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가 감사하게 느껴질 때 히12:5-13 출처보기 中文 Russian
◑거룩함에 참예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근거를 ‘하나님이 과연 복을 주시느냐?
일이 잘되게 해 주시느냐?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게 막아주시느냐?’ 에 둡니다.
그러면 믿음은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요동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금방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지만
어려움을 겪고 실패를 하고 징계를 당하는 일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성공, 축복이 아닙니다. 거룩함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서도 징계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히12:1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은,
단순히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천국가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온 것만도 아버지에게는 큰 기쁨이지만, 아버지의 더 큰 기쁨은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아들답게 반듯하게 사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돌아온 탕자라는 것에 머물면 안 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점점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십니까?
작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까? 3년 전, 5년 전과 몰라보게 달라졌습니까?
만약 자신이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면,
죄 안 짓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의 심각성에 대하여 여전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12:4 “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믿는다면,
돈 벌고 성공하기 위하여 살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한 것을 왜 목표로 삼습니까?
죽기 살기로 죄와 싸우며, 거룩하기 위하여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능한 자로 평가받을까봐 안절부절합니다.
세상에서는 무능한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무능하면 징계를 받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납니다.
죄를 지어도 유능하면 받아줍니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군인도 유능하고 사회에 공헌한 것이 크면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습니다. 적당히 죄를 지어야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것을 징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무능한 자를 일부러 택하여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고전1:27~2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지 못한 것, 죄에 대하여 징계하십니다.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능하여도 바로 징계하십니다.
▲다윗이 자신의 충복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합니다.
그리고 아주 야비한 방법으로 머리를 써서 그 부하를 죽입니다.
당시 왕권 사회에서 왕이 부하의 아내 하나 취한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처절한 매를 가하십니다.
밧세바에게서 낳은 첫 번째 아들을 낳자마자 죽습니다.
그렇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잘 생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했습니다.
압살롬은 궁중에 있던 아버지의 처첩들을 백주 대낮에 옥상에서 범합니다.
비참할 정도의 매를 다윗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다윗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죄의 종, 마귀의 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기에 더욱 무섭게 치셨습니다.
다윗이 세상 왕처럼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럴 가능성 자체를 막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이런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높아지고 부자되고 성공하면 매 맞을 확률이 더 큽니다.
부자가 천국가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징계하십니다.
한때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처럼 귀하게 쓰임 받던 분들이
은밀히 죄를 짓다가 죄가 드러나, 하루 아침에 고꾸라진 것을 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탄식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주님이 그 종을 사랑하셔서 이렇게 하셨구나!’ 깨달아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비참하지만 그들에겐 잘 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회개할 기회를 얻었으니 말입니다.
징계를 받지 않은 사람, 은근히 다행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야 비로서 자신의 죄를 보게 되면
차라리 그 실족한 종을 부러워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 돈 잃고, 건강 잃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사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서 회개하였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징계하시는 이유는
거룩하지 못하고, 죄짓고 살면 구원의 복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죄짓는 것은 자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만약에 누가 이 예배당에 들어와서
강단 위에서 술판을 벌리고, 담배 연기로 가득하게 하고, 음란한 짓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멱살잡이를 하고 싸우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저 사람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크게 벌을 받으려고 저렇게 하나?”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이 예배당이 아니라 우리 몸입니다.
그런데 술 취하고, 욕하고, 소리 지르고, 음란한 짓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시는 것은, 마귀로부터 끊어 놓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를 깨우칠 수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못 알아들으니 어떻게 합니까?
다윗도 못 알아들으니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셨습니다.
발람선지자도 알아듣지 못하니, 자기가 타고 다니는 당나귀를 통하여
책망 받는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죄의 종이 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지금 그런 사람은 정신차려야 합니다) 마귀가 무조건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미있고 흥미 있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는 자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는 분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하고 싶은 것은 못하게 하고 안된다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라 하고 그러다가 툭하면 징계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무섭습니다. 마귀는 친구입니다.
이런 사람은 징계가 필요합니다.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죄는 재미있고, 거룩함은 재미없는 삶이라고 속삭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진리처럼 받아들입니다. 완전히 세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징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죄짓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달아야 벗어나려 하게 됩니다.
제가 신학생 때 19금 영화를 보고 회개한 것에 대하여 페이스북에 썼을 때,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가 너무 편협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죄, 죄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된 성인물로 인하여
지금 어떤 결과가 빚어지고 있습니까?
엄청난 음란물 홍수에서,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음란물에 빠져,
상상도 안되는 성범죄에 고통당하고, 가정이 파탄되고 있습니다.
제가 24 시간 예수님만 바라보면 사는 데, 변화가 있습니다.
욕심이 사라졌습니다. 목회에도 그렇습니다.
“우울증 아니냐?”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제 마음에 기쁨이 있는 것을 보면.. 우울증이 아닙니다.
거룩한 삶을 살 때 무엇 보다 감사한 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11절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평화는 전쟁이나 무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평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조심할 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5절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긴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통하여 죄를 끊어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하실 때,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인지 확신할 수 있나요?”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 모르니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 한 사람 회개케 하기 위하여, 지중해를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그 때 요나는 깨달았습니다. ‘나 때문이구나!’
그래서 “바로 나 때문이요!” 하고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도 살고, 선원들도 다 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 확실히, (징계를 통해) 깨닫게 해주기를 원하십니까?
얼마나 두려운 말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징계를 받기전에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또 조심할 것은, 징계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2:5절 “...그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라.”
본문은 낙심에 대하여 길게 다릅니다.
낙심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죄를 끊어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라고
돈을 가져가고, 건강을 치시고, 시련을 주실 때,
돈 잃은 것, 건강 잃은 것 시련이 닥치는 것만 안타까워 하는 것입니다.
정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죄를 끊어 버리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면 징계는 끝납니다.
깨달았는데 왜 징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징계는, 사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징계가 아무리 아프고 괴로워도
징계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내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아파서 죽어가는 아들을 징계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징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사생자가 아니고 참 아들이기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6절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십니다.
7절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대하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8절 모든 자녀가 받은 징계를 여러분이 받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사생아이지, 참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당할 때, 오히려 당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12-13절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제 삶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경험은, 군목 훈련 부상이었습니다.
이유를 몰랐습니다. 단순한 사고였고 운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그리 방탕하지도 않았고 큰 죄지은 일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제 죄가 깨달아졌습니다.
목사면서도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육신의 아버지만 못하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아지는 것은 더 비참하였습니다.
제 소원은 이왕 목사가 되었으니 유명한 목사 성공한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큰 교회를 담임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내면의 온갖 죄가 다 드러났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모범생이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지옥에 갈 죄인임을 비로서 깨달은 것입니다.
저는 그 때, 다리 부러진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리 부러진 것을 감사했습니다. 다리를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장애인이 되어 거룩하게 사는 것이,
두 다리 멀쩡하여 제 성공을 위하여 사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진짜 종이 되겠다고 헌신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의 목표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루 밤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삶이 바뀌었습니다. 그 때부터 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일할 교회도 없었고, 훈련소만 3년 해마다 들어갔고
그러나 마음이 언제나 감사했습니다.
군목시절, 부임한 부대 연대장은 제게
“목사님께서 낙심하고, 포기하실까봐 가장 염려됩니다.”
그동안 부대 여건 때문에 낙심한 목사님을 많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군단장 표창도 받았습니다.
광주통합병원에서 밤새 울던 일을 생각하면 어디가나 감사한 것뿐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거룩한 삶을 삶의 목표로 삼아 보셨습니까?
그런 적이 없었다면 이제 결단해 보십시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징계 받지 않고도 깨달았다면 왜 징계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무서워할 것은 징계가 아니라 죄입니다.
그러면 징계가 없습니다. 징계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혼자하면 안됩니다. 거룩한 손을 서로 잡고 연합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서로 함께 거룩한 공동체를 만듭시다.
전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잘되는 것, 복 받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얽매인 죄를 벗어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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