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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지키기 3890

LNCK 2012. 11. 25. 19:50

◈마음 지키기                잠4:23                 출처보기


할렐루야! 오늘도 이 예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계신

여러분의 영혼과 삶을 축복합니다.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은 얼마나 우리의 삶이 정신세계,

영적세계의 지배를 받는지를 단적으로 표현해 준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외부적인 자극에 의해 반응하며 움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에 의해 더 많이 좌지우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계획하신 긍정적인 삶을 향해 나아갈 때에

우리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걸림돌이 있다면 그것은 <열등의식>과 <장애의식>을 들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이란 자신의 존재가치를 너무 작게 여기고 비하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또 열등의식의 또 다른 표출로 인해 자기 자신을 너무 크게 부풀려서 생각하는 것도

역시 열등의식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의 특징은, 늘 자기 자신에게 속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다보면 참다운 자기 자신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기복이 심해져서 기분이 좋고, 나쁘고... 즐겁고 슬픈 감정의 기복이 심해집니다.

 

이 열등의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자기 자신을 작게 생각하는 것을 겸손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그런 경우 자신이 작다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자꾸 남에게 크게 보이려고

나 아닌 다른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에게 더 크게 보이기 위해 돈을 모으는 데에 집착하게 되기도 하고,

더 높은 권세를 잡으려 하기도 하고,

억지로 외모를 좀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꾸민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드러냅니다.


그렇게 하면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살게 됩니다.

좌절과 낙심의 폭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참다운 <나>가 없으니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의식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분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4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양을 아실 것입니다.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난 희아양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신 분은

자신을 찾아 온 아이의 손가락 4개를 보고서도 기꺼이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희아양은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건강하지만 마음의 장애를 갖고 사는 우리들을 향해

많은 메시지를 던져 주었습니다. 희아양이 한 말이 있습니다.


"저는 두 손가락을 갖고 태어난 것을 축복이라 생각해요, 제가 10손가락을 다 갖고

태어났다면 제가 피아노를 쳐도 뭘 해도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을테니까요."


희아양의 어머니도 자신의 자녀가 장애라는 자리에 누워서

세상을 한탄하고 비관하며 부모를 원망하며 살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희아양에게는 장애는 장애가 아닙니다.


장애의식에 사로 잡혀있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장애 뒤에 숨어 부담스런 삶,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도피함으로

오히려 장애를 즐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일들은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예수님은 38년간 장애를 지니고 살았던 병자를 찾아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그러나 예수님의 그 질문에 그 병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자신의 병 뒤에 숨어서 자신을 속이며 지낸 세월의 시간이

그에게 선뜻 “예.”라는 대답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은근히 그것을 즐기면서 모든 것을 사회 탓, 구조 탓, 경제 탓,

IMF탓, 남편 탓, 아내 탓, 부모 탓으로 돌려놓고

자신은 그 모든 책임에서 도망쳐 사는 사람에겐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삶은 멀기만 합니다.


오늘 저는 <상처>, 즉 마음의 상처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상처 또한 열등의식과 장애의식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희망과 비전의 삶을 향해 나가는 데에 상당한 방해물입니다.


흔히 교회에서 ‘상처 받았다.’라는 표현을 자주 쓸 때가 있습니다.

아무개 때문에 상처 받아서 교회 안 나온다.

누구 때문에 상처 받아서 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등등.

 

상처는 누구나 다 입을 수 있고, 또 상처 안 받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상처가 인생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고,

그 상처로 인해 마음의 장애, 정신적 장애자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상처는 타인이 주는 문제이기 보다는

받은 상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 왈(曰)... 자녀가 학교에서 시무룩하게 왔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학교에서 친구에게 상처 받았다고 하더랍니다.

그 때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상처 주면 받지 마!’ 했답니다.

상처에 대한 제일 짧은 명답이라 생각됩니다. *^^*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상처를 안 받기 위해 도망쳐 다니는 삶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치유의 삶으로 나아갈 것인지가 더 큰 관심사입니다.


상처가 없는 파라다이스란 이 세상에서 없습니다.

우리는 상처를 현실 그대로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만큼 더 큰 상처는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면서 생존과 안전감에 대한 욕구를 갖습니다.

어떻게 보호와 돌봄 속에서 성장해 갈 수 있는가?

심리학적으로 성장이란, 이런 욕구들이 어린 시절부터 차단되지 않고

제대로 꽃을 잘 피우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환경>인데,

순기능적 환경이냐? 역기능적 환경이냐? 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순기능으로서의 환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입니다.

순기능으로 가정을 만들어가는 장본인은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은 부모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상처를 치유 받으면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 가야 합니다.


어렸을 때, 가정에서 한 번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부모가 자주 다투고 갈등을 갖고 있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린 시절의 그런 것들이 마음의 깊은 상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상처가 깊은 사람일수록 더욱 겉을 멀쩡하게 꾸밉니다.

자꾸 더 상처를 감추고 연기하려니까 삶의 피곤함이 더해지고,

인간관계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감추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타나는 표현방법으로 냉소적인 말투, 비꼬는 말, 비관적이고

한탄 섞인 말투가 나오고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


살아가면서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과 물질을 가장 낭비하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나의 삶을 끊임없이 피곤하게 만드는 것,

나로 하여금 나답게 살지 못하게 하고 기쁘고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하는 근원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마음의 상처입니다. 상처를 살펴보면 우리가 원치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상처는 한 번 받으면 그것이 치유되기 전까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조금씩 자랍니다. 마음의 상처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무색합니다.


외도를 하다가 방황에서 돌아와 성실하게 가장 역할을 하는 어느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는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남편의 과거를 하나도 잊지 않고

작은 의견충돌에도 계속 그 문제를 가지고 서러워하고 운다고 합니다.

세월이 상처를 잊게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계속 자랍니다.


-둘째, 상처는 우리의 자유와 기쁨을 박탈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과거를 과거로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모든 것이 새로워진 오늘의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한 순간에 무참히

깨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면서 과거에 살도록 우리를 지배해 버립니다.


-셋째, 상처는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에 반응을 보입니다.

이때 생기는 감정을 영어로 response(반응)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상처를 건들면 그 땐 심각해집니다. 단순히 반응(response)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감정이 폭발하게 되는 그것을 reaction(반작용)이라고 합니다.


평상시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말들이

유독 어느 사람에게는 부딪히는 말이 되고 상처가 되는 것의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넷째, 상처가 더 무서운 이유는 유전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는 부모로부터 유전된 것인데,

이 유전은 육체에 국한되지 않고 마음에도 영적인 것에도 적용됩니다.


흔히 이렇게 유전되는 심리적 상황을 ‘가풍’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야곱의 거짓말은 자기 아들들에게도 흘러 내려가 그 아들들의 거짓말로 인해

야곱은 자기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오랜 세월 슬픔으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나의 상처를 그대로 두면 그 상처가 나의 자녀들에게 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과 이웃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다섯째, 상처는 마음의 문제뿐 아니라 육체와 영적인 문제의 원인이 됩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위장이나 눈에 쉽게 나타나게 되고,

정신적으로는 신경증의 증세가 나타나며,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영적 기형이 되고 맙니다.

 

-여섯째, 상처는 마음 한 구석에 작게 자리 잡으면서도

내 인생 전체를 깨뜨려 버리는 힘을 갖습니다.

흔히 우리의 마음을 유리에 비유하는데, 그것은 마음 어느 부분이든 상처를 받으면

그 부분만 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전체가 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상실을 낳습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라이프 시즌(life season)’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인생의 계절이죠.

자연계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차례대로 과정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상처를 입은 사람에겐 유아기, 즉 봄이 없습니다.

유아기가 없다면 소년기도 잃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청년기마저 잃어버리고 맙니다.


마치 학교에서 한번 진도를 놓쳐서 덧셈, 뺄셈 배우는 과정을 놓치고 나면

곱셈도 나눗셈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포기와 상실은 다릅니다.

만일 20세의 청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뭔가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온 삶을 다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결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만 전념하기로 하고

결혼도 유보한 채 독신으로 하나님의 길을 걷겠노라고 결심했다면

그것은 스스로 결혼이란 것을 놓아 버린 것, 즉 포기입니다.


그런데 어릴 적 부모가 늘 싸우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난 죽어도 결혼 같은 건 안할꺼야...’라고 결심했다면,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상실입니다.


빼앗겼기 때문에 20세, 30세.. 나이가 먹어갈수록 성적 충동은

더욱 강렬하게 일어나서 그 욕구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한 에로스는 왜곡되어서 성도착증, 음란물 집착 등으로

인격이 파괴되어 갈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상처를 100% 활용합니다.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그 상처는 사탄의 강력한 무기로 사용됩니다.


신앙, 영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받는다는 것은 그런 마음의 상처들을

오히려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전환하는데 쓰는 것을 말합니다.


심리치료는 상처가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찾아내는 것이지만,

영적치료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새로 남, 거듭 남...

이전 것이 지나고 새것이 되는 놀라운 경험인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적치유 과정을 겪다보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상처를 깨닫게 되면서

자기 자신을 바로 들여다보기를 겁냅니다.

내 자신이 너무 무섭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감추어진 감정의 박스를 열어 놓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의자를 들어서 다 죽이고 싶은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상처를 안고도 내가 이제까지 가족들과,

이웃들과 잘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신기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살았던 시간이 아니었죠.

상처받은 나로 인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또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게 되었는지요?

 

시집살이 많이 한 며느리가 상처를 많이 받았으니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면

상처를 며느리에게 안 줄 것 같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자기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또 다른 이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TD를 졸업하시면서 어느 목사님께서 하셨던 간증이 생각납니다.

그 목사님은 나이도 지긋하신 목사님이셨습니다.

오랫동안 목회를 하시면서 늘 고민했답니다. 왜 성도들이 진정으로 섬기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TD를 경험하고 보니 섬김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섬길 수 없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무뚝뚝하고, 강압적이고, 대화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 자기 아내, 자기 자식을 감정적으로 부드럽게 대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저도 저희 아버님에게 느꼈던 서운한 감정,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

그대로 나에게도 재현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놀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첫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이, 내 영혼이 치료받아야 할 가난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난 건강하다고 고집부리면서 치료받기를 거부한 바리새인들은

외식으로 자기를 가리고, 거짓된 경건과 권위로 자신을 위장하면서

건강함을 내세우며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죄인들은 자신의 심령이 가난함을 깨닫고 그 분 앞에 먼저 나와

치유해 줄 것을 기대할 때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1997년 6월 마지막 주간에 현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신앙과 치유(Faith and Healing)라는 제목의 특집을 실었습니다.

그 내용은 타임지가 신뢰할만한 미국 의학 연구기관에 의뢰해서

조사 연구한 결과들을 실은 것이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들은 놀랍게도 신앙이 치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심장 수술 환자 중에서

가장 강한 생존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예배에 규칙적으로 참석하는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혈압수치가 낮았고,

우울증을 앓는 확률도 훨씬 적었으며, 건강도 훨씬 더 좋았습니다.


또한 기도하는 순간 스트레스를 유발시킨 호르몬이 경감되고,

심장박동과 순환기 계통이 안정된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특집에서 다루어진 내용이 사실이라면,

신앙이 치유에 미치는 영향은 자명한 사실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영성에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인간이 지향하고 걸어가야 할 목표를

지시해 주는 사령탑이 있는데,

이 사령탑이 바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영성입니다.


영성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자 성령이 자리잡고 역사할 수 있는 거점입니다.

사령탑 기능을 하는 영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외부적인 부조리에 민감해지고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병이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하나님과 나의 사령탑인 영성의 관계가 흔들릴 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 전체가 무너지듯이,

<나>라는 집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 같은 영성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건강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영성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 없을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마음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킬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불안, 걱정, 짜증, 분노, 무기력 현상 등이 나타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웃과의 인간관계가 깨지면 절망과 분노와 불안의 감정에 지배당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더 흐르면 신체적인 이상으로 발전됩니다.


가족간, 공동체 간,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미국 토착 인디언들에게서는

암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병은 병든 환경과 병든 공동체, 병든 사회,

병든 정신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조금도 여유를 주지 않는 조급한 현대 사회, 긴장으로 가득 찬 경쟁적인 생활,

야망과 반항이 난무하는 공동체 등이 우리로 하여금 병을 앓게 하는 요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병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병이 나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 병은 치료되기 어렵습니다.

무슨 경고인지 알아 차려야 합니다.


미국의 한 의학 연구팀의 보고에 따르면, 신체적인 문제로 의사를 찾는 환자들 가운데

50-75%가 신체적 문제와 함께 영적 이상 증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 연구팀의 한 의사는 자기를 찾아 온 환자의 절반 정도가

의사의 도움보다는 목사의 도움을 훨씬 더 필요로 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에 의하면, 환자들이 말하는 신체 증상들 중 많은 경우가

환자의 삶을 도와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저절로 치료되는 것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심리학자이자 치료자였던 C. G. Jung은 생전에 영국 BBC 방송국에 나와서,

그가 치료한 환자들 중에서 병의 근원이 영적인 장애에 있지 아니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고백하였을 뿐만 아니라, 환자의 영적인 장애를 바르게 도와주었을 때

회복되지 않은 사람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품만이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바라볼 때,

그 은혜로, 그 성령의 감화로, 그 초자연적인 신비의 역사로,

우리 내면의 모든 상처가, 다 저절로 아물어지고, 치유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보세요 ☞ Beholding Glory and Becoming Whole / Pi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