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길의 여정 막15:6~20 출처보기
◑본문에 예수님께서 바라바보다도 열등한 존재로 취급 받게 되십니다.
명절 때가 되면, 로마총독이 죄인 중의 한 사람을 사면해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물어봅니다.
빌라도 딴에는 극악무도한 죄인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바를 거명해서
바라바와 예수 중에 누구를 놓아줄까 하고 물어봅니다.
사실은 빌라도가 그렇게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아무나 한 명을 정해서 놓아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하도 거세게 예수를 고발하고 있으니까,
자기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죄를 확증할 수가 없고
유대인의 고발이 전혀 설득력이 없어서 놓아주고 싶은데, 유대인들의 반발이 심할까봐..
자기 책임을 면하려고 바라바와 예수를 선택하라고 내놓습니다.
빌라도 생각에는 아마 바라바는 극악무도한 죄인이니까
틀림없이 이들이 바라바보다는 차라리 예수를 놓아달라고 하겠지..
하는 짐작이 있었을 것이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민란을 꾸미고 살인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요청을 하게 됩니다.
▶바라바가 누구냐 하면, 이 세상 삶의 현장으로부터 격리시킨 자입니다.
삶의 현장에 같이 놔두었다가는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삶의 현장에서 격리시킨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바라바보다도 예수님이 못한 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이 됩니까?
이 세상을 떠나라는 뜻이에요,
예수님보고, 이 지구를 떠나라는 얘깁니다.
바라바는 이 지구 안에서 그래도 삶의 현장으로부터 격리된 자인데,
그 바라바보다도 예수님이 더 못한 존재로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마음에서는 예수님을 향하여 뭐라고 하는가 하면
‘지구를 떠나라’라는 얘깁니다. 극도의 경멸과 거부인 것이지요.
▶지구를 떠나라고 하는 외침이 들리는 장소에, 예수님이 서 계신 이유가 뭡니까?
예수님이 서 계신 그곳이.. 바로 우리가 서야 될 자리인 거예요. ←주제
그냥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사건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사건을 향해 가고 있는 이 모든 과정이
다 십자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 거쳐야하는 지점을
주님께서 표시해나가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겟세마네에서부터 유대인들의 재판,
-빌라도의 재판, 백성들의 거부, 또한 바라바 선택,
-그 다음에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갈대로 때리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조롱하고 희롱한 그 자리,
이게 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도가 거쳐야 되는 지점’을
주님께서 마크를 해나가시는 겁니다.
그 끝 지점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이지요.
그러니까 십자가를, 단순히 <골고다의 십자가> 하나만 생각하지 마시고,
겟세마네에서 ~ 빌라도 재판 ~ 로마 병사들의 조롱 ~ 십자가의 죽음>까지
각 과정이 모두 포함된 것이 ‘십자가’이며,
그 각 과정은, 다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고백을 할 때는
단순히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고백을
주문처럼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의 의미가
겟세마네서부터 재판과정과 바라바를 선택하면서 버림받는 과정,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받는 과정이 다
십자가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십자가가 ‘총론’이라면, ‘각론’이 있습니다.)
이 과정 전체가 다 밟아지지 않으면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다는 게 안 되는 거라 이겁니다.
겟세마네서부터 재판과 바라바 선택과 로마 군인들의 희롱의 과정이 다 포함되어야
주님과 함께 죽는 일(나의 십자가)이 제대로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 ‘십자가 여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여러분, 겟세마네서부터 지나온 모든 과정,
그리고 로마 군인들이 희롱한 바로 직후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겟세마네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다 이루어져야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게 바로 십자가의 과정이요, 동시에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성도들이 거쳐 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1. 겟세마네 기도는, 그 핵심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겁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처한 저주의 상황으로 떨어지시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에 심히 고민하시고, 죽을 것 같으심’을 느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똑같은 입장에 서계시면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 몸으로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의 삶에 대해서는 아버지 마음대로 하세요!’
라는 얘깁니다.
그렇게 아버지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됩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내가 붙잡고 있는 한,
아버지의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패키지 여행’의 출발점이, 겟세마네 기도이며,
그것은,
이 세상의 가치를 붙잡는 손을 놓아버리는 겁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는 것은 ‘돈이 벌리든 안 벌리든, 내가 일찍 죽든 늦게 죽든,
내가 승진해서 높아지던 낮아지던, 우리 아들이 좋은 대학을 들어가든 말든,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 내가 완전히 마음에서 놓아버리겠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것이.. 십자가 여행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2. 빌라도의 재판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의아스럽게 여깁니다.
빌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돈과 권력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전혀 마음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걸 발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를 확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권력도 돈도,
이 세상 안에 있는 어느 것도 붙잡으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예수님이 자기 라이벌이 아니고, 죄를 물을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바라바를 선택합니다.
-즉, 십자가를 지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보다 바라바가 더 좋다’고 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바라바 보다 못한 존재’로..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 패키지여행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바라바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과 바라바는.. 가치관이 똑같은데,
유대인과 예수님은..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돈이 하나님의 원수예요.
하나님께 드려져야 될 마음을 돈이 빼앗을 수 있으니까요,
내 인생의 비전도, 똑같이 하나님의 원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비전도 버려야 된다고 하십니다.
돈과 건강과 비전과 성공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을 해버리십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발끈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었나 하면,
돈 많이 주시고, 성공 주시고, 승진 주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존재가 의미 있었었는데,
그 모든 세상의 가치를 다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해버리니까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한 겁니다.
그리고 이들이 바라바 같은 살인죄를 지은 자를 선택해버립니다.
바라바가 예수님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바라바와, 자기들의 가치관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가 민란을 일으켰다는 걸 보니, 이 사람이 열심당원이었다고 추측해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민란을 일으켰다가
사람을 죽였다고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니까 바라바가 살인자라도 예수님보다 나은 것이에요.
세상의 가치를 같이 추구하고, 그 마음의 흐름을 같이 따라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의 가치를 따라 흐르는 마음들을 다 정죄해 버리십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차라리 바라바가 더 나은 거예요.
▶3. 로마 군병들의 조롱과 채찍질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하라고 하고,
갈대로 때리고 침을 뱉는 그 상황이 일어납니다.
로마 군인이라는 것은 그 당시 로마제국 내에서 지배력의 상징이고
실체인 로마정부의 말단의 단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배력’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에요.
이 지배력의 말단이 바로 로마시대 때의 군인이었어요.
그런데 지배력의 제일 마지막 끝인 자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그 자리,
이 세상 지배력의 말단에 속한 자들에 의해서 조롱받을 수밖에 없는 그 자리,
이 자리가 바로 십자가 직전의 자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은,
이 자리를 거쳐야 된다는 얘깁니다.
세상의 가장 하찮은 자들에게서마저도.. 조롱을 당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십자가 패키지여행’에 포함되는 한 과정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습니다’라고 고백하더라도,
실제 그 과정은, 대단히 힘들고,
한 과정, 한 과정이 다 힘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십자가는 ‘원 포인트 죽음’이라기 보다는,
‘겟세마네 동산’부터 시작되어 ~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시는
여러 과정이 패키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과정, 한 과정이 다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내 마음에서 다 방면해버리고
‘이제는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지점을 거쳐서
모든 세상의 가치를 놓아버릴 때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는 거예요.
그 다음에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사람들은 바라바를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바라바보다 못한 존재이십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신 이유는,
다 이 세상 가치를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자고 하는
세상의 가치와 거스르는 복음을 주장하다 보면.. 당연히 미움 받게 돼있지요.
참 성도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도들도
그런 똑같은 미움과, 거절을 당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는, 부활이 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
세상에서 가장 말단인 사람들에게서조차
예수님은 죄인으로서, 수모와 수난을 당하십니다.
백부장도 아니요, 사령관도 아니요,
가장 비천한 사람들에게서조차.. 조롱과 수난을 당하셔야 하셨던 주님!
-십자가의 길이.. 바로 그런 조롱과 수난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했습니다.
자기는 '세상의 찌기와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고전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사도바울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마찬가집니다.
히10: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십자가에서 이런 과정을 통하여 주님과 함께 죽자마자
십자가 너머에 있던 천국이 우리 마음에 확 열리고 천국으로 가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우리 몸은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아버지가 주인이 되셔서 소원하시고 계획하시고 이끌어가시게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기독교신앙입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권능은.. 다음 기회에 나누기로 하고요!)
기도/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를 향하여 겟세마네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천국여행의 패키지 과정’으로 이루어갈 수 있게 해주시고,
이 여행이 날마다 눈 뜨면 매일같이 이루어져서
매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고, 매일 내 몸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살아가시는
귀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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