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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3940

LNCK 2013. 1. 2. 15:48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벧전1:13~25             설교스크랩, 녹취


<소망>은 복음의 여러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막상 <소망>에 대해 증거하려 하면, 할 말이 거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래 설교문은, <소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 <소망> 관련글 모음  (강추)

 

 



사람은 소망이 없으면 살수가 없습니다.

먹지 못하면 며칠을 견디지 못하지요.

호흡을 하지 못하면 몇 분을 견디지 못하지요.

그러나 소망이 없으면, 어쩌면 단 한순간도 살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소망이 없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소망이 없는 삶은 가생입니다.

진생이 아니지요. 진정한 삶이 아닙니다. 사람은 늘 소망을 꿈꾸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망을 품고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소망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그 소망하는바가 기도로 바뀌어지게 되죠.


어떤 사람이 품고 사는 소망의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그가 어떤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이나 자녀들이나 생업이나 교회에

품고 사시는 그 소망들이 기도의 제목들로 바뀌어져서

우리 주님 우리에게 오실 때 그 풍성한 은혜를 가지시고

여러분에게 임하여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 베드로전서 1장 13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위 구절에서 ‘나타나실 때’는,

궁극적으로는 재림의 때가 되겠지만,

그 이전에, 주님이 불쑥 불쑥,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우리를 방문하실 때가 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들고 나타나실 때, 내가 깨어있지 않고, 잠들어 있으면,

즉 세상에 도취되어 흥청망청 살아간다면,

내가 그 은혜의 때를.. 놓쳐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소망의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나를 둘러싼 삶의 여건과 환경이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소망을 품고 살 것인가..

그 소망의 근거 세 가지를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1. 성도가 항상 소망을 품고 사는 근거는, 첫째로,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보혈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과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너희 조상이 물려 준 망령된 행실’이란.. 바로 원죄를 가리킵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으로 처참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

라고 고백했는데, 역시 원죄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조상적부터 물려 내려온, 그러한 망령된 행실이, 즉 원죄가

우리 각자에게 있다는 거에요.


물질욕, 명예욕, 권세욕, 정욕 등,

우리는 여러 가지 욕망에 사로 잡혀서, 끌려 다니며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그 조상으로부터 유전 받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보배로 된 것이 아니고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즉,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구속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소망가운데 살아야 하는 근거입니다.

절망 가운데가 아니라,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러분 죄는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하나는, 죄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 모두가 스스로 자해 행위를 하는 거예요.


최근에도 미국 어느 고위 장성의 불륜 사건이 드러났을 때,

국방성과 군인들은 ‘킹 데이빗의 추락이다’ 이렇게 말을 하였어요.


여러분, 그와 같이 죄는 다 자기 파괴적입니다.

죄는 자기 자신을 파멸케 하는 그런 성향이 있어요.

죄를 짓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해치는 자해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죄의 성격이 있는데, 죄는 사람을 절망에 이르게 합니다.

죄는, 그 죄가, 자기의 장례 자기의 미래에 대한 모든 전망을

너무나도 어둡게 암울하게 만들어요.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죄는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것인데,

내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의 생명을 상실하게 됩니다.


결국 맛을 잃은 소금 같이 되고, 빛을 비추지 못하는 등불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절망하게도 하겠지만,

먼저는 스스로 자기를 절망케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서, 사람들에게 마구 짓밟히니까요!


시편 36편 9절입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죄를 짓고 살면, 내 마음속에 어두움이 몰려온다는 거에요.

우리가 광명중에서 주님을 못 쳐다보게 됩니다. 스스로 주님을 피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 전에는 안 그랬는데,

죄짓고 난 다음에 내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에 가득 차게 됩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봐도 관점이 달라져요.

그 사람의 시각이 달라져서 극히 암울하고 어둡고 암담한, 그런 전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죄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과, <사람을 절망케 하는 성향>으로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갖고 살지 못하게 만드는데..


그런 파괴적인 죄 문제를, 우리 크리스천들은 해결할 수 있으니,

우리는 절망이 아니라, 소망 중에 날마다를 살아갈 수 있는 근거를 갖는 것입니다.

 

이런 죄 문제를

인간의 능력, 인간의 결심, 인간의 의지력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어느 정도 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 결심하고 다짐하지만

또 시험에 들고 유혹을 받아서 마음의 꾐에 빠져가지고

죄를 범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상적부터 유전 받아 내 안에 흐르던 그 죄성, 그 죄의 성향을

내가 내 의지력으로 내 결심으로 해결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그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하여 주실 때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보배로 한 것이 아니고,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지식이 아니고, 성령의 초자연적인(즉 기적적인)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님의 피를 의지했을 때, 기적적으로, 신비하게,

내 죄가 용서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죄의 성향까지도 치료되는.. 이제는 그 죄가 역겨워지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요한일서 1장 7절 말씀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서 43장25절에도, 네가 네 죄 지음으로 나를 괴롭게 하지마라 하시면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이게 초자연적으로 믿어져야 하지만, 안 믿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런 구절들을 수첩에 적어서,

계속 하루에서 몇 번씩 수첩을 꺼내 보면서, 그 구절들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죄의 은총, 속죄의 은총을 간구해 보십시오.

어느 날, 하나님은, 당신에게 초자연적으로/기적적으로/신비적으로/성령의 역사로

속죄의 은총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자신이 죄사함 받았음을, 확실히 믿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죄의 습관의 사슬에서도 풀려나고 해방되는

그런 자유함까지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보혈 안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용서와 능력이 있어요.

용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능력이 있습니다.


나의 죄악에 대한 용서와 더불어

죄의 힘과의 싸움에서 나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는 능력이

예수님의 보혈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소망의 근거에요.


이 죄 때문에 우리는, 절망하고 절망에 빠져서, 깜깜한 어둠 가운데 살아갈 때

예수님이 보혈의 공로와 보혈의 능력으로 내 모든 지은 죄를 용서받고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나를, 그의 피로 나의 모든 죄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의 보혈!

그것이 바로 나의 삶의 소망의 근거입니다.


오늘 당신은 절망가운데 살아가십니까, 소망가운데 살아가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근거가 무엇이라고요? - 벧전1장 18~19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절망케 하는 죄로부터, 자유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2. 우리 크리스천의 소망의 근거는, 둘째로, 바로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1. 말씀이 나를 거듭나게 합니다.


벧전1장2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가 거듭난 것이 뭐로 된 거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 그것은 썩지 아니할 씨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머니 모태에서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지 않습니까?

이 생명은 나를 100년이 넘도록 나를 유지시켜 주지 못합니다.

70, 80 년 살다가 끝나게 되는 생명이에요.


사고가 나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어요. 이것이 육체의 생명입니다.


기약도 없고 유한한 육체의 생명.

그런데 이 육체의 생명 안에,

영적인 생명 영원한 생명이 내게 주어지는 사건을 가리켜서 ‘거듭남’ 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살아서도 영생과 연결된 삶을 시작할 뿐만 아니라,

내 육체의 수한을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내 육신은 흙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나의 영혼은, 예수님의 손목을 잡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여러분, 지금은 ‘거듭남, 영생’ 이런 말이 ... 시시하게 들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여러분이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날이 닥치게 될 때,

그 때는.. 돈/직장/성공.. 이런 것은 정말 시시하게 들리고,

‘거듭남, 영생’ 이런 말이 정말 절실하게 들려올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듭난다고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내가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그 말씀이 복음의 말씀인데,

그 말씀은 살아있는 영원한 말씀이고,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1:1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 심어졌을 때,

그 말씀 안에 있는 생명력이, 내게 전달이 되었고,

그 생명이 자라나서,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24절 25절에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여러분의 인생에서도, 어느 순간에 이 복음이 들려와서,

그 복음을 내가 받아들였을 때

그 복음 안에 있는 생명력이 나를 거듭나게 하여서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시작되고,

내 안에 주어진 그 영적인 생명, 영원한 생명 때문에

내가 죽어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소망을 갖게 해준, 그 어떤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그 받은 말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저는 요한복음 10장 28~29절이었어요.

 

제가 청년시절에 제게 들려오는 복음을 듣고

‘정말 내가 죄인이구나. 나는 가망 없는 죄인이구나.

정말 내 의지로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구나. 내가 정말 죄의 종이구나!’

이렇게 절망할 때, 내게 들려주신 그 말씀을, 내가 붙잡은 거에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0:28~29


말씀하시는 그 주님의 말씀에다가

내 생명 내 영혼 내 일생을 의탁했더니

주님께서 나를 영원히 붙들어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이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확신하고,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깨달으면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말씀은 사람을 영생케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2.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

그 말씀 안에 있는 생명력이, 내 영혼을 소생케 해줍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에 비하여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도 없고, 특별한 능력과 수완과 자원도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영원한 기업과 기쁨으로 삼은 사람은

소망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1절 말씀에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영원한 기업, 영원한 기쁨이 된 사람은,

그 사람은 인생의 험한 세파에 부딪쳐서도 제기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20:32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확신과, 믿음과, 삶의 용기와, 약속을 주시므로,

우리 삶에 소망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소망가운데 풍성하게 살고 계십니까?

말씀의 약속을 많이 외우고, 암송하고, 붙들고 있는 성도입니다.


여러분, 지금 소망이 흔들리고, 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까?

말씀의 약속을 많이 붙들지 못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3. 우리의 소망의 근거는, 셋째로,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지요.


벧전1장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딤전4:10


너희 믿음과 소망이 어디에 있게 하셨다고요?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보배로운 피를 흘리게 하셨고


그리고 연약한 우리의 믿음과 심령과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와주시고

든든하게 탄탄하게 그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면서


이제는 예전과 달리, 우리 믿음과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고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기업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4절 말씀에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며 사는 인생은, 언제나 소망과 희망이 있습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2:8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여러분의 생업, 여러분의 교회에 대하여

여러분이 마음이 낙심되거나 어려움이 느껴진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낙망치 마십시오. 절망치 마십시오. 우리에게 새 소망의 근거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보혈과

-하나님의 말씀과

-살아계신 하나님께 내 믿음과, 내 소망을 두고 살아가실 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의 인생가운데

그 많은 풍성한 은혜를 들고 찾아오시고,

여러분을 소망의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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