쁨입니다.
▲기쁨이 있으려면, 기쁨 이전에 먼저 욕구desire가 있습니다.
욕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죠.
무엇인가, 어떤 일인가를, 원하고 성취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죠.
그 욕구가 달성되면.. 기쁨이 생깁니다.
그런데 기쁨은.. 하늘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쁨을 가능하게 하는 욕구,
그 욕구의 대상도.. 하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볼 때,
인류역사상 '기쁨'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발생한 곳이 에덴이에요.
‘에덴’이라는 말 뜻이 ‘기쁨, 즐거움’입니다.
그곳에서 아담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일나무가 많고 강이 흐르고, 금과 보석이 많아서 기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기뻤다는 거예요.
그리고 타락 이후에는.. 기쁨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이 땅에서는 원래 기쁨이 없는 것이니까요.
이 땅이라는 곳은 원래 기쁨이 없는 곳이에요.
그런데 이 땅에서 기쁨을 찾는다는 것은
기쁨을 도둑질해야 되고, 기쁨을 밀조해 내야 된다는 겁니다.
‘밀조’란.. 법으로 허가가 안 나는 것을, 몰래 숨어서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密造
이 땅에는 원래 (천국의) 기쁨이 없는데,
사람들이 ‘기쁘다’고 느끼고 말하는 것은.. 그게 다 인간이 밀조해 낸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가짜 기쁨들이예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게 해 주는 것들’이고요,
자기에겐 기쁨이 되지만, 그게 남에게는 슬픔을 줄 수도 있고요,
잠시 기쁘지만, 결국 그 기쁨이, 자기 살을 먹어버리는.. 흉측한 기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밀조한 기쁨은.. 그런 것들이라는 겁니다.
오직 참된 기쁨은..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 것은,
기쁨은.. 욕구desire가 충족될 때 생기는 것인데,
사람의 욕구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 죄의 소욕이거든요!
▲지금까지 내용을, 잠깐 정리하면,
1. 본문 <혼인잔치 비유>의 핵심코드가 기쁨입니다.
2. 기쁨은 욕구가 전제되고, 욕구가 충족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욕구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겁니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생리적인 욕구, 먹고 마시는 것, 잠자는 것, 종족번식의 욕구,
또한 매슬로우가 말한 ‘안전에 대한 욕구’,
사랑 받음과 자기 계발의 욕구, 주1)
이 모든 것들은.. 참된 욕구가 아닙니다.
4. 그러면 참된 욕구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
▲인간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인간의 마음을, 욕구하는 에너지체로 만들었어요.
무언가를 바라고 그 마음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욕구 에너지체인 인간에게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 당신 자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인간의 욕구의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에
그 욕구가 채워질 때.. 하늘에 속한 기쁨이.. 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기쁨이라는 게 만들어질 수가 없는데,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고 하나님과의 동거가 있었던 그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들이
욕구로 만들어진 자기의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기쁨을 얻기 위해서,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끌어들인 욕구의 대상들이
바로 매슬로우라는 심리학자가 규정해 놓은 5가지 욕구라는 겁니다. 주1)
이건 원래 욕구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갖고 싶다, 우리 마음 안에 채우고 싶다’라는 욕구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우리 인간에게 욕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 이후에 마귀가 그 욕구의 대상을
이 땅에 있는 것들로 바꿔놓아 버린 거예요.
자식이 잘돼서 기뻐하기를 원하고,
돈 벌어서 기쁘기를 원하고,
무병장수해서 기쁘고,
성형수술해서 예뻐짐으로 기쁘기를 원하는 식으로.. 다 바꿔놓아 버린 겁니다.
※여기까지가 서론이고, 아래부터가 본론입니다.
◑그러면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바로 초대에 응했어요. 초대에 응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었다는 얘기예요.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그의 마음이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마음은 욕구의 에너지체예요.
예를 들어, ‘돈을 벌어서 욕구를 채워야 되겠다’고 한다면
마음이 ‘돈’을 옷 입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리적인 욕구부터 시작해서,
(매슬로우가 말한) 자기계발의 단계까지 5종류의 욕구로 옷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채워지기 위한 잔치, 하늘에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잔치를 위하여
전혀 준비된 자세가 아니라는 얘기예요.
잔치에 초대되어 왔지만..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예복 대신에, 자기 옷을 입고 잔치에 참석했는데,
‘내 욕망의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옷’(예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한다는 것, 예수 믿는다는 것은,
이전에 내 욕망의 대상이 ‘세상 것들’이었으나,
그 후로는 내 욕망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게 억지로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욕망을 다 이루면.. 쓴 죄악의 열매만, 내가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무미건조할 것 같은 ‘하나님’을 향한 욕망(소망)을 채우면,
거기엔 천국의 기쁨, ‘왕의 혼인잔치에 참예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혼인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으면.. 꽝입니다. 내어 쫓김 당합니다.
오늘 내 영혼은 ‘내 욕망의 옷’을 입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만을 간절히 소망하는 옷’을 입고 있습니까?
에덴동산에서의 삶을 가만히 보거나,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실 때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은.. 결코 우리 마음이 욕구해야 될 대상이 아니고,
우리가 욕구해야 될 대상인 하나님을.. 내가 욕구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원함으로써
하나님으로 채워진 기쁨이 충만해질 때,
그 기쁨에 젖어있게 되면
하나님께서 마치 결혼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피로연으로 다섯 코스로 되어 진 음식을 내어주시듯이
우리에게 다섯 코스로 된 음식으로 인생에 다가오는 겁니다.
(매슬로우의 5가지 욕구가 승화되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갖게 되면, 나머지 세상 것들은 ‘사은품’으로 주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마음이, 왕의 기쁨에 동참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왕이 준 예복을 입지 않은 것입니다.
이 예복이 뭡니까?
‘욕구의 내용’이.. 곧 우리 마음의 옷이에요.
내 마음의 옷은, 즉 내 욕구의 내용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채워 기뻐하시듯이)
그렇게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욕구하면서
하나님으로 채워져서 생기는 기쁨으로 충만한 것,
이게 바로 ‘예수 믿는 신앙’입니다.
욕구의 내용을 하나님으로 갖는 것.. 이게 바로 '예복'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욕구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의해서 목표가 정해진다면
내 마음의 옷이.. 하나님이 주신 예복을 입는 게 아니라는 거죠.
내 멋대로의 옷을 입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뭘 해주는 거냐 하면
내 마음의 옷을 벗어버리는 것,
내 마음의 기쁨을 밀조(자체 생산)해내려는
도둑의 심보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겁니다.
하여간 이 땅에서는, 진정한 기쁨이 없어요.
세상 기쁨을 찾으려 하면.. 다 기쁨의 도둑들이 되고,
(모든 도둑은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 용서하시지만)
끝까지 기쁨을 도둑질하는 것, 기쁨을 밀조하려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합니다.
내 마음의 기쁨을
이 세상 것들을 욕구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만들어내려고 하는
이 ‘기쁨 밀조업자’들은 절대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똑바로 알고 믿자 이거예요.
하나님아버지, 이 땅 위에서 우리가 욕구의 대상을 자의적으로 선정함을 통해
기쁨을 밀조(몰래 생산)하는 도둑들이 되지 않게 해주시고,
그러기 위하여 오늘도 내 마음에 이 세상 것들이 욕구되어 질 때마다
십자가를 먼저 바라보게 해 주시옵시며, 십자가를 바라봄을 통하여
하늘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하늘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주1)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욕구의 5단계 설’이 있습니다.
‘욕구위계이론’이라고도 합니다. *hierarchy of needs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가 다섯 단계로, 계급처럼 서열이 매겨집니다.
제일 하위 욕구는.. 생리적인 욕구, 먹는 것과 자는 것, 종족번식의 욕구들.
두 번째 단계가.. 안전에 대한 욕구, 위험/재난/추위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욕구.
세 번째는.. 애정과 소속의 욕구,
네 번째가.. 자기 존중의 욕구, 그런 단체 내에서
자기가 인기/권력/존중을 받게 되기를 원하는 그런 욕구.
다섯 번째 욕구가.. 자기의 모든 잠재력을 다 인식해서
그 잠재력을 마음껏 꽃피우는 ‘자기계발의 욕구’ 이렇게 다섯 단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위계질서로 세워놓았는가 하면,
맨 아래의 생리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야, 두 번째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는,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될 때, 상위단계의 욕구로 발전하게 된다’라는 이론입니다.
사람들은 ‘위계이론’(1단계 다음에 2단계로 옮겨간다는 것)에는 의문을 품지만,
(1단계와 5단계 욕구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를 ‘5종류의 욕구’로 구분하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5가지 욕구가.. 어쩌면 모두 ‘본능’이요, ‘죄의 소욕’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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