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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비결 2

LNCK 2013. 7. 27. 16:43

◈행복의 비결 2              마5장 1-4                 2012.2.12.설교스크랩, 출처

 

 

▲복 있는 사람의 두 번째 모습은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서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이상한 분이고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부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았고,

웃는 자가 복이 있다 말씀하시지도 않았고,

건강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았고,

의인이 복이 있다고도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슬퍼서 우는 자가 복이 있고,

병든 자가 복이 있고, 죄인이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는 슬퍼서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영적으로만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을 영적으로도 슬퍼하고, 또한

육체적으로도 슬퍼하며 우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즉 실제로 자기 마음이 아파서 울고, 몸이 아파서 우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아파서 우는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셨고

몸이 아파서 우는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는 자는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위로를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사해 주시고, 그리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고

옆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우는 자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주님의 선언은

이 세상의 행복론과는 정반대 되는 선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웃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얼굴에 인자한 웃음과 상냥한 웃음을 너털웃음을 나타내고 사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슬퍼하는 사람보다는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웃기 위해서는 먼저 울어야 합니다.

 

참으로 기뻐하기 위해서는 먼저 슬퍼해야 합니다.

그래서 눅6:21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

"슬픔이 웃음 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전7:3).

 

우는 자가 웃습니다. 슬퍼하는 자가 기뻐합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슬픔이 많은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우리 주님 자신이 슬픔이 많은 분이셨고 눈물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사53:4).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5:7).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눈물을 흘리며 우셨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며 우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시더라"(요11:33,35).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19:41,42).

 

그러면 이제 무엇 때문에 우는 자가 복이 있는지에 대해서

세 가지로 나누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나 자신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 때문에 애통하며 울었습니다.

자기 속에는 의도 없고 선도 없고, 거짓과 탐욕과 죄악만 있는 것을 바라보며

애통하며 울었습니다.

 

자기 속에는 옳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알 거지란 사실을 인식하며 슬프게 울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옵나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1).

 

다윗은 참으로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시39:12).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9:6~8).

 

그래서 애통의 사람 다윗은, 참으로 축복 받은 사람이었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과 축복을 너무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눈물이 많은 사람은, 다윗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애통하는 눈물을 보시고

다윗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너무나 기뻐하시며 너무나 큰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회개하는 눈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죄악을 슬퍼하며 울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눅18장에 나오는 세리가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당하는 불행 때문에 아파하고 슬퍼하며 웁니다.

자기가 당하는 불행 때문에 우는 울음은, 그렇게 값진 울음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울음도 복된 울음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한나는 자기가 당하는 불행 때문에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삼상1:7)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가로되"(삼상1:10). 라고 했습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에게 자기의 슬픔을 이렇게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1:15).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죄 때문에 우는 울음뿐 아니라

자기의 불행 때문에 우는 울음도 귀하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울음에 약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슬픔과 한나의 눈물을 보시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큰 은혜와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고 기뻐하며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나이다"(삼상2:1).

 

▲나인성의 과부가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외아들을 관 속에 담아 가지고, 나인성의 많은 이웃들과 함께 울면서

공동묘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며 우는 것이 그렇게 값진 울음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울음도 복된 울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의 울음 속에 무슨 값진 것이 섞여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자기의 죄를 슬퍼하는 회개의 요소가 섞여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주님께서만 아실 것입니다. 하여튼 그의 눈물은 복된 눈물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과부에게 가까이 와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울지 말라"(눅7:13).

 

그리고 관에 손을 대시고 관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7:14).

청년은 관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당하는 불행 때문에, 슬퍼하며 우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한나의 울음과, 나인성 과부의 울음을 보시고 위로와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를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울든지, 자기의 불행 때문에 울든지

하여튼 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울 때 마음이 겸손해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눈물을 흘리며 울 때 가슴에 쌓여 있던 독이 녹아버립니다.

눈물이 없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눈물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눈물을 많이 흘리시기 바랍니다. 많이 우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남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남의 죄와 불행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아는 동족이 범한 죄악 때문에

그리고 동족이 당하는 불행 때문에 한 평생 슬프게 울었습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 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 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애1:1-8).

 

▲다윗은 동족의 불행을 바라보며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30:3,4).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을 바라보며 애통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고후2:4).

 

▲한경직 목사님은 한 평생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자신의 허물과 함께 민족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울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60년 1월 10일에 한 “애통하는 자와 그 복”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사회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자녀를 잃은 부모의 울음소리, 부모를 잃은 고아들의 울음소리,

남편을 잃은 아내들의 울음소리, 실업자의 울음소리, 고학생들의 울음소리,

순진한 여성들이 악당의 유혹을 받아서 일생을 그르친 가련한 여성들의 울음소리.

이 울음소리를 듣고 같이 애통하는 자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됩니까?”

 

한경직 목사님은 불행에 처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슬픔의 눈물을 평생 흘렸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남한산성에서의 마지막 26년 동안의 삶도

기도와 눈물로 이어진 삶이었습니다.

 

자기에게 피해를 입힌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서

그리고 남북의 통일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사셨습니다.

 

특히 북한의 아사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한의 실직자들을 생각하면서

자주 우셨다고, 한 목사님을 보필하시던 백운경 장로님이 저에게 말한 일도 있습니다.

 

▲남의 죄와 불행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죄와 불행을 바라보며 우는 전도자들이 있고,

자기 반 학생들의 죄와 불행을 바라보며 우는 선생님들이 있고,

선교 현지인들의 죄와 불행을 바라보며 우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이웃의 죄와 불행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우시는 마음이고, 주님의 우시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우는 자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남의 죄와 불행 때문에 울 수 있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셋째로, 주님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주님의 사랑 때문에

그리고 주님의 교회와 주님의 사역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눅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눈물을 쏟으며 울었습니다.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눅7:37~38).

 

자기에게 베푸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여인은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의 한 없는 사랑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의 가슴에는 슬픔과 기쁨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눈물이 바로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흘린 눈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여인을 위로하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주님의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주님의 위로와 칭찬과 사랑을 받습니다.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교회와 사역 때문에 많은 아픔과 고난을 당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20:19).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빌3:18).

 

그러나 사도 바울은 눈물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게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를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카자흐스탄 신 선교사는 주님의 일 때문에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억울하고 속이 상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를 내어 울기도 하고

산에 올라가 가슴을 치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과 주님의 교회와 사역 때문에 흘린 눈물은 값진 눈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는 값진 문물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복 있는 사람의 두 번째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애통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슬퍼하며 우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슬퍼하며 우는 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울음이 축복이란 말씀입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 때문에 울고, 남 때문에 울고, 주님 때문에 우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애통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또는 고난과 환난을 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슬픔과 눈물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든지 고난과 환난을 당하든지 해서

우리 가슴에 애통의 눈물이 흐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애통한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