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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회상한즉.. 본심이 아니시로다

LNCK 2012. 7. 26. 15:35

◈중심에 회상한즉..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가3:19~39       출처



도시에서만 생활하던 어느 한 사역자가 시골로 집을 얻어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시골생활에 대한 환상으로

여기저기 무도 심고, 배추도 심고, 밭도 갈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 자라기를 바라는 배추나 무는 잘 자라지 않고

마당에 온통 쑥만 잔뜩 자라나 있었습니다.


이 쑥들은 아무리 잘라내고 뽑아내도, 하루만 지나면 또 쑥쑥 올라오고,

비만 오고나면 또 쑥쑥 자라서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당만 쳐다보면 온통 쑥 천지라서 "이놈의 쑥, 이놈의 쑥" 하면서

당장 제초제를 사다가 뿌려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집에 장모님이 오셨다가 마당 가득한 쑥을 보고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와, 쑥 봐라..." 그리고는 당장에 팔을 걷어 부치고

쑥을 캐서는 쑥떡을 만들어서, 온 가족이 먹었습니다.


그 다음날 서울에서 오신 어느 권사님이 찾아오셨는데,

이 분도 마당 가득한 쑥을 보고는 "와 쑥이다" 하시더니

금방 그 쑥을 캐서는 튀김옷을 입혀서, 쑥 튀김을 금방 만들어 내더랍니다.


여러분 보세요. 똑같은 쑥을 보고 ‘이놈의 쑥..’ 하는 사람이 있고,

‘와 쑥이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환경을 보고

‘이놈의 망할 쑥대밭 같은 이놈의 세상’ 하는 사람이 있고,

‘와 쑥 천지다, 와 멋진 세상이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원망과 감사가 조건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 조건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은, 감사가 많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주로 그 조건이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같은 곳에 자라는 같은 쑥을 보고

‘이놈의 쑥, 지긋지긋한 쑥’ 하면서, 그걸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와 쑥이다!’ 라고 하면서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의 문제입니까? 결국은 마음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입니다.

저 쑥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고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보는 사람은

‘이놈의 몹쓸 쑥’이 되는 것이고,


‘이 쑥은 참 맛있고 영양가 있는 보약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사람은

그 쑥이 귀하고 감사해서 ‘와 쑥 천지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부르고 계십니까?

‘이놈의 환경, 이놈의 세상..’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와 즐거운 이 세상, 귀하고 귀한 이 세상!’ 이렇게 부르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어떻게 부르든지 그것은 곧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하며,

여러분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그대로 보여줄 뿐 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결코 해로운 것, 쓸데없는 것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생약을 다루는 분들이 하는 말이 있지요.

"모든 병에는 거기에 맞는 약이 반드시 있다.

자연 속에는 인간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다 들어 있는데

보통 때는 독으로 사용되는 것도.. 잘 쓰면 기가 막힌 영약이 된다"


여러분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버릴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 쓸모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당에 꽃도 있고, 채소도 있고, 쑥도 자라는데

우리 보기에는 꽃과 채소만 유익하고 좋은 것 같고,

쑥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우리를 귀찮게만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 마당에 그 쑥을 자라게 하실 때에는

그 쑥도 반드시 쓸모가 있기 때문에 주신 것이고,

언젠가는 그것이 정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형통은 좋아하지만 고난은 싫어합니다.

달콤한 영광은 내 인생에 유익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쓰디쓴 실패나 고통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내 생활이 형통하고 달콤할 때에는 감사하고 기뻐하지만

어려움이 오고 시련이나 장애물이 생길 때에는

그만 원망과 절망에 이르러 버립니다.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본문 설명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레미야 애가>라고 불리는 성경의 한부분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은 애가(슬픔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시작부분을 보세요.. 그 슬픔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1:1~2,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이런 괴로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3:1~18절까지를 읽어보십시오. 참으로 비통한 노래지요?


그 고통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3:19~20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통곡하던 선지자가 불현듯 무언가를 깨닫고는

21절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있다.."

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어떻게 그렇게 비통하게 통곡하던 선지자가, 갑자기 소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눈물과 한숨과 통곡에 빠져 있던 선지자가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하고 밝아지면서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전환점이 바로 21절에 "중심에 회상한즉.."

즉, 마음에 깊이 생각을 해 보았더니... 오히려 소망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는 고통 중에서 깊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소망이 찾아왔습니다.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본심이 아니시로다!

고난을 주시고, 근심하게 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 마음이 아니시다..

이것을 생각하고 깨달으니까.. 오히려 소망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이 모든 일이 있을 것을, 하나님께로 부터 듣고는

이 일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신 일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2절,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분.


23절,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매일 아침마다, 그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성실하신 분


25절,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선을 베푸시는 분


32절,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결국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


이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생각해보니까

지금 환란과 고난이, 우리를 괴롭히고 죽이기 위해 허락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예레미야는, 믿게 되었습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실 때에는

이 환란이나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에.. 허락하신 것이지


결코 우리를 죽이기나 벌하시기 위해

미워서 주시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고난의 현실과 환경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고난이란 쓸모없는 것이고, 고생만 죽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나니까

고난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고,


환란도 고통도 지금 우리에게 무언가 유익하기에

주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27 멍에를 메고 힘들다고 불평을 하는데 그냥 조용히 잠잠하고 앉아 있어라..

28 왜냐하면 주께서 그것을 너에게 메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멍에를 주실 때에는 그 멍에에 담긴 뜻이 있고,

지금 멍에를 지는 것이 너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니까

잔소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을 아시지요?

그가 서울대 4학년때 근육무기력증으로 불치병 선고를 받고 누워있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었습니다. 근육을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그 때 누워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책을 읽었습니다. 피곤에 지칠 때까지.

그리고 3년 만에, 은혜로 병을 치료받고 일어났을 때

그는 수 백 권의 중요한 책을 다 읽은, 준비된 경영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고난의 때를 원망과 한숨으로만 보냈다면

다시 건강해지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혹시 건강해져도, 허송세월만 보내서 낙오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를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알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는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노처녀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짝을 안 주실까?’ 원망하며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답니다.

그 때 어느 선배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남편과 아이 둘을 보면 말도 못 꺼낸다..

처녀 때 독신으로 있을 때, 독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했더라면,

오늘 이렇게 후회하지 않을 텐데...’


독신의 세월을 오래 주신다면, 그걸 원망하거나 낙망의 시간으로 삼지 말고,

그 때가 아니면 못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것이 독신의 시간을 길게 주신 하나님의 인도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최선의 것을 주셨다...는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십시다.


시간이 많으면.. 할 일(직업)이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많은 시간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바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적극성을 가지십시오.


반대로, 너무 바빠서 쉴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직무에 시달리는 분이 있으신가요?

일이 많은 것을 불평하지 말고,

그렇게 많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고

그 다양한 일 속에서 경험과 자기 분야를 넓히고,

또 시간 사용하는 지혜를 배우십시오.


우선순위를 매겨 일하는 법, 일의 핵심을 붙잡는 법,

여러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은 ‘언제 그 많은 일을 다하냐?’

남들은 며칠간 끙끙 대는 것을, 자기는 하루 만에 해내는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시간, 환경, 사람, 일..

우리에게 유익하기에 주신 것이요, 필요하기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버릴 것이 없습니다.


힘들거나 어렵다고 생각될 때

1.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본심이 아니시로다."

2. 그리고 중심에 회상합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찬송가에도 있잖아요.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그래서 소망을 회복하십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으십시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할 수 있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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