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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목사의 <기도의 단계>

LNCK 2014. 4. 29. 09:01

정원 목사의 <기도의 단계>                                            출처1,   출처2

 



◑1. 기도의 단계

 

기도에는 여러 단계들이 있습니다.
기도 세계의 여행자들은 본인의 영성의 발전 단계를 따라
여러 수준의 단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단계들은 각 사람의 수준이나 성향 사명에 따라
다양하게 경험되어지는데요..

그 단계에는 고통의 단계도 있고 즐거움의 단계도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맛볼 수 없는, 광야에 홀로 버려진 듯한
메마름의 골짜기도 있고 꿀물이 흐르는 샘물가의 경험도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의 단계들을 빨리 통과하려고 하고
행복한 자리에서는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군데에서 머물러 있지 말고
계속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1. 능력의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불에 휩싸입니다.
그것은 너무 강렬하고 감격적인 경험 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그곳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를 때 우리는 거칠고 사나와 질것입니다.

 

 

2. 달콤한 황홀경의 세계도 있습니다. 이곳은 진정 떠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 곳에 머물면서 그 맛을 볼 수는 있지만
여기에 계속 머무르고자 할 때 신비주의의 늪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신비주의는 깊어 보이지만 결코 깊은 곳이 아니며
신비주의는 나 중심이고, 자기 행복 중심 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도취는 목표가 아닙니다.
도취는 하나의 도피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약에도, 최면술에도, 요가에도, 기 훈련에도,
초월적 명상에도, 마인드컨트롤에도, 심령 과학에도, 세상 음악에도

영의 종류가 다를 뿐 도취와 황홀경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황홀감이 없다면, 사람들이 그런 것에 미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초월적인 경험(꿈과 환상)을 직접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들이 얼마나 황홀한 느낌 해방감을 주는지 알지 못하며
사람들이 왜 그런 것들에 빠지는 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신앙여정의 초기에서 그런 미혹된 경험만을 갖고 있으며
참된 성령의 경험이나 말씀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의 진위를 분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달콤한 느낌이 다 바른 것이 아니며
설사 바른 영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경험이 영혼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어린 영혼일수록 신비한 경험을 추구하게 되며
    주님께서는, 어느 정도 영혼이 성장하게되면
    그 경험을 가져가 버리십니다.

    제자들은 `그저 이 곳이 좋사오니.. 하고 애원 하지만 (마17:4)

    그들이 눈을 떴을 때
    아무 것도 구름도 남아있지 않고
    오직 예수 외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육신의 혈기 욕심 죄성이 별로 죽지 않았을 때
신비의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은.. 독약과 같습니다.
그는 그것을 소화할 만한 능력이 없으며
교만해지고 완악해져 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탄의 궤계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속은 것을 모든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데
본인만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깊은 계시의 세계도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도 있으며 미혹도 있습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눈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진리를 깨달았다고 느낍니다.

그곳도 빨리 떠나야 합니다.
그는 실제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단순한 착각의 상태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다른 사람의 상태나 객관적인 진리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비천한 상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시각과 관점으로
다른 사람과 모든 것을 비판하게 됩니다.

그 자신이 얼마나 냉정한지 날카로운지
온유함과 사랑이 없는지 그는 보질 못합니다.

이와 같이 남의 상태를 함부로 판단하고
자신의 신앙이 좋은 줄로 아는 사람은 사탄에게 미혹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시며
그 분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분의 긍휼을 구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속한 사람은, (자기 은사로)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않으며
오직 사랑의 시각으로 다른 이들을 보고 대할 뿐입니다.

 

 

4. 많은 곳을 여행한 후에 여행자는 기도의 단순함으로 돌아갑니다.
여행자가 머물 곳은 단순한 사랑의 기도의 장소입니다.

이곳은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이며 주님의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영혼들을 사랑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됩니다.

 

기도의 단계들은 행복하면서도 위험하고 위험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높은 영계로 여행하는 사람도 있고
어두운 골짜기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자신이 영계의 높은 곳에 있는 줄로 착각하는 영혼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기도의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이 길을 걸을 때 그 분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기도의 계단을 오르십시오.
기도의 단계들을 통과하십시오

 

자신이 높은 영적인 고수(신비 체험이 많은 사람)가 되기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볼 수 있도록
계속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기도는 여러 단계의 계단을 통과 하는 영혼의 여정인 것입니다

 

 

 

◑2. 영적 도둑질과 영적 하강!
 
사람들이 잘난 척을 한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영리하기 때문에 눈치가 빨라서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내면의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게 되면  
그는 순간에 영계의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의 육신은 물질적으로는 여전히 같은 장소에 있지만 
그의 영혼은 같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의 영혼은 아래로 떨어집니다.
 
사람의 영혼은 항상 영계와 교통을 하고 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빛의 영계입니다.
 
성경은 하늘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사66:1) 
마귀는 자신을 높이다가 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사14:12-15) 
 
그처럼 지옥의 영계는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하다가  
가장 낮은 영역인 음부 구덩이의 맨 밑으로 떨어진 것처럼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이들은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주님의 실상을 가까이 경험하며  
그분과의 살아있는 교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결코 자신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하다가는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마음이 불안해지며 불쾌해집니다.  
그는 주의 임재가 사라지며 자신의 영혼이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주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 전까지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습니다.  
그의 영혼이 그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루시퍼가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하고 마음먹은 것처럼  
악한 영들은 본능적으로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모든 높아지려고 하는 이들은
마귀와 같은 파장을 가지게 되어 그들과 같이 교통하게 되며
그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이 우주의 주인이시지만
비천하고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처럼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모습을 가지려고 할 때 
그는 주님과 영적 속성이 일치함으로 주님의 임재를 누리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대화 중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남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남들이 먼저 말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들은 그럴 경우에 자기는 그것을 전에부터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야 속이 풀립니다.
 
자기는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표하기 몇년 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자신을 높이며 자신의 지혜를 높이며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
    왜 어둠의 영계로 떨어지는 이유가 될까요?
 
그것은 그것이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소유를
도둑질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함과 모든 지혜와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시며 구속자이신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아름다움도 지혜도 선함도 그 어떤 좋은 것도 다 주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다만 은혜로 그 어떤 것들을 누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자기 소유인 것으로 여기고 자랑하면
그것은 주님의 소유를 도둑질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도둑은 어둠에 속한 사람이며
그는 천계의 빛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 빛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됩니다.
 
천국은 모든 선함의 근원이 주님이신 것을 시인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통해서 형성이 되기 때문에
그가 천국의 질서를 깨뜨린다면
그는 그 천국의 영계로부터 단절되게 되는 것입니다.
 
    외모가 아름다운 여인은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당신의 몸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자신이 있나요?’
    여인은 ‘눈입니다’ 또는 ‘코입니다’ 하는 식으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러한 것에 대해서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을 하지 않고 자부심을 가지며
    다른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이들보다, 자신을 낫게 생각한다면

    그녀는 빛의 세계에서 떨어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 중심의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들은, 탁월한 지혜를 주님께 받았습니다.
그들은 지식을 즐기며 책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이들이 단순하고 소박한 이들을 마음 속으로 판단하며
그들의 무지와 무식함을 경멸하며 비웃고
자신의 지혜를 자랑한다면 그도 역시 천국에 거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이며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천국의 빛을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거하게 됩니다.
지적 교만 때문에 이러한 상태에 떨어져 있는 이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마비상태에 있으면
그들은 자신의 그러한 상태에 대해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의 근원으로서의
주님(not 자신)을 계속 끝없이 바라보고 찬양하며 높여야 합니다.
그것이 더 깊은 선함과 아름다움과 지혜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근원을 시인하지 않고 자신을 시인한다면
그는 어두운 곳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거나
어떤 대회에서 입상한 이들이 소감을 물을 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고 말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표현과 고백은
모든 삶의 순간 순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더 깊이 그 마음 안에서 깨달아져야 합니다.
 
영적 성장이란 곧 주님이 모든 힘과 지혜와 아름다움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에 대한 철저하고도 통렬한 깨달음입니다.
 
이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욱 더 간절하게 주님을 구하고
사모하게 되며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더 깊고 놀랍고 풍성하신 주님의 자비 가운데,
천국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 주님을 시인하지 않고 자신을 시인하게 될 때
그는 어둠의 영계로 "순식간에" 떨어지게 될까요?
그것은 주님이 인격적이신 분이며
아귀다툼을 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억지로 영광을 돌릴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천사들과 함께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시지만
우리가 그분을 높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산다면 조용히 소멸되십니다.
그분은 일시적으로 우리를 떠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협하고 억제하여
우리를 무릎꿇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사라지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막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을 선택하고 자신을 시인하고 선택할 때
조용히 우리를 떠나시며 우리의 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분과 그분의 천사가 우리를 떠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어두움 속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배하며 억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이들은
금방 기분이 나빠지고 싸움이 생기고 불쾌해지며
불안하고 여러가지 고통스러운 증상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천국을 거부하고 지옥과 지옥의 영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 세계는 결코 이 땅의 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이 곳에 바로 접하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물질 세계에 살면서도
어떤 이들은 천국에 속하여 그 빛을 받으며
어떤 이들은 지옥에 속하여 그 재앙과 고통을 받으며 삽니다.
 
부디 주님의 선과 아름다움과 은총을 도둑질하지 마십시오.
결코 천국의 빛 가운데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절대로 절대로 자신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높이지 마십시오.
자신의 탁월함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가장 비참하게 만들게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당신을 칭찬할 때
당신은 아주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은 겸손함으로, 온유함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모든 아름다운 열매의 근원으로서
오직 주님을 시인하며 높여야 합니다.
감사와 찬송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천국의 빛을 유지할 수 있으며
언제나 그 빛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근심과 두려움이 있으나
그렇게 주님의 임재 안에서 천국의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세상이 알 수 없는 놀라운 기쁨과 행복을 맛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 정원 목사의 [천국의 중심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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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염일방일 (拈一放一)          *어느 분이 카톡으로 오늘 아침에 보내주셨네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를 쥐고 또 하나를 쥐려한다면 그 두개를 모두 잃게 된다는 말이지요.

 

약 1천년 전에 중국 송나라 시절, 사마광이라는 사람의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한 아이가 커다란 장독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 가져와라, 요란법석을 떠는 동안

물독에 빠진 아이는 꼬로록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지요.

 

그 때 작은 꼬마 사마광이 옆에 있던 돌맹이를 주워들고, 그 커다란 장독을 깨트려 버렸어요.

 

치밀한 어른들의 잔머리로 단지값, 물값, 책임소재 따지며 시간 낭비하다가

정작 사람의 생명을 잃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더 귀한 것을 얻으려면 덜 귀한 것은 버려야 하나봅니다.

 

내게 있어 돌로 깨 부셔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꼬마에게 한 수 배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