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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허리띠의 비유

LNCK 2013. 9. 21. 12:40

 

◈썩은 허리띠의 비유                 렘13:1-11                         출처

 

 

 

◑서론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의 교회들에는 이상한 예배형태가 등장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대신 드라마와 연극으로 하고

심지어 어떤 교회는 예배당에 링을 만들어 놓고, 레슬링으로 설교를 대신 합니다.

 

그래서 두 선수가 레슬링을 하는데, 담임목사님이 이기고, 약한 선수가 집니다.

진 선수는 마귀를 상징하고, 이긴 선수는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예수님이 마귀를 이기니,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을

퍼포먼스 후에 듣기도 하고, 화면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이처럼 언어보다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행습이

(에스겔이나) 예레미야 13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른 선지자보다도 더 많은 상징적인 행동과

이미지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3장만 봐도

예레미야가 다섯 번이나 상징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첫째로 썩은 베띠를 사서 차고 다니다 하나님께서 유브라데 물가의 땅에

파묻으라고 했더니 여러 날 후에 가보니까 썩었더라는 썩은 베띠의 비유입니다.

 

둘째로 병에 가득한 포도주의 비유입니다. 사람들이 병에 가득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서 서로 싸우다가 망하게 되었더라는 비유입니다.

 

셋째로 교만한 자에게는 빛이 변하여 어두움이 된다는, 빛과 어두움의 비유입니다.

 

넷째로 왕후가 영광의 면류관을 벗어버리는 비유입니다.

유다의 왕과 왕후는 교만으로 말미암아

왕과 왕후가 왕위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비유입니다.

 

다섯째 유다백성의 죄악은 구스인이 피부색을 바꿀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비유입니다.

 

이렇게 많은 상징적인 이미지나 행동을 통해서, 예레미야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레미야가 전한 이런 상징적인 행동이

오늘날 드라마나 연극 또는 레슬링을 통한 예배를 정당화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베띠를 샀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유브라데 강가에 가서 묻었으며

여호와의 말씀대로 썩은 것을 파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한 것이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신약성서 어디에서도, 예배를 인도하는 자는 이런 상징적인 행동이나

가시적인 수단을 써서 예배를 드리라는 명령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사람의 구미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엄숙하고도 비장한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다섯 가지 예레미야의 상징비유 가운데

첫 번째 썩은 베띠의 비유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베띠의 재료는 베입니다. 베띠는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벨트, 속옷 혹은

겉에 입는 반바지로 번역합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번역된 것이 허리에 띠는 벨트라고 되었기 때문에

영어로 ‘linen belt’라고 합니다.

 

베띠는 ‘linen’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linen’은 삼베입니다.

오늘날도 이 삼베는 대단히 값비싼 의복의 재료입니다.

수의도 삼베(모시)로 만듭니다.

 

구약시대에는 이 삼베를 제사장이나 왕들이 입고 다녔습니다.

성경에 ‘세마포’라고 했는데, 아주 가는(세) 삼베(마)로 짠 천(포)이라는 뜻입니다.

이 베띠는, 대단히 사치스럽고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했습니다.

베띠는 오늘날 허리띠처럼 가는 것이 아니라

넓이가 넓고 가운데는 프로레슬링 챔피언 벨트처럼 금이나 보석으로 장식된 벨트였습니다.

 

이런 베띠를 허리에 띠고 다니는 사람은

자기의 신분이 고귀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베띠를 띠고 다니면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되고

존경심을 이끌어 내는 명품이었던 것입니다.

 

 

◑1. 베띠의 변화과정

 

▲그러면 이 고귀한 명품 베띠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요?

본문 11절에 답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베띠가 썩지 않을 때는 명품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고 사용하시며 많은 나라 가운데 택하여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베띠가 사람의 허리에 밀접하게 달라붙어야 됩니다.

허리띠를 꽉 메지 않고 느슨하게 하고 다니면 바지가 벗겨지는 현상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허리띠는 아주 밀접하게 꽉 조여야 됩니다.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라고 되어 있는데

‘속함 같이’는 영어로 'cling to' 혹은 'stick to'를 씁니다.

‘딱 붙어있다’, ‘밀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연합하다’는 동사나 허리에 ‘속함’ 같다는 동사나

동일한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과 허리띠가 밀착되어 있듯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은 깊고 강한 친밀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왜 친밀성을 유지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좀 멀리 두고 살면 안 되냐?’

라며 귀찮아 하시는 분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야 되는 이유가 본문 11절 후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과 밀접하게 지내는 그 사람은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칭찬과 명예를 합쳐서 칭예라고 했습니다.

 

언약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

그 백성을 칭찬받고 명예 얻고 영광얻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6장 19절에도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사람은 누구하고 친하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영광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건달하고 같이 지내면 말과 행동이 건달처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과 늘 같이 지내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끼리끼리 모인다, 모이는 사람끼리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허리띠를 띠듯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야

우리에게 하나님이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고 싶으시면 벨트가 몸에 가깝듯이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벨트(허리 띠)를 유브라데 강으로 옮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렘13:3~5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유브라데는 오늘날의 유프라테스 강입니다.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는 무려 600km나 됩니다.

예레미야가 부지런히 걸어가면 세 달 정도 가야 되는 거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예레미야가 명령을 수행하기는 너무 먼 거리니까,

현실 불가능하다고 보고)

유프라테스 강이 아니라 아마도 아나돗에서 가까운

유브라데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작은 시내나, 샘물일 것이라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브라데’가 고향인 아나돗 근처이든지,

아니면 실제 유브라데 강이든지, 중요한 것은 그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의미입니다.

 

▲유프라테스 강은 앞으로 유다백성이 포로로 끌려갈 바벨론

왕국의 소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옮겨진 벨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600km나 떨어진 바벨론으로 유다백성을 옮기라는 상징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당신이 그처럼 영광과 존귀를 주시려고 하신 백성을

600km나 되는 먼 곳으로 옮겨버리려 하십니까?

 

본문 9절로 10절에 이유가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이 베띠같이) 썩게 하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 없음 같이 되리라’

 

여기에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는 교만입니다.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교만이 나옵니다. 그 다음으로 거절, 강퍅함,

다른 신이라는 단어들이 나오는데 이것이 다 망하는 단어들입니다.

 

유다백성들이 교만함으로 칭예와 영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포로됨과 부패함이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프라테스 강에 가서 바위틈 물가에 묻어둔 베띠(벨트)는

여러 날이 지나자썩어 버렸습니다. 명품 벨트를 강 밑에, 바위 밑에,

물속에 묻어 두었더니 여러 날 지나니까 썩은 벨트가 되었습니다.

 

장식물이 모두 다 부패하고 부식되었습니다. 삼베도 썩었습니다.

보기에도 흉하고 완전히 못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벨트를 차고 다니면 인사는 그만두고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썩은걸 차고 다니느냐? 냄새난다.”고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벨트를 쓰레기통에 버렸는지 아니면 기념물로 가져갔는지

어떻게 했는지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 못 쓰는 벨트를 버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벨트가 못 쓰게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완전히 망했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유다백성들은 주전 539년 고레스 칙령을 받아 가지고

스룹바벨의 인도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유다민족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징계 받고 정화되고 훈련되어

더 훌륭한 백성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베띠가 썩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본문 9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백성이 교만해 하는 것

즉, 자랑하는 것(boasting)을 썩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 23절에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혜와 용맹 그리고 재물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자랑하는 모든 것을 옮겨 버려서 다 썩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베띠의 비유는 대단히 심각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친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면

하나님이 칭찬과 영광과 명예를 얻게 하시겠지만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고 자랑하고 교만하면

그 자랑하는 것을 다른 데로 옮겨 버리고 못쓰게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건 시간문제다, 시간만 지나면 못쓰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9장 23절로 24절의 말씀을 장난으로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장난으로 듣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랑하는 자는 세상 것 자랑하지 말고 명철하여

나 여호와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 아는 것을 자랑해야지

쓸데없는 세상 것을 자랑하면 교만이 되어 옮겨지고 못쓰게 하겠다는

심각한 말씀인 것입니다.

 

 

2. 베띠 비유의 교훈

 

그러면 이런 썩은 베띠의 비유는 누구를 교훈하고자 하는 것이냐?

이 말씀은 세 가지 부류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경고입니다.

강력하고 심각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존귀한 명품베띠처럼 영광스럽고

하나님과 친밀해야 마땅합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아교로 붙인 것처럼 붙어살아야 가정이 행복합니다.

자식들 공부시킨다고 직장생활 한다고 떨어져 살지 마십시오.

집안 살림과 자녀 교육보다도 부부가 붙어사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부부가 붙어살아야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붙어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생명을 주고 이걸 사셨으니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리스도와 교회는 남편과 아내의 친밀함같이 친밀함이 있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가까워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름에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교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와 명예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 신자 개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나오고 교회회원이라고는 하지만

거듭난 경험도 없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갈급함도 없으며,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의지도

하나님의 교회에 헌신하려고 하는 헌신의 의지도 없으며

헌금한번 해보려는 생각도 없으면, 하나님이 축복하실 의무가 없습니다.

 

하나님 자랑은 없고 세상 것 자랑하고 의지하며 살면

하나님은 그 자랑하는 것을 옮겨버리시고 못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살고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때에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명예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베띠처럼 하나님과 밀착되어 사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은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기 원한다.’고 하시면

하나님과 밀착되어 사십시오.

 

허리띠를 띨 때마다 ‘내가 하나님과 밀착되어 사는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모든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예수 안 믿고 지옥 갈 불신자라 할지라도

짐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햄릿의 작가인 셰익스피어는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가

(What a piece of work is a man)!'하고 감탄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불멸의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도 영혼은 불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야하는 존귀한 베띠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명품입니다.

명품은 여러 개를 만들지 않고 하나만 만듭니다.

 

요즘 학자들이 인간복제를 한다고 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개야 복제해도 개가 개지만, 사람은 복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복제한다 해도, 영혼이 복제가 안 되기 때문에

동일한 인간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혼을 주셔야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복제한다는 엉뚱한 짓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이 하나하나 지으신 존귀한 명품 같은 존재입니다.

이마가 벗겨진 분은 벗겨진 대로 머리가 빠진 분은 빠진 대로 명품입니다.

 

인간은 똑같은 존재가 없습니다. 못생긴 사람도 명품입니다.

못생긴 대로 개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이 크고 어떤 사람은 입이 큽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작품이 다 다릅니다.

 

우리는 신자든 불신자든 인간이라는 것만 가지고도

존귀한 베띠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는 인간을 썩은 베띠 같이 되게 하였습니다.

인간사회에 짐승도 안하는 저질적인 죄악이 가득합니다.

 

원숭이들이 데모를 했습니다.

“우리가 왜 인간의 조상이냐? 우리가 언제 인간들처럼 저렇게 나쁜 짓을 하며 살았느냐?

우리는 5,000년 전 원숭이, 지금도 원숭이며 앞으로도 원숭이가 될 것이다.”

하고 대모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야 될 인간이 우상과 마귀를 예배합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옮기실 것입니다.

그리고 베띠처럼 썩어버리게 할 것입니다.

 

지옥이 그런 곳입니다. 망가지지 않는 인생이 되길 원한다면

예수님께 나오시고 예수님을 믿으시며 하나님과 밀착되어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나오고 하나님과 밀착되어 살면 그 인생은 명예스럽고 축복되고

존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십니다.

 

 

◑결론

 

썩은 베띠의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세상 헛된 것을 자랑하는 교만심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리띠가 사람 몸에 붙어 있듯이, 하나님께 붙어사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애가 하나님의영광과 존귀가 나타나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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