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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 김성수 / 中國語

LNCK 2013. 7. 15. 09:21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창2:25~3:21      창14강, 김성수 목사 출처

                                                                                                                                   中國語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아담의 갈비뼈에서 비롯되는 하와의 창조에 관해 공부를 했습니다.

아담에게서 나오게 되는 하와의 창조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아담의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시는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될 교회의 창조를 미리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그 본문을 통해서도 에덴동산의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상호 관계에서

도출되는 하나의 원리, 즉 십자가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십자가 사건이 조금 더 선명한 그림으로 설명이 되어진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오늘 본문을 2장 25절부터 잡은 이유는

이 인간의 타락의 이야기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던 인간들이, 어떻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으며

하나님은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가려 주시는가에 관한 복음의 이야기라는 것을

설명 드리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본문 주해에 앞서서

하나님의 언약적 관점에서 이 창세기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해 드리고

다음 주에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한 절 한 절 주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간단하게나마 이 언약에 관한 교리를 다 들으시면

창세기의 이해가 훨씬 수월하실 것입니다.

 

▲제가 전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에서부터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언약을 하고 계신다고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어구를 설명해 드리면서

하나님의 언약에 관해 간단하게 언급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의 첫째 날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어둠을 몰아내시고 빛만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내실 것임을 언약으로 담고 계신 것이고

 

둘째 날의 창조를 통해서 하늘과 땅을 가로막고 있는 궁창이 깨어지고

하늘과 땅이 연합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언약하고 계신 것이며

 

창세기의 셋째 날 창조를 통해서 물이 물러가고

뭍만 남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언약하고 계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공부한 한 것처럼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아담과 언약을 하십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너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었다는 것을 호세아서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호 6:7)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것이라고 확실하게 기술하고 있지요?

 

▲신학자들은 이렇게 ‘어떤 것을 하라, 하지 말아라’라는 행위를 전제로 한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행위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것을 ‘은혜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티끌’(흙, 보잘것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행위 언약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지긴 했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지만,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 언약은 ‘너는 나의 은혜를 떠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티끌이다’라는 것을

폭로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해석은

아주 옳은 정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먹지 말아라 그러면 살리라’라는 하나님의 언약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폭로하는 수단이었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은 인간이, 지켜낼 수 있는 언약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행위 언약 속에서 모든 인간은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언제든지 죽음으로 던져져야 할

그런 나약하고 불가능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것을 폭로시키는 것이 바로 <선악과의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행위 언약으로, 인간들의 불가능함을 폭로하시는가?’

라는 질문이 드시지요?

인간들은 모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자기 이외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움을 받은 존재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창조 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고 창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풍성한 복은, 하나님의 대권 자로, (대신 권세자)

만물의 왕으로 세워진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절대 상위의 왕 아래에서

그 분께 순종하는 자로 살아갈 때에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아 너희들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너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그러한 탁월한 왕이지만 너희는 항상 명심할 것이 있다.

너희는 창조주인 나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나의 말을 순종할 때에만,

다른 말로 너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인 내가 창조주라는 것을 잊지 않고

나의 말을 잘 들을 때에만 그 왕의 지위는 지켜질 것이다’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의미에서

‘선악과’라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명령을 동산 중앙에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아담은 동산 중앙에 심겨져 있어서 동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선악과나무를 볼 때마다

‘난 최종 권위자가 아니다. 내 위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이 인간이라는 탁월한 존재는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자율성과 인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able to sin’ 언제든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그 하나님 위의 최종권위자로 올려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벗(友)의 수준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해 놓으셨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위에 절대 상위권 자가 있다는 것을 잊는 순간,

자신을 이 세상의 왕의 자리에 올려놓을 가능성을 충분하게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위 언약을 깨도록 허락하십니다.

저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왜 하나님이 죄의 조성 자로 몰릴 수도 있는 그러한 표현을 택했는지에 관해서는

본문을 주해(註解)해 가면서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의도와 허락 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창세전에 택해진 자기의 백성들이 타락을 하고

저주를 받아 고통의 삶을 살게 만드시는가?’라는 질문이 드시지요?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이 겪게 되는

저주의 삶을 경험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 삶은 죽음의 삶입니다. 고통의 삶입니다.

아직 육신의 호흡은 남아 있다 할지라도 뿌리 뽑힌 나무처럼

모든 인간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죽음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제외한 세상의 인간들은 그저

‘삶은 다 그런 것이거니..’하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참혹한 것인지를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음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들 중에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해 놓으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죽음 속에 던져진 당신의 백성들에게 ‘은혜 언약’이라는 것을 주십니다.

‘너희들도 다른 자들과 똑같이 나의 은혜를 떠나서는 죽음 같은 삶을 살다가

영원한 죽음 속으로 던져질 수밖에 없는 티끌 같은 존재란다.

비록 너희들은 그렇게 나약하고 불가능한 존재들이지만

나는 내 백성들을 그냥 그렇게 죽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행위와 전혀 관계없이

오직 나의 은혜로만 너희에게 선악과가 아닌 생명나무 열매를 먹은 자로 만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 언약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저주를 내리시는 와중인

본문 15절에 원시(原始) 복음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15절의 내용이 뭡니까?

 

‘너희는 나와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정녕 죽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살려 낼 것이다’

그게 본문 15절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위 언약 속에서 죽어야 할 당신의 백성들을(선악과를 따먹은 자들을)

은혜의 언약으로(생명나무실과로) 구해 내실 것인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시고

그들에게 저주의 삶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백성들이 오성과 인격 속에서

우리에게 절대 상위권자가 있다는 것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분께 순종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할 수 있으며

 

그 곳이 바로 질서를 되찾은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확고하게 가슴에 새겨

다시는 자율성과 인격 속에서도 하나님을 타고 넘으려는 시도를 할 수 없는 자로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불가능한 자였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생명나무실과를 먹게 해 주신 것이라는 확인을 통해

우리 안에서 영원한 감사와 찬양이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속사입니다.

 

◑선악과와 생명나무 언약 *아담 언약

 

▲그러니까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는, 에덴동산 중앙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은 바로 그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성경은 이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이야기가

조금 씩 조금 씩 더 밝게 계시되어지다가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결이 되는

은혜의 복음(福音)이 적혀 있는 책인 것입니다.

 

몇 가지만 굵직하게 예로 들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의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를 통해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을 수밖에 없는 티끌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실 것인지에 대한

희미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 방법은 다름이 아닌 ‘죽음 속에 꽃피는 생명’, 즉 ‘십자가’였습니다.

이미 복음을 명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 우리가

그 에덴동산의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행위언약 바로 다음에

교회를 상징하는 하와의 창조를 기록함으로 해서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생명나무 실과를 먹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에서 인간의 타락이 조금 더 상세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게 될 저주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의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죄를 지은 여자가 여자의 후손에 의해 살아나게 될 것임을 천명하시고

그들에게 직접 동물을 잡아서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십니다.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가 또 동시에 등장하지요?

죽어야 할 자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는

산 자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가 뿌려지고 그 존재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사건 속에서 힌트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상호관계 속에서 도출(導出)되어지는 십자가

그 속에서 발견되어 집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지난주 본문에서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조금 더 밝게 설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즉 인간들이 지켜낼 수 없는 행위(行爲) 언약(言約)과 은혜(恩惠) 언약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행위 언약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안에서 죽임을 당하는 현장이고

은혜 언약 하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탄생하는 현장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prototype(原始,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지개 언약 *노아의 언약

 

▲그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에서 시작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은

계속해서 노아의 언약에서 반복되어 집니다.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행위 언약 속에서 죽어야 할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몽땅 죽여 버리십니다. 그리고 무지개를 주시면서

‘너희는 이렇게 몽땅 죽어야 할 존재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하지만 이제 내가 다시는 이러한 저주의 방법으로 너희를 몰살시키지 않겠다’고

언약을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살려내시겠다고 하는 이유가 참 놀랍습니다.

 

(창 8:20‐22) “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인간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다시는 그들을 저주의 물로 죽여 버리지 않으시겠다‘라고 언약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악한 자들을 행위 언약에 의해 모두 죽여 버리면

살아남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모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분의 은혜로 당신의 백성들을 살려내실 것이라는

생명나무의 이야기

또한 이 노아의 언약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에덴동산에서부터

어떻게 점진적으로 밝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잘 보시란 말입니다.

그 노아의 언약은 창세기 17장의 할례(割禮) 언약으로 이어집니다.

 

◑할례의 언약 *아브라함 언약

 

(창 17:7‐11)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자

하나님께서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선악과를 따먹은 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던 해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을 꾸짖으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완전 하라‘ 행위 언약이지요?

‘너는 왜 내 앞에서 완전하지 못하냐? 그러한 자들은 모두 죽는다는 것을 모르느냐?’ 라는 꾸지람입니다.

 

마치 ‘선악과를 따먹지 말아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드세요?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하시고는

아브라함의 범죄 함에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그와 그 후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죄인인 아브라함에게

그의 행위와 관계없이 ‘복’을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할례를 명하십니다.

할례(割禮)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난지 8일 된 남자아이의 고추 끝을 자르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에서 생식기(生殖器)는 곧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를 행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의 육체를 따라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말로 인간의 행위와 노력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택하시고 건져내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죠. ‘너희가 만일 너희의 힘과 노력으로 나의 행위 언약을 지켜내려 한다면

너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들을 제물로 쪼갬(할례)으로 말미암아

너희의 행위와 관계없이 나의 방법인 은혜로 너희를 살려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할례 언약인 것입니다.

 

◑유월절 사건

 

우리는 출애굽기에서도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상호 관계가 만들어 내는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어야 할 세상을 상징하던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탈출시키셔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만드십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게 됩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으로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시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의 장자는 모두 살려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장자(長子)라는 개념은 모든 인간을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장자는 남자를 대표하는 것이고

남자는 한 가정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가정의 장자를 죽이신다는 것은,

그 가족 모두를 죽이는 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를 죽이심으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의 백성 모두를 죽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이스라엘만 단지 택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납니다.

이스라엘이 살아난 이유는 그들이 애굽 사람들 보다 착하고 잘나서가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들을 택하셨다는 것뿐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십자가를 발견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십자가 사건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 은혜의 십자가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양의 대신 죽음으로

주어지게 될 것임이 유월절 사건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홍해 사건

 

▲그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이야기는

홍해를 건너는 사건에서 조금 더 밝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게 됩니다.

홍해는 저주받은 자들이 모두 빠져 죽게 될 저주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저주의 바다를 무사히 건넙니다.

그런데 홍해까지 좇아 온 애굽 사람들이 모두 홍해에서 빠져 죽게 됩니다.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도 원래 그렇게 죽어 마땅한 자들 이었다’

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역시 선악과를 따먹을 수밖에 없는 티끌 같은 존재들이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살려 내십니다. 어떻게 살려내십니까?

십자가로 살려내십니다.

 

(고전 10:1~4) “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고 지내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에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3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4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의 동반자인 신령한 바위로부터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여기서도 명확히 기술이 되고 있지요?

성경은 이스라엘도 애굽 인들처럼 모두 죽었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사람을 중보자로 세우시고

그 모세 안에 이스라엘을 넣어서 모세를 홍해에 빠뜨려 죽이셨다가 살려내심으로

이스라엘이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홍해 사건은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豫表)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洗禮)라고 부릅니다. 세례가 뭡니까?

세례는 선악과를 따먹은 옛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은 새사람이 살아나는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무엇에 의해서? 십자가로 인해서 하나님은 홍해의 사건 속에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상호관계 속에서 결과 되어지는 ‘세례’가 의미하는 바를

그림으로 선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점점 더 확실해 지지요?

 

◑시내산 언약                    *모세 언약

 

▲하나님은 그렇게 건져내신 이스라엘에게 광야에서 구체적인 행위 언약을 주십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너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라고 언약을 하셨던

그 모습이 또 한 번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은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아담이라는 개인이 아닌

민족의 단위로 은혜언약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이야기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흐르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지요?

 

아담이라는 개인에서 노아의 식구(가족)로,

노아의 가족에서 아브라함의 부족으로,

아브라함의 부족에서 출애굽 한 민족으로

그 이야기가 확대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네 지키겠습니다.’하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출 19:5‐8) “5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7 ○모세가 돌아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주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선포하였다.

8 모든 백성이 다 함께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 하겠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모세는, 백성이 한 말을 주께 그대로 말씀드렸다.”

 

(출 24:4‐8) “4 ○모세는 주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따라 기둥 열두 개를 세웠다.

5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젊은이들을 보내어,

수송아지들을 잡아 주께 번제를 올리게 하고, 화목제물을 드리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은 그릇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리고 그가 '언약의 책'을 들고 백성에게 낭독하니,

그들은 "주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받들어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며 말하였다.

"보아라, 이것은 주께서 이 모든 말씀을 따라, 너희에게 세우신 언약의 피다."

 

이렇게 피의 맹세까지 합니다.

마치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네 그리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는 장면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어떻게 되었습니까?

 

(히 3:17‐19) “17 하나님께서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진노하셨습니까?

죄를 짓고, 시체가 되어서 광야에 쓰러진 그 사람들에게가 아닙니까?

18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까?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19 우리는, 결국 그들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 믿지 않았기 때문임을 압니다.”

 

이스라엘은 피를 뿌려가며 ‘선악과 안 먹겠습니다.’라고 맹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언약을 지켜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선악과를 따먹은 에덴동산의 아담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으로 설명이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의 아담은 이스라엘을 품고 있던 것이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내용으로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언약대로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집어넣으십니다.

 

그들은 비록 범죄(犯罪) 하여 죽어야 할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은혜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아직 성경을 읽는 방법에 대해 잘 배우지 못한 분들은

금방 이런 질문이 드실 것입니다.

 

‘아니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모두 죽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출애굽의 여정(旅程) 속에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은 선악과를 따먹은 자들은

모두 다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1세대)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은혜로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2세대)

반드시 약속의 땅에 넣으시고 마신다는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의 십자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죽은 자들의 숫자와 가나안에 들어간 숫자를

정확하게 ‘장정 60만’으로 맞추어 놓은 것입니다.

 

▲이제 거기서 그 은혜의 중보자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라는 히브리말을 헬라어로 옮기면 ‘예수’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죽었던 1세대와 조금도 다름없이

패역(悖逆) 한 2세대를 오직 은혜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자를 세우셔서

다시 한 번 요단강을 쪼개어 그들에게 세례의 의식을 베푸시고

가나안에 들여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행위 언약인 율법의 대표로 광야에서 죽는 것이고

여호수아는 은혜 언약의 대표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윗의 언약

 

▲이제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에서 가나안 입성까지가 연결이 되십니까?

그 십자가의 이야기는, 다윗의 때에 이제 한 국가에게 적용이 됩니다.

드디어 ‘나라’의 개념이 등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백성’에게 주어진 것임을

다윗의 언약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삼하 7:11‐16) “11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12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15 내가, 사울에게서 나의 총애를 거두어, 나의 앞에서 물러가게 하였지만,

너의 자손에게서는 총애를 거두지 아니하겠다.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은 다윗의 후손이 세우실 것임을 천명하십니다.

그 다윗의 후손은 1차 적으로 평강(平康)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솔로몬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구속(救贖) 사 속에서 해석을 하게 되면

그 후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국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보전된다고 약속하셨는데

다윗 왕국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둘로 갈라지고

BC722 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BC586년에 남 유대가 바벨론에게 망함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만일 다윗의 후손이 솔로몬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신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하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질 은혜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세워진 그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와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너희들이 너희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파멸밖에 없다(역사적 이스라엘의 멸망)

 

따라서 너희들은 나의 은혜 속으로 들어와

내가 내 아들을 통하여 이루는 나라에 거해야 한다(새 하늘과 새 땅).

라는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의 이야기는

선지서에서 이제 구체적으로 새 언약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새언약

 

(렘 31:31‐34)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과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32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4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를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겔 36:24‐28) “24 내가 너희를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데리고 나아오며,

그 여러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다가, 너희의 나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25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26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27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28 그 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살아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패역무도(悖逆無道)함을 계속 지적하십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따라서 행위 언약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자들,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자들은 모두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티끌’(절대 지킬 수 없는 존재)인 고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새롭게 창조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새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방법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들을 하나님의 백성들로 만들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새 언약이라 이름 한 것입니다.

 

▲말라기의 마지막 구절

이제 보다 더 확실해 졌지요?

그러니까 구약의 이스라엘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으로 대표된 인간의 나약함과

불가능함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모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결론이 말라기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누가 이 성전 문을 좀 닫아다오’로 결론지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구약이 닫히고, 신약에서 하나님의 은혜언약이 실행에 옮겨지는 것입니다.

‘너희들 쪽에서 한 모든 노력과 열심은 다 실패로 끝났다.

이제 내가 하는 일을 잘 지켜보아라’

 

▲그렇게 해서 드디어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약 성경 전체에 점진적이며 반복적으로 기록이 되어있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 어떻게 시행이 되어 완성이 되는지를

역사 속에서 성취해 내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벌거벗겨져서 죽으심으로 벌거벗은 것이 부끄러워

하나님으로부터 숨었던 아담의 부끄러움이 가려지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지실 때 우리가 그 선악과를 따먹고 버려져야 했던

그 버려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롬 4:25) “25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선악과나무)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생명나무)

 

그 결과 이제 우리는 선악과나무가 사라진 생명나무만 있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된 것입니다.

 

제가 지금 창세기의 창조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해서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즉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상호관계에서 도출되는

십자가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밝게 계시되고 있는 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 창세기가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완성이 되는지 보시면

오늘의 설교가 훨씬 이해가 잘 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완성

 

(계 21:1) “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계 22:1‐5) “1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2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3 다시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그 도시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시 안에 있고,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예배하며,

4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고,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여기보시면 창세기의 창조가 언약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지지요?

바다가 물러가고 어둠이 물러간 새 하늘과 새 땅을 반드시 만들어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창세기의 창조기사에 들어있었다는 것이

요한 계시록에서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그리고 그 동산을 적시며 흐르던 강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렇게 완성이 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뚜렷한 차이는 선악과나무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제 ‘probation is over‘ 하나님의 시험은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행위언약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왜 없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지켜내셔서

우리 성도들에게 전가(轉嫁)(imputation)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선악과나무는 필요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하나님 앞에서 존재할 수 있음을

이렇게 긴 역사를 통해,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타고 넘을 생각을 못하게끔

우리를 설복(說服)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와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타고 넘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의 말로가 어떠할 지를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질서 속에 순종하며 거하는 자들이

얼마나 복된 삶을 살게 될지를 보여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꼭 붙들고

그 은혜 앞에 부복(俯伏)하며, 그리고 감사와 찬양을 세세토록 올리며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그 하늘의 비밀을 이렇게 밝혀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 복음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하게 아셨습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너희는 피조물이니까 피조물답게 살아라’ ‘내 은혜 속에서만 거하라’인 것입니다.

 

◑적용

 

그렇다면 이러한 은혜 속에서 구원을 얻으신 여러분의 삶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여전히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스리고 죄 속에 뒹굴며 사시겠습니까?

여전히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모습으로 사시겠습니까?

 

이제 생명나무 열매를 먹은 자로서

적어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키는 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아담에게 부여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라는 말로 상징이 된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요약해 주셨습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 계명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아라’는 명령이 담고 있었던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 계명을 지켜낸 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서는 그 계명을 지켜낸 자의 신분에 맞는 삶에 대한

추구와 분투와 노력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타고 넘어들어 가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을 제치고 왕위에 올라갔던 자리에서 내려와

순종하는 자리로 내려간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밟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여전히 선악과를 따먹는 아담의 모습으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생명나무 열매를 드신 분다운 순종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선택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