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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음의 값어치

LNCK 2013. 7. 30. 08:56

https://www.youtube.com/watch?v=e58Nk-vYV64 

 

◈예수님의 죽음의 값어치     히7:27, 9:12, 10:10, 요18:1-9       13.03.24설교스크랩

 

◑예수의 ‘죽음’ .. 타종교와 다른,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구원이 되느냐. 이것처럼 중요한 질문이 없습니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구별되는 분명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슬람에서는 모하멧을 선지자라고 믿지만, 구원자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해탈한 자 부처라고 믿지만, 그것이 일반 불자에게 구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의인의 순교로써 추앙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구원이 된다든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의 대상, 흠모의 대상으로서 추앙하려고 했다면

굳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주장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그냥 죽음으로 끝났더라도

충분히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죽음을 순교의 의미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순교한 사람은 많습니다.

 

스데반 · 야고보 예수님의 사도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순교로서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 제자들이 언제부터 이해했나요?

 

▲정확하게 어느 시점부터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완전하게 이해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초기에는 사도들이 완전히 이해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그런 추측을 하느냐...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설교문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최초의 케리그마,

원시적인 기독교 가르침이 사도행전에 정확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베드로의 최초 설교가 등장하는데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는다,

이것으로도 충분한 복음이 되지만,

예수님의 죽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이 되는지를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가 나오는데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얻는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이론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초청받아서 설교할 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얻는다, 그것으로 충분한 복음이 되지만

역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이외에 바울의 설교를 읽어보면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서 한 최초의 설교문에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말하고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

예수를 힘입어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예수님을 모세의 율법과 비교하고 의롭다하심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점점 깊어지고

신학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을 때 사도들과 장로들이

신학적인 토론을 벌이고 결론을 내리기를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줄을 믿노라’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더 이상의 신학적인 발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시사하느냐면 사도행전의 역사성을 보여줍니다.

역사적인 신빙성이 있는 문서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초기의 신학을 가감이 없이 정확하게 보존했다는 얘기입니다.

 

저자가 사견을 달지 않고, 미화하지 않고, 사도들이 말한 내용만을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신학적 위상

 

그러면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구원이 됐는지를

가장 체계적으로 설명한 책이 무엇이냐? 의외로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가 신약성경 맨 뒤에 있기 때문에, 그 위상에 대하여 과소평가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구약의 제사와 빗대어서 설명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 대속

‘구약의 제사장들이 백성의 죄 사함을 위하여 제사를 드렸듯이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단번에 드려 더 나은 제사를 드리셨다’ 히7:27, 9:12, 10:10

이것이 히브리서가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란 무엇입니까. 제사란 죄인의 죄를 제물에 전가하는 개념이에요.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러므로 원래는 죄인이 죽어야 되지만

죄인의 죄를 양이나 염소에 전가해서

양이나 염소가 대신 죽음으로 죄인이 사함을 얻는다,

이것이 제사의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대속’(대신 속죄)으로써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 보혈로 씻기 위함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보혈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보혈을 가장 많이 언급한 책이 히브리서입니다.

 

로마서는 예수님의 보혈을 두 번 언급하고, 고린도전서는 네 번 언급하는데

히브리서는 피에 대한 언급이 19번이나 나옵니다.

 

구약시대에 양이나 염소의 피를 뿌려 죄 사함을 얻었을 시

예수께서 당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예수님의 피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는데

우리가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피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는다,

이모든 설명이 히브리서에 담겨 있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이런 모든 찬송가 가사가 히브리서에서 따왔다는 사실이에요.

 

▲그럼 다른 책에는 예수님의 죽음 (설교의 key word)이 어떻게 구원이 되는지

설명이 없는가요? 당연히 있지요.

 

로마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화목제물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화목제물.

누가 화목했다는 얘기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라는 담이 있어서

사람이 하나님에게 원수가 되었었는데,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죽으심으로써

이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예수님 당신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남들이 이후에 뭐라고 해석했든 간에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당신의 죽음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셨느냐... 이것이 중요한데

 

예수님이 하신 가장 확실하고 구체적인 말씀은

마지막 만찬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떡과 포도주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말로 하신 것이 아니고

성찬식이라는 구체적인 예식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이것을 먹으라 이것은 나의 살이니 너희를 위한 나의 살이라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새언약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니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우연한 죽음이라든가 순교적인 죽음이 아니고

우리를 위하여 새 언약을 맺기 위한 죽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것을 알고 계셨고 그것을 여러 번 설명하셨어요.

이것을 주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말씀이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니라’

 

로마서에서는 ‘화목제물’이라는 말로 예수님의 죽음을 설명했는데

예수님은 ‘대속물’이라는 말로 당신의 죽음을 설명하셨습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대신 속한다, 대신 갚는다, 대신 지불한다는 말이에요.

인류의 죗값을 인간이 스스로 갚을 수 없었는데, 예수님이 대신 갚음으로

인간이 죗값을 지불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의미로 대속이라는 말을 쓰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8장에서도 예수님이 동일한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절이지만

8절에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나를 찾거든’ 이 말은 나를 찾았으니, 나를 잡았으니, 내가 책임을 지겠으니,

이런 말입니다. ‘내가 희생을 당하겠으니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이 사람들이란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아니고, 인류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속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을 지겠으니, 내게 값을 물리면 내가 지불하겠으니

그 대신 이 모든 사람들을 가게 하라, 놓아주라, 풀어주라는 말이에요.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 이런 발언을 한 분이 예수님밖에 없어요.

 

메시아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많아요.

그러나 문제는 그의 목숨이 그만큼 가치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대속물이 되기 위해서는 목숨에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됩니다.

 

장사의 기본원칙이 그것이 아닙니까.

백만 원짜리 물건을 사려면 백만 원을 줘야 되고

천만 원짜리 물건을 사려면 천만 원을 줘야 됩니다.

 

인류의 죗값. 인류의 죗값을 치르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액수를 지불해야 되느냐.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느냐. 오로지 예수님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숨이 인류의 모든 죗값을 지불할 만한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으로 일괄 죄인의 죄를 씻었어요.

 

일괄, 단번에, 한번으로 족합니다. 추가로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괄 세상 죄를 사하셨습니다.

‘볼지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한 마디 속에 그 원리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흠 없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예정 속에 그것이 계획돼 있었기 때문이고,

네 번째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목숨(죽음)이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추가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든, 우리 자신의 의로움이든, 우리 자신의 경건함이든,

우리 자신의 헌신이든, 헌금이든, 우리 자신의 어떠한 수고가,

예수님이 일괄 지불하신 죗값에 추가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미 주님이 paid in full, 주님이 그 값을 다 지불하셨어요.

 

우리의 모든 신앙의 수고는 그러므로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의 결과요 감사함과 사랑과 그리고 주님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죽음의 값어치 - 믿는자 모두를 구원

 

▲그러기에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찾았으니 이 사람들을 가게 하라’ 말씀하셨더니

정말로 사람들을 가게 했어요.

예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체포되지 않고 다 풀려났습니다. 다 무사히 갔어요.

 

9절 말씀에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할렐루야! 아멘!

 

놀라운 말씀입니다.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여기에 우리 모두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예수님께 드렸다면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잃음을 받지 않아요.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잃지 않습니다.

다 구원을 받습니다.

 

허물이 많아도, 시험이 많아도, 우리를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한,

우리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잃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목숨의 값어치로

우리 영혼의 구원을 충분히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