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의 선택 / 찰스 스펄전 - YouTube
◈6장 설교 본문의 선택 시130:6 도서스크랩, 영어 text
「Lecture to My Students」 6장,
찰스 스펄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크리스천다이제스트사 pp. 131~151 정리 편집.
*내용을 많이 정리 했으니, 정확하게 보시려는 분은, 원문을 참조하세요.
▲<설교 본문을 선택하는 일>은, 설교 준비에 있어서, 가장 까다로운 일입니다.
사실 설교 본문만 선택하면.. 설교 준비는 절반 이상을 마친 셈입니다.
제 스펄전의 할아버지 되시는 목사님도, 솔직하게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설교 본문 선택이, 목회 사역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고 말입니다.
설교본문이야, 성경에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두껍습니까.
그런데 ‘풍요속의 빈곤’이란 말이 있듯이,
막상 설교본문을 딱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 스펄전이 본문을 선택하는 방식은
<저는 여러 시간씩 기도하면서, 설교의 주제와 본문을 주시기를
하나님 앞에서, 제가 기다리는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 본문이나 뽑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5년 전에 설교를 잘 했던 본문과 내용을, 한 번 더 반복하는 것도 아니고,
설교 본문을 정하는 일에, 아무런 스스럼이나 거리낌이 없이 쉽게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림같이.. 내 영혼이 간절히 여호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130:6
‘이번 주일에, 주님이 우리 공동체에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이번 주일 시점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이 물론 다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러나 그 중에서,
바로 그 때,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주시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쉽게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 스펄전은,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래 기도하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주님이, 제 마음에.. 어떤 감동을 주십니다.
모든 말씀이 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들이지만,
어떤 특별한 구절, 특별한 단락이.. 제 마음에 그때 그 시간에는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그 본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설교준비의 뼈대는 형성된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평소에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기도생활을 통해, 영적인 밑바탕이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평소에 성경을 읽고, 깨달은 통찰력을 메모해 두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시해주시는 본문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진사가 사진을 찍기 전에,
아무 장면이나 셔터를 누르지 않습니다.
카메라 앵글 속에 들어오는 장면이야, 수 백, 수 천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름이 비쌌던 시절에) 사진사는,
자기 마음에 확 끌리는 장면이 나타날 때까지는, 결코 셔터를 누르지 않습니다.
그냥 카메라 렌즈로, 풍경을 쳐다보기만 하다가, 렌즈를 돌려(치워)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제 마음에 어느 하나라도 확 끌리는 부분이 없으면,
설교 본문이나 제목이 수 십~수 백 가지가 있지만.. 아무렇게나 정해서 설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제 마음에 확 끌리는 그것 하나를 찾을 때까지, 정할 때까지
저는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 마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 본문을 찾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 어렵게 정한 본문을, 대지를 나누고, 원고를 작성하고
예화를 정하는 등.. 세부 손질을 하는 것은,
시간은 걸리지만.. 어쩌면 쉽습니다.
본문과 뼈대와 주제만, 설교자의 머릿속에 어렴풋하게라도 그려지면
그 다음부터는, 시간이 다 해결해주는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위로부터 받은’ 설교본문과 내용을 정하고, 설교문을 다 작성해 놓으면,
이제는 그 설교를 다 전할 때까지
마음의 평안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주 맛있는 요리를 할 때는,
그것을 남편이나 자녀들이 먹을 때까지는
마음의 평안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 꼭 해야 하는 어떤 중요한 일이 있다고 칩시다.
그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우리 마음에 안식이 없습니다.
내 마음의 모든 신경이, 그 일에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위로부터 받은 말씀’의 증거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좋은 의미로 마음이 약간 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긴장이 풀리고, 평안함은,
그 받은 말씀을 다 전하고 나서.. 풀리는 것입니다.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고,
누구와 대화를 해도.. 피상적으로 대화하게 됩니다.
자기 온 신경과 관심이.. 자기가 받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온통 곤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세로 설교를 하려면
그냥 보통 설교를 갖고서는, 이런 바짝 긴장된 자세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위로부터 말씀을 받을 경우’
이런 바짝 긴장된 자세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말씀을 다 전하고 난 후에, 자기 임무를 다 완수한 후에
비로소 풀리는 것입니다.
▲저 스펄전은, 아무 말씀이나 들고, 강단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설교 시작 한 시간 전인데도.. 말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보통으로 설교할 말씀이야, 수 백 가지가 있지만,
‘위로부터 받은 말씀, 특별히 주시는 말씀’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다릴 때에만.. 주어지는데요..
그런데 그게 어떤 날은,
정말 설교 한 시간 전까지도 주어지지 않아서,
그때까지도 계속 기도하며 사투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예배 시작 한 시간 전까지도, 기도하며 사투를 벌일 때,
하나님은, 그때라도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힘을 얻고,
강단에 올라가서, 담대히 확신에 찬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사투하고 결사적으로 기도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비록 늦게라도.. ‘위로부터 주시는 말씀’을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66권이고, 페이지도 두껍습니다.
그러나 아무 말씀만 정해서, 설교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그 때, 그 상황에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설교가
언제나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언제나 말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위로부터 주시는 말씀>을 받기란.. 대개의 경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을 이리 저리 뒤척거리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경건서적을 이 책, 저 책 뒤척거리며.. 또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가장 빠른 방법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가 최상의 설교 준비이며,
기도가 최상의 연구가 되는 셈입니다.
선택한 본문을 놓고서, 설교를 준비하고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술술 풀릴 때도 있지만, 중간에 꽉꽉 막힐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그 막힌 미로를 푸는 가장 최선의 방식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풀어주시는, 성경의 해석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평소에 성경 읽고 기도하는 습관이 배인’ 목회자에게.. 쉽게 일어날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딴 짓으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토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투를 벌이는 설교자에게는
이런 은혜가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일날 설교 시간에, 망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설교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검보다도 예리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게 맡기면, 그것이 상처를 내고, 죄를 죽이는 일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청중들이 설교를 듣고 나면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요절처럼 암송되어지고, 기억에 남도록 해야 합니다.
그저 내 설교 내용이 머리에 남게 되는 것보다는,
하나님 말씀 자체가 설교가 되고,
그 요절 자체가,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으로, 설교를 통해서,
누구의 허물과 잘못을 지적하고, 교정하는 일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말씀이 직접 그를 교정하는 일은.. 뒤탈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를 교정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반드시 뒤탈이 생깁니다.
▲그러나 가령 골방에 들어가서 열심히 기도하며
교인들의 영적 빈곤함을 중보하며,
그들에게 먹일 하늘의 양식을 내려달라고 오래 기도하는데도
쉽게 ‘설교 본문’을 정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초조해하지 말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스스로 무장하여 싸움터에 나갈 때가 임박했는데
화약이 부족하다면 얼마나 난감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대장 되신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싸움이라면
정해진 때가 되면 반드시 화약(즉, 성령의 영감 서린 말씀)을 준비시켜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 분은 여러분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간절히 여호와를 찾고, 그 얼굴을 구하는 찾는 자에게
반드시 화약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화약을 채워주시면, 잘 터트릴 수 있도록
평소에 내 영적인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일주일 내내 빈둥거리다가, 마지막 날 저녁에 아무리 용을 써 봐도
하나님은 한 두 번은 사정을 봐 주시겠지만,
결국은 그런 사람을 멀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설교하기 전에는, 식사량을 조절합니다.
그래서 제 육체와 정신이, 아주 신선하고 생동감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합니다.
만약 많이 먹고 설교단에 오르면, 설교를 해야 하는 시간에 졸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설교에서 무엇보다도 피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실질적으로 무시해 버리는 기계적인 설교 행위입니다.
자기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설교를 준비했다 하더라도
즉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설교 말씀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가끔은, 모든 경우가 아니라 가끔은,
설교 도중에, 설교가 준비한 흐름을 약간 벗어나,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때는, 그 흐름에 맡기는 것입니다.
▲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꿀을 모으느라 바쁩니다.
마찬가지로 설교자도, 언제나 교인들을 위하여 꿀송이 같은 말씀을 저장하는 데에
바빠야 합니다.
평소에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경건서적을 독서하면서
설교를 준비하지 않는 목회자는, 자기 사명감을 유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농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축에게 먹일 건초를 베어서, 저장하는 일에, 매일 분주합니다.
농부들이 부지런히 쉬지 않고 땀흘리는 것을 보면서,
목회자들도, 영적인 건초(양식)를 준비하는 일에, 그와 같이 매일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 용량은 한계가 있으니까,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은,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메모한 것을 잘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자기 나름대로 색인을 만들어 놓습니다.
토머스 스펜스는, 항상 조그만 노트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 스펄전도, 전원에 나가서 가만히 관찰해 보면,
많은 설교 예화, 삶의 통찰력을 얻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꿀벌이나, 건초를 모으는 농부의 예화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나서도, 메모가 필요하고,
전원을 거닐면서 기도를 할 때도, 메모가 필요합니다.
도심에서나 시골길에서, 항상 설교 주제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실 스펄전의 명설교는, 상당히 많은 분량이 ‘전원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주1)
▲그리고 본문을 정해 놓고도, 뭔가 설교가 막힐 때는
간절한 기도와 아울러
본문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또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조각가는 말하기를, 거친 대리석 덩어리를 보면
자기는 언제나 그 속에 고귀한 조각물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자기가 할 일은, 그저 곁에 붙어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망치와 끌로 제거해 버리고
귀한 조각물의 형상을, 꺼내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 작성이 그와 같다고 봅니다.
오랜 기도 가운데 어느 본문을 정했으면, 그것은 마치 거친 대리석 덩어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설교자의 머릿속에는, 어떤 형상이 어렴풋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 형상을 그리면서, 이제는 망치와 끌로, 대리석을 다듬어서,
그 아름다운 형상을 꺼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망치와 끌질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대리석 덩어리를 보고서, 어떤 형상을 상상해 내는 것입니다.
즉 영감, 통찰력이 떠올라야 합니다.
거친 대리석 덩어리를 보고서, 거기서 조각품의 완성된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기도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가장 큰 설교준비는.. 기도입니다.
물론 망치질, 끌질을 하면서도, 원하는 모습이 쉽게 안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본문을 20번, 30번 계속 묵상하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분은, 본문을 적어서, 자기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계속 묵상한다고 하지요?)
▲(아래 단락은 약간 논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저 스펄전은, ‘제 감정’도 고려해서 설교를 합니다.
제가 기쁜 일을 만나서 마음이 기쁘면, 기쁜 주제로 설교를 합니다.
기쁜 주제의 설교는, 내 마음이 기쁜 상태에서.. 가장 잘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제 마음이 슬플 때는.. 슬픈 주제의 설교를 선택해서 하게 됩니다.
슬픈 주제의 설교는, 내 마음이 슬픈 상태에서.. 가장 잘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꼭 이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설교자들은, 은연 중에 보통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중에, 자기가 겪은 내용을.. 결국은 설교하게 되어 있습니다.
슬픈 일이든지, 기쁜 일이든지.. 그 내용이, 설교에 자연스럽게 가미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령님이 강권하셔서, 마음이 슬프지만 기쁜 설교를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만,
어쩌면 기쁜 설교를 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내 마음을 기쁘게 준비시키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인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설교자는,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 자기 감정..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주님의 인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데.. 민감해야 한다.. 는 내용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5장. 설교 - 그 주제
Ibid. pp.109~130
◑설교에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설교에는 반드시 진정한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가르침이 견고하고, 실질적이며, 풍성해야 합니다.
‘내용’ 없이, 겉만 번지르한 하찮은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설교의 가치는
전하는 자세나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해지는 진리에 있습니다. 즉, 형식보다는 내용입니다.
가르침의 결핍은, 즉 설교내용의 결핍은
다른 무엇으로도 보상(대체)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복음이.. 알곡이라면,
복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가르침은.. 그저 바람에 날리는 겨에 불과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바구니’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거기에 ‘씨앗’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것은 웃음거리일 뿐입니다.
아무리 장엄한 강론을 한다 할지라도
그 속에 복음이 담겨 있지 못하면, 그것은 화려한 실패일 뿐입니다.
어떤 구름은, 먹장구름처럼 꺼멓게 사람의 머리 위를 쓸고 지나가지만
메마른 땅에, 비한방울 내리지 못하는 구름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내용 없는 설교, 복음 빠진 설교를 하면 안 됩니다.
☞ 잃어버린 설교 제목들 되찾기
▲달리는 말은,
그 울리는 방울이나, 말발굽 소리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그 수족과 뼈와 혈통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사려 깊은 청중들은, ‘복음의 진리와 정신이, 그 설교에 얼마나 들어 있는가?’
하는 것으로, 설교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설교자라면,
여러분의 설교를 한번 저울에 달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내어 뱉는 말의 양을 재지 말고,
그 내용의 질의 무게를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 자체는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참된 교훈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것은 화약가루가, 번쩍 섬광을 터트리지만, 탄환을 날리지 못하는
불량품 화약과 같습니다.
아무리 열정적인 부흥 운동도, 부흥회도
처음에는 감정에 호소하여 뜨겁게 일어나다가도
결국에는 지속적인 말씀의 연료를 공급받지 못해서
결국은 연기처럼 사그라지고 마는 것을 봅니다.
▲초라한 설교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여러분, 천문학이나 지질학 강의를 들어보면,
그 짧은 과정을 통해서도, 천문학과 지질학에 대해서 상당히 명확한 견해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설교자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12개월이 아니라, 12년을 들어도,
신학 체계, 말씀 체계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도 않아,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신학자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언변이 좋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복음에 대해, 전체적인 가르침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설교는, 설교가 하나님 말씀 그 자체가 될 때입니다.
즉 성경에 대한 강론이 아니라, 성경 그 자체가 열리고 힘 있게 선포될 때입니다.
설교를 마치고, 회중들이 그 설교 속에 나오는 예화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에 나온 말씀을 기억하고, 요절처럼 계속 암송하게 만드는 설교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본문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따라가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말씀 그 자체를 그대로 따라가시면.. 말씀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은 자체로 말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게 여러 가지 이유로, 가려져 있어서,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설교는, 그 가려진 베일을 치우고, 말씀 자체가 갖고 있는 능력을.. 되찾게 해주는 작업입니다.
잎사귀가 무성하지만, 그 속에는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주님이 책망하셨듯이,
우리의 설교가 ‘열매가 없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되지 않도록,
목회자는 늘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영광’이라는 말은.. ‘무게’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설교에는 영광이 있습니까? ‘영광의 무게감’이 느껴집니까?
주1)
지금까지 도우셨으니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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