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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꾸밈이 없는 신앙의 기쁨

LNCK 2012. 9. 22. 11:54

◈꾸밈이 없는 신앙의 기쁨           마7:24~25          08/12/21설교스크랩


 

우리는 너무 많은 보조도구를 필요로 합니다. 거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은혜가 안 임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빈야드 운동>을 창시한 존 윔버 목사는 병자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본인만 병자를 위해서 기도한 것뿐만 아니라,

예배당에 모인 모든 성도가 병자를 위해 서로 기도하고,

하나님이 역사할 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애를 썼는데


그분은 병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에

일부러 아무런 배경음악을 틀지 않았습니다. 배경음악을 연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신유사역이 커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칙’이라고 하는 주장을

불식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배경음악으로, 어떤 분위기를 연출해서,

신유사역이 개인의 감정적 흥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배경음악을 통하여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시는 일이 아닌, 심리적인 방법으로

성령의 역사를 대신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일각의 반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존 윔버 목사는,

음악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은 나답과 아비후가 이상한 불을 제단에 피운 것처럼 이상한 불이다’

이런 식으로까지 주장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한 것은, 존 윔버가 처음이 아니고

수백 년 전에도 이미 그런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수백 년 전에 트렌트 공회가 교회음악에 대하여 어떻게 결정한 적이 있느냐면

‘교회음악에서는 화성을 넣지 말라’고 결정한 적이 있습니다.


화성이란 화음을 말합니다. 왜 교회음악에서 화음을 금지했느냐 하면,

음악에 화음이 들어가게 되면 아름다워집니다. 듣기 좋아집니다.

그게 뭐가 나쁜가요?


음악의 아름다움에 교인들이 취해서, 거기에서 감동을 받고

마치 그게(음악) 하나님의 은혜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아닌,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감동을 받고

그게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

진짜 은혜를 받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화성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화성을 사용해서도,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다만 믿음의 조상들은, 화성을 사용할 때,

    사람들이 하나님(본질)을 잊어버리고, 음악이나 화음(비본질)에만 취하게 될까봐

    그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하여

도대체 얼마만큼의 보조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즘에는 교회마다 예배를 엔터테인먼트 화 해서

화려해야 되고, 스케일이 웅장해야 되고,

그래야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을 궁극적으로는 구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을 구별하기 전까지는

진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수년전에 제가 전에 어느 교회에서, 고난주간 성금요일 예배를 준비하는데,

주최 측에서 제게 뭐라 주문하느냐면, ‘교인들이 많이 울게 해 달라’ 그러더라고요.


고난주간의 성금요일이니까, 당연히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고 울 수 있지요.

그러나 어떻게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에게 ‘교인들을 울려달라’고 주문할 수 있습니까.

제가 양파를 썰어야 합니까? 슬픈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울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울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그렇게 하신다면 모르지만,

인위적인 방법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그래서 제가 ‘안 울면 어떻게 합니까?’ 그랬더니 ‘그러면 울게 해야지요.’

아, 제가 그 말을 듣고, ‘인간의 종교성이란 저런 것이구나.’


그러니까 성공적인 집회를 만들기 위해서

교인들이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잘 하면 인간적으로 울게 만들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의 이벤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건 성령이 하는 일도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도 아니요,

사람이 사람을 심리적으로 조작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원치 않습니다.


▶조금 있으면,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의 기쁨은, 그러므로 다른 보조도구가 전혀 필요 없고,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을 내가 믿고, 내가 예수님을 찬양하고 송축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성탄의 기쁨은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나에게 족한 것이고, 거기에서 성탄이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성탄 장식을 멋지고, 화려하게 꾸며서, 인간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일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탄의 보조도구가 꼭 있어야, 성탄의 은혜를 받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탄의 본질이 살아있고,

보조도구가 거기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습니다만,


성탄의 본질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보조도구만 가득한 성탄절을 보내게 된다면,

신자들은, 교회보다도,

차라리 보조도구가 더 화려한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으로

점점 더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얼마나 많은 보조도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까?


예컨대 결혼생활의 행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보조도구가 필요합니까?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아파트, 승용차, 가전제품 등

얼마나 많은 보조도구가 더 필요합니까?

 

아마 신혼부부에게는, 처음에는 그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이런 저런 보조도구가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가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옷이 그 옷이고..

안 그렇습니까?


본질적 사랑의 마음이 우러나와야 분위기가 살지,

그런 마음이 우러나지 않은 가운데, 보조도구만 가득한 결혼생활은..

주객이 전도된changed 것이요, 결코 원하는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듣고, 보고, 몸담고 사는 세상은,

그런 보조도구들만 잔뜩 장만해 있으면,

마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이 될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그건 그저 홍보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느낄 때

그때 자기 마음속의 ‘깊은 고독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환영하고, 인사하고, 악수하고..

그런다고 해서, 그의 마음의 허전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그렇고, 우리의 삶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보조도구를 가득 채우면, 그것이 행복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모든 보조도구 자체가 행복은 아닙니다.

그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그것으로 사랑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선물이든, 소유든, 물질이든.. 이런 것 자체가 사랑이 아니고, 행복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한 번 사는 우리 각자의 인생은,

행사가 아니고, 이벤트도 아니고, 파티도 아닙니다.


이것은 연기가 아닙니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사는 그 행사만 잘 준비하고,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다가 끝나면.. 끝이지만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떠들썩하고 즐길 때도 있지만

그들이 다 떠나간 다음에, 빈 집에서 설거지를 반드시 해야 되는 게.. 우리 인생이에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편적으로 이벤트 위주의 신앙생활이 진짜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불이 꺼지고,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끝나도..

내 마음에 하나님과 친밀한 만남이 있었다는.. 그런 소중한 확신을 갖고서

교회 문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상의 점이 계속 연결되어, 선이 되고,

나중에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주님이 부르시는 시간이 왔다’고 느껴질 때


내가 평소에, 일상에 계속해 왔던 ‘주님과 친밀한 만남’의 확신 때문에..

편안하게 그 부르심을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일상에, 내가 본질적 신앙생활을 사는 것이,

내 종말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이유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내 인생이,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화려한) 행사, 이벤트, 파티 식으로만 계속 진행되다가는..

평생에 수고한 것이.. 결국은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어리석은 건축자가 되고 맙니다.


The Heart of Worship / Hillsong


When the music fades

And all is stripped away

And I simply come


Longing just to bring

Something that's of worth

That will bless Your heart


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For a song in itself

Is not what You have required


You search much deeper within

Through the way things appear

You're looking into my heart


I'm coming back to the heart of worship

And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I'm sorry, Lord for the thing I've made it

And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King of endless worth

No one could express

How much You deserve


Though I'm weak and poor

All I have is Yours

Every single br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