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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히11:23 04.04.25.스크랩, 출처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3절은, ‘믿음으로’ 라고 시작합니다.
모세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던 것은,
모세의 부모가, 그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우리의 자녀와 손주들은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음을 오히려 고민합시다.
막9장에는 예수님이 벙어리 귀신 들린 한 아이의 병을 고쳐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의 병을 고쳐 주시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러자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그 아이의 병을 고쳐 주시기 전에 먼저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있는 병, 곧 불신앙의 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 가정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부족한 연고입니다. 자녀나 가정 문제로 인해서
밤새워 고민하지 말고, 우리에게 믿음이 없음을 고민합시다.
오늘 우리는 모세 부모의 믿음을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 대지로 나누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아름답게 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모세의 경우는 전혀 사정이 다릅니다. 그때는 고통스럽고 어두울 때였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는 이러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살려주도록 해라.
그러나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그를 하수에 던져서 죽이도록 해라."
이러한 때에 사내아이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그의 부모가 얼마나 깊은 번민과 갈등에 사로잡혔겠습니까?
임금의 명령대로라면 그 아이를 나일 강에 던져서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왕의 명을 어긴 결과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위기적인 상황에서 사내아이 모세를 아름답게 보기가 지극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만일 모세의 부모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모세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나일강에 던지움을 당해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의 명대로 이 아들을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그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그 아이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행7:20입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였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의 눈으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모세는 애굽 왕 바로의 명을 따라서 죽여야 할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부담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안겨 줄 아이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그들에게 슬픔의 아들이 아니라 기쁨의 아들이었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모세의 부모는 이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자녀와 손주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들입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최고의 인물로 키워주셨듯이
우리의 자녀손들도 훌륭한 믿음의 인물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딸 아들 구별하는 것은 그 아이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를 육신의 눈으로 보지말고,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다.
우리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소중히 키웁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모세를 최고의 인물로 키우셨듯이
우리의 자녀들도 훌륭한 인물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어린 아이들을 품안에 안으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어린 아이 하나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쓸데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하나님이 필요한 곳에 아름답게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예로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불학무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용해서 예루살렘의 유식한 율법사들이 하지 못했던
천국 사업을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흉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회개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일평생 걸려도 들어갈 수 없던 천국에 단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이든지 다 유익한 인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도 누구를 대하든지 간에 사람의 눈으로 보지말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십시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말고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다.
그리하면 비록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아름답게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라는 믿음을 가지십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를 모세처럼 훌륭한 인물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 "석 달 동안 숨겨."
만일 모세의 부모에게 믿음이 없었더라면
모세는 그 길로 나일강에 던지움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왕의 명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나일 강에 버리지 않고
석 달 동안이나 집안에 숨겨서 몰래 키웠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모세를 돌본 것입니다.
모세 부모의 믿음은 모세를 살렸습니다.
모세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모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뒤에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결국 모세 부모의 믿음은 모세만 살린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서 히브리 민족 전체를 살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있는 곳에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16장에는 빌립보 간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밤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간수가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서 깨어나 보니 옥문들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로 알았습니다.
간수는 절망 가운데 검을 빼들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행16:31의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복음을 전해 듣고 빌립보 간수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그와 그의 온 집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만일 간수에게 믿음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의 아내와 그의 자녀들은 큰 불행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문제가 생겼습니까? 위기에 처했습니까? 문제는 환경이 아닙니다.
여건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큰 역경이라도 믿음만 있으면 극복해 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석 달 동안 숨겨서 길러졌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당시 바로의 군사들은 정기적으로 히브리인들의 집을 수색을 했습니다.
숨겨 놓은 사내아이를 찾아서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 바로의 병사들은 애굽인 갓난아이를 데리고 갑니다.
히브리인의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뾰족한 것으로 그 아이를 찔러서 울게 만듭니다.
어린 아이는 곁에 있는 아이가 울면 따라서 우는 생리가 있습니다.
그 점을 이용해서 숨겨 놓은 아이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석 달이 지나자 모세의 부모는 더 이상 모세를 집안에 숨겨서 기를 수 없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모세의 울음소리가 우렁차서 집밖으로도 새어나갈 소지가 많았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집안에 숨겨서 기르는 일이 한계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또다시 무릎을 꿇고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믿음으로 모세의 앞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들은 갈대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속에 모세를 담아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하든지 일단은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할 바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군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은 공부를 하느라고 나이가 좀 들어서 입대를 했습니다.
몸도 약한 편이었습니다. 큰아들이 입대한 날 저녁이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 가정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오늘 형이 입대할 때 어머니가 많이 우셨지?"
그러자 뜻밖에도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오늘 우리 어머니를 다시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형의 손을 붙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어머니는 형을 꼭 끌어안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잘 다녀와라. 하나님께서 너를 지켜주시리라 믿는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그저 담담하게 형을 보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최선을 다하십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다섯을 노력하십시다.
그러면 다섯의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열의 노력을 하십시다. 그러면 열의 도움이 우리에게 오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우리가 심은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할 바를 다하십시다. 그러고 난 뒤에는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결과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3.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부모는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갓난 아이 모세의 생명은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애굽 왕 바로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아울러서 바로의 권력이 아무리 크다 한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의 부모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인간적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무서워하지 않을 일도 무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계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물결이 배를 덮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예수님은 아마도 제자들을 이런 뜻으로 책망을 하셨을 것입니다.
"얘들아, 내가 과연 물에 빠져 죽을 사람이냐? 또 너희가 도대체 물에 빠져 죽을 사람이냐?
하나님이 앞으로 너희를 통해서 하실 일이 얼마나 많으신데,
너희가 물에 빠져 죽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시겠느냐?
왜 하나님이 지금도 너희를 지키시며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느냐?"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일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어떠한 위기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겨 길렀습니다.
▲모세의 부모에게 있었던 믿음은 모세에게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뒤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의 눈앞에 홍해가 나타났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사들이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모세는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출14:13,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만 홍해를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모세의 눈에도 넘실대는 홍해는 그대로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자기들을 추격해 오는 바로의 군사들을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모세도 역시 그들을 보았습니다. 똑같이 위기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모세는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차이점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시편23:4에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했습니다.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셔서 지금도 자기와 함께 하시면서
지켜 주시고 돌봐주시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사41:10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살아가다보면 이런저런 환난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와 같이 악한 사람, 강퍅한 사람 만날 수가 있습니다.
홍해와 같은 큰 역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한 것과 같은 큰 위기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믿음을 가지십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구원을 우리가 반드시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