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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목 같은 믿음

LNCK 2014. 5. 16. 13:02

◈조각목 같은 믿음            신10:1~5, 골2:6~7                출처보기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그 안에 십계명 돌판을 넣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각목이 참으로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 우주에 가장 귀한 물건을 대라면 ‘법궤’일 텐데

조각목으로 법궤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조각목이란 나무는 성막과 연관 지어 출애굽기에만 26번이 나오고

신명기에도 한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막에서 아주 귀한 기구 법궤(25:10), 떡상(25:23), 분향단(30:1) 등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과 성전 밖에 있던 번제단(27:1)과

그들을 운반할 때 쓰는 채들을 모두 조각목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성전의 벽을 이루는 널판(26:15)과 띠(26:26), 사방의 기둥들(26:32),

휘장문의 기둥들(26:37)도 역시 조각목으로 만들었으니

성막을 지을 때 사용된 모든 목재가 조각목이라고 합니다.

 

(광야에, 나무가 귀한 지역에서, 거기서 구할 수 있던 재료가 ‘조각목’이기도 했습니다.)

 

성전시대에 와서도 백향목도 귀히 쓰임 받았지만

성전의 내용물이 되는 기구들이 조각목이었다는 점에서, 조각목을 능가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 나무에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조각목 같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 자기 부족을 아는 믿음입니다.

 

출4:13에 모세는 말했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진실로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쓰실 수 있었습니다.

 

조각목이 그렇습니다. 조각목은 나무로서 너무나 부족한 나무입니다.

개역성경에 조각목을 ‘싯딤나무’라고 했는데

 

히브리어의 ‘시팀’은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아카시아 나무'(acacia wood)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카시아도 번성만 잘하고 쓸모가 없다고 망국의 나무니 뭐니 해서

양봉협회의 반발을 사고 있지만

이 싯딤나무는 우리 성경에 아카시아로 번역하기에도 마땅치 않을 만큼

볼품없어 싯딤나무라 했습니다.

 

▶‘조각목’은 히브리어로 ‘쉿타’이며 복수형은 ‘쉿팀’입니다.

그래서 한글 성경에 그냥 ‘싯딤 나무’로, 히브리어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쉿타’(#7848)는, 그 유래한 단어가 쇼트(#7752)이며,

‘채찍, 매, 하나남의 채찍, 재앙’이란 뜻입니다.

 

그 나무의 외형도, 바짝 매말라서.. 하나님의 매를 맞은 것처럼 보입니다.

거의 半사막에 가까운 물 없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가, 외형이 좋게 보일 리가 없지요.

 

해석을 붙이면, 조각목은 ‘하나님의 가시, 하나님의 채찍, 하나님의 재앙’을 받은

이 세상 죄인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나무는 커봐야 3m내외로서, 가지가 밑동부터 여러 갈레 갈라져 올라와

목재로 사용할 수 없는데다가, 잔가지가 많이 뻗어있으며, 가지에 가시가 많은데

 

가시는 10-15cm로 크고 날카롭고, 낚시 바늘 마냥 살짝 굽어 혐오스럽게 생겼으며,

잎은 작아 ‘땔감’으로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나무입니다.

한 마디로 싯딤나무는 볼품없고, 고통 주는 가시나무일 뿐입니다.

 

조각목은 칼로 조각하는 彫刻木이 아니라, 皂角木(검을조, 뿔각, 나무목)입니다.

즉 ‘검은 뿔 같은’ 나무입니다. 검은 물소뿔처럼 강한 나무입니다.

장점이 있다면, 작지만 쉽게 변형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나무로 하나님의 성막에 쓰일 성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일차적 의미는, 조각목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체도 없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속죄의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 나무는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도 쓰십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자도 쓰십니다.

하나님은 약점이 한없이 많은 자도 쓰신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자도 쓰시되,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부족을 알아야 합니다.

 

사사기 9장의 가시나무의 실수는 자기 부족을 몰랐다는데 있습니다.

모세와 같이 훌륭한 사람도, 자기 부족을 모를 때는 쓰시지 않았습니다.

 

공주의 아들이라는 쟁쟁한 권력과

부귀와 영화와 애굽의 모든 학술을 통달한 그 모습으로는 쓰시지 않았습니다.

 

바울처럼 많이 배운 사람 역시, 자기의 장점을 배설물로 여길 때 쓰셨습니다.

 

그래야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자기 부족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부족을 알고 놀랄 정도로 자기 부족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약점 때문에 견딜 수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 도와 달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시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부족을 인식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만난 사람을 귀히 쓰십니다.

 

렘17:8에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조각목이 그런 나무입니다. 조각목은 사막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입니다.

 

시내 광야에서 볼 수 있는 나무는, 종려나무와 에셀나무와 싯딤나무였는데

종려나무와 에셀나무는 오아시스 주위에서나 자라고, 그래서 흔하지 않은데,

싯딤나무는 지금도 광야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강한 나무입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도 자랍니다.

 

이 나무가 이런 척박한 땅에서 자랄 수 있는 이유는

그 뿌리를 땅 속으로 깊이 내려, 지하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각목은 지상의 건조함과 모래바람 등 혹독한 시련에 굴하지 않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뿌리를 깊이 내려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가 수십 미터에서 수백 미터까지 뻗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환경이 어려운 싯딤 나무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골2:6-7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했듯이

뿌리를 내려 하나님을 만난 ‘고난의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고난 중에서 예수를 만난 바울을, 귀히 쓰셨습니다.

고난을 통과한 욥도, 하나님을 만나고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가장 귀한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의 싯딤 나무처럼, 성령의 깊은 생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내가 성취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더니

겸손히 순종하는 법을 배우도록 연약함을 주셨다.

 

내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하나님께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질병을 주셨다.

 

내가 행복해지도록 부를 간구했더니

지혜로워질 수 있도록 가난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 싶어 성공을 구했더니

하나님의 필요를 느낄 수 있게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 했더니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다.

 

내가 구한 것, 어느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를 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진작 표현하지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고난 중에서, 은혜의 주님을 만나서 강해 졌을 때,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3.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히10:38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조각목이 그런 나무입니다. 싯딤나무는 못생겼고 쓸모도 없지만

오랜 세월 광야에서 연단을 받아서, 밀도가 높아져서, 목질이 변형되지 않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평범한 나무보다

악산에서 자란 나무를 취하여 예술품을 만드는데.. 조각목이 그러합니다.

 

성경에 조각목은 칼로 조각하는 彫刻木이 아니라 皂角木(검을조, 뿔각, 나무목)입니다.

검은 뿔 같은 나무입니다. 물소뿔처럼 강한 나무입니다. 작지만 변형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귀하게 쓰인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고난 속에서도 변질되지 않는 믿음이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던져진다 해도 감사와 기도를 쉬지 않는 믿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용광로에 들어간다 해도 변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믿음,

죽으면 죽으리라 왕 앞에 나아갔던 에스더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십자가 사랑을 깨달을 때 그럴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기본이 잘되어야 합니다.

‘나를 위한 믿음’이어서는 시련이 오면 타협하고 맙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서 하면 상이 있지만

나를 위해서 하는 일에는 상급도 없습니다.

 

벧전2:19에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진실로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십자가 지는 복된 주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온전히 감추어지는 겸손을 기뻐하십니다.

 

조각목을 그냥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출37:15에 "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그랬습니다.

금으로 온전히 감추었습니다. 조각목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이처럼 내가 온전히 감추어진 성령으로 처리 받은 겸손한 믿음이 귀합니다.

내가 나타나는 순간 그만큼 하나님의 쓰시는 손에서 멀어집니다.

 

그러므로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원하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신앙동화 하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올리브나무와 삼나무와 소나무 이 세 나무가 살았답니다.

 

올리브나무는 왕궁에서 사용되는 귀한 가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수가 다가와 올리브나무를 베어 구유통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꿈이 좌절되는 순간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있는 마구간에 젊은 부부 한 쌍이 들어섰습니다.

이들은 여관을 구하지 못하여 마구간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는 요셉과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가 해산하여 아기를 구유에 눕혔습니다. 그 아기는 바로 예수님이셨어요.

올리브나무는, 이 세상의 어떤 임금보다 더욱 높으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잠자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삼나무는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큰 군함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삼나무는 베어져, 초라한 시골의 조그만 고깃배 신세가 되었습니다.

삼나무는 매일 어부들과 함께 바다로 나아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로 사람들이 모여 들더니

예수님께서 그 배를 오르시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삼나무는 "세상에 내가 예수님을 태우다니.."

세상에 어떤 군인보다 더 높고 위대하신 예수님을 태워드렸던 것입니다.

 

‘대양을 누비는 군함’과 ‘시골 어촌의 조그만 고깃배’

우리는 전자를 원하지만,

주님은 후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그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 신앙’입니다.

전자는, 기독교 신앙이 아닌, 헬라(세상) 철학적 사고입니다.

 

소나무도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서 사시사철 나의 푸르른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안겨 줄 거야"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더니

벼락이 내리쳐서 하필이면 소나무에게 떨어졌습니다.

소나무는 깨지고 다치고 번개에 그을려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험상궂게 생긴 나무꾼이 도끼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음~, 이 소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불이나 피워야겠네."

 

나무꾼은 소나무를 질질 끌고 가 헛간 한 구석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렇게 한숨으로 지내던 어느 날, 로마 군인 몇 명이 헛간으로 들어와

그 소나무를 가져가서, 십자가 형틀을 만들었습니다.

 

소나무는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못 박은 십자가가 되다니.. 슬펐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용기와 소망을 갖는 것을 보고

자기 꿈이 더욱 크게 이루어진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뜻이 더 위대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타는 것은 비극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타나기 바랍니다.

 

▶마치는 말

가장 부족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신 우리 주님처럼

가장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조각목과 같이 자기 부족을 알고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을 체험하고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며,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십자가 고난에 동참함을 기뻐하며,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만 나타나는

겸손한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쓰실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