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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살지 않으신 예수님

LNCK 2013. 7. 24. 12:00

◈길게 살지 않으신 예수님          요14:12, 행5:17~32           06.04.16.설교스크랩, 출처

                                                                                                                              *원제목 : 예수님의 수난과 영광

내가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살았는지는..

내 이후에, 나를 통해 감동 받은 사람들이, 정녕 일어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 너무 짧게 사시고, 짧게 사역하신 것 같습니다만..

 

▲비슷한 나이 30대 초반에 돌아가신 예수님과 알렉산더

영화 알렉산더를 보면 알렉산더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알렉산더가 침대에 누워있고 장군들이 그 주변에 모여서

알렉산더의 유언을 들으려고 애쓰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알렉산더에게 호소합니다.

‘당신은 나라를 누구에게 물려주시겠습니까?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알렉산더는 유언을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래서 그가 죽고 난 다음에, 그가 정복한 광대한 땅,

그리스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뻗친 그 광대한 제국이

갈라지게 되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마제국에 흡수되고 맙니다.

 

역사상 알렉산더처럼 위대한 정복자가 없었지만

그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것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 알렉산더는 유언을 남기지 않고 그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른세 살에 세상을 떠나신 것은 알렉산더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소유하신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조직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지만, 교회를 세워놓고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책을 쓰거나 글을 남기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정치적인 권세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명칭이 유대인의 왕이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제사장이라든가 서기관이라든가 하는 직분이 없었고

사람들이 그저 랍비,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많은 추종자들을 남기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었습니다.

한 때 오천 명의 남자가 모인 적도 있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열 한 명의 제자마저도 뿔뿔이 흩어지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여동생과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요한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초라한 상황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죽음이 끝이었다면, 신약 성경은 복음서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사도행전이라는 책이 등장하는데

오늘 부활절 설교의 본문으로 사도행전을 택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첫날에 회개한 사람이 삼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놀라운 능력과 권세로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습니다.

 

◑제자들을 보고서.. 스승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님의 기적을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은 믿으십니까?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한 기적을 믿을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다는 것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신뢰성을, 그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그런 것을 행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행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그 제자들의 사역과 기록을 통해서 증명이 되었고

오늘날도 예수님을 제자들을 통해서, 증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요,

오히려 더 큰 차원에서 시작됐고, 더 큰 차원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반대자들의 입장에서는 이상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끝난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큰 파도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기적과 이적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엄청난 담대함을 소유하고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의 의아함, 당혹감, 의문을 반영하고 있는데

28절을 보면『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당혹하고 있는 것,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비록 예수님을 믿지는 않더라도

뭔가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인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이들은 그것을 부인할 수 없어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연히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것을 의도하시고 계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짧게 3년 반만 사역하신 이유를 살펴 볼 때..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하고 계신 있는 것은

예수님은 오랫동안 목회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몇 번을 지내셨는지를 보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측정할 수 있는데

삼년 반을 목회 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교회가 돌아오는 9월이 되면 6주년이 되는데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공사도 끝내야 하고, 출판사도 설립해야 하고, 책도 써야 하고, 방송선교도 해야 합니다.

 

삼년 반은 적어도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 짧은 기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삼년 반만을 목회하시고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널리 다니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신 적이 없고, 예루살렘에도 자주 가시지 않으시고

갈릴리 초원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의도하셨기에

이후에 일어난 일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을 성취하려고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의 제자들의 답변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부활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행5:30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고백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다른 것을 다 믿는다고 하더라도

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최초로 고백하는 것, 기독교인들이 최초로 고백하고,

최초로 전한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독교가 부활의 교리를 만든 것이 아니고

부활의 사건이 기독교를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문안할 때 그들이 사용했던 인사말은

‘크리스토스 아네스테’ 헬라어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이 인사에 상대방은 ‘알레토스 아네스테’라고 화답했습니다.

‘정녕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생기고 시간이 흐른 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 아니라

최초부터, 처음부터, 교회가 시작하는 첫 시간부터

사람들이 외치고 고백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2. 제자들이, 증인이 될 줄 믿으셨습니다.

 

행5:32절『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증인은 법정 용어입니다. 목격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철학, 교리, 신화, 희망사항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a historical fact -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희망사항이 아닙니다. 교리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인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증인,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그 장면을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손의 못 자국을 만져보았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식사도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고, 여성들이 예수님을 만났고,

고린도전서에 한 번에 오백 명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사십일을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3. 성령님이 증인 되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행5:32절 말씀의『성령도 그러하니라』다시 말하면 성령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떠나가셨지만, 대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을 통해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때문에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고칠 때

그가「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합니다.

 

대단한 발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더 이상 계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성령을 통하여 함께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내가 너를 고친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너를 고쳐주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시간에 너를 고치시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당신의 복음을 증거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엑수시아-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은 것입니다.

 

▲마치는 말.

요한복음을 보면「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했는데

성령이 오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성령이 오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에 이루신 일보다

떠나가신 후에 이루신 일이 더 많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세 가지입니다.

부활, 제자들의 증거, 그리고 성령. 이 세 가지인데, 이것이 예수님의 의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삼년 반만 목회를 하시고 떠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멀리 다니실 필요는 느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과 <제자들의 증거>와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더 큰 역사가 일어날 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하고, 힘이 부족합니다.

 

마치 시험을 보는 학생이 답안지를 낼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필사적으로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는 학생과도 같습니다.

‘잠시만요, 조금만 더요, 이것만 쓰고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조금만 더 살게 해주세요.’ ‘이것만 갖게 해 주세요.’

‘이것만 이루게 해 주세요.’ ‘이것만 허락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 간절하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해야 할 일만 하시고 나머지는 다 주고 떠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당신이 갖고 계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의 일이 줄어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사람이 막을 수 없는 방법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습니다.

 

지금도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 한가지로 설명됩니다. 부활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더니 부활하셨고, 당신의 일이 더 많아지고,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일 하시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우리 손으로 모든 것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제 집사람이 늘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왜 당신이 모든 것을 하려고 하십니까?’

 

맞습니다. 저도 욕심이 많기 때문에 제가 다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깨닫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나!’

 

그리스도인은 무언가 잡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지려고 하기보다, 주기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가져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누려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 누릴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겨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항상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낮아지고, 희생하고, 내가 죽을 때,

그때 하나님이 나를 대신하여 일하십니다.

 

내가 죽는 것 같은데 오히려 살고, 내가 낮아지는 것 같은데 오히려 높아지고,

작아지는 것 같은데 오히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