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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혼을 사고 파는..

LNCK 2012. 9. 11. 20:44

◈사람의 영혼을 사고 파는..       계18:12~13     인터넷에서 스크랩, 정리 요7강



◑자기 PR에 휘둘린 기독교 신앙


지금은 자기 PR시대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나 좀 알아 달라” 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회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들 세상에서는 ‘남들이 많이 알아주는 것’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외면당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연예인들입니다.

연예인들은 사람의 시선을 먹고 사는 자들입니다.

흔히 인기라고 하지요.

인기가 높아야 자기 가치가 상승되고, 가치의 상승과 함께 부(富)와 명예가 따라 옵니다.


이는 운동선수나 정치인이나 동일합니다.

그런데 목회자도, 그런 시대 흐름에, 예외가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출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누가 나를 알아주면, 기분이 좋지요.

교회에서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으면..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사랑이 있느니 없느니 라는 핑계로

자기를 알아주는 교회로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 교인들은, 진리를 따라서 움직이지 않고,

자기 인기를 위하여..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닙니다.  


작은 교회라도.. 자기를 알아주면 ‘좋은’ 교회이고,  

아무리 큰 교회라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별로’인 교회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기, 명예’라는 우상과, 힘써 싸워야 한다는 것이.. 이 설교문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를 본능적으로 내세우게 되는데,

얼마나 열심인지, 마치 상품을 파는 것처럼, 자기 PR에 열심 내는 것을 봅니다.

이름하여 충성이고, 봉사입니다.    *Public Relation :공공기관의 <홍보>에서 나온 말


“난 이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 가치를 좀 알아주세요! 라고 합니다.


여러분 교인의 상품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을, ‘좋은 신앙’이라고 추켜세웁니다.

‘좋은 신앙’을 가진 자가 많은 교회는, 자연히 좋은 교회로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좋은 신앙’을 가진 교인들을, 마치 상품처럼 홍보합니다.

좋은 상품이라고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 진열하고 선전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좋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와서 함께 신앙생활을 합시다!’ 라고 마치 호객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고

목사의 말에 순종하여서 좋은 상품이 되라고 합니다.


   ※표현이 과격한 것은, <본질 회복>을 위해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과거에 한 때, 이랬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사람의 영혼을 팔고 사는 <종교마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타락한 교회를 ‘음녀’라고 하였어요.


음녀가 무슨 짓을 하는가 하면, 사람의 영혼을 팔고 산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계18:12-13,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이 시대 (일부) 목회자나 교인들은, 교회에 진열된 상품들입니다.

목사가 사람을 잘 모으면, 능력을 인정받아서, 부가가치가 높아집니다.


지금은 세상 모든 것이 상품화 되어 거래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모두가 사고 팔려지는 상품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인들까지도,

-그의 신앙이 얼마나 진실한가? .. 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신앙이 얼마나 유능한가? .. 에 의해서, 어떤 가치가 매겨지고 있습니다.

 

유능한 교인을.. 훌륭한 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 유지에 유능하지 못한 교인은.. 훌륭한 교인이 아닙니다.


▶비슷하게 여러분들은, 자녀들을 왜 좋은 대학에 보내고자 합니까?

좋은 대학이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대학입니다.


좋은 대학 나와야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고, 빨리 출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과외를 시키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혈안입니다.


대학교들마다 명문대학이 되고자 애쓰고

학생들을 세상에서 잘 팔려나가는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사회에 내어 놓고자

서로 경쟁하며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상품’들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는 모두가, 마귀가, 세상을, 돈의 가치로 척도를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교회마다 홈 페이지를 만들고, 목사들마다 개인 블로그를 만드는 것도

‘나를 좀 알아 달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순수한 분들도 많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라는 상품, 목회자라는 상품을

무슨 상품설명회 하듯 진열해 놓고, 호객하고 있습니다.


물론 불신자 전도도 해야 하고,

영혼 구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홍보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마케팅’하듯이

신앙의 본질 회복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PR 잘 해서, 많이 모으면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난 20~30년 동안

신앙의 본질 회복 보다는, 무조건 성장 쪽으로, 모두가 숨 가쁘게 달려 왔습니다.

이제는 성장에도 시큰둥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지 않습니다.

성장이 정답이 아닌 것은, 성장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비운, 세례요한


지금은 ‘성공한 신자, 목회자’보다는,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는’ 세례요한 같은 신자, 목회자가 많이 나와야

기독교의 본질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사람의 인기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타인에게 돌리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요즘 세상 가치로 본다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입니다.

세상은 모두가 날 알아 달라고 하는데

세례요한은 지금 “난 아니야!” 라고, 자기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을 너무 감상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다.

사도바울은 자기 안에 ‘또 다른 자기’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롬 7장)

신앙생활이란.. 자기 안에 있는, 아주 욕심 많은 ‘또 다른 자기’와

피 터지게 싸우는 싸움입니다. 


내가 나를 이기면..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되지만,

‘내 안에 있는 나’가 나를 이기면.. 예수님이 나의 종처럼, 부림을 당하게 됩니다.


인간 본성으로 보면, 지금 세례요한은 엄청나게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출세 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교회에 수많은 성도들이, 설교가 좋다고 벌 떼같이 몰려오는데,

제가 ‘여러분! 저 보다, 옆에 교회 목사님이, 복음을 훨씬 더 잘 전하니,

다 그곳으로 가시라’고 내쫓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할 기독교 본질 중 하나가

이런 자기부인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스스로 선지자라고, 사람들에게 알아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세례요한을, 선지자라고 따랐을 뿐입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인기에는.. 전혀 관심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냐?’ 라고 묻는 것은

세례요한이 하는 행동들이 ‘그리스도 같다’ 라는 생각을 갖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님을, ‘메시아’ 라고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세례를 받는 사람보다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무도 메시아로 보지 않고,

세례요한을 메시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 자기 부인에 있어서 막상막하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얼마든지 스스로 그리스도 행세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스스로가 그리스도 행세를 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그는 그리스도’라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사람들은, 사회적 배경이 메시야를 학수고대 하던 시대였습니다.

강력한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 주기를 소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혜성처럼 나타났습니다.

하는 일이 범상치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의 지도자라고 하는, 종교꾼들과는 달랐습니다.

삶 자체가 가죽 옷을 입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이 모습은, 구약의 엘리야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연히 선지자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성 안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세상 부귀영화를 탐하던 제사장 무리들과는 달랐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유지하려고

자기 이미지 관리를 하는 바리새인들과 달랐습니다.


세속화되지 않고 청빈하게 살았기 때문에

타락한 종교인들에 비해서 훨씬 상품적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권력자들에게 거침없는 말을 하니

백성들에게 자연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대 최고라고 하는 제사장 그룹들을 거침없는 독설(毒舌)로 몰아 칠 수 있는 것은

메시야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겠다고 따랐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세상에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성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람이란? 두 세 사람만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도

자신의 능력을 부풀려서 유명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세력을 만들고, 거기서 왕 노릇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 스스로 왕 노릇하고자 한단 말입니다.


이렇게 자기 PR해서, 유명세를 타고, 세인의 인정을 받는 것은.. 일면 좋지만,

그런 와중에, 정작 본질적 신앙이 점점 묽어져 가는diluted 것입니다.


그래서 몇 년 지나면.. 유명하게는 되었는데

뭔가 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만큼, 영성이 뒤따라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걍 명사(셀레버리티)같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유명은 한데, 그 속에, 사람들을 이끌고 나갈 만한 영성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억지로라도 남에게서 인정받고자 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힘이 곧 진리입니다.

그 힘은 사람의 숫자로부터 나옵니다. 


기독교인들이, ‘복음의 능력’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않고

‘사람의 숫자’를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사람의 숫자가 힘이라고 생각되어지면

그것은 마치 마yak처럼 강하게 사람을 옭아맵니다.

점점 더 그 수렁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런 인간들의 본성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세례요한이 “나는 아니고! 저 분이다, 그 분을 따르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이는 세례요한의 겸손을 말하기 이전에,

보내심을 받은 자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에게 ‘세례요한의 겸손함을 본 받으라’고 하는 것보다는,

세례요한의 이런 삶은, 신앙생활 자체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보내심을 입은 자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나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중략)


◑자기를 비우고, 예수로 채우기


사도바울도 ‘자기를 비우라’고 증거 했습니다. 빌2:7

‘자기를 비우라’는 말은,

비워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채우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스님들은 무아(無我)사상을 가르칩니다.

즉 “나는 없다” 를 가르칩니다.


내 속에 예수님을 채우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난 없다”고 하지만, “내 안에 예수님이 있다”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이를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자신이 버젓이 살아 있으면서도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버젓이 살아 있는 나는 “예수 안에서 사는 나” 라고 합니다.

즉 바울은 죽은 자기 안에, 예수님으로 채워놓은 것입니다.


이런 것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합니다.

내 속에 예수님(형상, 인격)이 담겨져 있어야.. 신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고독, 침묵, 기도의 영성 (강추)


▶마치는 말

신앙생활이란.. 자기 잘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세력을 키우고, 자기 힘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자기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해체시키는 것입니다.

비워진 그 자리에, 그 속에,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십자가 피 공로를 충만히 채우는 것입니다.


그저 무아無我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이, 내 힘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갖고자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힘을 갖고자 함은.. 세상에서 강자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교인들이.. 힘을 소유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을 갖지 않았는데..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은 힘을 갖고자 합니다.

그러니 교회가 세상에서 권력집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세례요한에겐 오직 “예수 있음” 만 있었습니다.

자기를 사라져도 “예수만 있으면 된다” 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완전히 예수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난 아니고 예수님”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인간들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예수님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목회자들을 세례요한과 비교하면

하나님이 보낸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 금새 들통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시선을 예수님에게로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압살롬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를 따르게 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낮추고 부인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부인은, 인간의 본성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성령이 아니고서는.. 내 본성을 내가 거슬러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에 충만함을 입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난 아니고 예수님”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례요한의 모습은,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입니다.


세례요한은 지금 자기 이미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말만, ‘소리’로서 증거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