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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마음의 목숨

LNCK 2012. 5. 3. 08:20

◈마음의 목숨                    막8:35~37                        출처보기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5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7


여러분은, 여기서 ‘목숨’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 말하는 것 같습니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자기 목숨은.. ‘육체의 호흡이 끊어지는 것’으로 우리가 보통 여깁니다.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서 구원이란 ‘영생을 얻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처럼,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육체의 목숨을 잃으면, (또는 잃을 정도로 헌신하면)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영생을 얻게 된다... 는 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원어를 살펴보면

 

막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절, 37절도 프쉬케)


똑같은 ‘프쉬케’라고 하는 단어로 나와 있습니다.

2가지 뜻이 있는데

1)호흡 breathe, life 

2)마음의 생명, 마음의 목숨 soul 입니다. 


즉, 우리 ‘육체의 목숨을 잃는다’는 얘기보다,

좀 더 깊은 뜻이 들어 있어요.


‘프쉬케’를 잃으면 ‘프쉬케’를 얻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목숨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정의해 주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너희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얻어야 되는데,

    그 목숨이라는 게 뭐냐 하면..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유익한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목숨이라는 것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막8:36, 37


목숨이 뭔가를 알기 위해서, 예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목회할 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픈 일이 하나 있습니다.

27살 청년이,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하는 중에,

옆 좌석의 베트남 청년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여럿이 몰려 있기 때문에

거의 한국사람 對 베트남인의 패싸움처럼 돼버렸어요.


그래서 이 27세된 청년은(저희 교인 집사님의 아들)

그중 나이가 좀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 싸움을 말렸습니다.


그 싸움을 말리고 있었는데, 그 베트남청년들이 갱단이었어요.

한 베트남청년이 나가서 자기 차 트렁크를 열고 총을 가져와서 쐈는데

시비 당사자도 아닌, 하필 말리고 있던 그 27세 청년이 맞아서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온 교회가 충격에 빠진 거예요.

예배를 드리러 그 집으로 갔습니다.


위로예배를 드리고 장례절차를 밟기 시작하는데, 예배가 끝난 다음에

그 아버지가 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였습니다.


그 아들이, 자기의 목숨과 같았는데..

천하를 주고도 못 바꿀 자기 모든 것(목숨)으로 여기며, 여태 살아왔는데,

그 아들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집사님은, 이민 와서 20년이 넘도록 택시운전을 하면서 열심히 일했어요.

택시를 몰면서 집을 장만하고, 아내가 타고 다닐 수 있는 자동차를 장만하고,

(제 기억으로는 렉서스였어요),

그리고 자식들 셋이 다 좋은 대학 나오고, 잘 컸습니다.


이 죽은 아들도 자격증이 아주 많았어요.


그런데 이 남자집사님이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냐, 내가 이민 와서 20년

넘도록 이렇게 애쓰고 이를 악물고 살았던 것이 다 이 자식들 때문이었는데…’


그런데 자식이 죽었습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20년 걸려서 집 장만하고, 좋은 차 사고,

안정된 생활을 얻었는데.. 지금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낯선 외국 땅에 와서, 나는 택시운전 하면서, 이미 이름 내기는 틀렸으니까,

자식을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 자식이 죽어버렸어요.


그 아들이.. 그 집사님의 목숨이었습니다.

 

여러분, 목숨이 뭘까요?

우린 자꾸 ‘육체의 호흡이 끊어지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아니에요.

물론 육체의 목숨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러나 마음의 목숨이 있습니다.


육체가 호흡을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목숨은 ‘프쉬케’, 영혼, soul이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마음의 목숨까지 뜻합니다.

 

예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목숨은.. 천하를 얻고도, 그걸 잃으면 유익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목숨은 천하를 얻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가 없는.. 천하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럼 잠깐 본문을 다시 읽어보실까요? 


막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마음의 목숨,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음의 목숨마음의 호흡으로 생각해 봅시다.

육체의 목숨은 호흡이 끊어지면 끝나잖아요?

마음도 호흡을 한다는 겁니다.


마음의 호흡, 이게 바로 위 예에서 자식이었다는 거예요.


천하를 얻고도 바꿀 수 없다는 목숨이.. 바로 이걸 말하는 거예요.

자식을 호흡하며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죽자, 집이 무슨 소용입니까, 자동차가 무슨 소용입니까?

이민 와서 안정된 생활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 사람이 충격적인 일을 만나면, ‘숨이 멎는 순간’이 있어요.

공기는 잘 유통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숨이 멎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목숨이 있다는 거예요, 마음이 호흡하고 있는 목숨.


결론을 말씀드리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버려야, 예수님의 목숨을 얻습니다.


목숨을 버리고.. 예수님을 얻고

마음의 목숨을 버리고.. 예수님 생명을 얻고

마음의 호흡이 죽고.. 예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목숨을 버리기 전에는.. 예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이 고후5:9절에서 ‘그런즉 우리는 몸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말씀합니다.


또한 빌립보서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1:20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니까 육체적 목숨의 문제.. 즉 ‘죽는다, 안 죽는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목숨의 문제는 몸으로 있든지, 몸에서 떠나 있든지,

그러니까 죽든지 살든지.. 주를 기쁘시게 한다고 할 때

사도바울은 ‘주님이 나의 목숨’이라는 겁니다.  *자녀/사업/건강이 자기 목숨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이 있음으로써

내가 살아있다고 하는 이유가 설명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목숨이라는 거예요.


당신의 ‘목숨’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이요,

내 ‘세상적 목숨’이 죽고, ‘예수님이 나의 목숨’이 되셔서..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고, 참 만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해서 얻는 생명이지요.


이준 열사, 안중근 의사, 다 나라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지 않습니까?

안중근 의사에게 있어서.. 목숨은.. 자기 육체의 목숨이 아니라, 나라의 독립이에요.

그는 나라의 독립을 호흡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인성 과부에게는.. 목숨이 자기 육체의 목숨이 아니라, 외아들이었어요.


김구 선생님에게 있어서 목숨은 대한민국의 장래였어요.


불철주야 사업만 하는 아빠에게는.. 자기 목숨이.. 그 사업입니다.


내 마음이 숨을 쉴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없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이미 얻어놓은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그게 바로 목숨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뭡니까?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 목숨을 부인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없으면 내가 살아야 될 의미가 없는 것,

그것이 없어지면 내 숨이 멎어버리는 것,

육체는 살아있지만 내 마음의 숨이 딱 멎어버리면서

살아야 될 의미가 아무것도 없어지는 것, 그런 게 바로 목숨이라는 거예요.


마음의 목숨을 말합니다.


예수님 만나기 전까지 유지되고 있던 그 마음의 목숨,

그것이 없었으면 세상의 것이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그런 그 목숨을

예수님 만나면서부터.. (예수님으로) 바꾸라는 얘깁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어떡하든지 자식을 한번 잘 키워보겠다’

자식이.. 엄마의 목숨이었어요.


자식이 내 마음의 호흡이었어요, 자식을 호흡하면서 살아요.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내 애인이 목숨이었어요,

애인이 없으면 나는 살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까 군대 가있는 청년들이 애인이 고무신 바꿔 신으면, 자살하지 않습니까)

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목숨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제 마음이 호흡하고 있는 목숨이 무엇인가를

잘 살펴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것이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십자가를 붙잡고,

현재 제 목숨에 대해서 죽게 해주시고, 제 목숨을 잃게 해주시고,

주님이 제 목숨으로 찾아지는 복된 삶을 살게 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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