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4~2005

나는 가시밭? 3770

LNCK 2012. 8. 24. 20:54

◈나는 가시밭?              눅8:9~15          출처보기


◑서론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제가 이 교회에서 사역한지 만 25년이 됩니다.

지금까지 25년 동안 저는 한 가지 일념 하에 목회해왔다고 감히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 지에 대해 저의  첫 번째 생각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간단히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하여

예수님이 원하는 제자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생각은, ‘바울이 보여준 목회의 모델을 따라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명령을 가장 잘 순종한 목회자입니다.

선교사이면서도 목회자로서 탁월한 모범을 보였습니다.


골1:28~29절을 보면 이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곧 예수 믿는 각 사람을 그분을 닮은 온전한 제자로 만드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으며 노력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보여준 목회의 모범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바울이 보여준 목회의 모범을

나도 그대로 받아들여 교회를 목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따라서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했고,

목회의 여러 가지 일 가운데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을 가장 우선하면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아시다시피 20년이 넘도록 다락방 교재를 제가 손수 만들어

좀 더 풍성하게 말씀을 가르치려고 애써왔고

제자훈련, 사역훈련 등 모든 교재를 직접 만들어

평신도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렇게 25년 동안 말씀을 가르쳐 제자 삼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목회해 왔는데,

한 번도 이것이 뒤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좌우로 두리번거리면서 방황한 일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제가 예수님 앞에 선다고 할지라도

감히 이런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부족한 종이지만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제자 만들라는 주님의 명령에 최선을 다해 순종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이런 저의 소박한 자세와 목회철학을 하나님께서 귀히 보셨는지,

분수에 지나치도록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받은 복도 엄청나지만,

제 목회를 통해서 영향을 받아 똑같은 목회철학과 목회방법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려 하는 훌륭한 동역자들이 국내외에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아름다운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다음은 우리 교회가 미치고 있는 영향 중 한 ‘이례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주1)



◑본론/ 4가지 밭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다루고,

그 말씀을 생명처럼 가르치는 이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 생활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가르치는 말씀을 어떤 마음의 자세로 듣고 배우고 받았습니까?


이와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4가지 밭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길가 밭은 씨가 떨어져도 금방 새가 와서 먹어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돌 밭은 씨가 떨어지면 잠깐 싹이 나지만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 곧 말라 버립니다.

가시 밭은 땅이 비옥하여 씨가 떨어지면 자라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가 햇살을 받지 못해 여물지 못합니다.

좋은 땅은 씨가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고 나중에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합니다.


▲1. ‘길가 밭’은 우리 중에 없습니다.

주님은 씨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사람의 마음은 길가 밭과 같아서

그 말씀이 전혀 마음에 새겨지지 않고 금방 잊혀지고 맙니다.

주님을 이를 가리켜 마귀가 와서 듣는 데로 말씀을 빼앗아버린다고 해석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누구도 길가 밭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은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2. ‘돌 밭’과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신 분도, 이 자리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예수를 처음 믿고 나서 말씀을 받고는 '내가 믿어야 되겠다.'며

스스로 결심하고 신앙고백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좋지 않은 반응이나 가정에서의 핍박,

직장에서의 걸림돌 등이 있는데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배하는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은, 그 마음이 돌 밭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3. 교회에 ‘가시 밭’이 많습니다.               ← highlight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의외로 교회 안에는 가시밭과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 중에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간에는, ‘가시 밭’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이미 예수를 믿고, 성령을 모시고 사는 내 마음에, 왜 가시떨기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내가 가시떨기를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가시떨기 때문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그것을 뿌리 채 뽑으려고 몸부림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농사짓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 가난할 때는 산비탈에 손바닥만 한 땅만 있어도, 그것을 밭으로 개간해서

무엇이든 씨를 뿌려 농사를 지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새로 개간한 땅이라서, 가시떨기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농부가 그것을 가만 놔두는 것이 아니라,

괭이를 가지고 찍어서 뽑아 버립니다.


그런데도 또 다시 가시가 자라나면, 그것이 안 자랄 때까지

한 번이든 열 번이든 뽑아 버립니다.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온 밭에 가시가 퍼져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을 받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 갈 때,

행여 내 마음에 가시가 보이면.. 즉시 회개하고 그것을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가시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 때문에.. 아무리 듣고 배워도, 결과가 신통치 않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은혜 받는 것도 많지 않을뿐더러,

그 말씀이 내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아름다운 행복도 맛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있는 가시가 말씀을 짓눌러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입니다.


◑가시밭 신자


주님께서는 이 가시를 3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재리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4절


첫째는 여러 가지 세상의 염려이고,

둘째는 재물에 대한 탐욕,

셋째는 일락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고생할 생각은 안하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려고만 하는 쾌락주의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일컬어, ‘가시떨기’가 그 마음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3가지만 말씀하셨다고 해서

내 마음에 있는 가시가 3가지 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 완악함, 음란, 게으름, 고집 등 도 다른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3가지가 대표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말씀을 저항하는 저항 세력입니다.

말씀과 충돌하는 악한 심성입니다.

말씀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육적인 것들입니다.


왜 이런 것들이 내 마음에 있는 것일까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밭을 개간하는 농부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뽑아내려고 작정하면

절대 내 마음 속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1. 염려의 가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또한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과 권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좋은 마음으로 받기만 하면

세상적인 염려가 말씀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가지신 아버지, 자비로우신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가 세상에 사는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며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1~34)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성경에 있는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받으면

어떤 염려도 내 마음에 계속해서 틀어 앉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재물에 대한 탐욕, 애정, 사랑을 가차 없이 정리하고

그것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줍니다.


▲2. 재물의 가시

하나님은 재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딤전6:17)

우리가 이 말씀에 동의하면 재물에 대한 애착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10)

이 말씀에 "아멘" 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서 재물에 대한 탐욕을 소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이 경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재물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그대로 담아둘 수 없습니다.

 

▲3. 일락의 가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우리 마음에 있는 쾌락을 없애줍니다.

성령의 사람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옛날처럼 정과 욕심에 따라 '즐기자, 마시자' 하며

육신의 기쁨을 위해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정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5:6) 

세상에서 즐기려고 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충분히 우리 마음에 있는 가시를 제거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내가 그대로 허용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염려 좀 했다고, 돈 좀 사랑했다고,

인생을 좀 즐기자고 했다고 해서..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것들이 내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으면

가시처럼 세력이 점점 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공부해도

그것이 내 마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열매 맺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열심히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지만

어떤 감격스러운 변화나 삶의 열매가 잘 보이지 않는 다면

한번 스스로 반성해보십시오.

그것은 내 마음에 있는 가시와 같은 나쁜 것들이 말씀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도록, 가시가 그 말씀의 생명을 조이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으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신자들

그러면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왜 이렇게 좋지 못한 것(가시)을, 우리 마음에 계속 허용하고 있을까요?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도 왜 이것을 뽑아 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허용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의 교만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복종해야 될 권위를 가진 절체 절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에 있는 좋지 못한 것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독특한 권위를 갖고 계십니다. 그분은 창조자요,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다른 존재가 존재하기도 전에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여호와, 곧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 존재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런 자존하시는 존재 앞에, 모든 피조물들은, 무조건 복종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는 일을 통해

우리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보여주십니다.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죄로부터 오염된 인간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계속 공급해주시고, 돌보시며, 필요한 것들을 허락해 주십니다.

온 우주 가운데 하나님만큼 존귀하시고 높으신 분도 없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영광스러운 일은, 세세 무궁토록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위가 성경말씀에 그대로 이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바로 성경의 권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직접 친히 말씀’ 하시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하시기를’과 동일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직접 말씀'과 권위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런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은 성경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이것을 믿어라. 이렇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여기에 주석을 달 자격이 없습니다.

가타부타 어떤 이야기를 할 권리가 없습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복종해야 합니다.

유명한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성경을 경외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권위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가시를 뽑아버리려고, 기도하며 분투하십시다.

우리가 이 권위를 전적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는 가시 같은 것들을

내 마음 속에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금식을 하고 회개를 해서라도 이런 나쁜 것들이 없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해도 염려하고,

재물을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사랑하고,

쾌락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시 같은 것을 마음에 그대로 놓고

말씀 듣고 배우고 훈련 받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는 ‘가시밭’처럼, 가시에 막혀,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없는 가지는..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기 식대로 듣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도 속에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100% 순응하지 않는, 어떤 일면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돈 없이 어떻게 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에도 순종해야 될 말씀으로 배우기보다

그저 알고 싶은 말씀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문제

지난 20년이 넘도록 교회에서 열심히 말씀을 듣고, 다락방에서 공부하고,

제자훈련을 하면서도 바람직한 변화와 열매가 보이지 않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교회는 다니고 계십니다.

제가 영적으로 판단할 때 변화나 성장이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마음이 가시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말씀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두 편으로 나누어집니다.

한 편은 절대 구원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7:20~21)


따라서 열매가 없는데, 순종을 안 하는데

어떻게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냐며 극단적으로 해석합니다.


다른 한 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비록 가시떨기를 마음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해서 부르셨다면, 때가 되어 은혜를 주심으로

가시떨기가 마음에서 사라지고 좋은 밭을 이루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자녀가 될 것이기에 반드시 구원이 있다."


저는 두 번째 해석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제가 많은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래 동안 가시밭이었지만, 나중에 그 마음이 좋은 밭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너무나 아름답게 헌신하는 자랑스러운 성도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한때 그분들은 가시 밭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좋은 밭을 가진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음에 가시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이 자리까지 부르신 것은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때가 되면 지금 내가 허용하고 있는 가시들을 파내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좋은 밭이 된다 하여

현 상태로 신앙생활을 해도 되겠다고 판단하지는 마십시오.

우리에게 내일이란 없습니다. 언제 종말이 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주님 앞에 내 마음이 착한 마음으로 바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밭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번째 땅은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15절)


저는 '착하고 좋은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처럼 받들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으려고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배들처럼 그대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10)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이렇게 말씀 앞에 마음을 열고 엎드리는 자가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연구할 때, 자기 의견이나 주석을 달지 않습니다.

무조건 "아멘" 하는 마음이 좋은 마음입니다.


이런 자에게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곧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마13:23)


우리 마음 속 가장 은밀한 데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들어 말씀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말씀을 회상합니다. 암송합니다. 묵상합니다. 즐거워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받는 자는 즐겁게 순종합니다.

지킬 때까지 말씀을 배웁니다. 지킬 때까지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 말씀이 내 삶에 적용이 될 때까지 노력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모두 깨닫고, 즐겁게 순하고, 열매 맺길 바랍니다. 


그러면 과연 열매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번 이 열매를 3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리 영혼이 강건해지는 열매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육신은 음식을 먹어야 삽니다. 그러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고 키워 봐서 알겠지만, 아이가 날마다 먹고 마셔서

몸만 건장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보다 건강한 정신력, 내적으로 아주 강한 인격이 되기를 원합니다.


혼자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떳떳하게 처리하면서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자녀를 원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건강하게 90세, 100세까지

장수하기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 건강한 영혼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영혼이 건강하지 못하면 우리는 비정상적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갖 유혹의 소리에, 우리의 영혼이 더럽혀 질 뿐 아니라, 죄를 이길 수도 없습니다.

영혼이 병들면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면 내 영혼이 건강해지는 축복을 누립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명포수 짐 코벳과 쿠마온의 식인호랑이>라는 특이한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식인 호랑이를 잡는 이야기인데, 읽어 가면서 제게 여러 가지 생각을 던져 주었습니다.


짐 코벳(Jim Corbett)은 인도 북부 히말라야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뛰어난 직감과 탁월한 사격술을 지닌 명포수였습니다.


그런데 참파와트의 식인 호랑이가 1907년부터 약 31년 동안

436명의 사람을 잡아먹었습니다.


따라서 이 호랑이가 다니는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마을들은 전부 황폐화되어 버렸습니다.

주민들은 공포에 짓눌려 동네를 떠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짐 코벳이라는 명사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이 호랑이를 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국 그가 생명을 걸고 호랑이와 대결한 결과, 나중에는 잡게 되었는데,

한 가지 의문점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거참 이상하다. 436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잡아먹을 정도로, 사람만 먹는 호랑이라니....’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랑이를 창조하셨을 때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잡아먹으라고 창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호랑이는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사람만 잡아먹느냐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1로 대결하여 잡은 호랑이 가죽을 벗기면서

비로소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호랑이는 송곳니가 아래 위로 4개가 있어 사냥하기에 편합니다.

그런데 이 호랑이는, 오른 쪽 위 아래 있는 송곳니 2개가 전부 없어져버렸습니다.

왼쪽 송곳니도 반쯤 부서져서 시원찮았습니다.


아마 사냥꾼이 쏜 총탄이 빗겨가면서 송곳니를 부숴버렸는지,

위쪽은 하나도 없고, 아래쪽에만 반쯤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호랑이가 사람만 잡아먹었던 것입니다.

송곳니가 없이는 짐승을 잡을 수도 없거니와, 잡았다 해도 다 놓치고 맙니다.

따라서 배가 고픈 나머지, 사람만 잡아먹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내 영혼도 건강하지 못하면, 비정상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할 때

내 영혼이 강건해진다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혼자 걸어갈 수 없는 길들이 많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내 인생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해 하루하루 초라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순종하길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생 길을 인도하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하나님은 말씀으로

내가 걸어가는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빛이 되어 인도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소원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온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딤후3:16-17)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은 말씀 앞에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받으면,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은 온전한 자로 바뀌어가고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좇아가는 온전한 자의 삶으로 바뀌어간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주님이 우리 손에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말씀을 듣고 배우고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그 인격이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아름다운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나의 생각과 감성, 모든 삶의 목표가 예수님께서 기뻐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의 인격과 삶이

주님을 닮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발전하면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 흠과 티가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거룩한 자녀로 서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는 열매 맺는 좋은 밭을 마음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우리 안에서 열매 맺도록 노력합시다.


가시를 허용하지 마십시오.

염려가 마음을 차지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재리에 대한 욕심이 내 마음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쾌락(일락)이 내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려는 모든 가시들을 다 뽑아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주여, 말씀하시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가시밭입니까? 좋은 밭입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수없이 듣고 배운 결과

나타난 말씀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열매를 구하신다면, 어떤 열매를 내놓겠습니까?

영혼의 강건함입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사는 삶입니까?

아니면 주님이 보시기에 온전한 인격과 생활입니까?


어떠한 열매를 주님 앞에 내어 놓겠습니까?

한번 스스로 물어보면서 우리의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주1)  다음은 우리 교회가 미치고 있는 영향 중 한 ‘이례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며칠 전 유력한 모 일간지에 소개된 '능인선원'에 관한 기사를 읽으셨을 것입니다.


능인선원은 1984년 지광(智光) 스님을 통해서 개척되었습니다.

그것도 우리 교회에서 직선거리로 100m도 안 되는 삼익상가에 자리 잡았었는데,

그 후 굉장히 부흥하여 밖으로 크게 건물을 짓고 나갔습니다.


능인선원은 불교대학으로도 유명합니다. 지광 스님에 의해 시작된 불교대학은

기초반에서 대학원 코스까지 있는데, 평신도들이 전부 그 코스를 밟도록 되어있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 코스를 거쳐 갔는데,

지금 불교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그분은 "불교 신자들이 불교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그래서 복 달라고만 매달리는데 이것은 큰 문제다."라고 지적하면서,

"교육이 없이는 한국 불교의 미래가 없다."는 표어 아래

가르침을 통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제게 이런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언젠가 지광 스님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삼익상가에서 능인선원을 시작했는데, 바로 그 옆에 S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보니까, 목회자가 제자훈련을 열심히 시키더군요.


그것도 성경을 막연히 가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제가 힌트를 얻어

우리 불교에서도 가르치고 훈련하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좀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은연중에 불교 진흥에까지 기여할 정도로

저희 사랑의교회가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