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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

LNCK 2012. 9. 3. 22:38

◈염려하지 말라           마6:25~34             출처보기



마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따라서 온전해지려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애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은 온전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세상과 다릅니다.

본문은, 크리스천들이 ‘염려’라는 문제에서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설명해 줍니다.


안 믿는 분들은 ‘걱정도 팔자!’라는 말처럼, 염려 속에 파묻혀 인생을 살아가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염려를 극복하여

보다 온전한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염려’에 대한 오해


마6:25절을 보면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칫 오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1. 우선 염려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고민할 일에는,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끼니때면 “뭘 먹을까?”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고민하기도 합니다.


다이어트를 하기 때문에 먹는 것도 신경써야하고,

당뇨나 건강 때문에 가려먹어야 하고,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아무거나 먹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식생활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나 고민을 <염려>라고 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염려>라고 말씀합니다. :25


그러니까 염려란, 무엇을 먹을까 선택을 할 때,

마치 먹을 것이 없어서, 목숨 걸고 먹을 것을 찾는 것처럼.. 고민하는 것을 말합니다.

 

염려란 목숨 걸 일이 아닌 것에, 목숨 걸고 고민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염려란 도를 넘어선 고민을 말하고,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고민 때문에, 더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는 고민을 말합니다.


▲2. 다음으로 염려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수고할 일에는,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립니다.

농사도 짓고, 돈도 벌고, 밥도 짓고, 음식도 만듭니다.


이렇게 먹을 것을 위해, 몸부림치며 땀 흘려 노력하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조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새들도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 힘들여 날아갑니다.

때론 다른 새들과 경쟁하며 다투기도 합니다. 삼켜 소화하는 수고를 합니다.

그러나 그 수고는 보조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이를 준비해 주셨고, 필요할 때 챙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들을 먹이시기 위한 수고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만 새들은 하나님의 수고의 열매를 먹을 뿐입니다.


염려란.. 사람들이 마치 자기들이 먹을 것을, 자기가 준비하는 것처럼 몸부림치며

땀 흘리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수고를 외면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려고, 애를 태우고 몸부림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셨는데, 그것을 모르고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자기 힘으로 뭔가 해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말합니다.


▲3. 또 하나 염려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소원도 없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정당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많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그 소원과 바람을 이루기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쓰고 몸부림칩니다.

이것을 <염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33절을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품고

그 다음으로 자신의 소원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우선 순위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간절한 소원 못지않게

자기의 소원이 점점 더 중요해 집니다.


그러다가 우선순위가 역전이 됩니다.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원’보다 앞세우게 됩니다.


염려란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소원’보다

‘다른 소원’을 앞세울 때.. 그 소원을 비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러면 염려란 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헬라어 원어로 ‘염려하다’라는 말은 ‘메림나오’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메리조’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이 메리조라는 동사의 뜻은 ‘나누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염려라는 말의 근본적인 뜻은, 마음이 나뉘어진 것입니다.


고전7:33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결혼하기 전에는 오직 주만 섬기던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 아내를 사랑하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누이게 됩니다.

그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이런 상태가 염려입니다.


우리가 세상 일에 고민이 지나쳐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세상 일’로 나눠지게 되는 것이 염려입니다.


우리가 ‘세상 일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한 바람’으로 마음이 나뉘게 되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가요?>

본문을 살펴보면, 우리가 염려를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1. 깨달아야 합니다.


▲1. 우선 세상에는, 염려해도 안 되는(소용 없는) 일이 있습니다.

소위 백해무익한 염려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말씀하셨습니다. :27


키가 작아서 고민인 사람이 염려한다고.. 그 키가 자랄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염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염려의 한계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 힘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이루어내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에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이루어 낼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역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변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차분히 생각해 보면, 염려할 필요가 없는데

어리석게 속아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2. 염려는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열자(列子)라는 책에 보면, 옛날 기(杞)나라에 염려하고 걱정하는 바람에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던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이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면서 걱정하는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땅이 꺼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것이 염려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염려 걱정을 한다는 뜻으로

기우(杞憂)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杞)나라는 기원전 12 세기 경에 지금의 하남성 지역에 있던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나라는 주(周)나라입니다.


중국 땅이 하도 크니까 주나라 성왕은 땅을 친족이나 공신들에게 나눠주어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杞)나라는 그 중에서도

나라 잃은 유민들이 모여 살던 힘 없고 작은 나라였습니다.

늘 설움과 천대를 받았고, 어느 나라가 어떻게 공격해 오지는 않을까 늘 염려하고

불안에 떨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기나라 사람들은 염려가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염려는 하나의 습관입니다. 늘 염려하던 사람들이 염려합니다.

염려가 습관이 되다보니,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가져다가 염려하게 됩니다.


염려가 하나의 생활이 됩니다. 우리는 염려가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염려할 때 이미 내게 염려가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3. 염려는 불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래된 팝송 하나가 생각이 납니다.

‘Don't Worry Be Happy’라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 가사 가운데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Don't worry, be happy.

  In every life we have some trouble, but when you worry you make it double.

  Don't worry, be happy.


  염려하지 마세요. 행복하게 사세요.

  누구나 힘겨운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면 배가 됩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세요. 행복하게 사세요.


이 가사 그대로 염려는 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그래서 염려는 하면 할수록 손해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 믿어야 합니다.


30절을 보면 염려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니까 염려는 곧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염려합니다.


앞에서 살핀 대로 염려는 마음이 나뉜 상태를 말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 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믿음 하나로만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세상 일’에 대한 마음으로 나뉘면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점점 약해지고 믿음이 적어집니다.

그 믿음이 적어진 마음의 공간에 염려가 채워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키우면 염려는 반비례해서 사라지게 됩니다.


▲1. 우선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32절을 보면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그 때 돌아보니 수풀 속에 수양이 뿔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수양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필요를 미리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30절,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공중의 새보다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저 하루살이 들풀보다 훨씬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따라 채우시고, 풍성케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문제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문제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만 몰두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염려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단락 펀 글)

제가 어느 부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주 부자입니다.

그는 평생 돈을 벌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쓴 분입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분이었는데, 최근에 만나보니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아주 심한 당뇨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이분의 식단은,

보리밥과 두부 한 모..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을 먹으려고, 이제까지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이제 죽는 그날까지, 그저 먹어봐야 보리밥에다가, 두부에다..

뭐 그런 간단한 음식밖에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남은 평생 동안 그렇게만 먹고 살다가.. 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저분처럼 돈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고,

이것저것 아이스크림도 먹고 다 먹을 수 있으니, 저 분보다는 행복한 거구나..’

만약에 저 분의 삶을, 내 삶과 바꾸고자 하면.. 저는 아마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가 보리밥 먹다가 인생을 마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분이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예 돈이 없으면, 그냥 그렇게 보리밥 먹는 것이 뭐가 그렇게 안타깝겠습니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분명히 먹고 싶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가 있는데,

보리밥과 두부 밖에는 못 드시니까, 얼마나 불쌍한가요!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암으로 죽음을 코앞에 둔 분들입니다.

연로하면, 대부분 다 폐렴이나,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그 병은 주로 폐렴, 또는 암이었습니다.


문제는, 죽어가면서 그분들이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제가 천국 갈 수 있나요?’


제가 그렇게 물어보는 분들에게

‘당신은 천국 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만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제가 보기에 ‘이분은 정말 귀한 신앙으로 살아오셨어!’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 생활을 보시지 않고, 그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정말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 졌는가?

평소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했는가?’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잘한 분이나, 잘 못한 분들이나 다들 두려워하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조금 있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데,

과연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에 따라, 이 분의 영원한 삶이 결정됩니다.

영원히 천국에 들어가 살든지, 영원히 지옥에서 살든지..


당뇨병에 걸리신 그 부자도, 자기에게 그날이 올 줄은 다 몰랐다는 겁니다.

설마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다 옵니다. 저도 물론 그런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하루 하루를, 준비하며 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매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성도는,

‘장래’를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대망하게 됩니다. 그 날이 속히 오기를!


▲마치는 말

여러분! 성도가 안 믿는 분들과 다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염려 문제입니다.

염려하지 않는다고, 배짱이처럼 탈속세 해서 신선처럼 사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크리스천도, 세상 삶 속에서 개미처럼 치열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고민도 하고, 수고도 하고, 미래의 소원도 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목숨을 걸만큼> 고민/수고/소원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어떤 경우에도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나는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내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기고, 전적으로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헌신한다면

나는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염려를 떨쳐버리고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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