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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바다 / 김성수

LNCK 2014. 4. 25. 10:29

◈유리바다           계4:6. 15:2        김성수 목사, 계시록 28강 및 60강 토대로 정리

 

※이 세상에서는, <고통의 바다>에 빠져서 일평 살지만,

    천국(현재 천국 포함)에 간 영혼들은, <유리 바다> 곁에서 편히 쉽니다.

 

 

▲계시록에 유리바다가 4장과, 15장에 각각 1번씩 나옵니다.

 

계시록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계시록 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유리바다란.. 천국에 바다 sea of glass가 있는데.. 그 재료가 ‘유리’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리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이 있는 바다’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유리는 헬라어로 hyalinos인데, ‘유리’도 되지만 ‘유리처럼 맑은’이란 뜻도 있습니다.

또한 4:6절에 ‘수정(크리스털)처럼 맑은’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니 진짜 유리 재질로 된 바다가 아니라,

‘유리처럼 투명하고 맑은,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는 것입니다.

 

그 유리 바다의 위치는,

하나님이 좌정하고 다스리시는 보좌 앞입니다. 4:6

 

 

◑유리바다는, '새 하늘과 새 땅'처럼

재 창조된 맑고 깨끗한 천국의 바다를 의미합니다.

 

천국에 '바다가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는데,   21:1

세상 바다가 사라져 없어지고, 대신에 '유리바다'가 있는 셈입니다.

 

※혹자는, 계시록을 1~22장 모두 '상징적'으로만 해석하는데,

   저는 '상징적'+'문자적' 둘 다 해석합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그러면 이 완성된 <하늘나라의 유리바다>는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바다'하면 심판과 저주, 악, 죄 등, 통칭하여 '세상'을 상징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그 바다가 물러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징하는 뭍이 드러나는 것을

'새 창조,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유리 바다

사단, 옛 뱀이 올라오는 “그 바다”와는 다른 바다입니다.

새 바다 / 완전한 바다인 셈이지요.

 

사단 옛 뱀이 바다에서 올라왔습니다. 바다는 ‘죄악된 세상’을 상징합니다.

여러 나라들이, 바다(지중해)를 중심으로 모여 있으니까요.

 

계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그 바다의 지배자는 ‘용’입니다.

욥기에도 그런 표현이 나오지요.

 

▲1. 출애굽기에 예표된 ‘유리바다’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 앞에 유리 같고, 수정 같은 것이 펼쳐져 있는 장면이

구약의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출24:9-10)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계4:6은 '보좌 앞'에 유리바다가 있는데,

       여기서는 '발 아래'에 있다고 했습니다. '유리 바다'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2. 성막/성전에 예표된 ‘바다’

그런데 ‘성막’에서 하나님의 보좌, 성소로 들어가는 길에 무엇이 놓여있지요?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성막의 물두멍(물탱크)은, 솔로몬 성전에서 ‘바다’로 불려집니다.

실제로 물두멍은 ‘많은 물을 담고 있는 물탱크’였고요.

그 용도는, 번제단에 바치는 제물을 씻기 위한 것이었죠.

 

성막은, 천국의 모형인데,

천국에 있을 유리바다가.. 성막에서는 ‘물두멍’으로 예표된 것이죠.

성전에서는 아예 그 물두멍을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왕상7:23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고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만하며

24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물을 담는 기구를, '바다를 (놋으로) 부어 만들었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 '바다'는 영어로 ‘sea’입니다.

 

바로 천국의 유리바다를 예표하기에,

솔로몬 성전에서 아예 그 이름을 ‘바다 sea’로 부른 것입니다.

 

여기서 ‘바다’는 히브리어로 ‘얌’인데

-지중해, 홍해 등, 일반적인 바다를 의미함과 동시에

-성전 앞에 있는 물저장고도, 그 이름이 ‘얌(바다)’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천국의 ‘유리바다’를

구약에서부터 예표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20년 전에는 '바다'가 sea 인줄도 모르고, 한글로 무슨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10년 전에는, 왜 성전 앞 물저장고 이름이 하필 '바다 sea'인지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천국의 모형>이라는 것을, 그것이 <유리바다>라는 것을!

 

▲3. 에스겔서에 나오는 ‘유리바다’

 

(겔 1: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새번역) 그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창공 모양의 덮개와 같은 것이 있는데,

수정과 같은 빛을 내서, 보기에 심히 두려웠으며, 그 생물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에스겔서 1장은,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본 환상입니다.

거기에 ‘궁창’이란 표현이 나오는데요, 그런데 ‘수정 같다(수정 같이 맑다)’고 했습니다.

또 ‘생물’이란, 이사야서 6장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는 스랍과 그룹을 뜻합니다.

 

정리하면, 겔1장에서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수정 같은 궁창’은, 천국의 보좌 아래 있는 ‘유리 바다’를 본 것입니다.

그렇게 연결됩니다.

 

겔1:22절을, 계4:6절과 비교해 보세요. 유사한 점들이 많습니다.

 

(계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 하더라”

 

 

▲4. 창세기 1장, 궁창 위의 물

 

(창 1:6-7)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궁창 아래의 물’은 바다라고 부르지요?

그럼 ‘궁창 위의 물’, 즉하늘 위의 물은 뭐라고 부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니까 실재할 것 아닙니까?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의 하늘에 있는 바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이 올라오는, 마지막에 없어져 버리는 그 바다와는 다른 것입니다.

창세기의 원래 창조가, 타락한 세상이 되어 버리자

계시록에서, 새 창조/ 재 창조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폭풍의 바다 혼돈의 바다, 광란의 바다를 몰아내시고

수정같이 맑고 아름다운 유리 바다로 만드시는 것이, 바로 구원(상징적 해석)입니다.

물론 문자적인 '유리 바다'가 동시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이루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복음을 표적으로도 보여주셨습니다.

 

(마 8:25-26)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바로 이 모습입니다. 폭풍의 바다를 이기시는 천지의 주재이신 왕의 모습이지요.

 

(시 29: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주께서 범람하는 물결 위에 보좌를 잡으셨다. 주께서 영원토록 왕위를 굳히셨다.

구약에도 그러한 재창조의 모습이 나옵니다. 어디지요?

 

죽음의 바다, 저주의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땅처럼 건너게 하시는, 홍해를 가르시는 사건입니다.

바다가 물러가고 마른 땅,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재창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물위를 걸으신 것입니다.

 

전에도 자세히 설명해 드렸지만 그렇게 예수님의 표적은

모두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의 바다, 저주의 바다를 건넌 자들이

출애굽기 15장에서 무슨 노래를 부릅니까?

 

홍해 바닷가에서 그 유명한 모세의 노래를 부르지요?

아마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찬양일 것입니다.

 

▲5. 그런데 요한 계시록 15장에 똑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계 15:1-3)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 되시도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유리바다와 거기서 찬양하고 있는 교회인 24 장로의 모습은

성경에 그림자로 모형으로 수없이 나타났던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교회와, 그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승리는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우리가 전가 받은 것이기에

오늘 본문 10절 11절에서 24장로들이 그 승리의 면류관을 하나님 앞에 벗어서

다시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계 4:10-11)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물두멍, 성전의 바다, 유리 바다 .. "씻음"을 나타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수정같이 맑고 아름다운 잔잔한 유리바다를 지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물두멍(바다)에서 꼭 몸을 씻고서야 성소로 들어갈 수 있었던 자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단번에 성소로 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에 여러분에게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이미 일어났고 여러분은 요한이 성령 안에서 본 것처럼

그 유리 바다 가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이미 그 폭풍의 바다를 건너서 유리 바다 가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늘의 것을 마음껏 누리고 계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바다는 없어졌습니다.

계시록21장에 다시 ‘바다가 있지 않겠고’는

바로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바다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전히 폭풍의 바다에서 두려워 떨며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여러분은 폭풍의 바다 위를 걸으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그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 폭풍의 바다에 휩쓸려 다니시면 되시겠습니까?

 

(시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세상의 폭풍이 여러분을 흔들려고 할 때, 여러분은 함께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가만히 있어’, ‘흔들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는 분들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바다를 밟고, 모세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실 수 있는 실력을 키우십시오.

그게 오늘 여러분이 성령 안에서 요한과 함께 보신 여러분의 실존입니다.

 

▲6.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계15:2

그 유리 바다가 상징하는 것이 뭐였습니까?

궁창 아래의 짐승이 올라오는 그 바다와 대조해서

그 저주의 바다가 물러간 새 하늘과 새 땅의 상징이었지요.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바다가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라고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그 유리 바다가 불이 섞인 것 같이 보였다는 것은

이제 곧 심판이 땅으로 쏟아질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유리 바다 가에 누가 서있습니까?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계12~14장)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살 때, 환란을 당하며, 자연재난도 똑같이 당합니다.

그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대접 재앙, 전쟁, 기근, 질병, 자연재해 같은 대접 재앙에

세상 사람들과 함께 노출이 된다 해도, 

그러한 환난과 고통들이 오히려 유리 바다 가의 그 완성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가는데

필연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