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찬가에 관한 묵상 눅1:46~55 모두 스크랩 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1:48
◑고통 속에서의 찬미의 기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종류의 기도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특별한 소원을 두고 간곡히 부탁드리는 간구기도,
고통스런 현실 앞에서 터져 나오는 탄원기도,
7일기도, 40일 작정 기도...
그러나 마리아처럼 찬미의 기도를 바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 앞에서, 결국 하나님이 자기에게 허락하신 삶이 축복임을 깨달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기도의 결론은 언제나 찬미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입니다. 보다 성숙한 기도입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우리,
늘 불충실했던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지난 삶을 돌아보면
결국 우리가 바쳐야 할 기도는 찬미의 기도입니다.
마리아께서 바치셨던 마니피캇, 즉 마리아의 찬미의 기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늘 희망적이어야 합니다. 낙관적이어야 합니다.
복음 한 구절 한 구절을 묵상해보십시오. 성서 전반 그 어디든 한번 살펴보십시오.
거기 사용된 언어, 교훈은 늘 희망적입니다.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나날이 시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하루의 삶에로 초대하신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에 찬 찬가를 부르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어느 순간, 생명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어느 순간에
우리 기도의 결론이 찬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를 부르며, 고통을 견딘 초대교회 신자들
마리아의 찬가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아름다운 노래였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마리아의 찬가를 부르며, 주님을 기다리면서 견뎠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맡겼던 처녀 마리아처럼 되기에는, 우리의 신앙은 여전히 부족하다.
아직 온전하게 마음을 비우지 못해서일까?
그러나 우리는 마리아처럼 다시 한 번 자신을 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믿음을 갖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동역자
"도대체 내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혹시라도 내가 신경이 쇠약해져 헛것을 본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던 마리아는
"아! 그래! 천사가 사촌 엘리사벳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지?
그래! 엘리사벳에게 가보자! 그러면 뭔가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릴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는 "유다 산골에 있는 한 지방"에 아인카림이라는 지방으로 길을 떠납니다.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의 동네였던 나사렛에서 그곳까지 여행하려면
적어도 3일은 걸려야 한다고 합니다. 길고도 험했던 여행 끝에
마침내 사가야의 집에 도착한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문안인사를 올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대문으로 들어서는 마리아를 바라보는 엘리사벳의 태도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마리아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사흘이나 걸린 도보여행으로 지칠 대로 지친 마리아의 남루한 행색,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한 동정녀의 모습,
난데없이 닥쳐온 "이상한 일" 앞에 뭐가 뭔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더 이상 측은할 수 없는 불쌍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 깊이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을 체험했던 엘리사벳이었기에
마리아를 단지 외적인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영혼의 눈, 내면의 눈, 하나님 자비의 눈으로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눅1:43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45절.
엘리사벳은 예언자의 자격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언약들이
참됨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당신은 모든 여인들 가운데 복되십니다.
그 복됨의 원인은 바로 태중에 계신 아드님 때문입니다.” 42절.
당신의 태중에 계신 그 아드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 모든 기쁨의 근원이며
새로운 예배의 중심이신 메시아입니다.
엘리사벳의 확증을 통해 마리아는 자신의 지녀왔던 의혹에서 점차 벗어납니다.
긴가민가하던 마음에서 "가브리엘 천사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하고 확신을 가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심합니다. 엘리사벳의 도움에 힘입어 마리아는
다시 한 번 힘차게 하나님을 향한 멀고도 먼 길을 떠납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동역자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분변해 줍니다.
기도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을 알아보고,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사람끼리 서로 알아보고,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마리아라면, 엘리사벳 같은 동역자가 필요 하며,
또한 내가 만약 엘리사벳이라면, 마리아같은 하나님의 자녀를 격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분류 없음 > 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하6:12~42 이와 같이 기도하다 (0) | 2013.01.04 |
---|---|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3940 (0) | 2013.01.02 |
성탄절이 지나갈 때 생기는 우울감과 또한 소망 Bloom (0) | 2012.12.21 |
어떻게 하면, 기도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Bickle (0) | 2012.12.20 |
행복한 동행, 웃음 (0) | 2012.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