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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진지함을 유지하기 P4 겔3:18 도서스크랩
찰스 스펄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21장 pp.501~508. 내용을 스크랩했습니다.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출판사.
◑불길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바람을 불어넣으세요.
*직전 회에서 ‘연료’는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
또는 말씀과의 깊은 만남을 의미했습니다.
▲많은 기도와 간구로, 불길에 바람을 불어넣으십시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목사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리 격한 언어를 사용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형제들과 우리들에게는 기도해야 할 절대적인 ‘필연성’이 있습니다.
‘필연성’이라고 했습니다만,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도의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도의 분위기 속에서 사는 영혼에게는, 놀라운 포근함과 신적인 환희가 옵니다.
이에 대해, 존 폭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은밀하게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포근한 시간이요, 가장 좋은 시간이다.
그러니, 그대의 삶을 사랑한다면, 기도로 사랑 안에 거하라”
경건한 허비는 병들어 누워 있을 때, *Hervey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살려 주시면, 읽는 것은 줄이고, 기도를 더 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존 쿠크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John Cooke
“기도의 일과 즐거움과 존귀함과 유익이, 날마다 더욱더 강력하게 내 영혼을 압박하고 있다”
한 작고한 목사는, 임종이 가까워올 때에
“기도를 더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그런 탄식이, 건강할 때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경건의 시간들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들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습관’이 있는 것보다는, ‘기도의 정신’이 있는 것이 더 좋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경건한 형제들과 함께 자주 무릎을 맞대고 머리를 숙일 수 있으면, 정말 복된 일입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목사들은
절대로 기도와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철칙으로 삼는다면, 훨씬 더 많은 간구가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친구들끼리 함께 만날 때마다, 기도와 찬양으로, 그 만남이 거룩해지도록 하십시오.
예배시간 전 목회실에서, 마음이 뜨거운 집사들이나, 다른 형제들을 서너 명 불러서
함께 몇 분 동안 기도한다면, 새로운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 경우는 그렇게 함으로써, 언제나 영적 싸움을 위하여 큰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진지함에 격렬한 불꽃이 피도록,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서재에서든, 목사실에서든, 강단에서든,
언제나 어디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도록, 끊임없이 기도의 정신을 갖기를 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강단에 앉을 때든, 찬송을 부르기 위해 일어설 때든, 성경 본문을 봉독할 때든, 설교를 할 때든,
언제든 한 손을 하나님께로 들어올려서,
위로부터 축복을 받아서, 다른 손으로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설교에 임할 때에는 마치 수도관처럼, 하늘의 영원하고도 무한한 공급과
사람들의 한정 없는 필요 사이를 연결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평소에 하늘에 닿아 있어야 하고,
하늘과의 교통이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교인들에게 설교하는 동안에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과 이야기하십시오.
그렇게 해야만, 여러분이 계속해서 진지함(설교 제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의) 무릎을 꿇고 일어나면서, 진지한 상태가 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과거에는 보통 한 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기도했습니다. 영화에 나오지요.
만일 그런데도 진지함이 없다면, 거룩한 불길이 영혼 속에 생기기까지
다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담 클라크는 언젠가 말하기를
“죽도록 스스로 연구하며, 그 다음에는 스스로 기도하여 다시 살아나라”고 했습니다.
아주 지혜로운 말입니다.
후자(기도)가 없는, 전자(연구)를 시도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연구가 없이도, 기도를 이룰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연구하면서 기도하고, 살피면서 기도하십시오.
연구를 하더라도, 기도는 항상 있어야 합니다.
◑봉사에 참여하면서, 그 불길을 휘저으십시오.
▲친숙한 봉사의 현장에서 물러나서, 새로운 땅을 경작함으로써 (새로운 봉사에 참여하면서)
여러분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일과를, 흔들어 놓으십시오.
물론 부수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마음을 새롭게 유지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방법으로서
저는, 여러분의 일상적인 일과에 새로운 봉사에, 자주 참여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평소에 안 가보던 봉사의 자리에, 한 번이라도, 가보는 것입니다.
곧 신학교를 떠나게 될 형제들에게 말씀드립니다만,
사역지에서 정착하는 동안, 몇몇 탁월한 분들과 접촉하게 될 것이고,
어쩌면 홀로 있는 상태에 있게 될지도 모르는데,
여러분이 스스로 무뎌지고 정체되고 무익하게 되지 않도록 잘 돌보아야 하고,
진취적인 정신을 항상 유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담당해야 할 일이 주어질 것이고,
그 일을 함께 돕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고,
여러 해 동안 계속해서 무겁게 그 일이 짓누를 것입니다.
이것을 잘 살피고,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여러분이 무뎌지고 지루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막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경험에 비추어서 지금 여러분께 권하는데,
언제나 무언가 새로운 봉사를 손에 잡고 있는 것이, 제 자신에게는 참 유익이 되었습니다.
평소에 행하는 일상적인 사역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만,
동시에 거기에 새로운 사역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마치 농부가 밭이나 정원을, 매년 한 두 자 정도 넓혀가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그래야 합니다.
절대로 ‘이 정도면 됐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이제 됐다. 쉬면서 감사하자’라는 태도를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그 다음에 조금씩 더 넓혀 가십시오.
인구가 2천명 정도 되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어느 정도 사역하고 나면,
이제 4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작은 부락이 있습니다. 그곳에 집회소를 개설하십시오.
한 부락이 끝나면 다른 부락으로 가서, 땅을 살피고
여러분 앞에 놓은 그곳의 영적 핍절의 상태를 해갈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임무이기도 하고, 동시에 여러분을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성도들과, 경건한 교제권을 계속 유지하십시오.
휫필드는, 어느 젊은 청년이, 하나님의 임재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의식한 나머지
길을 걸을 때에 보통 모자를 벗고 걸었다는 이야기를, 예화로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그런 자세 속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영적인 진지함을 유지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영혼의 진지함을 유지하려면,
여러분에게 맡겨진 영혼들과, 지극히 친숙하게 지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물속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서 있으십시오.
자기 혼자, 물밖에 나와 있는 고기가 되지 마십시오. 죽습니다.
설교자들 중에 일반 교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과 함께는 편안히 지내지만, 사람들과 함께는 아주 어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진짜 꽃들을 거의 본 일이 없는 식물학자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별을 보느라 밤을 지새워 본 일이 없는 천문학자는.. 어떻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과연 과학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직접 그들의 상태를 아는 일이 없다면,
복음 사역자로서는, 돌팔이 의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공부란.. 삶의 현장에서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설교에서 인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생에 대해서 풍부하게 알아야 합니다.
‘책’들은 물론, ‘사람’들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생각’보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사랑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설교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고뇌 가운데 있는 자들을 긴밀하게 찾으십시오.
그들의 어려움과, 그들의 고뇌와 양심의 아픔을 살피십시오.
평화를 찾고자 애쓰는 그들의 열심을 보는 것이, 여러분을 진지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신앙적 진지함이 없는지를 보면,
그들을 각성시키고자 하는 열심이, 여러분에게서 더 크게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구주를 찾은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영혼에 부흥이 일어나는 위대한 수단입니다.
슬퍼하는 자를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이 정말 영적으로 다시 젊어졌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슬피 울며 회개하는 자가 ‘이제 내 짐이 모두 사라졌고, 나는 구원을 받았도다!’
라며 탄성을 지르는 것을 들으면,
그것이 여러분의 뼈에 윤활유와 같은 작용을 할 것입니다.
때로는 거듭난 영혼의 황홀해하는 모습이,
여러분을 사도적인 열정 속으로 몰아넣기도 할 것입니다.
영혼이 회심하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어떻게 설교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잃어버린 양을 사로잡는 그 현장에 있으십시오.
그리하여 큰 목자장의 기쁨에 함께 동참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젊음이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과 더불어 죽음의 현장에 함께 있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수개월, 혹은 수년을 따라온 그 수고가 보상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든든히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이 영혼들을 정말로 얻었구나”하고 외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진지한 열정이 새로이 불길처럼 솟아오를 것입니다.
▲큰 도시에서 사역할 경우에는, 여러분의 교회당이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그곳의 가난한 자들과 무식한 자들과 술주정뱅이들과 친숙하게 알고 지내십시오.
할 수 있으면 ‘도시 빈민 사역자’들과 함께,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거기서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처참한 질병의 상태를 친히 목격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치유책을 찾을 열정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대도시의 ‘가장 좋은 거리’에서조차도 악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빈민가’는 그야말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악행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의사가 병원 속을 샅샅이 걸어 다니듯이, 여러분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죄가 만들어 놓은 그 악행들을 보아야 합니다.
죄가.. 이 땅에서 만들어 놓은 그 황폐를 눈으로 똑똑히 보고,
피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게 되셔야 합니다.
헌신된 빈민사역자와 함께 하루를 보내며 그 현장을 본다면,
여러분의 신학교 과정을 잘 마치는 것이 될 것이고,
여러분 자신의 사역을 위해서도, 매우 적절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무수한 무리들이 죄 가운데서 살며, 술취함과,
주일 거부와, 폭력과, 신성모독으로 더렵혀져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완악함에 젖은 상태로, 두려움과 절망에 가득하여 죽어가는 것을 보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목회적 열정을 되살려 줄 것입니다.
세상은.. 극심한 빈곤과 처절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치와 죽음이.. 무수한 사람(죄인)들이 받는 삯입니다.
이런 인간 영혼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치유책은, 위대한 복음밖에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도시 뒷골목 힘든 현장에서, 여러분은 절실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사역과 혼인하여, 절대로 그것을 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임종 역시, 우리에게는 위대한 학교가 됩니다.
임종과 장례는, 우리의 사역을 진지하게 대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약과 같습니다.
저는 죽어가는 사람의 임종을 대하고 내려오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미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포함해서요.
사람들이 이 땅의 것들에 대해서, 그렇게 애착을 가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급하게 다니고 있는가?
저 여인은 어째서 저렇게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죽게 될 것이니,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치가 없는데 말이다..’
사람이 죽는 현장에 자주 있는 것이,
사람들에게 사는 법과, 죽는 법을 가르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맥체인은 토요일 오후에는, 언제나 병든 자들과 죽어 가는 교인들을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제임스 해밀턴 박사가 말한 대로,
“설교하기 전에, 저 마지막 경계 너머를 보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 나아가서, 여러분의 일을 하나님의 빛 속에서 가늠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입니까, 아닙니까?
하나님의 종이라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 차가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께서 그의 사랑을 선포하시고,
그의 상하심(상처)의 상급을, 사람들이 얻으라고 보내신 존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축 늘어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계십니까?
주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도록, 여러분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까?
기름 부음 받은 일이 없다면, 기름 부음 받은 체하지 마십시오.
정말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면, 힘을 다하여 그 일에 진력하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의 힘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임무는 직업이 아닙니다. 직업인의 잣대로 재면,
여러분의 일이야 말로, 이 땅에서 가장 초라한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황금을 벌어들이는 것이나, 세상의 명예를 쌓는 면에서 따지면,
목회를 버리고 다른 일을 찾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여러분이 초자연의 시계에 거하며,
시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이라면,
여러분은 정말 고귀한 임무를 지닌 사람이요,
이 땅에서 나서, 유한한 시간 아래서 사는 자들보다, 월등한 사명을 지닌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임무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주님처럼, 지금 비천한 상태에 있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일임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처럼 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한다면,
주님의 첫 제자들처럼, 세상에서 무명한 자로 멸시를 받는 것이야말로
영광된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야말로 영생인데,
여러분이 바로 그분을 알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여러분의 뇌리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일을 올바른 잣대로 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진지함(설교 제목)이, 결코 상처를 입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심판 날에 비추어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진지함에 대한, 영원한 상급의 견지에서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한 영혼을 구원한 지금의 즐거움은 그야말로 기쁜 일입니다.
멸망으로 향하여 내려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우리를 이 땅에서, 작은 천국을 체험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하물며 심판 날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그 무수한 영혼들을 만나,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그들이 구속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 기쁨이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우리 주님과 영원한 교제 속에 있을, 그 천국의 복락을 바라보며 기뻐합시다.
십자가를 지는 데서 오는, 모든 부끄러움을 멸시하십시다.
영혼을 구원하는 놀라운 기쁨을, 예수께서 우리 앞에 제시해 놓으셨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진지함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한 가지 생각을 더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소홀히 할 때,
우리와 우리의 교인들에게 임하게 될 그 큰 악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은 자기 죄 가운데서 망하려니와” 그 말씀이 끔찍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은 더 끔찍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으리라” 겔3:18.
불성실한 목사가 당할 최후를,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습니까.
영혼 구령의 진지함이 없는 목사는, 모두가 불성실한 목사입니다.
저는, 사람의 육체를 죽이는 살인자에게는, 설령 천 번 만 번 제 자신을 내어줄지언정,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목회)자에게는, 절대로 제 자신을 내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복음을 믿지도 않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전혀 간절한 열심도 없이 목회자가 되어서사람들의 영혼을 맡은 사람처럼,
그렇게 처절한 종말을 맞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성실하며 영원토록 성실한 자들이 되도록 힘쓰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고, 그렇게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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